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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ㅣ 클래식 라이브러리 6
조지 오웰 지음, 배진희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4월
평점 :
1984
조지 오웰의 소설이다. 깊고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진영이라고 해야할지, 사상 혹은 주의라고 해야할지 잘은 모르겠다. 다만 인간이 처한 환경에 정치적인 요소가 개입이 될 때 나타나는 다양한 현상을 작품 안에서 어떻게 풀어가고 있는가에 대한 생각들을 떠올렸던 것 같다.
작가의 여러 작품 중에서 아는 작품이라고는 동물농장과 카탈로니아 찬가 그리고 이번 1984가 전부이다. 그의 다른 저서를 접해보진 않았지만, 그가 지향하며 나아가고자 하는 글쓰기의 방향성에 대해 조금은 아주 조금은 알 것도 같은 기분이 든다.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 이 짧은 문장 하나로 소설의 전체적인 뼈대를 포괄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개인의 사상과 개인의 철학과 존중받아야 할 개개인의 삶 그 위에 단단히 영원불변으로 존재하는 국가. 크고 강력하며 절대 무너지지 않는 권력의 힘 앞에 개개인의 저항은 너무나 무력하게 그려지고 있다.
그런데 말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소설 1984가 표면적으로 절대 권력 앞에 쓰러지는 인간 존재를 그려내고 있는 게 분명하지만, 우리는 숨겨진 작가의 의도를 조금 더 깊이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작품 안에서 작가는 무력한 항거라 할지라도 지속적인 항거가 지니는 커다란 힘의 흐름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주인공 윈스턴과 관리자 오브라이언이 주고받는 대화에서도 윈스턴의 저항은 그만큼 끈질기고 강렬했다. 무너질 듯 무너질듯하면서도 다시 저항하는 그의 모습은 차라리 우매한 듯했으며 어리석기까지 할정도로 비춰질지라도 또 그렇게 강인한 모습이었음을 상기한다. 그가 마지막에 결국 무너졌던 것을 누가 비난 할 수 있을까. 모든 게 전체주의를 신봉하는 이들에게는 가벼운 놀이에 지나지 않는 인간 본성의 무력화가 아니었을까싶다.
작가의 작품 1984가 고전으로 자리매김했던 까닭을 생각했었다. 당시 미래에 대한 예측과 전체주의 속에서 한없이 고개를 숙여야 하는 개인의 삶에 대한 작가적 혜안을 먼저 생각해야 할 일이다. 이에 깊이 공감하며 개인적 사견을 덧붙이자면 체제에 대한 작가 자신의 신념을 작품 안에서 소설적 장치와는 별도로 구체적이면서도 현실적으로 명료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을 더 높이 사고 싶다는 말을 여기 이곳에 남긴다.
주인공을 나락으로 떨어지게 한 만남. 그들의 책자. 저항의 대표격으로 인식되어온 임마누엘 골드스타인이 남겼다는 그 책자에서도 생각할 것들이 많았던 것을 기억한다.
-다시 말해서 그는 전쟁 상태에 어울리는 정신 상태를 가져야 한다. 전쟁이 일어나고 있든 아니든 그것은 실제로 아무 상관 없으며, 결정적인 승리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전황이 좋고 나쁘고는 중요하지 않다. 필요한 것은 전쟁 상태가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뿐이다. 당이 당원들에게 요구하는 지성의 분열은 전시 중에 더 쉽게 이루어지며 이제는 거의 보편화되었다-P246
-무능한 국가들은 항상 얼마 안 가 정복당하고 능력을 위한 투쟁은 환상과 대치하기 마련이다. 제다가 능력을 갖기 위해서는 과거를 통해 배워야 하는데 그러려면 과거에 일어났던 일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했다. 물론 신문과 역사책은 언제나 미화되거나 편견으로 가득 찼지만 오늘날과 같은 거짓 날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전쟁은 건전한 정신을 지키는 확실한 보호막이었고 지배층에게는 전쟁이 가장 중요한 안전장치였다-P251
소설에서 등장하는 세 나라는 끊임없이 전쟁을 한다. 아군이었다가도 적군으로 돌변해서 그들은 쉬지 않고 전쟁을 한다. 어느 나라와 싸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전쟁의 상황을 계속 유지해가는 게 더 중요한 관건이라고 말한다. 그들에게 있어 전쟁은 단순한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치부된다. 사람들을 쉽게 관리하기 좋은 시기가 전쟁의 시기라는 이야기다.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
무슨 논리에 의한 표현들일까. 처음에 분명 조급해했었다. 그러나 책을 완독하고 나서 비로소 알게 된 것 같다. 결국 그의 말들이 다 맞는 말이었다.
모든 의미는 그들(관리자들)의 입장에서 해석되는 것들이었다. 그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 전쟁은 곧 평화라는 말이 맞는 말이다. 비슷한 의미로 국가와 조직에 예속됨으로써 비로소 안정적인 환경과 자유(상대적이며 주관적인)를 제공받을 수 있다는 수 있다는 것. 무지와 무관심으로 일관해야 그나마 남아있는 것을 지켜낼 수 있다는 것.
작품 1984는 씁쓸한 이야기의 소설이다. 주인공 윈스턴이 그들 국가가 만들어낸 거짓으로 조작된 환경에 동화되는 듯했던 그 마지막 순간 관리자 그들의 결정은 뭐랄까, 느슨했던 생각의 고리를 바짝 조이는 트리거 기능을 했다고 생각한다. 결국 전체주의 사상의 국가는 국가가 원하는 것만을 쟁취할 뿐이라고 작가가 다시금 이야기하는 듯했다.
치열하면서도 작가의 집요한 열정이 느껴지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지구 어딘가에서 전체주의 혹은 사회주의가 공존하고 있는 시대가 아닌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깨어있는 지성’이라는 표현이 생각나는 순간이다. 또 한편으로는 인간이 존엄한 인간 존재로 올곧게 살아가기 위한 스스로의 판단과 행동들. 개인과 집단구성에 대해 생각이 많아지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