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의 녹취록 스토리콜렉터 112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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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녹취록


날이 흐리다. 4월 22일 월요일 아침이다. 새벽에 한기로 자주 깼던 것 같다. 커튼을 걷어올렸기 때문인지 전기요를 꺼놓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한기가 몰려들어 선잠을 잤다는 생각이 든다.

4월 말을 달려가는 이 시점에 어울리지 않는 전기요라니. 따지고보면 체질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어쨌든 모든 것들은? 아니 모든 결과들은 사람마다 다른 반응성 때문일지도 모른다.


미스터리물을 좋아하는지 묻고 싶다. 한여름도 아닌데 어인 공포물을 운운하는가, 라는 질문이 생겨날 것도 같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보자. 호러와 미스터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봐야 할 것 같다. 각각 따로 생각해 볼 때의 느낌과 두 가지를 동시에 한 자리에 끌어왔을 때의 느낌은 어떻게 다른지도 넌지시 물어보자.

인간의 내면에는 근원적으로 공포가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근원의 공포가 어디에서부터 생겨났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아마 학자들이나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여다보면 어느정도 실마리가 잡히지 않을까도 싶다. 사설을 길게 늘어놓았다가 지운다. 말이 너무 많아보여서 말이다.


이제 책에 집중해보자.

이번 책은 미쓰다 신조의 ‘죽은 자의 녹취록’이다. 미쓰다 신조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지만 이번 한권의 책을 통해 어느정도 아니, 거의 확실하게 그의 작품세계를 파악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미스터리와 호러의 접목이 이처럼 또 하나의 장르로 그 자리를 만들어 갈 수도 있었구나 싶었다.


인간이 지니는? 아니다. 가지고 있는, 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도 같다. 어쨌든 인간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공포와 현실에서의 정서적 혹은 육체적 결과물의 반응정도가 바로 미스터리와 호러 장르의 에너지원으로 작용하는 셈이다. 참으로 묘한 것은 이런 분위기, 이런 스토리의 전개가 어쩐지 익숙하다는 점이다. 기승전결에 있어서도 시작과 과정은 비교적 뚜렷하나 결과에 있어 분명한 결론을 지을 수 없는 미온적이면서도 흐릿한 결과들도 그렇다.

이를테면 어린시절 언젠가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이야기. 혹은 그런 분위기를 떠올리게 된다. 그런 방향에서 봤을 때 미쓰다 신조의 작품은 익숙함 가운데에서 독특함을 끌어내고 있다고 보여진다. 오래도록 전해지는 전통적인 구비문학 어디쯤에서, 마치 살아있는 듯한 생기와 더불어 등줄기가 뻣뻣해질 것만 같은 공포감을 구현해내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되니 말이다.


소설은 미스터리 호러작가인 주인공이 우연히 얻게 되는, 자살을 앞둔 이들이 남겼다는 녹음 테이프로 인해 예상치 못한 경험을 하게 되는 내용이 큰 맥락이다. 이와 더불어서 다양한 단편이 함께 실려있다. 이번 책은 작품으로 볼 때 구체적인 완성도를 따지기보다는 각각의 스토리가 갖고 있는 작품에서 전해지는 그대로의 공포와, 그 공포에 반응하는 우리들의 잠재되었던 두려움과 솔직하게 마주하는 것이 주된 관건일지도 모른다. 다만 일본어를 잘 알지 못해서 마치 일본어의 유희 같은 대목에서는 살짝 주저함이 없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작품 안에서 앙화, 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네이버를 찾아보니 어떤 일로 생기는 재난 혹은 지은 죄의 앙갚음으로 받는 재앙이라는 해설이 있었다. 책에서 쓰이는 앙화는 어떤 안 좋은 영향이 자신에게 미치는 걸 이야기하는 듯하다. 죽은 자들이 죽기 전에 녹음한 테이프를 계속 듣다보면 생겨나는 안 좋은 현상들이 그 예라고 하면 이해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작가는 이 번 책을 읽는 독자들의 걱정 또한 잊지 않는다. 책을 읽다가 비슷한 앙화 현상을 받게 될까 염려를 하고 있는 것이다. 책을 번역한 역자 역시 비슷한 경험 내지는 작가와 비슷하게 앙화 이야기를 조심스레 언급하고 있다. 이쯤되면 이번 책을 더 보고 싶은 묘하게 비뚤어진? 욕망이 작용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기분 탓일 수도 있다. 그렇기는 한데 말이다. 책에 깊이 빠져들수록 그렇게 몰입할수록 어쩌면 다양한 앙화가 등장할지도 모르겠다.

멀쩡하던 체중계가 갑자기 혼자서 불이 번쩍거리며 빠르게 점멸해 새벽에 여러 번 깨서 급기야 건전지를 빼고 다시 잠이 들었던 것은 그저 소소한 일이라 생각하려 한다. 한번은 말이다. 우연이든 어떻든간에 책을 읽고나서 있었던 일을 같이 이야기해봐도 재미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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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의 숲에서 - 바이칼에서 찾은 삶의 의미
실뱅 테송 지음, 비르질 뒤뢰이 그림, 박효은 옮김 / BH(balance harmony)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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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의 숲에서


내가 처음 바이칼 호수를 알게 된 게 언제였더라. 오래전 어느 작가의 소설 제목에서 들었던 기억이 처음 기억인 것 같다. 바이칼 호수라. 대륙 한 가운데 넓게 펼쳐져 있는 호수라고 했다. 한 시절 무슨 이유에서인지 스스로 인도로 떠나는 사람들 곁에서도 바이칼 호수라는 말이 오르내리곤 했던 것 또한 기억한다. 무언가가 있었던가보다. 사람을 끌어들이는 아니 매혹시키는 그 어떤 것들을 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바이칼.. 호수 말이다.


책은 광대한 바이칼 호수 근처에서 홀로 6개월을 은둔한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모든 것을 뒤로하고 자연으로 들어간 사람은 누구였을까. 그는 바로 책의 저자 실뱅 테송이다. 프랑스 출신의 그가 왜 러시아의 겨울 한 복판으로 들어가야 했던 것일까.

한편 책은 특이하게 그림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비르질 뒤뢰이의 그림으로 소개되고 있는데, 책에 실린 그림 아니 삽화라고 해야할까. 각설하고 그 인상은 단순히 그림으로 치기에는 상당히 세부적이며 정교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서적으로 다가온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찌하면 그림이 정서적으로 다가올 수가 있단 말인지. 적어놓고 보니 또 애매하긴 하다. 말로 혹은 글로 표현하기가 좀 어려운 건가. 전체적으로 보면 삽화마다 한 두 줄의 글이 실린 편집 구성이다. 개인적으로는 삽화를 이루는 컬러들이 밝고 화사한 색감이 아닌 낮은 채도 위주의 색감으로 느꼈다. 글이 들어간 구역은 하얗게 박스처리 후 글을 싣고 있다.

이제 실뱅 테송의 이야기에 집중해보자. 그는 가족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바이칼 호수의 오두막으로 향한다. 책과 시가. 그리고 보드카도 잊지 않는다. 오두막에서 창문 앞에 앉아 있는 법을 배우고, 장작을 패고, 글을 쓰고, 그렇게 시간의 의미를 되새기며 혼자만의 시간을 만들어간다. 또 진짜 러시아인처럼 가방을 둘러메고 오두막을 벗어나 자연 속에서 안착하기를 원한다.


-그곳에서 겨울과 봄을, 행복과 절망을 그리고 마침내 마음의 평화를 체험했다.

-침엽수가 우거진 깊은 숲속에서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책의 초반 그가 남긴 글에서 발췌한 인용글이다. 이 짧은 두 줄의 문장으로 그의 생각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알 수 있을 것도 같다. 책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지인이 맡겨둔 두 마리의 어린 개는 후반부로 갈수록 실뱅 테송의 든든한 아군으로 등장한다. 러시아와 프랑스의 정치적인 이야기며. 사회적인 이야기 또한 등장한다. 그가 수많은 사람들과 세속의 것들과 결별하기 위해 바이칼을 찾아 들어갔어도 오롯하게는 사회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인간은 왜 사회적인 동물을 인지하는 동시에, 자주 그 상황을 외면하고 싶어하는 것일까를 생각한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임을 주장하던 학자들 역시 순간순간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문득 인간은.. 무리에 속해있을 때조차 혼자 있는 것을 추구하지만, 결국은 다시 무리 안으로 돌아와 안착하는 존재라는 결론을 혼자 내려보곤했었다. 바이칼 호수로 들어가 고독 속에서 안정을 느꼈던 실뱅 테송도 일시적인 귀환일지는 모르겠으나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지 않았던가 말이다.(이리 적어놓고 보니 내가 참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실제로 그가 바이칼 호수에 머물러 있을 때도 다양한 지인들과의 교감은 끊이지 않았다. 어찌보면 그는 사람에게 지쳤다기 보다는 도시적인 삶에 지쳤는지도 모를 일이다. 글 속에서 그가 지인들과 만나 보드카를 마시고 이야기를 하며 만족해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책을 처음 접했을 때 자연스레 소로의 월든이 연상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두 책을 비교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여튼 소로는 조금 더 스스로에게 엄격했던 것 같기도 하다. 실뱅이 느꼈던 자연의 교감적인 부분에서 보다 더 깊은 무엇이 담겼었다는 것을 기억한다. 소로에게는 지인들보다는 이른 아침에 날아든 새들이 더 친근했던 것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판단과 분석은 각자의 몫이다.


결론이다. 간략한 글과 삽화로 집중할 수 있는 책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바이칼 호수 옆 거대한 숲을 상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을까. 어인 까닭인지 흐릿한 듯 무거운 듯한 색감이 주는 분위기가 책의 무게감, 혹은 어쩌면 그 안에 잠재되어 있을 인간의 원초적인 고독과 고뇌라는 감정선들을 안정감 있게 받쳐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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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간을 복원하는 사람입니다 - 어느 문화재 복원가가 들려주는 유물의 말들
신은주 지음 / 앤의서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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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간을 복원하는 사람입니다


시간을 복원하는 사람이라는 제목이 시선을 끈다. 과연 시간은 복원 가능한 것일까. 시간을 되돌리는 것과 시간을 복원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책날개에 저자의 대한 설명이 실렸다. 잠깐 들여다보고 가자. 저자 신은주는 박물관문화재관리학을 전공하고 국립광주박물관에서 근무했다고 했으며, 이번 책 ‘나는 시간을 복원하는 사람입니다’ 이전에 책을 낸 이력이 있다.


박물관이 아무리 많은 이들에게 열려있는 공간이라고 해도, 그곳에 들어가는 일은 늘 조심스러운 마음과 함께 알지 못하는 묵직한 위압감을 안고 갔었던 것 같다. 하물며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인식은 어땠을까. 가끔 문화재 관련 다큐멘터리에서 나오던 박물관 직원들이 생각났었다. 저자 신은주도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일까.


박물관에 마지막으로 가본 적이 언제였더라. 지난 겨울방학이 시작되기 전 중학교 졸업을 앞둔 둘째 아이와 현장학습 체험으로 한성 백제 박물관에 다녀온 게 가장 최근의 기록인가 싶다. 기억을 소급해보면 아이들이 어려서는 늘 박물관과 미술관 전시회를 찾아다니곤 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아이들의 볼멘 투정들이 들려와 그 것도 그만두었던 것 같다. 아마도 그 무렵 박물관의 매력을 아이들은 알아채지 못했던가보다.


저자는 박물관에서 보존과학 일을 하는 듯했다. 보존과학이라는 표현도 무척이나 생경하게 다가오지만 저자의 책을 접하면서 결론을 내리자면, 결국 유물을 과학적으로 접근해 보존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녀의 책은 보존과학자로서 유물을 대하는 태도와 그 의미 내지는 가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를테면 보통의 직업정신 그 너머의 진중한 의미를 부여하는 느낌 같은 것이었을까.

책은 단순하게 유물 발굴에 대한 이야기만 하지 않는다. 그것이 이 책의 의미를 넓게 확장시키는 근거가 된다고 본다. 그녀가 유물을 바라보는 시선은 과학적인 동시에 철학적이었다는 인상을 받는다.

유물을 들여다보면서 보다 깊이 있는 인간의 철학을 논한다는 것. 책 안에는 곳곳에 그녀만의 철학이 그녀만의 사유가 담겨져 있다.


-유물도 자신의 찬란했던 과거의 모습이 아니라 녹슬고 더 이상 쓸모없어진 자신의 모습이 썩 마음에 들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물건이든 인간이든 세상에 태어나 한 시기를 누린 모든 것들에게 생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는 것은 자연의 순리다. 그 대자연 앞에 물건도 사람도 그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존재일 뿐이다.-p46


과학적 접근측면에서 보는 보존과학자의 모습과 함께 유물을 보존하는 과정과 유물을 통해 들여다보는 개인의 성찰과 철학이 이번 책의 가치를 발하는가 싶다. 여러 이야기 중에서 잊힐 권리를 빼앗긴 권리에 등장하는 이야기가 마음에 자리를 잡는다. 유물이라 해서 늘 박물관에만 있어야 하는 법은 없지 않은가 말이다. 유물을 상하게만 하는 녹이 되려 일정부분 유물을 지켜내는 작용을 한다는 이야기도 그렇고 수장고와 예담고 이야기도 그렇고 새로이 접하게 되는 부분이 적지 않았던 책이다.

다음에 언제라도 다시 박물관에 가게 되면, 저자의 이야기를 상기하게 되지 않을까. 그 순간만큼은 겸손하게 유물과 대화를 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마지막으로 저자이자 문화재 보존과학자 신은주의 바람을 이곳에 적어본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는 힘, 그 마음을 잊지 않기를”, 유물을 복원하듯, 나를 둘러싼 관계에서도 내 일상에서도 내 삶에서도-p38.

-박물관과 예담고가 물건들의 공동묘지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살아 숨 쉬고 미래를 꿈꾸는 동반자로 오래도록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란다-p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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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경 1 - 왕좌의 옆에 서다
서자영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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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경 1. 2


이번 책은 태종 이방원의 아내인 원경왕후의 이야기를 소설로 담아낸 책이다. 저자 서자영의 의도는 아마도 여성 작가의 시선에서 본 원경왕후의 당대 입지와 활약? 을 현실감 있게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익히 잘 알려진 역사를 통해 들여다보는 조선 개국사에서 원경왕후의 이야기는 지극히 제한적으로 남겨져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긴급하고 절박한 순간에 기지를 발휘하였으며, 이방원에게 갑옷을 입혀주었더라는 설에 잠시나마 세상의 시선을 받았다가 사라져가는 그녀 민자경의 알려지지 않았을 진짜 이야기를 그려본다. 한편으로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조선 개국을 이야기하는 역사에서 우리도 모르게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한번쯤 다시 상고해볼 만한 필요성을 생각했었다.


시작이 어째 좀 딱딱해졌다. 소설은 입에 단 잘 익은 감처럼 감칠맛이 도는데 말이다. 우선 저자에 대해 좀 알아보자. 작가는 특수교육학을 전공한 이후 드라마 작가로 전환했다고 한다. 드라마 대본을 써온 필력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녀의 소설은 일반적인 소설의 서사저인 맛과 동시에 대본이나 시나리오에서 느낄 수 있는 생생하고도 현실감 있는 찰진 대사가 적절히 어우러져 있는 듯한 인상을 받곤 했다.


역사를 다루는 소설을 많이 읽어 보았을까? 생각해보니 그렇지는 않은 듯하다. 역사를 좋아하고 역사를 소재로 한 책은 많이 읽어보긴 했지만, 뭐랄까. 이번처럼 작가의 상상력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픽션의 역사 소설은 조금은 낯설게 다가오는 까닭을 나는 짐짓 알고도 남는다. 많이 접해보지 않은 탓이다. 역사를 전공한 사학자들이 쓴 책들이 생각나고 그들이 풀어가는 이야기의 방식과 비교를 하고 있는 까닭도 이를테면 내 경험치가 부족하기에 생기는 사소함의 일들일지도 모를 일이다.


책은 원경왕후 즉 민자경이 이방원을 만나 함께 했던 모든 순간들을 서술해간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조선 개국의 역사적 사실들을 소설 속으로 온전히 녹여가고 있어 역사와 소설의 재미를 동시에 접해볼 수 있는 순간일 듯하다. 어린 시절의 첫 만남과 서로가 알아보며 혼인을 하고, 대의를 위해 조력자로서 아내를 받아들이는 인물 이방원을 그려가는 과정에서두 사람의 힘겨루기? 등등. 소설은 작가 서자영만의 힘 있고 지치지 않는 독특한 상상력의 필력으로 독자를 쉼 없이 유혹한다.

혹 그 옛날. 이방원과 민자경이 정말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았을까? 정말 이방원이 민자경의 존재에 이다지도 복잡한 감정을 표출했었을까? 여러 생각과 함께 자잘한 의문들이 이어진다. 작가의 의도를 들여다 볼 때 민자경 즉 원경왕후의 가려졌던 진면모와 함께 그녀의 묻혔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은 분명한 일이다. 그렇게 작가는, 조선 초라는 시대적 상황과 유교를 사상으로 건국한 정치이념. 이 모든 것을 훌쩍 뛰어넘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싶었던 여성. 그 인물을 다시 새롭게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포부로 읽는 이의 시선을 붙잡는가 싶었다.


표면적으로는 원경왕후에게 초점이 맞춰져있으나 계속 들여다보면 이방원이라는 원경의 주변인물에 대해 더 몰입하게 되었던 것 같다. 작품 안에서 원경왕후를 사실적으로 더 강조하고 드러나게 하려다보니, 오히려 이방원이라는 인물의 복합적인 심리가 더 크게 표출되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저러나 아무려면 어떤가 말이다. 소설은 매끄럽게 잘 읽히며, 읽는 재미와 상상력의 매력을 한껏 발하는 책인 동시에, 온전히 대중적인 느낌을 받게 하는 책이다.

1권에서는 개국의 이야기까지 담고 있으며, 2권에서는 두 번의 걸친 왕자의 난과 함께 강상인의 옥 이야기를 끝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한 가지 소설 속에 펼쳐지는 이야기와 역사가 증명하는 이야기 사이에는 픽션과 논픽션의 차이만큼 서로 다른 차이점을 지닌다, 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일종의 해묵은 잔소리이다. 혹여 혼돈의 늪에 빠질까하여 중얼거리는 개인의 노파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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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85km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PCT를 걷다
남난희.정건 지음 / 마인드큐브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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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흐리고 비가 내린다. 어제는 2월임에도 불구하고 영상 15도까지 낮기온이 올랐다고 했었다. 하늘은 여전한데 날씨가 심술인지. 속내를 감추고 있는 저 하늘이 모든 것을 주관하며 모르쇠를 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날씨가 하루 차이로 오락가락 변화무쌍하다.

아이들은 덥다고 얇은 옷을 입고 다니던데. 오늘 내일은 아마 다시 두꺼운 옷을 찾지 않은까 싶다.


오늘의 기록을 남기기 전에 기분이 매우 달떠있다는 말을 먼저 시작하려 한다. 달뜨다, 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나는 여전히 조금 흥분되어 있나보다. 이런 내 기분을 다 담아낼 수 있을까. 책에 대한 이야기를 오롯하게 다 풀어낼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그리고 책을 보는 틈틈이 등산화를 검색했었다는 것도 소곤거림의 낮은 소리로 슬쩍 흘려본다.


이번 책의 제목은 책이 담아내는 그 내용처럼 웅장하다. ‘4285km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PCT(Pacific Crest Trail)를 걷다’ 이다. 4285km라니 사실 감이 잘 오지 않는다.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를 네이버로 검색을 해보니 대략 400km 안팎이다. 서울과 부산사이의 거리의 10배 정도 길인가도 싶다. 참... 긴 길이다.


책의 저자는 두 명이다. 남난희와 정건이 그들이다. 사실 왜 저자를 한명이 아닌 두 명으로 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랬었는데 말이다. 책을 읽어가면서 생각이 달라져갔다면 이해가 될까. 시작은 언제나 남난희가 먼저였다. 그리고 뒤를 건의 이야기가 그 뒤를 따른다.

어쩐지 길을 인도하듯 남난희의 이야기와 그 길을 함께 했던 정 건의 이야기가 묘하게 조화롭게 다가온다는 인상을 받는다. 거침없이 앞으로 계속해서 나아가는 남난희의 성향과, 뒤에서 묵묵하게 정리하며 받쳐주는 일을 성실히 해온 정 건의 우직함이랄까. 두 사람의 글 속에서 그들 한명 한명의 고뇌와 성찰이, 또 혼자가 아닌 함께였기에 발휘되는 어우러짐과 성실함이 진득하게 배어나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들은 PCT (Pacific Crest Trail)을 준비해서 떠났고 그 때의 감흥과 경험들을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었다. 처음에는 여섯이 출발했고 그 다음에는 상황에 따라 두 명. 또 세 명 등등 함께 하는 구성원들은 조금씩 달라져갔지만, 대자연의 조화로움을 몸소 느끼며 조금씩 목적지까지 걸어가는데 있어 그 의지는 늘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적어두고 싶다.

책은 2018년 오리건을 시작해서 2019년 캘리포니아 남부. 그리고 코로나 19로 한해 쉬어 다시 2021년 캘리포니아 중부와 2022년 마지막 워싱턴까지 이어지는 긴 여정의 기록이다.


걷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책에는 한두달 사이를 걷는 하이킹을 섹션 하이킹이라고 하고, 그 보다 더 긴 시간 즉 5-6개월을 걷는 것을 스루 하이킹으로 소개하고 있었다. 남난희와 정 건 이외 이 책에 등장하는 이들은 대부분 섹션 하이킹으로 참여한다고 보면 좋겠다. 이들의 여정에는 사막도 있고, 눈길도 있고, 추위와 더위 그리고 모기떼와 울창한 수풀도 있으며 산불로 막힌 길도 있었고 무서운 곰도 자주 등장한다.

무엇보다 그들이 말하는 애칭인 ‘엔젤’과 ‘트레일 매직’을 포함. 그들의 조건 없는 베풂과 타인에 대한 배려심등이 기억에 오래 남을 듯하다. 어쩌면 길고 지친 하이커들에게 천사와 같은 존재인 동시에 각박한 현대 사회에 이런 이들이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비단 하이커가 아니더라도 어쩐지 천천히 행복해지는 순간이지 않은가 말이다.


책 속에서 남난희가 언급했던 부분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한국에서 이러한 문화가 정착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토로한다. 더불어 개인적으로 그녀가 책 중간중간 언급하고 있었던 백두대간과 PCT를 비교한 대목에 공감을 표한다.


산에 대해서 아는 게 없다. '하이커'라는 문화에 대해서도 처음 접해보는가 보다. 그저 아무런 욕심 없이 자신과의 싸움, 혹은 자신과의 여정. 그리고 곁을 따르는 이들과의 동지애를 지켜내기 위해 어제도 오늘도 걸어가는 이들이 대단해보였고, 한편으로는 그들의 건강함과 강인함에 부러움을 숨길 수가 없는 순간이었던가 보다. 비슷한 연령대에 누군가는 에베레스트에 오를 준비를 하고, 누군가는 백두대간을 생각하고, 또 PCT나 JMT(John Muir Trail)를 도전할 것을 준비하는데 나는 너무 안일한건 아닌가, 라는 생각이 꼬리를 문다.


때로는 마음 맞는 이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소박한 욕심을 다시 그려보는 순간이었다고 할까. 그렇다는 말이다. 수다스럽지 않고 진지하고 속내를 들추어내도 불편함이 없을 것 같은 그 누군가가 있다면 하이커가 아니어도 그저 잠시 얼굴만 들여다보아도 좋을 그런 지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사념 하나가 생겨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풍광과 지극한 인간미가 넘치는 이야기들이 가득한 책이다. 오랜만에 아이들과 함께 읽어볼 수 있어서 더 감사했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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