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에 대해 우리가 잘 모르던 이야기
이종범 지음 / 아마존북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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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에 대해 우리가 잘 모르던 이야기

 

어떻게 시작을 하는 게 좋을지 고민이다. 책을 쓴 이는 사제는 아니었다.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연구하며 책을 쓰는 등 그의 행적에 대한 기록을 들여다보면 연구하는 학자의 모습에 더 가까워 보였다. 불쑥 그가 사제가 아니라는 사실에 두 가지 생각을 가져다 붙여본다. 한가지는 사제가 아닌 학자이기에 다행이라는 사실이다. 반면에 똑같은 이유로 혹여 정도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가열찬? 종교관을 가진 그 누군가들과는 다소 불편한 대면식을 치르게 될 것을 염려했던 것도 사실이다.

 

무엇이 진실인지, 또 무엇이 거짓으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세상에는 설도 많고 의혹도 난무하다. 특히 예수에 대한 의문들이 많은가도 싶다. 더불어 종교의 개인적 측면을 뛰어넘어 사회적 측면으로 확대시켜 볼 때도 기독교 전통의 의미와 가치와는 너무나 멀어져가고 있다는 저자의 경고에 동의한다. 그는 본연의 가치를 찾고 싶었던가 보다. 우리가 잘 몰랐던 비밀스러운 이야기. 책은 예수의 전설. 예수의 가족. 예수의 교회 3파트로 구성되었으며, 성경에 기초를 두고 각각의 성경을 가져와 비교 분석하는 과정을 통해 진실에 다가서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책의 전반적인 배경이 되는 종교는 기독교 중에서도 카톨릭이다. 종교개혁에 따른 개신교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기독교의 근간을 이루는 카톨릭교회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는 것을 먼저 알고 가자. 따라서 저자 이종범이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성경 역시 카톨릭성경을 다룬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개신교에 익숙한 나 같은 사람에게는 저자가 제시하는 성경의 이름마저 낯선 것들이었음을 고백한다. <루카복음>이라든지 <마르코>와 같은 명칭에 무척이나 낯설었던 것 같다. 찾아보니 카톨릭에서의 루카복음은 개신교 성경에 누가복음, ‘마르코복음은 개신교의 마가복음으로 상용되는 것을 알았다.

더불어 <공관복음>이란 표현도 좀 알고 지나가자. 전문 지식이 없는 탓으로, 무지해 단어마다 뜻을 찾아보던 중 공관복음이 마태, 마가, 누가 복음서 전부를 포함해 부르는 명칭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정부분 책은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기에 중간중간 내용이 쉽지는 않다. 그렇지만 소란스러운 순간들로 채워지는 개인의 설교를 듣는 것보다는 훨씬 논리적인 동시에 설득력 있는 내용들이었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면서 들었던 의문과 많은 생각들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그동안 배웠던 것들. 알고 있었던 것들은 모든 거짓이란 것인가. 결국 종교는 인간에 의해 재창조된 것이며, 인간에 의해 신성시되고 그렇게 유지되어왔던 유산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라는 질문들???이 이어진다.

저자는 말한다. 기독교는 이미 죽은 종교이다, 라고 말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간은 종교에 몰두하기 바쁘다. 왜일까. 저자 김종범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인간은 본래 어쩔 수 없는 시간 앞에서는 신적 존재의 자비를 갈구하기 마련이기 때문이

.-p168

 

-세계와 인간에 관한 기독교, 특히 기독교 교회는 더 이상 객관적 진리의 수호자가 될 수 없다. 이제 기독교는 겨우 개인적 신앙 체험으로 근근이 버티는 중이다. 결코 과학적으로, 곧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없는 이 개인적 신앙 체험은 그 비과학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매력을 주고 있다. 결국 이간은 불확실한 미래를 마주해야만 하는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p156

 

비슷한 말을 나는 어느 시인의 고백에서 본 적이 있다. 인간이 종교에 몰입하는 것은 인간이 스스로 나약하기 때문이며 그것을 절대적으로 인정한 예라고 했던 k 시인의 기록이 생각난다. 정말인가. 지금의 종교는 더 이상 순수한 종교의 그것과는 영영 멀어져버린 것일까. 그저 개인의 신으로만 존재의 역할을 채워갈 수밖에 없는 것일까.

 

본래의 예수가 원했던 종교의 모습은 신성시도 아니고, 타 종교에 대한 배척도 아니었으며, 믿음만을 강조하기보다는, ‘낮은 곳으로 향하는 배려와 사랑의 실천을 더 원했을 것이라는 저자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현재 우리 곁에 있는 종교의 모습과 초대 기독교 교회가 염원하던 바람직한 종교인의 모습에 대해 다시 또 비교하게 되는 순간이다. 저자는 모든 변화와 부정적으로의 이미지 추락 등을 논할 때 자본주의를 언급하기도 했었다. 권력. 즉 돈과 명예, 개인의 욕심 등이 예수가 가장 처음 이야기하던 논지에서 모두를 멀어지게 했다는 이야기이다. 우울한 일이다. 그렇다면 이제 다시 질문해본다. 과연 우리는 회복할 수 있을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유대교와 기독교의 이해충돌과 그 역사에 대해, 다시 배우고 생각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개신교와 카톨릭의 이해관계? 라고 해야할지.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대하는 카톨릭 내부에서의 입장 변화와 여러 역사적 사실에 대해 새롭게 눈을 뜨게 해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논쟁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종종 종교적인 관점으로 시작해 지극히 감정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마도 이런 내용들이 아니었을까. 그들이 논쟁하기 좋아하는 내용의 상당부분을 이번 책에서 다루며 언급하고 있는 바, 사심 없이 들여다보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모두에게 객관적 시선을 새롭게 열어줄 시간이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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