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 년
송은일 지음 / 문이당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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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 년

-삶. 아름다운

 

마음이 짠하다. 아주 오래된 전설 같은 이야기 하나를 전해들은 기분이다. 산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을 그러니까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라고 말해주고 있는 것만 같다.

한 사람의 인생이, 그 사람이 간직하고 품었던 모성애와 사랑과 애정과 연민의 감정들을 고스란히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이 바로 내 할머니일수도 있고, 어머니일 수도 있으며 혹은 나 자신일 수도 있고, 내 아이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 년은 여성의 시선에서 여성이 중심으로 쓰여진 소설이다. 작가 송은일은 소설을 친정이 있는 고향사람들의 이야기라는 말로 소개한다. 소설에 대한 작가의 이야기를 잠시 들여다보자.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 년」에서 매구 할매는 내 모친이자 흰 동백꽃 아래서 영면을 선택해 버린 오수댁이다. 내 친정마을에 사는 사람 모두이며, 세상 모든 ‘친정마을’ 사람들이다. 아무리 멋지게 표현하고 싶어도 정말이지 평범한 사람들 이야기이기도 하다-

 

소설은 여느 지방 혹은 어느 누군가의 고향집이 있을 만한 공간인 평범한 시골 금당을 무대로 시작된다. 계성재는 4백 년이 넘도록 마을을 지키는 터줏대감과 같은 역할을 해온 마을의 중심이다.

그리고 이곳 계성재에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의 고령의 매구 할매가 산다. 산파를 하면서 마을의 아기들을 수차례 받아냈다는 매구 할매의 본명은 진녹두. 계성재의 주인의 보호아래 시간이 흘러 실질적인 계성재의 안방을 지키며, 마을의 정신적 지주가 되고, 사람들의 의식 속에 신기한 능력이 있는 특별한 존재로 자리하게 된다. 소설은 계성재를 끌어안은 한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면서도 특히 그 안에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며느리로서의 여인들의 굴곡진 삶의 한을 보여준다.

 

한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서로 가깝거나 먼 친척이기도 하고, 친척이 아니더라도 말 그대로 이웃사촌으로 관계를 이어간다. 한집 건너 한집에 사는 사람들의 숟가락이 몇 개인지 다 알 수 있다는 말이 딱 들어맞을 것 같은 작은 마을의 이야기이다. 장성하여 어미 품을 떠난 자식들이 병이 들어, 혹은 의도치 않은 사건에 휘말려서 오갈데가 없는 신세가 되거나, 나이 들어 객지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오려는 생각에서든 모든 이유를 차치하고서라도 어머니는 그런 자식들을 끝까지 품에 품어준다. 그리고 함께 아파하면서도 굳건하게 어머니라는 자리를 지켜내며 가족과 집안을 지켜낸다. 구암댁이 그랬고, 별량댁이 그랬다. 계성재를 지키며 매구 할매와 남편 동구를 위해 헌신하던 홍림당이 그랬고, 그 옛날 계성재의 어른으로 불렸던 여례당이 그러했으며 병선 씨를 비롯한 금당의 모든 아낙네들이 그랬다.

아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여인들의 삶이 그랬던 것처럼, 어제와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여인들의 삶이 그러하다고 말하는 듯하다. 어쩌면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그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책은 은현(매구 할매의 증손녀)이라는 여성과 함께 남편과 이혼하고 혼자 살아가는 민화와 또 병든 남편과 사별한 장희라는 인물을 등장시켜 이 마을의 미래를 상징화한다. 이들 인물은 모두 여성이다. 그런 까닭에 여든에서 백살 그 언저리를 살고 있는 마을의 노년들의 막다른 삶과는 다른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치를 갖게 된다. 마치 새로운 여성의 삶을 펼쳐나갈 시간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다가오는 것만 같다. 어쩌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내일을 살아가는 여성의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한편으로 책은 몇몇의 죽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 죽음은 갑자기 찾아오는 죽임인 동시에, 준비된 죽음이기도 했다. 수없이 반복되는 죽음과 그리고 죽음의 또 다른 이면인 새 생명의 탄생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그 상황을 순종하고 잘 받아들이는 일 뿐일까. 어쩐지 서글퍼지려한다.

 

구수하고 정감어린 전라도 사투리에 정이 뚝뚝 묻어나는 작품을 읽고 있으니 자꾸만 입이 근질거린다. 이번 책은 참 어여쁘고 여리고 애잔함의 여운을 남긴다. 삶은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라는 말이 참 거창하기는 해도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삶은 그 과정이기 때문에 내가 지금 어디쯤에 서 있는가를 한번쯤 되돌아보며 생각해봐야 할 의무이기도 한듯하다. 저무는 고갯길에 서서 삶의 마지막을 생각해야하는지, 지나온 시간을 반추해야하는지 나는 아직 명확한 답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떤 모양의 어떤 빛깔의 삶이든 그 자체만으로 아름답다는 것을 알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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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용기가 필요할 때 읽어야 할 빨간 머리 앤 내 삶에 힘이 되는 Practical Classics 1
루시 모드 몽고메리 지음, 깨깨 그림, 이길태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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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용기가 필요할 때 읽어야 할 빨간 머리 앤

-관계 속에서 힘든 딸에게 건네주고 싶은 책

 

책을 읽는 동안 우리 집은 온통 빨간 머리 앤 이야기로 넘쳐났다. 남편의 핀잔이 날아왔지만 오래전에 보았던 만화 동영상을 찾아 아이들과 함께 보기도 했다. 그런데 말이다. 핀잔을 쏟아내던 그도 결국에는 앤의 주제곡을 따라불렀다는 것은 정말이지 우리끼리만 아는 비밀이다. 침대위에서 끈끈이주걱에 잡힌 듯 찰떡같이 붙어서 우리는 주근깨 빼빼마른∼으로 시작하는 주제곡을 합창하며 동영상을 들여다보곤 했다. 앤이 마차에 서서 하얀 사과나무 꽃이 아치형으로 만발하게 핀 길을 지나가는 장면을 보면서 마차가 날아가고 있잖아? 를 연발하는 사춘기 아이들을 보고 나는 말했다.

 

왜, 마차가 날아가면 안 돼?

책장을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나는 어려서 보았던 그 빨간 머리 앤의 모습을 기억해냈다. 사실 그러면 안 될 것도 같았는데 기억이란, 혹은 각인이란 것이 지니는 힘은 정말 거역하기 어려운 무엇과도 같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이길태가 옮기고 사람과 나무사이에서 새롭게 출간된 이 책 ‘삶의 용기가 필요할 때 읽어야 할 빨간 머리 앤’은, 고전의 의미로 보는 앤 이야기와는 달리 기획의도가 조금은 새로운 색채를 띤 책이라고 봐야한다.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책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랑스러운 앤을 떠올릴게 당연하다. 이미 상당히 많은 출판사에서 출간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시 앤의 이야기를 출간한다는 것이 어쩌면 너무나 일반적이고 평범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라는 걱정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건 분명한 기우였다.

그래서 고전의 힘은 영원하다고 하는 것일까. 네가 옳아! 언제나 네가 옳아! 그 말을 해주고 싶다. 빨간 머리 앤의 이야기가 지니는 힘은 스토리의 탄탄함, 문장 하나하나가 뿜어내는 문장력 그리고 무엇보다도 섬세한 감수성이 인물의 대사와 자연의 분위기에 녹아들어 잘 표현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까닭에 이러한 장점은 이 소설이 오래도록 많은 이들에게 설렘으로 가슴을 두드리며 말을 걸어오는 힘이 되고 원동력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책 속에 새롭게 등장하는 앤은 우리의 기억에 남아있는 앤과는 살짝 분위기가 달라졌다. 길었던 빨간 색의 머리는 짧은 단발로 상큼하게 변해있었다. 그리고 책 속에 늘 앤과 함께 했던 다이애나가 아닌 커다란 덩치에 부드러운 엉덩이의 풍만한 곡선이 두드러져 보이는 하얀 곰 꼬미가 등장한다. 물론 짧은 머리의 앤과 꼬미의 등장은 잠시 잠깐 숨을 고르는 짧은 순간이다.

쉽게 풀어보자면 이런 거다. 원래의 빨간 머리 앤의 스토리에 중간중간 새로운 앤과 꼬미가 마치 책갈피의 여유로움처럼 ‘꼬미와 앤이 들려주는 말’의 형식으로 들어간 구성이다. 이 책갈피의 여유로움과 같은 앤과 꼬미의 등장은 이 책의 출간 의도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봐야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에피소드와 인물의 감정 상태에 맞게 새로운 앤과 꼬미는 위로의 말과 격려의 토닥임을 전해준다. 남자 아이를 원했기 때문에 앤이 다시 고아원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을 때, 꼬미는 앤의 곁에 앉아 무심히 이런 말을 남긴다. ‘괜찮아! 네가 널 사랑하면 돼!

소설책을 텍스트로 삼았을 때 구성을 논한다는 것은 오로지 소설의 이야기 구성을 이야기할 때가 대부분이었지만 이번 책은 소설의 구성 이외의 것을 생각하게 했던 것 같다.

자신감이 떨어지고 우울한 날 꼬미가 들려주는 말은 “마음으로 지지 마라, 너희는 강하다!”, 라는 영화 ‘울보 권투부’에 나왔던 대사였다.

 

책을 읽으면서 독자는 책 속으로 몰입한다. 주인공 앤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을 때, 책을 읽는 독자는 감정이입을 하고 그 상황에 함께 동참하게 된다. 나라면 어떤 생각을 했었을까.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그런 순간에 단발머리를 한 앤과 꼬미는 사실은 살짝 옆으로 비켜서서 조금은 객관적인 시각으로 진지하게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다.

이번 앤의 책은 최근들어 부쩍 힘든 이들에게 심리적으로 위안과 위로의 소통할 수 있는 소재로 많은 책들이 출간되고 있는 시류를 잘 적용한 책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책을 읽는 엄마 곁에 딸아이가 와서 슬쩍 책을 곁눈질로 읽다가 말했다. 엄마는 책을 너무 빨리 읽는 것 같아. 나중에 따로 천천히 봐야겠어.

무엇보다도 열두 살이 된 딸아이에게 나는 이 책을 권해주고 싶다는 생각에 마음이 닳아있다. 엄마도 그 즈음에 앤을 만났어. 아마 네게도 정말 둘도 없는 친한 친구.. 절친이 되어주리라 믿어.

 

자기 생각과 자기주장, 자기만의 상상의 세계가 너무나 강렬했던 말라깽이 어린아이가, 소녀가 되고 숙녀가 되면서 성장해가는 사랑스러운 이 이야기를 딸에게 선물해주고 싶은 건 순전히 엄마 욕심이라고 해두자. 무엇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딸에게. 인간은 그 관계 속에서 살아가며 성숙해가는 것이라는 말을 해주고 싶은 것이다.

이제 이 책을 아이의 책장으로 넘겨줄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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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위에 지은 공간, 한국의 서원 -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
김희곤 지음 / 미술문화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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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서원

-그곳에 서면 세상이 읽혔던가.

 

가지런하게 혹은 자유롭게 땅을 딛고 선 건물과 건물 사이를 느린 걸음으로 에돌아 나오는 저 오래된 숨결 앞에 서면, 가만히 눈을 감고 스스로의 소리로 침잠하게 될 것만 같다.

저자는 스페인에서 복원과 재생건축을 전공했다고 한다. 그리고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면서 강의를 한다는 프로필 내용이 눈에 들어온다. 이번 책은 이를테면 건축가의 시선으로 본 옛것에 대한 답사 성격을 지닌 책이다. 특이한 것은 이런 점이다. 저자는 서원을 포함한 역사를 따로 배우지 않은 상황에서 글을 썼다고 봐야하는데, 그의 전공인 건축가의 시선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동시에 그 안에서 역사와 옛 사상을 찾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점이 신선했던 것 같다.

 

책의 구성은 서원의 기원을 먼저 소개하고 있다. 조선의 서원이 시초를 올라가 살펴봤을 때 중국의 서원과 영향을 주고받았다는 점을 밝히면서 짧게나마 중국서원을 소개한다. 그리고 뒤이어 총 세장으로 내용을 나누고 제목을 달았다. 1장은 퇴계의 사상이 머물다, 2장은 시대의 비탈길을 걸어가다, 3장은 위대한 인물을 향한 존경을 담다,로 분류한다.

이번 책은 모두 아홉 개의 서원을 싣고 있으며, 이들 서원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등재를 신청한 곳이라는 소개 역시 첨부하고 있었다.

 

조선 서원의 시작이 되는 인물 안향 주세붕과, 퇴계 이황, 류성룡이라는 인물과 각각의 서원을 소개하는 내용을 보고 있으면, 저자의 의식의 흐름이 어느 지점에서 출발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저자는 우선 서원의 시원과 의미를 알리고 싶어했다. 무엇보다도 모름지기 서원을 논함에 있어 그 과정이 필연적으로 먼저 받쳐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의미란 가져다 붙이기 나름이라는 말도 있긴 하지만 어쨌든 저자의 세심한 배려로, 서원의 시작에 대해서 그 번성하는 과정 가운데 깊이 녹아든 선비사상에 대해 조금은 더 가까워지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전체적으로 책이 지니는 분위기는 자못 차분하지만, 때론 진득하고 때론 한없이 여유롭기까지 하다. 이 책에 자꾸 눈길이 머무는 까닭은 곳곳에 들어간 다양한 사진 덕분이 아닐까 싶다. 말 혹은 글로만 소개하는 것보다 함께 사진을 실어 눈으로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데서, 사진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눈이 시원할 정도로 파아란 하늘과, 그 아래 낮게 드리워진 기와와, 계단과, 담장과, 나무와 풀 사이에서 저자는 많은 것을 담아내려 노력했다.

 

한편으로 책은 서원을 소개할 때마다 서원과 관계된 역사적 이야기를 함께 싣고 있었다. 역사적 정치적 배경과 서원의 설립과 관계된 인물들. 이 서원이 지니는 가치와 의미를 살펴보는 것은 역사와 서원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은 한 사람의 시선과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라고 보면 좋겠다. 그 다음 이어지는 것이 저자의 전문적 시선인 건축학도로서의 관점으로 서원을 살펴보는 과정이다. 저자는 건물 하나하나 밀도 있게 분석하고 해설한다.

오래전에도 서원을 건립하는 과정에서도 반드시 약속된 양식이 있었던가 보다. 그러나 그 양식이란 것이 초기에 서원 설립시기에는 완벽하지 않아서 제대로 지어지지 않은 부분이 있었고, 또 어느 시기에 지어진 서원은 선현의 뜻에 따라 건물배치에 있어 약간의 다양성을 갖추었다는 등의 상세한 이야기도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서원이 사당과 꼭 함께 생각해봐야 한다는 전제가 있는 것일까. 따로 생각할 수 없는 공간인가 보다. 책 역시 서원과 사당을 함께 비교하며 소개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각각의 서원과 사당은 모시고 제사지내는 선현에 유지와 사상에 따라 형식적으로 약간의 차이점을 보이고 있지만, 대체적으로 자연과 자연스럽게 융화되는 모습으로 긴 시간을 지켜내고 있다는 데서 큰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다.

 

늘 겸손하게 자신을 닦아 수양하고자 했던 선비의 바른 직념이 손에 잡힐 듯 느껴지는 까닭은 사진에서 보는 반듯하면서도 시원하게 뚫린 대청마루 때문이다. 적당하게 밝고 적당하게 그림자가 드리운 열린 공간인 이 대청마루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공간이다. 이곳에 있으면 곧게 솟은 기둥과 널찍하게 펼쳐놓은 지붕 너머로 멀리 산이 보이고, 하늘이 보이고, 그들이 믿고 따랐던 굳건한 일념으로의 하나의 완벽한 사상이 보였던 것이었을까.

 

책은 역사와 그 역사를 지켜낸 굳건한 사상과 함께, 그 안에서 살아 숨 쉬던 선현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한다. 더불어 소박하게 아름다운 옛 건물들에 대한 저자의 꼼꼼한 부연 설명까지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역사와 전통건축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읽어보면 좋을 듯하다.

 

 

-한국의 서원은 세상의 모서리에 부딪혀 상처 난 가슴을 치유하는 법은 오직 스스로 내면을 키워내는 힘에 있음을 건축 공간으로 말해준다. -p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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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에서 온 소년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59
캐서린 마시 지음, 전혜영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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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에서 온 소년

-용기에 대하여


가치관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들은 모두 다른 가치관을 갖는다. 그런 까닭에 때때로 각자의 다른 가치관이 서로 충돌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럴 때 우리가 찾아야하는 방법은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아닐까싶다. 문득 이런 말을 하고 싶어진다. ‘너를 이해한다. 아니, 네 가치관을 인정하려 노력중이다.’

심리학자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있다. 예를 들면 상처를 받은 이에게 단순한 위로의 표현으로 ‘괜찮아, 곧 좋아질거야’ 라는 단순 위로의 말로는 그 상처를 더욱 자극시킬 뿐, 진정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그들의 이야기는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진정한 위로는 그 사람의 상처를 알아주는 데서 시작한다. ‘너 정말 힘들구나. 많이 아팠겠구나……’.

그렇게 나와 마주 앉은 이의 마음 속 깊은 상처를 바로 들여다볼 수 있을 때, 교감이 시작되고 상처가 아물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다음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제 그 이야기를 하려던 참이다. 소설 이야기와 함께.


맥스는 부모를 따라 미국에서 벨기에로 이주한다. 말도 잘 통하지 않고, 모든 것이 낯선 상황에서 소년은 혼자 고립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리고 또 한 소년 아흐메드가 등장한다. 이 시리아 소년은 내전으로 인해 어머니와 할아버지 동생들을 잃고 아버지와 단 둘이 고향을 떠나게 되지만 도중에 아버지와도 헤어지게 된다. 분명 두 아이가 맞닥뜨린 상황은 정도의 차이가 존재한다. 그러나 작가는 작품 안에서 두 소년이 처한 고립과 외로움이, 이질감 없이 동시에 하나가 되어 여운을 줄 수 있도록 이야기를 잘 이끌어가고 있었다.


두 소년은 맥스의 집에서 만나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아흐메드가 맥스의 집으로 들어가 쉬게 되면서부터였다. 그리고 두 소년의 진한 우정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소설에서 아이들은 넘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았고, 부정해야 할 것들도 많았고 또 어쩔 수 없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들도 있었다. 때로는 위험한 일도 있었고, 정의를 위해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아흐메드를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과정에서 문서를 위조해 가짜 서류를 만들기도 했으며, 친구의(아흐메드) 아버지를 찾아주기 위해 무모해 보이는 행동을 실행으로 옮기기도 한다.


이제 처음 꺼냈던 이야기를 이어서 풀어볼 수 있을까. 힘든 이를 위해 그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라는 것을 고민하면서 맥스의 선택이 가져오는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누구나 주인공처럼 엉뚱하고 무모한 행동으로 그 모든 것을 해결하거나 어떤 빈자리를 채울 수는 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서로 외면하지 않고 함께 곁에 있어주었다는 점이다. 맥스와 아흐메드 그리고 친구들은 함께 곁을 지켜주려했다.

지금 이 순간 한 소년의 선택이 비록 무모했을지라도,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이 얼마나 진지하고 순수하며 열정적이었는지. 단순히 친구가 좋아서 시작된 철부지 어린아이의 시선이 아닌, 서로에게 펼쳐질 앞으로의 시간을 걱정하고 염려하는 깊이감 있는 시선이었는지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다. 두 소년과 파라, 오스카와 같은 친구들은 자신과 타인의 관계 속에서 이해와 배려를 알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소설은 사람들의 편견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이것은 하나의 고정된 선입견처럼 다가온다. 소설에서 보면 나를 위해, 나의 가족을 위해, 혹은 내 나라를 위해서라는 나를 중심으로 한 생각의 방향이, 나의 것이 아닌 다른 것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으로 이해타산적 시선을 만들어내는 것을 지적한다. 또한 이러한 배타적 시선이 불만의 화살이 되어 의도한 곳을 포함하여, 의도하지 않은 곳까지 날아가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난민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받고, 신변에 위협을 받아야 하며,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 많은 이들에 대해 다같이 마음을 열고 생각해야봐야 할 의무와 책임을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법은 무조건 지켜야 한다는 어른들 생각과 딴은 그 법이 잘못된 법이라 해도 꼭 지켜야 하는가, 질문을 하며 근원적인 문제제기를 하는 소년의 정당한 도발은 현실에서도 사실 쉽게 답을 내어줄 것 같지는 않아 보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무엇을 어떻게 정의 내려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해본다. 우리가 믿고 있는 옳은 가치에 대해 혹은 인간존엄과 난민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책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용기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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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문, 이 시대가 묻는다
김태완 지음 / 현자의마을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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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

- 그대의 답을 논하라

 

책은 임금이 묻고 신하가 대답하는 형식을 갖췄다. 조선의 과거제도가 그렇듯이 책이 제시하고 있는 모든 책문의 자료는 종이에 한자로 기록되어있다.

인재를 뽑기 위한 하나의 과정인 책문은 조선이라는 나라가 지니는 사상의 근간을 뿌리부터 굳건하게 받치고 있다. 때문에 실질적이면서도 중요한 요소 중 한 부분을 차지하는 역사적 사료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의 과거 시험의 가장 마지막 단계인 책문. 젊은 인재들의 생각과 그들의 포부와 패기를 살펴 그들의 지혜를 얻고자 했던, 당대 왕들의 고군분투 진정성이 담긴 마지막 선택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보자.

 

-책문은 무엇보다도 정치 현안의 문제를 묻고 대답하는 글이다. 그러므로 현실을 직시하고, 그 시대에 가장 중요한 일인 시무를 제시하는 것이 핵심이 된다-

 

요즘으로 치자면 마지막 면접과도 같은 단계이다. 1차, 2차 그리고 3차 선발까지 합격하고나서 최후 면접으로 보는 시험이 바로 책문이라고 보면 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책에서 언급되고 있는 바, 당대 현실과 정치적 어려움을 비롯해 임금으로서의 자질과 정책운영에 대한 방책 등을 질문으로 많이 제시한 듯싶다. 저자 김태완이 정리한 책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기록으로 남아있는 왕들이 제시한 ‘책문’을 싣고 있으며, 두 번째로 각 신하들의 의견이 담겨진 ‘대책’을 바로 뒤에 싣는다. 또한 마지막으로 ‘책문 속으로’ 라는 타이틀로 각각의 책문과 대책에 대한 소개와 함께 정치적 시대적 상황에 따른 자세한 설명이 덧붙여지는 구성이다.

책은 총 13편의 책문이 담겨져 있다. 왕으로 치자면 광해군 시기의 책문이 3편, 중종 시대의 책문이 4편, 명종 시대 3편, 세종시대 2편, 선조 시대가 1편이다.

 

왕의 자리에서 신하에게 손을 내밀어 지혜를 구하고자했던 그들의 고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시급한 나랏일, 나라를 잘 운영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는가, 라는 문제가 중요 관건이었던 것같다. 나라를 잘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은 비단 정치수완에 국한되는 것은 아닌 듯하다.

세세하게 교육의 방법을 논하기도 하고, 관리와 일반인을 구별하고 관리들의 처우를 생각하거나, 혹은 6부를 비롯해 나라의 정책에 대한 올바르고 확고한 신념과 제도의 중요성을 풀어내기도 한다. 때에 따라서는 이들 선비들이 내세운 다양한 책문에 대한 담론이 동전의 양면 같은 성격을 포함하고 있는 부분도 적지 않아보인다. 책문과 그에 대한 답문에서 실제로 인정했듯이 좋은 법령을 시행하려 할 때면 그에 따른 폐단도 같이 뒤따라올 수밖에 없다는 지적은, 당대를 지켜왔고 또 지키려했던 지식들이 얼마나 많은 부분 현실적으로 고뇌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참으로 책문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법이 제정되면 그에 따라 폐단도 함께 생기는 것입니다.-P 374

 

그러나 이들은 끊임없이 묻고 답하며 법과 법이 가져오는 폐단에 대해 고민했고 수정해갔다. 문득 이들이 이런 고단한 과정을 몸소 끌어갈 수 있었던 원동력에 대한 생각들을 하게 된다. 그들은 잘못 된 부분을 인정하는 법을 알았다. 그리고 바꾸고 고쳐야 한다는 것 또한 알았다. 고치고 갱신할 수 있는 것이 도리라 말했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선비의 도리라며 일침을 가했다. 그러니 아무리 제왕이라 하더라도 동참하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들이 이렇게 중요한 쟁점을 가지고 서로 논의를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소통의 힘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파가 분열되고 서로의 뜻이 달라 따르는 이도 달라져갔지만 그들은 뭐랄까, 그들 나름대로의 신념이 있었고, 그것을 지키려했다는 것을 이번 책 책문을 통해 다시한번 들여다보며 확인하게 되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어수선한 정국에서 세자의 자리에 올랐던 광해군이 왕의 자리를 지켜내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가치에 대해 질문하고, 그 존재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선택한 선정이라는 목표는 아이러니하게도 여러 가지 역사적 사건에 의해 그 의미가 퇴색되는 결과를 가져온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이분법적인 잣대로 후대의 의견과 판단이 갈라지긴 했지만, 광해 그가 선비들에게 물었던 책문 속에서는 진정한 군주의 역할을 완수하기 위한 개인의 인간적인 고충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고 봐야한다.

정치적 안정을 위한 책문에는 자의든 타의든간에 새로운 왕좌에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자신의 입지조건에 대한 불안감이 일정부분 작용했다고 봐야한다. 광해가 그랬고, 연산군을 폐위하고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중종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때로는 목숨을 걸고 왕에게 직언을 고하는 신하가 있었기에, 때로는 왕과 마주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속마음을 꺼내놓을 수 있었던 신하가 있었기에, 조선은 오백여년을 굳건하게 버텨낼 수 있었던가 보다.

백성이 없이 나라가 있을 수 없으며, 신하 없이 왕 또한 존재할 수 없다는 의의는 저 먼 시대의 정도전의 뜻인가. 조선은 사대부의 나라인 동시에 민본정치가 근본으로 깔린 유교적 사회였다. 민생의 안정을 최우선으로 할 것을 주창하였으나 때때로 민생의 안녕보다는 개인의 사욕을 채워갔던 어두운 과거 역시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한들 함께 고민하고 함께 해결책을 찾고자 했던 이들의 노력이 평가절하 되어서는 것은 안 될 일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책문은 여전히 우리가 필요로하는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과거 시대의 제도였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잊고 있었던 어떤 정의와 가치를 위해서. 혹은 정치 보다 그 위에 있는 인간에 대한 신념과 진중한 예의를 생각하면서 한번쯤 읽어봐야 할 책이지 않은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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