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 군주론의 탄생
마일즈 웅거 지음, 박수철 옮김 / 미래의창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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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 군주론의 탄생

-인간 마키아벨리.

 

군주는 모름지기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우리가 기대하는 군주의 모습은 강력한 군주의 모습인가. 아니면 인간적인 본성을 갖춘 선량한 군주의 모습인가.

난세에 인간은 새로운 영웅을 기다린다고 했던가. 바꿔말하자면 평화로운 시기에는 영웅을 찾지 않는다는 말이 되는 것인가. 그런데 말이다. 기다려도 영웅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어쩌면 인간은 어수선한 시대를 다시 이끌고 나아갈 사람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모두가 함께 하는 열망과 욕망으로, 누구나 바라는 그런 영웅을 새롭게 만들어가야 하는 목적이 생겨나기를 바라는지도 모른다.

 

마키아벨리는 어떤 영웅을 기다리던 사람이었을까. 강력한 권한으로 어지러운 나라를 일으켜 세워 굳건하게 지켜나갈 그런 위인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살았던 시기에는 그 자신이 그렇게 바라던 영웅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그가 진정한 영웅으로 믿고 생각했던 인물 ‘발렌티노’는 교황이었던 부친의 조력으로 강력한 힘과 거짓으로, 자신의 욕심을 채웠던 인물로 소개된다. 마키아벨리는 발렌티노의 강력하면서도 절대적인 군주의 모습에 시종 그를 흠모하지만 이 두 사람의 끝은 이를테면 당연한 귀결로 씁쓸하게 정리되고 있다. 그러나 저자 마일즈 j 웅거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발렌티노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정치적 사상적 열애는 끝까지 뜨거웠던 것으로 보인다.

 

마키아벨리. 군주론의 탄생은 군주론의 이론을 설명하는 책이 아니다. 마키아벨리라는 한 사람의 일대기를 파노라마형식으로 구성해 쓴 전기 같은 느낌이다. 책은 먼저 실각한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피렌체 공화국의 붕괴로 인해 그는 권력에서 내쳐지고 감옥에 수감되게 된다. 어쩌면 개인의 삶은 그가 살아가는 국가의 정치적 현실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 듯하다. 특히나 그 어떤 개인이 정치에 몸을 담고 있다면 삶의 기복이 더 심하게 적용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에서 태어났다. 저자는 빈한한 가문 출신, 이라는 표현으로 니콜로의 출생과 가정사를 소개하고 있지만, 사실 그렇다하더라도 그의 신분이 최하층민을 상징하는 미천한 신분은 결코 아니었다. 실권을 잡고 있지는 않지만, 명예로움으로 직함을 유지하는 형식적인 명분의 신분계급과 같은 부류라고 볼 수 있다. 그의 가문은 썩 지혜롭지도 현실적이지도 못했다는 저자의 지적이 있었다.

그는 2서기관으로서 외교관의 일을 담당하며 주변국들과 조국인 피렌체의 관계를 조정하는 일을 끊임없이 반복하며 맡게 된다. 그 과정에서 힘이 없는 나라가 처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그런 까닭에 그는 나약한 나라보다 강한 나라를 갈구하게 된다.

 

책은 군주론을 설명하기보다는 마키아벨리 개인의 삶과 그가 살았던 시대의 불안하고 복잡한 정치, 경제, 사회의 혼란을 설명한다. 이러한 혼란의 극대화가 군주론의 시작을 알리는 계기로 작용했음은 분명한 이치가 아닐까. 책에서 우리가 중점적으로 생각해봐야 할 부분은 단순히 군주론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군주론이 탄생하게 되기까지, 군주론을 써야만 했던, 또 스스로 쓰기를 원했던 그의 의지와 사상, 철학을 함께 생각해야 할 것 같다. 피렌체의 용병제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시민군을 만들고, 애정을 쏟았으며 실제 책상 위가 아닌 전쟁터에 머물기를 더 좋아했던 마키아벨리.

책은 당대 쟁점이 되었던 중요 사건들과 분열된 이탈리아의 어려웠던 정치적 상황 안에서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으며 더 나은 세상을 꿈꾸었던 한 사람의 모습을 보여준다.

냉혹한 군주의 이미지로 알려진 인물이었지만, 이번 책은 그의 그런 무겁고 암울한 이미지를 다소나마 바꿔줄만한 책인 듯하다.

 

-사실 정치철학서 가운데 군주론 보다 진실한 책은 드물다. 마키아벨리가 제시하는 분석과 처방은 독자의 취향에 영합하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그의 머릿속에서 무르익은 것이었다.p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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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의 탁상담화 - 종교개혁자의 사적인 대화록 세계기독교고전 49
마르틴 루터 지음, 이길상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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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의 탁상담화

-어둠 그 너머를 생각하다.

 


루터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까닭은 세계사 시간에 배웠던 종교개혁에 관한 내용 덕분이다. 사람은 결코 신보다 위에 설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천명한 루터. 인간의 신분으로 스스로를 신격화하며 왕보다도 더 높은 곳에서 군림하려했던 당대 교황과 루터는, 성경에 등장하는 골리앗과 다윗의 이미지와 닮았다. 사실 그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그저 오래전 어느 시절에 교황을 비롯해 그 세력과 담을 쌓고 새로운 종교를 만든 사람이라는 사실만으로 루터의 이미지는 고착화된 지 오래다.

꼭 그의 이미지를 새롭게 이해하기보다는 언젠가부터 내 주변의 상황이 변하는 몇가지 상황들로 인해 조금씩 루터의 사상과 그와는 대적이었던 로마교회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났던 것 같다.

 


종교개혁자의 사적인 대화록이라는 타이틀을 담고 있는 이번 ‘루터의 탁상담화’는 사실 서평을 쓰기 위한 책 읽기로 봤을 때 쉬운 책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한동안 개념이나 이론이 명확하게 정리된 책들을 읽어왔기 때문일까.

이번 루터의 책은 개념서나 이론서가 아닌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오고갔던 대화와, 개인의 사상과 의견을 피력하는 형식을 갖고 있다. 딱딱하거나 무거운 분위기는 아니다. 다만 읽는 사람의 사고에 따라 그 깊이감은 매우 다양하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가 왜 로마교회에 척을 지면서까지 개혁을 이루고자했는지 궁금하다면, 개념서를 들춰보는 것보다 오히려 탁상담화와 같은 부류의 책을 곁에 두면서 천천히 읽어보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일 듯하다.

책에는 루터가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기려 했던 그만의 엄중하면서도 정확한 종교관이 빼곡하게 들어있다. 성경에 대한 그의 해석을 따로 떼어 생각해봐도, 당대까지 로마교회가 고집스레 지키려했던 성경의 해석을 포함한 그들의 종교관과 분명하게 대조를 이루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대하는 루터의 자세는 언제나 낮고 경건했다. 책속에 보이는 그의 이미지는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내면을 가진 소유자의 모습으로 보인다. 그가 사람들에게 전하는 하나님과 교회이야기 안에는, 어쩌면 절대 흔들리지 않는 그 자신의 신념이 투영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신학자이면서 교수였고, 신이 선택한 인간의 아들인 동시에, 순종했던 제자였으며,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나약한 한 사람의 인간이었다. 여기 탁상담화로 세상에 알려진 루터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신을 향한 그의 강직한 믿음이 어떻게 구체화되고 완성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성경은 이성만 가지고 비평하고 설명하고 판단해서는 안 되고, 기도의 심정을 품고 근실하게 묵상하여 그 뜻을 찾아야 합니다. p37-

 


-내가 해주고 싶은 조언은, 참된 우물에서 물을 길으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근실히 상고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의 본문을 온전하게 파악한 사람이야말로 완숙한 신학자입니다.p37-

 


-설교자가 참고 짊어져야 할 무거운 짐을 나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생각하면 설교자가 되려고 나서는 사람을 말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러나 비록 지금은 그리스도께서 나를 매몰차게 대하시지만, 마지막 날에는 인자하게 말씀을 건네실 것을 확신합니다. p273-

 


성경과 교리를 대하는 루터의 자세는 경건함과 부드러움을 담은 비장함이 엿보인다. 그가 풀어가는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성경의 이야기가 그림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사실 이번 책은 성경과 교회의 교리와 사상을 담고 있는 책이기에 성경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있어야 더 이해가 쉽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참고로 책의 서문에서는 탁상담화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여러 변수와 어려움이 있었음을 소개한다. 많은 시간을 보내고, 대를 이어서까지 책을 지켜내며, 세상에 알리기 위해 헌신한 이들의 이야기가 함께 실리기도 했다. 결국 로마교회의 강압적인 상황 속에서도, 루터의 이야기는 끝내 사멸되어 사라지지 않고 보존되었다. 이 역사적 사실 역시 하나님의 뜻인가.

 


때문에 책은 더욱 귀하고 고결함으로 다가온다. 어릴적 듣고 배웠던 하나의 세상에 자라나던 작은 믿음의 방안에도, 이 사람 루터의 이론들이 가득했다. 헌데 어른이 되어서는 루터의 이야기와 로마교회의 이야기 사이에서 우습지 않게 심각하게 고민을 하고 있다. 다시 암흑의 길로 들어가지 말게 하옵시고....

루터가 말하기를 늙은이들은 왜 교황으로부터 벗어나야 종교적 자유를 찾아야 했는지 이유를 잘 알고 있지만, 어린 아이나 다음 세대의 사람들은 잘 모른다고 걱정을 했던 대목이 기억난다.

 


교회에 대한 루터의 생각들이 곧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개신교의 관점이라고 할 수 있을까. 루터가 개혁을 이루던 그 시점에서 현재까지 기독교의 교리와 종교관은 조금의 변화도 없었던 것일까. 지금 루터의 굳건한 사상은 어디쯤에 머물러있는 것일까.

하나님의 말씀에 관하여,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에 관하여, 세상에 본질, 우상숭배, 예수그리스도, 성령과 죄, 혹은 기도와 세례, 성찬등. 다양한 이야기가 실려 있는 이번 책이, 혼돈 가운데 현재의 시간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큰 위로와 위안으로 힘이 되리라 생각한다. 어둠 속에서 더욱 빛나는 가치로 기억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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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페어 - 사법체계에 숨겨진 불평등을 범죄심리학과 신경과학으로 해부하다
애덤 벤포라도 지음, 강혜정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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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페어

-생각하고 행동할 의무.

 

묵직한 책이다. 법을 이야기는 책이라는 것을 느낌으로 알 수 있는 까닭은 균형을 잃은 천칭 때문일까. 그런데 어디선가 나타난 사람의 손가락 하나가 이 천칭의 균형을 깨뜨리고 있다. 한쪽은 올라가고 다른 한쪽은 손가락의 힘에 의해 아래로 내려가 있는 이 그림은 매우 상징적이다. 책 언페어 (UNFAIR)가 이야기하는 모든 것을 이 그림으로 오롯하게 담아내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

저자 애덤 밴포라도는 법과대학 교수이며, 법률회사에서 변호사로 일했으며 사법제도의 합리화를 위해 저술과 강연을 하고 있다는 출판사의 소개를 잠시 적어보자. 그는 단순히 책상 앞에서 이론만을 뒤적이는 사람이 아니다. 법과 너무나 친숙한 사람이다. 그런데 말이다. 그런 그가 의외의 책들을 쓰고 있는 듯했다. 그는 왜 이런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일까.

 

어떻게 보면 저자는 ‘건강한 내부고발자’ 같은 이미지를 지녔다. 더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그는 자신의 책에서 현재 미국의 사법체계가 갖는 다양한 문제들과 치부를 적나라하게 오픈시키고 있다고 봐야한다. 사실 그의 이야기는 현재 미국을 포함하여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법체계는 ‘불행하게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를 강력하게 주장한다. 더욱이 그가 독자에게 보여주고 있는 주장은 그만큼 충분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책은 하나의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 우리의 시선이 어디로 향하게 되는지를 집요하게 따라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이번 책에서 저자는 사건을 인지하는 보통의 일반 사람들이 갖는 사고(생각)의 순서에 맞게 저자 스스로의 시선을 맞추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아니다. 어쩌면 그 반대일 수도 있겠다. 그가 이끄는 대로 독자들이 잘 따라갈 수 있도록 틈새 없이 직조된 조직망 안에 우리가 지금 서 있는지도 모르겠다.

 

책에서 느낄 수 있는 저자의 시선은 매우 분석적이고, 세부적이며 집요하리만큼 문제의식에 접근한다. 무엇보다도 수사 과정에서의 오류와 실수, 판결을 내리는 데 기인하게 되는 많은 외압과 개인의 편향적 사고를 담은 판사의 이야기, 처벌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응징과 복수의 개념, 그리고 개혁을 통해 저자는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자세에 대해 저자는 독자와 함께 진지한 담론을 이어가기를 원한다.

자. 이제 하나씩 섬세하게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먼저 주목할 만한 것은 시간상 하나의 사건이 벌어지진 이후다. 즉 사건의 중요성을 인지한 이후에 저자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실마리를 찾기 위해, 각각의 법이 구분하고 있는 신분상의 상황과 위치를 살펴보는 시점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여기 하나의 사건이 있다. 이 사건을 어느 시점에서 관찰하고 들여다볼 것인가. 누구의 관점으로 살펴보는가는 사건 해결에 있어 매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사건 발생 이후 수사에 처음 등장하는 신분은 피해자와 형사, 그리고 피의자다. 저자는 처음 피해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책은 다양한 실재 사건들이 소개하고 있는데, 이 사건들을 통해 사건을 바라보는 다양한 지위의 사람들의 보이는 모습과 보이지 않는 이면의 모습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 부분은 뒤이어 나오게 되는 판사와 배심원, 목격자와 과학과 의학을 전공한 이들의 판단이 재판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치는가를 이야기하며 전문가의 이야기를 함께 싣고 있는 것과 함께, 이 모든 것을 종합해 판결을 내리는 판사의 이야기도 포함한다. 결국 그 어떤 것도 거대 사법체계의 오류와 비판을 담은 이번 담론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셈이다.

 

책에서 흥미롭게 들여다볼 수 있는 부분은 책을 쓴 저자 역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인 범죄와 인간의 심리관계(범죄심리)일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도 언급된바, 뇌 과학 분야와 범죄와의 연계성일 것이다. 책은 다양한 실험을 통해 범죄자의 뇌 일부분이 일반인보다 조금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결과를 보여줌으로써, 한편으로는 인간의 범죄를 질병의 차원으로 새롭게 생각하는 시도를 소개하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완벽하지 않은 인간의 기억력과 판단, 그리고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목적성을 띈 외압이 인간의 뇌와 의지에 영향을 미치는가를 설명하기도 한다.

 

2부 판결에서 배심원과 목격자 그리고 전문가 판사의 이야기는 현재 법체계가 상당히 많은 불안요소를 기반으로 한 채 위태롭게 서 있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법이라는 정의가 절대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기반위에 세워진 철옹성과 같은 이미지였다고 한다면, 저자는 불가피하게도 이 모든 것에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자의든 타의든간에 사건을 만들고, 해결하며, 죄인을 찾아 벌을 주는 모든 주요대상이, 바로 완벽하지 않은 인간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바로 수정을 요구하는 저자의 직접적이면서도 분명한 이유이기도 하다.

 

완벽하지 못한 인간의 기억은 불완전하다.(기억의 가변성-‘기억은 쉽게 수정되고, 변화되며, 틀이 바뀐다’ P180)시간이 흐르면 기억의 흐름도 끊긴다. 피해자가 확실하게 지목했던 사람은 범인이 아니었고, 억울하게 범인으로 지목된 일반인은 감옥에서 그의 생의 절반을 잃어버리기도 한다.(거짓기억) 인종, 성별, 언어, 계급 혹은 외모에 대한 외부의 크고 작은 압력과, 집단의 선입견과, 개인의 닫힌 생각과, 잘못 구성된 심리상태들은 모두 거대한 장벽이다. 하나의 정의를 지켜내기 위해 우리가 극복해야 하는 장벽이라는 조건은 너무나 많아 보인다. 중립적인 배심원들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로 바라봐야 하는 의무는, 그 어떤 외부조건에도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는 개인가 사회의 의무가 있기 때문이지 않은가.

 

이쯤에서 사견이긴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줄곧 톨스토이의 ‘부활’을 생각했었다는 말을 하려한다. 여 주인공의 외모를 바라보는 배심원들의 시선과 느낌들은, 각각의 배심원들의 배경지식과 살아가는 환경 그리고 교육수준에 따라 그리고 무엇보다 피의자의 성별에 따라 각각의 다른 반응과 생각들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물론 톨스토이의 부활에서도 배심원단의 실수가 그려지고, 그 실수를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판사와 검사를 포함한 법관계자들은 의이를 제기하지 않은 채 판결을 내리게 된다. 왜 굳이 톨스토이인가. 또 왜 구태여 부활인가. 어쩌면 시간상의 역행으로 보았을 때, 이 책을 쓴 저자 벤포라도의 이야기를 소설로 만든 것이 부활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만큼 책 ‘언페어’에서 거론되고 있는 많은 실수와, 오류, 자기 부정과 기만, 집단에서의 살아남기 위한 선택에 의한 부패와, 본능과 지각 그리고 이성에 대한 이야기들이 톨스토이의 이야기와 무척이나 닮아 있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언페어 이야기로 돌아와보자. 보통의 시선으로 보자며 판결에서 사건을 일단락 지을 것이라고 보이지만, 저자 밴포라도의 의도는 조금 달랐다. 그는 처벌이라는 타이들에 대중과 죄수라는 이야기를 싣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개혁에서 앞으로의 변화된 사법계의 긍정적 청사진을 그려가고 있다.

책은 사건이 존재했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오류를 지적하고, 그 과정에서 각각의 사람들이 인지하든, 혹은 인지하지 못하든 간에 인간의 선택(선과 악을 구별하는)과 행동의 영향을 주는 많은 변수의 수를 지적한다. 이러한 지적을 이야기할 때 저자는 단순히 잘못되었다, 라고 하지 않는다. 저자는 왜 그러한 문제가 생겨났는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다시 생각한다. 그리고 반문한다.

저자는 과거시대에 중죄를 판단하고 피해자와 피의자(동물이나 가축 포함)를 각각 구별해 그에 상응하는 징벌을 내리는 이른바 종교재판의 성격을 보였던 구재판의 개념이, 단순히 개인 혹은 집단무의식과 이성보다는 직관과 감정에 의지하는 보여 주기식의 형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벤포라도는 말한다. 현재의 사법체계와 법제도가 실상은 과거의 법제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고 말이다. 이러한 저자의 지적은 사실 앞서 이야기한바 있듯이, ‘건강한 내부고발자’의 시선에서 나올만한 정당한 지적이라고 본다. 물론 저자의 표현대로 전혀 달라진 게 없다고 한다면, 법조계에서 매서운 눈초리로 예의주시할 말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거짓말 탐지기의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저자의 지적과 함께, 이미 유럽의 몇몇 나라에서는 거짓말 탐지기의 기능적 신뢰도가 크기 않다는 이야기를 접하면서 현재 한국사회의 법체계에 대해 호기심이 발동하기 시작하는 것을 느낀다. 또한 각국마다 소년법의 기준을 정하는 연령이 다른 것을 들여다보며, 그에 따른 장단점을 생각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죄인을 사회와 단절시키는 것으로 교화의 큰 의미를 두고 있는 미국과는 상반된 모습으로 죄인을 다시 순화하려는 외국의 다양한 사례(노르웨이의 할렌 교도소)를 소개하고 있는 대목은 생각할 거리가 많은 부분이기도 하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을 어떤 방식으로 교육하고 순화해야 하는가에 대한 원론적인 질문들을 안겨주는 듯했다고 해야할까.

 

-할렌 교도소 소장에 따르면 모든 수감자가 결국에는 석방될 것이기 때문에 이런 노력이 의미가 있다. 괴물 같은 교도소는 괴물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렇다며 무슨 소용이 있는가?P329-

 

그러나 중범죄에 대한 인간의 인식이 어떤 계기에 의해서나, 혹은 어떤 중대한 과정을 거치든 선과 악에 대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사유는, 과거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변화가 없다는 생각을 한다.

개인적인 생각을 차치하고서라도 중요한 것은 저자가 지적하고 있는 사법체계의 문제들을 인지하고 개선해야 할 필요성은 누구나 인정해야한다는 것이다. 그가 소개하고 있는 다양한 개선책들을 살펴보는 일은 흥미롭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인데, 조금씩 긍정적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는 것이 맞는 답일 듯싶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휘어주지 않는 한 역사의 활궁은 정의를 향해[저절로]휘지 않는다-P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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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어떻게 삶을 이끄는가
완웨이강 지음, 이지은 옮김 / 애플북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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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智)는 어떻게 삶을 이끄는가

-지혜와 삶

 

통섭이란 말이 있다. 어디에선가 보았을까. 완웨이강의 책을 읽다보니 통섭이라는 표현이 자꾸만 꿈틀거린다. 오랜만에 네이버의 힘을 살짝 빌려보자. 통섭이란 ‘큰 줄기(통)를 잡다(섭), 즉 ‘서로 다른 것을 한데 묶어 새로운 것을 잡는다’는 의미로,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을 통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범학문적 연구를 일컫는다‘ -네이버

 

인문과 사회과학 그리고 자연과학의 이야기를 한데 모아 연구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 완웨이강은 그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는 중국과학기술대학교를 졸업한 이후 미국 콜로라도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아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사실 이번 완웨이강의 책을 읽는동안 저자가 미국에 거주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 사실이 왜 중요한 걸까. 미리 알고 있었더라면 나는 보다 쉽게 아니 보다 편한 마음으로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갔을지도 모른다.

 

책의 저자 완웨이강은 이런 말로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단순함은 복잡함을 이기지 못한다. 복잡성을 갖춘 사람만이 복잡함을 상대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능력을 얻으려면 죽도록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P23-

 

인용한 문장은 이 책의 방향성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조금 딱딱하고 딴은 위협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도 있기는 하지만, 이 문장은 독자가 책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읽어야 할지에 대한 해답이자 힌트가 되는 표현이다. 게임으로 치자면 안내 설명서인 동시에 게임의 전체적인 성격을 설명하고 있는 듯한 문장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열쇠와 같은 의미로 생각했을 때 바로 제목에서도 등장하고 있는 지(智)를 라는 단어를 간과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왜 저자는 단순히 하나의 정보를 알고 아는 차원이 아닌 지혜로움을 꿈꾸며 그 이상의 수준을 이야기하고 있는 智를 논하고 있는 것일까. 솔직히 ‘죽도록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 표현은 잠시 잊어버려도 좋겠다. 사람을 너무 지치게 하는 표현이니 말이다.

 

한권의 책을 통해 많은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 완웨이강. 그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요약해볼 수 있을까. 그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이 조금은 더 현명해지기를 바라는 듯했다. 더 지혜롭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듯도 했다.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지혜는 무엇일까. 인문학에서 보는 지혜는 이공계 과학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시선과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 그런 질문이 생긴다. 그러나 그런 문제와 의구심들을 차치하고 저자의 이야기는 모든 학문을 총괄한 폭넓은 시선으로 한곳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

저자는 복잡함을 상대하기 위해 지혜를 끌어안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단순히 지혜를 알고 내 것으로 한다고 했을 때 과연 지혜가 우리곁에 안착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닐 테지만, 사실 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이를테면 많은 지식적인 정보를 습득하고, 많이 생각하고, 무조건적 수용이 아닌 비판하며 오류를 찾는 과정을 통해 그 과정과 결과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보면 좋을 듯하다. 그게 저자가 말하는 지혜로움과 지혜로운 삶이 아닐까 싶은거다.

 

이러한 그의 이론은 얼마나 독자들의 의식과 심리상태를 흔들어줄 수 있을까.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와 학자로서의 분위기는 그에 대한 신뢰감을 단단하게 다져주는 힘을 보여주는 게 분명하다.

 

이 책에서 저자 완웨이강이 보여주는 이미지는 자뭇 다양하다. 그 이유를 묻는다면 완웨이강의 책이 결코 딱딱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해야할 듯하다. 그가 물리학을 전공한 과학자라고 해서 글의 표현이 딱딱하겠거니 생각한다면 조금은 일찍 내린 성급한 오류일 수도 있다. 물론 그의 글은 매우 분석적이고 논리적이다. 많은 자료를 인용하고, 통계자료를 모아 자신의 논거에 대한 증거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외국의 저명한 학자들의 논문과 자료, 저널리즘을 포함해 의미 있는 이론들을 상당히 많이 소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책은 부드러운 분위기를 잃지 않는다. 순간순간 그는 물리학자인 동시에 인문학자가 되고, 인문학자로서 경제를 생각하는 동시에, 인간 심리와 진화론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정치와 사회, 교육을 걱정하고 미국을 대표하는 강대국이 아직까지 믿고 끌어가고 있는 힘의 원리와 그 안에 숨겨진 모순과 다양한 문제를 비판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그가 동양인의 시선에서 이 모든 것을 바라보는 동시에 학자의 객관적, 혹은 이지적인 시선도 함께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소개된 비슷한 성향의 책들이 서양인의 주된 시선에서 소개되었다면, 완웨이강의 책은 조금은 다른 시선과 관점으로 읽어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그리고 어느정도 그 부분에서 독자는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디에 서서 바라보는가는 내가 서 있는 중심이 어디인지, 나의 주된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대변하는 것과 같다. 같은 의미에서 볼 때 이러한 광범위한 인문사회를 논하는 책들은, 말 그대로 다양한 시선과 관점에서 쓰인 책들을 많이 접해봐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 치우친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그는 사회주의 체제에서 태어난 과학자이다. 그렇지만 그가 현재 미국에 거주하며 다양한 글을 쓰고 있는 상황을 고려해볼 때 그의 의식과 사고는 매우 유동적인 동시에 유연하다. 현재 그가 자유주의(자유의지론자) 안에서 사상의 자유, 학문의 자유, 비판과 반증의 자유를 충분히 활용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가 중국에 거주하고 있으면서 책을 냈다면, 책은 지금과는 다른 분위기를 띄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부분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추측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완웨이강의 이야기를 해보자. 그는 과거 사회를 이야기하는 동시에 현재사회의 다양한 현안과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앞으로의 미래사회를 예측한다. 그렇게 이야기의 큰 맥을 잡아간다. 중간중간 그의 사상은 독자들에게 뚜렷한 무언가를 보여주기도 하는데 때문에 책이 끝날 때까지 이야기의 흐름을 잘 잡고 있어야한다. 지혜가 인간의 삶에 어떻게 녹아들어 돌아가게 되는지를 깨닫게 되기까지. 마지막에 함께 웃으며 저자가 이야기하는 지혜와 삶을 생각해볼 수 있도록 말이다.

 

-‘가치의 유무’를 묻는 한마디 말에서 경제학자의 지혜가 빛난다. 제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그것을 얻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가 지나치게 크다면 그것은 포기해야 한다. 반대로 말하면,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원하는 것의 가치가 더 크다면 우리는 대가를 치르려 할 것이다.-P65

 

세계간의 각성 편에 등장하는 ‘공정한 세상이라는 가설’에 등장하는 저자의 이야기도 살펴보자.

-어떻게 해서든 다른 사람을 함정에 빠뜨리고 등쳐먹을 생각만 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성공할 리 없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사심도 없이 그저 남을 위해 봉사만 한다고 좋은 결과를 얻는 것도 아니다. 궁극적으로 좀 더 쉽게 성공하려면 겉으로는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면서도 속으로는 지극히 이기적인 계산을 하고 필요에 따라 남을 속일 줄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P108

 

-우리는 세상이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심리학자는 이러한 착각을 ‘공정한 세상 가설(Just-World Hypothesis, 또는 Just- World Fallacy)'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세상은 결코 공정하지 않다. 공정은 소설이나 영화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환상일 뿐이며, 악당은 모두 패하고 영웅은 승리한다는 시나리오는 그저 우리의 바람을 반영하고 있을 따름이다.-p109

 

책 내용 중 일부분이다. 일반화의 오류에 빠지지는 말자. 그렇지만 그의 글은 충분히 현실적이면서도 냉철하고 또 한편으로는 차갑게 유머러스하다. 그의 글은 전체적으로 진지하고 비판적이며 분석적인 이며 경험 많은 학자로서 지식의 견고함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이를테면 지극히 현실적이면서 보편적인 인식에 수정을 요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치와 권력 그리고 유권자의 이야기. 교육에 대한 이야기에서 섬세한 이기주의자와 아이비리그의 순한 양을 소개하며 앞으로의 교육을 걱정하는 컨베이어 벨트 시대의 영웅. 특히 ‘차터 스쿨’에 대한 소개와 계층별로 달라져야 하는 교육의 현실은 있는 그대로의 안타까운 현실을 보여준다. 그가 말하는 성현의 길. 미래사회가 개인에게 가져다줄 위협과 타협에 관한 저자의 시선. 계급과 계층을 무너트린 신개념의 사회를 보여주는 듯한 ‘홀라크라시’. 자유 시장의 선택과 혁신의 이야기까지. 저자 완웨이강이 이야기하는 지혜는 전범위적이면서도 깊이감이 있다. 그가 말하는 지혜는 인간답게, 지혜롭게 삶을 영위하며 살아가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정서이자 에너지원인 듯하다.

 

-브룩스가 말하는 성현이 되는 길의 출발점은 오만함이 아니라 겸손함이다. 겸손하다는 것은 자신에게도 다른 사람들처럼 결함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자신의 사고에 편견이 존재하며 성격에도 약점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p220-

 

-“인간이라는 뒤틀린 목재에서 곧은 것이라고는 그 무엇도 만들 수 없다”즉 자신의 결함을 받아들이고 겸손한 태도를 취할 때 비로서 약점을 극복하는 투쟁의 과정을 통해서 품격을 닦을 수 있다.p221-

 

-이들은 뭘 하고 싶은지 자신에게 묻지 않고,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 세상에 물어다. 뭔가를 해냄으로써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성을 쉼 없이 단련하기 위해서 뭔가를 해내는 데 집중했다. -p224

 

-컴퓨터의 결함을 상쇄하고 컴퓨터의 장점을 능수능란하게 활용하는 일, 바로 여기서 미래에 인간이 설 자리를 발견할 수 있다. 즉 앞으로 인간의 특성을 제대로 발휘하려면 기계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와 ‘물아일체’가 되어 작업을 수행하고 다른 사람과 경쟁해야 할 것이다.p431-

 

흑백논리에 빠질 수밖에 없는 순간마다 위트 있게 적절한 유연함으로 잘 넘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완웨이강. 그는 스스로 그런 말을 남긴다. 나는 정치인이 아닌 지식인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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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인문학 수업 : 관계 - 나를 바라보고 상대방을 이해하는 심리의 첫걸음 퇴근길 인문학 수업
백상경제연구원 외 지음 / 한빛비즈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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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인문학 수업- 관계

 

퇴근길 인문학 수업은 여전히 따뜻한 시선으로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한빛비즈에서 시리즈로 출간되고 있는 퇴근길 인문학 시리즈 시즌2 첫 번째는 ‘관계’편이다. 책의 프롤로그에 실린 인문학의 정의를 다시 들여다보는 것은 그만큼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생각한다는 것. 그 어느 하나의 생각에 대해 우리는 과연 어떤 가치를 내리고 판단할 수 있을까.

-인문학은 근본적으로 ‘성찰의 학문’이다. 삶의 의미와 목표를 잃고 헤매는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 그 과정에서 ‘나 자신과의 관계’ ‘나와 사회의 관계’를 되짚어보게 된다. p7-

 

삶의 의미와 목표를 똑바로 직시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든, 어제 길을 잃어 낭패감에 빠진 그 누군가든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의 고된 하루는 저마다 쉴 곳을 찾아 자기만의 공간으로 찾아들어간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다.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일은 꽤나 진지한 과정이다. 그 진지함 때문인지는 몰라도 자신을 바로 바라보는 일련의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이 책의 주된 관점이 ‘자존감’이라고 했던가. 따라서 책의 시선은 각각의 인간 개체와 그 내부 즉 자아에게 맞추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파트 1의 시선은 스스로에게 다가가는 인간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런가하면 파트 2와 3에서는 개인과 사회, 소확행 이라는 각각의 타이틀 아래 나라는 존재와 타인의 존재가 함께 공유하는 세계를 이야기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세계란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고 봐야한다. 각자가 자아를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 이 방대한 사유의 여정은, 혼자만의 공간과 함께 하는 공간을 훌쩍 뛰어넘는다. 이성과 철학이 그리고 사상과 감성이, 신과 인간의 이야기를 다룬 신화의 이야기와 인간 생존의 기본인 노동의 이야기까지. 책은 이 외에도 다양한 분야의 시선에서 나와 타인의 관계를 이야기한다. 그냥 이야기하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고, 어떤 방향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보면 좋을 것 같다.

책은 그러나 오묘하게도 하나의 정답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답을 알려주기보다는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독자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기를 바라고, 자신만의 길을 찾기를 바라는 듯하다. 그것은 일종의 독자를 위한 배려가 아닐까.

파트별로 네 명의 저자들은 자신의 전공을 빌려와 사람에 대해, 그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야기에 몰입하면서 들었던 생각은 이런 것들이었을까. 어떻게 보면 나의 존재감을 바로 인지하는 일에서부터 우리가 말하는 깊은 성찰의 의미를 담고 있는 ‘자존감’이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는 생각 말이다.

 

자신에 대해 어떤 제재나 혹은 어떤 비굴함과 구속 없이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때,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 사이로 한발 더 나아가 함께 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긴다고 믿는다. 마찬가지다. 사회 속에서 관계와 관계 사이를 솔직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고 떳떳한 의지를 확인했을 때, 비로소 인간은 자신의 내면을 더 깊이 바라볼 수 있는 순간을 만나게 될 거라 믿는다. 개인과 사회의 소통은 결코 일방적이지 않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부분을 기록으로 남겨도 좋을 것 같다. 자신의 내면과 마주보고 친해지기 위한 방책으로 저자 전미경이 소개하는 무수리 씨와 나잘난 씨의 이야기는 솔직한 사람들 즉 우리들의 이야기를 대변한다. 혼자만의 공간에서 자신에게 익숙해지기 위한 삶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1인 가구 보고서의 이야기로 풀어낸 김광석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무엇보다 개인이 성장하는 최초의 집단인 가족에 대한 권수영의 이야기는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다. 부모와 학부모를 비교하며 물음을 던지는 문구는, 개인과 사회의 소통을 단절하고 병들게 하는 부정의 패러다임인 경쟁을 지적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가하면 여행 이야기를 하는 박일호의 이야기는 여행이 주는 따뜻한 위로와 여행으로 성숙해가는 인간상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박일호의 글 속에는 글을 읽는 이에게 여행을 선물하고 싶은 저자의 애정이 가득 차 있다.

 

-몸이 조금 불편해지더라도 마음이 그만큼 편해지는 공감과 소통의 여행이 필요하다. 그게 유통기한을 늘리는 인문여행 정신의 본질이다.p406-

그가 공감과 소통이라 했다. 사실 이번 퇴근길 인문학 수업- ‘관계’에서 주제를 정한다면, 박일호의 표현대로 공감과 소통 그리고 책의 전반에서 소개되고 있는 자존감을 이야기하고 싶어진다.

자신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억지가 아니다. 책을 읽으면서 어떻게 보면 커다란 맥락 안에 이 이야기가 적당한가, 라는 사소한 의문이 들기도 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모든 이야기는 하나의 힘으로 응축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뭐랄까. 무언가를 꽤나 잘 알게 되었다는 착각 아닌 이상하게 묘한 기분에 빠져든다. 갑자기 졸렬하게 찌그러들었던 내 안의 내면을 담은 풍선이, 팡팡하게 부풀어 막 날아오를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잠시... 날아오르고 싶어졌던가보다. 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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