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 년
송은일 지음 / 문이당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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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 년

-삶. 아름다운

 

마음이 짠하다. 아주 오래된 전설 같은 이야기 하나를 전해들은 기분이다. 산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을 그러니까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라고 말해주고 있는 것만 같다.

한 사람의 인생이, 그 사람이 간직하고 품었던 모성애와 사랑과 애정과 연민의 감정들을 고스란히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이 바로 내 할머니일수도 있고, 어머니일 수도 있으며 혹은 나 자신일 수도 있고, 내 아이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 년은 여성의 시선에서 여성이 중심으로 쓰여진 소설이다. 작가 송은일은 소설을 친정이 있는 고향사람들의 이야기라는 말로 소개한다. 소설에 대한 작가의 이야기를 잠시 들여다보자.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 년」에서 매구 할매는 내 모친이자 흰 동백꽃 아래서 영면을 선택해 버린 오수댁이다. 내 친정마을에 사는 사람 모두이며, 세상 모든 ‘친정마을’ 사람들이다. 아무리 멋지게 표현하고 싶어도 정말이지 평범한 사람들 이야기이기도 하다-

 

소설은 여느 지방 혹은 어느 누군가의 고향집이 있을 만한 공간인 평범한 시골 금당을 무대로 시작된다. 계성재는 4백 년이 넘도록 마을을 지키는 터줏대감과 같은 역할을 해온 마을의 중심이다.

그리고 이곳 계성재에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의 고령의 매구 할매가 산다. 산파를 하면서 마을의 아기들을 수차례 받아냈다는 매구 할매의 본명은 진녹두. 계성재의 주인의 보호아래 시간이 흘러 실질적인 계성재의 안방을 지키며, 마을의 정신적 지주가 되고, 사람들의 의식 속에 신기한 능력이 있는 특별한 존재로 자리하게 된다. 소설은 계성재를 끌어안은 한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면서도 특히 그 안에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며느리로서의 여인들의 굴곡진 삶의 한을 보여준다.

 

한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서로 가깝거나 먼 친척이기도 하고, 친척이 아니더라도 말 그대로 이웃사촌으로 관계를 이어간다. 한집 건너 한집에 사는 사람들의 숟가락이 몇 개인지 다 알 수 있다는 말이 딱 들어맞을 것 같은 작은 마을의 이야기이다. 장성하여 어미 품을 떠난 자식들이 병이 들어, 혹은 의도치 않은 사건에 휘말려서 오갈데가 없는 신세가 되거나, 나이 들어 객지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오려는 생각에서든 모든 이유를 차치하고서라도 어머니는 그런 자식들을 끝까지 품에 품어준다. 그리고 함께 아파하면서도 굳건하게 어머니라는 자리를 지켜내며 가족과 집안을 지켜낸다. 구암댁이 그랬고, 별량댁이 그랬다. 계성재를 지키며 매구 할매와 남편 동구를 위해 헌신하던 홍림당이 그랬고, 그 옛날 계성재의 어른으로 불렸던 여례당이 그러했으며 병선 씨를 비롯한 금당의 모든 아낙네들이 그랬다.

아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여인들의 삶이 그랬던 것처럼, 어제와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여인들의 삶이 그러하다고 말하는 듯하다. 어쩌면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그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책은 은현(매구 할매의 증손녀)이라는 여성과 함께 남편과 이혼하고 혼자 살아가는 민화와 또 병든 남편과 사별한 장희라는 인물을 등장시켜 이 마을의 미래를 상징화한다. 이들 인물은 모두 여성이다. 그런 까닭에 여든에서 백살 그 언저리를 살고 있는 마을의 노년들의 막다른 삶과는 다른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치를 갖게 된다. 마치 새로운 여성의 삶을 펼쳐나갈 시간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다가오는 것만 같다. 어쩌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내일을 살아가는 여성의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한편으로 책은 몇몇의 죽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 죽음은 갑자기 찾아오는 죽임인 동시에, 준비된 죽음이기도 했다. 수없이 반복되는 죽음과 그리고 죽음의 또 다른 이면인 새 생명의 탄생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그 상황을 순종하고 잘 받아들이는 일 뿐일까. 어쩐지 서글퍼지려한다.

 

구수하고 정감어린 전라도 사투리에 정이 뚝뚝 묻어나는 작품을 읽고 있으니 자꾸만 입이 근질거린다. 이번 책은 참 어여쁘고 여리고 애잔함의 여운을 남긴다. 삶은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라는 말이 참 거창하기는 해도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삶은 그 과정이기 때문에 내가 지금 어디쯤에 서 있는가를 한번쯤 되돌아보며 생각해봐야 할 의무이기도 한듯하다. 저무는 고갯길에 서서 삶의 마지막을 생각해야하는지, 지나온 시간을 반추해야하는지 나는 아직 명확한 답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떤 모양의 어떤 빛깔의 삶이든 그 자체만으로 아름답다는 것을 알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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