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문, 이 시대가 묻는다
김태완 지음 / 현자의마을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

- 그대의 답을 논하라

 

책은 임금이 묻고 신하가 대답하는 형식을 갖췄다. 조선의 과거제도가 그렇듯이 책이 제시하고 있는 모든 책문의 자료는 종이에 한자로 기록되어있다.

인재를 뽑기 위한 하나의 과정인 책문은 조선이라는 나라가 지니는 사상의 근간을 뿌리부터 굳건하게 받치고 있다. 때문에 실질적이면서도 중요한 요소 중 한 부분을 차지하는 역사적 사료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의 과거 시험의 가장 마지막 단계인 책문. 젊은 인재들의 생각과 그들의 포부와 패기를 살펴 그들의 지혜를 얻고자 했던, 당대 왕들의 고군분투 진정성이 담긴 마지막 선택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보자.

 

-책문은 무엇보다도 정치 현안의 문제를 묻고 대답하는 글이다. 그러므로 현실을 직시하고, 그 시대에 가장 중요한 일인 시무를 제시하는 것이 핵심이 된다-

 

요즘으로 치자면 마지막 면접과도 같은 단계이다. 1차, 2차 그리고 3차 선발까지 합격하고나서 최후 면접으로 보는 시험이 바로 책문이라고 보면 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책에서 언급되고 있는 바, 당대 현실과 정치적 어려움을 비롯해 임금으로서의 자질과 정책운영에 대한 방책 등을 질문으로 많이 제시한 듯싶다. 저자 김태완이 정리한 책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기록으로 남아있는 왕들이 제시한 ‘책문’을 싣고 있으며, 두 번째로 각 신하들의 의견이 담겨진 ‘대책’을 바로 뒤에 싣는다. 또한 마지막으로 ‘책문 속으로’ 라는 타이틀로 각각의 책문과 대책에 대한 소개와 함께 정치적 시대적 상황에 따른 자세한 설명이 덧붙여지는 구성이다.

책은 총 13편의 책문이 담겨져 있다. 왕으로 치자면 광해군 시기의 책문이 3편, 중종 시대의 책문이 4편, 명종 시대 3편, 세종시대 2편, 선조 시대가 1편이다.

 

왕의 자리에서 신하에게 손을 내밀어 지혜를 구하고자했던 그들의 고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시급한 나랏일, 나라를 잘 운영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는가, 라는 문제가 중요 관건이었던 것같다. 나라를 잘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은 비단 정치수완에 국한되는 것은 아닌 듯하다.

세세하게 교육의 방법을 논하기도 하고, 관리와 일반인을 구별하고 관리들의 처우를 생각하거나, 혹은 6부를 비롯해 나라의 정책에 대한 올바르고 확고한 신념과 제도의 중요성을 풀어내기도 한다. 때에 따라서는 이들 선비들이 내세운 다양한 책문에 대한 담론이 동전의 양면 같은 성격을 포함하고 있는 부분도 적지 않아보인다. 책문과 그에 대한 답문에서 실제로 인정했듯이 좋은 법령을 시행하려 할 때면 그에 따른 폐단도 같이 뒤따라올 수밖에 없다는 지적은, 당대를 지켜왔고 또 지키려했던 지식들이 얼마나 많은 부분 현실적으로 고뇌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참으로 책문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법이 제정되면 그에 따라 폐단도 함께 생기는 것입니다.-P 374

 

그러나 이들은 끊임없이 묻고 답하며 법과 법이 가져오는 폐단에 대해 고민했고 수정해갔다. 문득 이들이 이런 고단한 과정을 몸소 끌어갈 수 있었던 원동력에 대한 생각들을 하게 된다. 그들은 잘못 된 부분을 인정하는 법을 알았다. 그리고 바꾸고 고쳐야 한다는 것 또한 알았다. 고치고 갱신할 수 있는 것이 도리라 말했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선비의 도리라며 일침을 가했다. 그러니 아무리 제왕이라 하더라도 동참하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들이 이렇게 중요한 쟁점을 가지고 서로 논의를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소통의 힘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파가 분열되고 서로의 뜻이 달라 따르는 이도 달라져갔지만 그들은 뭐랄까, 그들 나름대로의 신념이 있었고, 그것을 지키려했다는 것을 이번 책 책문을 통해 다시한번 들여다보며 확인하게 되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어수선한 정국에서 세자의 자리에 올랐던 광해군이 왕의 자리를 지켜내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가치에 대해 질문하고, 그 존재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선택한 선정이라는 목표는 아이러니하게도 여러 가지 역사적 사건에 의해 그 의미가 퇴색되는 결과를 가져온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이분법적인 잣대로 후대의 의견과 판단이 갈라지긴 했지만, 광해 그가 선비들에게 물었던 책문 속에서는 진정한 군주의 역할을 완수하기 위한 개인의 인간적인 고충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고 봐야한다.

정치적 안정을 위한 책문에는 자의든 타의든간에 새로운 왕좌에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자신의 입지조건에 대한 불안감이 일정부분 작용했다고 봐야한다. 광해가 그랬고, 연산군을 폐위하고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중종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때로는 목숨을 걸고 왕에게 직언을 고하는 신하가 있었기에, 때로는 왕과 마주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속마음을 꺼내놓을 수 있었던 신하가 있었기에, 조선은 오백여년을 굳건하게 버텨낼 수 있었던가 보다.

백성이 없이 나라가 있을 수 없으며, 신하 없이 왕 또한 존재할 수 없다는 의의는 저 먼 시대의 정도전의 뜻인가. 조선은 사대부의 나라인 동시에 민본정치가 근본으로 깔린 유교적 사회였다. 민생의 안정을 최우선으로 할 것을 주창하였으나 때때로 민생의 안녕보다는 개인의 사욕을 채워갔던 어두운 과거 역시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한들 함께 고민하고 함께 해결책을 찾고자 했던 이들의 노력이 평가절하 되어서는 것은 안 될 일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책문은 여전히 우리가 필요로하는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과거 시대의 제도였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잊고 있었던 어떤 정의와 가치를 위해서. 혹은 정치 보다 그 위에 있는 인간에 대한 신념과 진중한 예의를 생각하면서 한번쯤 읽어봐야 할 책이지 않은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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