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위에 지은 공간, 한국의 서원 -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
김희곤 지음 / 미술문화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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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서원

-그곳에 서면 세상이 읽혔던가.

 

가지런하게 혹은 자유롭게 땅을 딛고 선 건물과 건물 사이를 느린 걸음으로 에돌아 나오는 저 오래된 숨결 앞에 서면, 가만히 눈을 감고 스스로의 소리로 침잠하게 될 것만 같다.

저자는 스페인에서 복원과 재생건축을 전공했다고 한다. 그리고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면서 강의를 한다는 프로필 내용이 눈에 들어온다. 이번 책은 이를테면 건축가의 시선으로 본 옛것에 대한 답사 성격을 지닌 책이다. 특이한 것은 이런 점이다. 저자는 서원을 포함한 역사를 따로 배우지 않은 상황에서 글을 썼다고 봐야하는데, 그의 전공인 건축가의 시선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동시에 그 안에서 역사와 옛 사상을 찾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점이 신선했던 것 같다.

 

책의 구성은 서원의 기원을 먼저 소개하고 있다. 조선의 서원이 시초를 올라가 살펴봤을 때 중국의 서원과 영향을 주고받았다는 점을 밝히면서 짧게나마 중국서원을 소개한다. 그리고 뒤이어 총 세장으로 내용을 나누고 제목을 달았다. 1장은 퇴계의 사상이 머물다, 2장은 시대의 비탈길을 걸어가다, 3장은 위대한 인물을 향한 존경을 담다,로 분류한다.

이번 책은 모두 아홉 개의 서원을 싣고 있으며, 이들 서원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등재를 신청한 곳이라는 소개 역시 첨부하고 있었다.

 

조선 서원의 시작이 되는 인물 안향 주세붕과, 퇴계 이황, 류성룡이라는 인물과 각각의 서원을 소개하는 내용을 보고 있으면, 저자의 의식의 흐름이 어느 지점에서 출발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저자는 우선 서원의 시원과 의미를 알리고 싶어했다. 무엇보다도 모름지기 서원을 논함에 있어 그 과정이 필연적으로 먼저 받쳐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의미란 가져다 붙이기 나름이라는 말도 있긴 하지만 어쨌든 저자의 세심한 배려로, 서원의 시작에 대해서 그 번성하는 과정 가운데 깊이 녹아든 선비사상에 대해 조금은 더 가까워지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전체적으로 책이 지니는 분위기는 자못 차분하지만, 때론 진득하고 때론 한없이 여유롭기까지 하다. 이 책에 자꾸 눈길이 머무는 까닭은 곳곳에 들어간 다양한 사진 덕분이 아닐까 싶다. 말 혹은 글로만 소개하는 것보다 함께 사진을 실어 눈으로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데서, 사진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눈이 시원할 정도로 파아란 하늘과, 그 아래 낮게 드리워진 기와와, 계단과, 담장과, 나무와 풀 사이에서 저자는 많은 것을 담아내려 노력했다.

 

한편으로 책은 서원을 소개할 때마다 서원과 관계된 역사적 이야기를 함께 싣고 있었다. 역사적 정치적 배경과 서원의 설립과 관계된 인물들. 이 서원이 지니는 가치와 의미를 살펴보는 것은 역사와 서원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은 한 사람의 시선과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라고 보면 좋겠다. 그 다음 이어지는 것이 저자의 전문적 시선인 건축학도로서의 관점으로 서원을 살펴보는 과정이다. 저자는 건물 하나하나 밀도 있게 분석하고 해설한다.

오래전에도 서원을 건립하는 과정에서도 반드시 약속된 양식이 있었던가 보다. 그러나 그 양식이란 것이 초기에 서원 설립시기에는 완벽하지 않아서 제대로 지어지지 않은 부분이 있었고, 또 어느 시기에 지어진 서원은 선현의 뜻에 따라 건물배치에 있어 약간의 다양성을 갖추었다는 등의 상세한 이야기도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서원이 사당과 꼭 함께 생각해봐야 한다는 전제가 있는 것일까. 따로 생각할 수 없는 공간인가 보다. 책 역시 서원과 사당을 함께 비교하며 소개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각각의 서원과 사당은 모시고 제사지내는 선현에 유지와 사상에 따라 형식적으로 약간의 차이점을 보이고 있지만, 대체적으로 자연과 자연스럽게 융화되는 모습으로 긴 시간을 지켜내고 있다는 데서 큰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다.

 

늘 겸손하게 자신을 닦아 수양하고자 했던 선비의 바른 직념이 손에 잡힐 듯 느껴지는 까닭은 사진에서 보는 반듯하면서도 시원하게 뚫린 대청마루 때문이다. 적당하게 밝고 적당하게 그림자가 드리운 열린 공간인 이 대청마루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공간이다. 이곳에 있으면 곧게 솟은 기둥과 널찍하게 펼쳐놓은 지붕 너머로 멀리 산이 보이고, 하늘이 보이고, 그들이 믿고 따랐던 굳건한 일념으로의 하나의 완벽한 사상이 보였던 것이었을까.

 

책은 역사와 그 역사를 지켜낸 굳건한 사상과 함께, 그 안에서 살아 숨 쉬던 선현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한다. 더불어 소박하게 아름다운 옛 건물들에 대한 저자의 꼼꼼한 부연 설명까지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역사와 전통건축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읽어보면 좋을 듯하다.

 

 

-한국의 서원은 세상의 모서리에 부딪혀 상처 난 가슴을 치유하는 법은 오직 스스로 내면을 키워내는 힘에 있음을 건축 공간으로 말해준다. -p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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