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용기가 필요할 때 읽어야 할 빨간 머리 앤 내 삶에 힘이 되는 Practical Classics 1
루시 모드 몽고메리 지음, 깨깨 그림, 이길태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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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용기가 필요할 때 읽어야 할 빨간 머리 앤

-관계 속에서 힘든 딸에게 건네주고 싶은 책

 

책을 읽는 동안 우리 집은 온통 빨간 머리 앤 이야기로 넘쳐났다. 남편의 핀잔이 날아왔지만 오래전에 보았던 만화 동영상을 찾아 아이들과 함께 보기도 했다. 그런데 말이다. 핀잔을 쏟아내던 그도 결국에는 앤의 주제곡을 따라불렀다는 것은 정말이지 우리끼리만 아는 비밀이다. 침대위에서 끈끈이주걱에 잡힌 듯 찰떡같이 붙어서 우리는 주근깨 빼빼마른∼으로 시작하는 주제곡을 합창하며 동영상을 들여다보곤 했다. 앤이 마차에 서서 하얀 사과나무 꽃이 아치형으로 만발하게 핀 길을 지나가는 장면을 보면서 마차가 날아가고 있잖아? 를 연발하는 사춘기 아이들을 보고 나는 말했다.

 

왜, 마차가 날아가면 안 돼?

책장을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나는 어려서 보았던 그 빨간 머리 앤의 모습을 기억해냈다. 사실 그러면 안 될 것도 같았는데 기억이란, 혹은 각인이란 것이 지니는 힘은 정말 거역하기 어려운 무엇과도 같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이길태가 옮기고 사람과 나무사이에서 새롭게 출간된 이 책 ‘삶의 용기가 필요할 때 읽어야 할 빨간 머리 앤’은, 고전의 의미로 보는 앤 이야기와는 달리 기획의도가 조금은 새로운 색채를 띤 책이라고 봐야한다.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책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랑스러운 앤을 떠올릴게 당연하다. 이미 상당히 많은 출판사에서 출간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시 앤의 이야기를 출간한다는 것이 어쩌면 너무나 일반적이고 평범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라는 걱정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건 분명한 기우였다.

그래서 고전의 힘은 영원하다고 하는 것일까. 네가 옳아! 언제나 네가 옳아! 그 말을 해주고 싶다. 빨간 머리 앤의 이야기가 지니는 힘은 스토리의 탄탄함, 문장 하나하나가 뿜어내는 문장력 그리고 무엇보다도 섬세한 감수성이 인물의 대사와 자연의 분위기에 녹아들어 잘 표현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까닭에 이러한 장점은 이 소설이 오래도록 많은 이들에게 설렘으로 가슴을 두드리며 말을 걸어오는 힘이 되고 원동력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책 속에 새롭게 등장하는 앤은 우리의 기억에 남아있는 앤과는 살짝 분위기가 달라졌다. 길었던 빨간 색의 머리는 짧은 단발로 상큼하게 변해있었다. 그리고 책 속에 늘 앤과 함께 했던 다이애나가 아닌 커다란 덩치에 부드러운 엉덩이의 풍만한 곡선이 두드러져 보이는 하얀 곰 꼬미가 등장한다. 물론 짧은 머리의 앤과 꼬미의 등장은 잠시 잠깐 숨을 고르는 짧은 순간이다.

쉽게 풀어보자면 이런 거다. 원래의 빨간 머리 앤의 스토리에 중간중간 새로운 앤과 꼬미가 마치 책갈피의 여유로움처럼 ‘꼬미와 앤이 들려주는 말’의 형식으로 들어간 구성이다. 이 책갈피의 여유로움과 같은 앤과 꼬미의 등장은 이 책의 출간 의도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봐야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에피소드와 인물의 감정 상태에 맞게 새로운 앤과 꼬미는 위로의 말과 격려의 토닥임을 전해준다. 남자 아이를 원했기 때문에 앤이 다시 고아원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을 때, 꼬미는 앤의 곁에 앉아 무심히 이런 말을 남긴다. ‘괜찮아! 네가 널 사랑하면 돼!

소설책을 텍스트로 삼았을 때 구성을 논한다는 것은 오로지 소설의 이야기 구성을 이야기할 때가 대부분이었지만 이번 책은 소설의 구성 이외의 것을 생각하게 했던 것 같다.

자신감이 떨어지고 우울한 날 꼬미가 들려주는 말은 “마음으로 지지 마라, 너희는 강하다!”, 라는 영화 ‘울보 권투부’에 나왔던 대사였다.

 

책을 읽으면서 독자는 책 속으로 몰입한다. 주인공 앤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을 때, 책을 읽는 독자는 감정이입을 하고 그 상황에 함께 동참하게 된다. 나라면 어떤 생각을 했었을까.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그런 순간에 단발머리를 한 앤과 꼬미는 사실은 살짝 옆으로 비켜서서 조금은 객관적인 시각으로 진지하게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다.

이번 앤의 책은 최근들어 부쩍 힘든 이들에게 심리적으로 위안과 위로의 소통할 수 있는 소재로 많은 책들이 출간되고 있는 시류를 잘 적용한 책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책을 읽는 엄마 곁에 딸아이가 와서 슬쩍 책을 곁눈질로 읽다가 말했다. 엄마는 책을 너무 빨리 읽는 것 같아. 나중에 따로 천천히 봐야겠어.

무엇보다도 열두 살이 된 딸아이에게 나는 이 책을 권해주고 싶다는 생각에 마음이 닳아있다. 엄마도 그 즈음에 앤을 만났어. 아마 네게도 정말 둘도 없는 친한 친구.. 절친이 되어주리라 믿어.

 

자기 생각과 자기주장, 자기만의 상상의 세계가 너무나 강렬했던 말라깽이 어린아이가, 소녀가 되고 숙녀가 되면서 성장해가는 사랑스러운 이 이야기를 딸에게 선물해주고 싶은 건 순전히 엄마 욕심이라고 해두자. 무엇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딸에게. 인간은 그 관계 속에서 살아가며 성숙해가는 것이라는 말을 해주고 싶은 것이다.

이제 이 책을 아이의 책장으로 넘겨줄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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