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의 독백 같은 이야기는 많은 여운을 남긴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남자는 그 평범함이 싫어
소위 성공한 사람이 되기 위해 인생의 모든 시간을 할애한다. 그 결과 그는 유명인사가 된다. 그에겐 아내와 아들 하나가 있다. 하지만 아들은
그런 남자를 이해하기 힘들고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친절하고 다정하고, 아버지의 삶과는 어떻게 보면 정반대, 아니 아버지인 남자와는 정반대의 가치관을
가진 아들은 자신의 이름을 이야기 했을 때 사람들이 그의 성을 듣고 혹시 아버지가... 라고 말하는게 싫다. 성만 들어도 사람들이 알 정도로
남자는 성공했다. 많은 부와 명성을 지니고 있다.
그런 남자가 암에 걸렸다. 어렸을 때부터 회색옷을 입고 폴더를 든 여성이 찾아 온 뒤로 자신의
형제가, 이후엔 소중한 사람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는 걸 남자는 목격했다. 그리고 이젠 그 여자가 자신의 주변을
맴돈다.
물론 남자는 병원에 입원해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 소녀를 만난다. 소녀는 남자와는 달리 내일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병에 걸렸다. 남자는 소녀가 살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회색 여자에게 말한다. 자신을 대신
데려가라고...
하지만 그녀는 말한다. 죽음이 죽음을 대신하진 못한다고... 목숨이 목숨을 대신할 뿐이라고. 자신은
사신이 아니라 그저 정해진 곳에 그 사람을 데려다주는 일을 할 뿐이라고...
남자는 결심한다. 소녀를 살리기로. 평생 누군가를 위해 살지 않았던 남자가. 심지어는 그 대상이
자신의 아들도 아니였던 남자가 누군지도 모르는 소녀를 살리기로 결심한 것이다. 바로 그 결심이 선 뒤에 남자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기 시작하고
자신과 아들 사이의 추억, 특히 아들이 자신에게 보였던 모습들을 떠올리게 된다.
남자는 회색옷을 입은 여자로부터 폴더(일종의 죽음의 명부인 셈이다)를 빼앗아 달아나고 자신이 대신
죽어 소녈르 살리려고 하지만 자신은 죽지 않는다. 아직 죽을 때가 아니라고 자신이 이루고픈 것을 이루기에 시간은 충분하다고 말할 뿐이다.
그러면서 목숨을 대신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려준다. 그것은 바로 존재가 삭제되는 것이다.
남자의 아들, 남자가 이룬 것들은 세상에 존재하나 남자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이 되는 것. 대신 누군가가 남자를 대신해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남자는 마지막으로 아들을 찾아간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바텐더로도 행복하다는 아들을 찾아가 커피 한
잔을 마신다. 그리고 많은 말을 하지 않음에도 그 어느 때보다 아들과 다정한 시간을 보낸다. 이후 여인의 말한 목숨을 대신하는 선택을
한다.
아마도 아들의 기억 속에 그는 이젠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면 아들의 기억 속에 남은 이는
남자이나 진정한 의미에서 남자가 아닌 존재일 것이다. 그럼에도 남자는 자신의 선택에 후회도 미련도 없다. 남자의 선택이 이후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독자의 상상에 맡길 뿐. 소녀에겐 그야말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아무도 모르는 남자의 희생으로
말이다.
아주 짧은 프레드릭 배크만의 이야기. 그렇지만 이야기가 남기는 여운은 너무나 컸던 그런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