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고 뜨니 수요일의 끝이다. 언제나 시간은 그렇게 빠르게 지나간다.  젊은 시절의 시간낭비를 경계하는 말은 종종 접하지만 사실 어쩌면 시간이 소중하기 그지 없는 건 지금, 그리고 이후로, 나이를 먹어갈수록 더한 것이니 아무리 어른이고 사리분별이 있다고 해도 시간낭비에 대한 경구는 이 나이에 더 많이 접해야 하는 것 같다. 


주말의 운동도 좋았고 월요일에도 늦게 그날의 운동을 마쳤다. 덕분에 어제는 쉬어야 했고 오늘은 바쁜 일정과 미팅, 그리고 점심약속으로 오후를 넘겨 운동이 미뤄졌다. 잠깐 서점에서 시간을 보내고 늦은 저녁에라도 잠깐 뛸 생각이다.  토요일이 8/31이니 오늘부터 잘 달리면 이번 달엔 드디어 올해 처음으로 월 20000칼로리를 넘길 수도 있겠다. 현재 수치가 8월 중 17245로 나오니 대충 두 번 정도 제대로 뛰어주고 weight lifting 2회면 넘길 수도 있겠지 싶다. 수치의 정확성보다는 그렇게 어떤 척도를 두고 늘 측정하는 것에 더 의의를 둔다만, 어쨌든 숫자는 중요하다, 이 경우엔.


8월의 한 주를 손님으로 날려버린 덕분에 책읽기는 무척 많이 떨어졌기 때문에 현재 이번 달 12권이 고작이다. 이건 속도를 올려서 마구잡이로 읽어내는 건 의미가 없기 때문에 아마 잘해야 한두 권 정도가 더해지지 않을까.  


전작은 오히려 사놓고 읽지는 않은채 보관중이다. 책소개를 팟캐스트로 듣고 흥미를 가졌고 저자의 역설을 미리 접한 터라 더욱 열심히 읽었다.  원래 난장판인 뇌를 정리정돈하는 힘은 후천적으로 길러진다는 말. 인쇄물과 디지털매체를 읽는 건 같은 의미의 '책'이라고 해도 매우 다른 뇌의 운동과 발달 및 운동을 보인다는 말. 특히 온갖 다른 것들이 한꺼번에 완벽한 싱크로와 협업을 일으켜야 하는 종이책읽기에 비해 단층적이고 단편적인 디지털매체의 읽기에 대한 비교리서치가 무척 기억에 남는다. 다가올 미래엔 더더욱 종이책을 읽되 디지털매체를 읽는 것도 함께 단련해서 이를테면 양손잡이가 되어야 한다는 말엔 일종의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조화를 표방하는 의견으로 이해했다.  몇 가지 저자가 논증을 위해 전제하는 것들에 대한 비평은 있을지언정 종이책읽기의 중요성이나 이에 대한 저자의 의견이 틀렸다고 볼 수는 없다. 뭔가 집착적이고 버릇같은 비판적인 읽기의 자제가 필요한 면인데, 비평을 들어보면 늘 뭔가 밸런스를 잡기 위한 반대의 의견이 제시되는걸 보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쓸데없는 짓 같다.  뭔가 흥미나 정보만 추구하지 말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으로 뇌를 단련하기 위해서라도 어려운 책을 늘 한 권은 열어놓을 생각이다.  원래도 그랬지만 이 책을 읽고나서는 특히 이 부분에 주안점을 두기로 했다.  책읽기의 목적인 정보취득, 지식습득,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이를 모두 녹여낸 지혜의 추구, 혹은 배우기 위한 독서, 즐거움을 위한 독서에서 관조라는 궁극에 이르는 독서를 추구할 것을 저자는 권한다.  왜 이런 시대에 굳이 종이책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작은 답변.


요즘 흥미를 갖고 있는 멋진 삶의 소유자 파일로 밴스. 막대한 유산상속으로 평생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그는 시대상 영국 젠틀맨의 계승자이자 그런 삶이 가능했던 마지막시대의 인물이 아닌가 싶다.  문학과 고고학을 논하고 예술까지 모르는 것이 없는 그의 부업은 탐정. 게다가 넷트워킹도 훌륭해서 지역검사와 함께 움직이고 경찰도 그를 존중하니 종종 다른 탐정들이 겪는 경찰과의 충돌도 없다.  늘 뭔가를 하고 있는데 제대로 끝내는 일은 없으나 사건은 종종그에게 다가오고 이를 근처에서 지켜보고 기록하는 건 그의 개인변호사이자 비서이자 친구인 반 다인의 몫이다.  두 사건 모두 모든 단서가 제공되지 않고 결정적인 팩트는 다소는 무리한 유추와 추측을 통해서 연결이 되므로 애초에 독자와의 대결을 염두에 둔 소설이 아니다. 엘러리 퀸을 읽으면서 느낀 것처럼 반 다인의 소설도 그저 즐겁에 한 걸음 물러나서 즐기면 딱이다.  명문가의 대저택과 이에 속한 호수에서 벌어지는 살인극을 해결하는 것이 '드래건 살인사건'이고 역시 비슷한 배경의 사설카지노에서 벌어지는 활극이 해결되는 것이 '카지노 살인사건'이다.  뭔가 이젠 100년이나 지난 옛날의 이야기라서 그런지 아련한 지나간 시절의 모습과 함께 즐기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이걸 역사책으로 봐야 할까, 아니면 최근에 제시되어 유행하기 시작한 빅히스트로의 과학책으로 봐야 할까.  로마에 대한 이야기를 주축으로 하되 사실 로마는 전체에서 일부분을 차지하고 나머지는 주로 과거의 사례를 현대에 투영해서 지금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 같다.  건강한 시절의 로마는 비교적 투명하고 합리적이고 평등한 형태의 국가운영을 통해 빈부의 격차도 상대적으로 낮은 상태에서 이탈리아를 석권하고 지중해의 패권을 차지하지만 공화정말기의 로마로 오면 잦은 전쟁으로 자영농이 몰락하고 전쟁의 댓가는 소수의 부자들에게 집중된 상태로 제정을 통한 쇄신을 시도하지만 크게 바뀐 건 없이 멸망까지 꾸준히 달려갔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즉 빈부격차, 사회의 이런 저런 면에서의 격차가 심해질수록 한 체제의 종말로 간다는 말,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우리 시대는 큰 문제가 있다는 말. 좋은 시스템으로 발전한 국가가 점점 사람의 능력으로 좌지우지되고 사람의 능력에 따라 발전과 퇴보를 가늠하게 되면서 회복을 위한 노력 자체가 잘못된 방향을 추구했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로마제국쇠망사'보다는 덜 지루하고 '로마인 이야기'보다는 덜 한쪽으로 치우친 분석의 시도가 좋다. 다만 역사학자가 아닌 탓에 이런 저런 작은 오류나 덜 맞는 표현은 어쩔 수 없다.  


구판으로 2012년에 읽었고 근 7년만에 신판으로 다시 읽었다. 번역은 크게 다르지 않았고 여자가 남자에게 흔히 쓰는 존댓말의 표현이 모두 동급으로 바뀐 정도. 이건 일본의 문화에서 볼 때 원본의 표현과 맞을지 조금 궁금하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스토리가 책을 펼치면서 다시 떠오르는 걸 알았다. 대학생시절까지 읽은 책은 지금도 내용이 뚜렷하게 기억되는데 비해 이후의 독서는 늘 뭔가 다 잊혀지고 다시 읽으면 한꺼번에 recall이 되어 떠오른다. 


이 책을 읽을 때 뭔가 굴, 시공간의 왜곡, 십대 소녀 같은 하루키의 단골모티브에 대해 뭔가 말을 했었는데 이번에도 이런 것들에 포커스가 맞춰졌다.  결론이 없는 결론의 이야기.  


이렇게 써도 팔리나 싶은 이상한 이야기도 조금 있고 꽤 좋은 이야기도 적당히 섞여 있는, 작가라는 인간이 부럽기 그지 없는 책. 물론 잘 팔리는 작가여야 하겠지만 자유도가 높은 직업이라서 책을 쓰고 여행을 다니는 하루키의 삶은 늘 동경의 대상이다. 재주도 없거니와 시대로 봐도 책만 써서는 먹고 살기 어려운 세상이라서 이런 방향으로는 꿈도 꾸지 않지만 뭔가 내가 하는 일을 이런 형태로 유지해나갈 수 없을까 늘 고민한다.  하와이에서 살고 싶으니까.


멋진 서점에서 보낸 시간들, 만난 유명인들, 작가들에 대한 짧은 회상. 팜플랫처럼 얇은 책. 지금은 다른 곳에서 서점을 하는 작가의 눈으로 그려지는 좋던 시절의 서점은 지금과는 많이 다른 멋진 복합문화공간이었다. 대형서점조차 줄줄이 문을 닫고 아마존에 의해 잠식당하는 지금은 꿈도 못 꿀 멋진 시절.  얼마 전 자기 아파트에서 서점을 열고 매우 선택된 소수의 손님들에게만 책을 팔고 문학살롱처럼 운영되었던 뉴욕의 멋진 서점주인의 죽음으로 잠깐 서점이 뉴스에 등장한 적이 있는데 책을 팔아서 먹고 살기엔 너무도 어려운 지금의 세태와는 다른 모습에 쉽게 그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다.  아주 늙어서 가는 날을 준비하게 되면 마지막엔 서점을 열어서 가진 책을 하나씩 팔아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정도가 되면 어차피 먹고 사는 건 큰 관심의 대상이 아닐테니까.  죽은 후 조각조각 몸을 보시하는 풍장 (혹은 조장)처럼 컬렉션을 조각조각 원하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 '지'의 풍장이라고나 할까.


이제 슬슬 정리하고 들어가서 잠깐 쉬고 달리기를 해볼 참이다.  스스로에게 good luck!


근데 무릎이 좀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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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9-08-29 14: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엔 아니 오래 전부터 그렇게 느끼지만 수요일만 지나면
금방 한 주가 가는 것 같아요. 이러다 말씀하신대로
눈 잠깐 감았다 뜨면 할머니가 되있을 것 같아요.ㅠ

transient-guest 2019-08-30 00:36   좋아요 1 | URL
매주 시작하고 금방 지나가는 걸 보면 정말 그래요. 세수를 하다 얼굴을 들어보니 처음보는 아저씨가 쳐다보고 있는 느낌...-_-
 

2019년이 이리 빠르게 지나가는 걸 보면 2020년은 더욱 그리 느낄 것이다. 아무 생각이 없이 닥치는 대로 들어온 일을 하고 지치고, 그 속에서 다시 일어나리라 다짐하고, 이러고 저러고 그러다 보니 늘 가을이 돌아오고 한 해가 저물것임을 알게 해주는 NFL의 Preseason이 돌아온 것이다. 그전과는 다르지만 그래도 반가운 마음에 한쪽에서는 TV를, 다른 쪽에서는 PC를 통해 두 개의 방송을 동시에 받아서 틀어놓고 목요일 저녁을 즐겼다. 운동은 가볍게 필라테스만 했는데 덕분에 오늘 아침에는 늦게 일어난 대로, 팔꿈치가 아픈 걸 참고 chest와 triceps를 했는데, 사무실에서 조금 많이 일찍 퇴근한 지금 서점에서의 시간을 보낸 후 다시 gym으로 가서 조금이라도 뛸 생각이다. 지난 주에 이어 다시 도전하는 주말 3일의 하루당 1000칼로리 태우기, 책 두 권읽기...내 의지가 매우 약함을 종종 느끼는 요즘이라서 이런 거라도 해서 뭔가 하루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일에서는 점점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는데 사실 이 나이가 되니 가슴이 설레는 건 좀처럼 없는 일이라서 뭔가 자꾸 엉뚱한 곳에서 동기부여를 하게 된다.  


'발자크 평전'을 읽고나서 계속 찾아서 읽는 슈테판 츠바이크. 그의 시대에는 멋진 지성인들의 세상이었던 1차대전 이전의 유럽을 그린 책도 좋았고 소설도 즐겁게 읽었는데 에세이 또한 귀중한 사료적인 가치와 함께 요즘의 책으로 보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수준의 서평을 보여준다.  그가 살던 시대상을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지만 그다지 낯설지도 않거니와 지금이라면 열심히 트럼프, 시진핑, 아베, 푸틴 같은 자들과 펜으로 맞짱을 뜨고 있을 정신수준도 멋지고 비극적이라서 소설 같은 그의 인생의 결말도 비장한 멋이 있다.  언급된 프로이트는 이제 심리학에서는 뒷방 늙은이 취급을 받고 있고 토머스 만도 쉽게 읽어지는 작가는 아니지만 근대지성의 많은 거장들이 활동한 동시대의 눈으로 본 이야기는 우리 시대의 서평과는 다른 신선함을 준다.  '천일야화'에 대한 독특한 의견과 의미부여 또한 나는 처음 접하는 것으로 덕분에 마침 다음 주문에 구하기 위해 열린책들에서 나온 셋트를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다.  언제나 느끼지만 독서는 더 많은 독서와 구매로 이어지고 나는 장난꾸러기 학생이 교실의 책상에서 책상 사이를 날아다니는 것처럼 아무런 질서 없이 책과 책을 뛰어다니는 것이다.


이명박을 선택한 한국인들이 그러했듯이 욕심과, 지역이기주의와,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서의 백인우월주의와 차별, 그리고 더한 강도의 절망과 민주당에 대한 실망에 대해 간결한 거짓말로 현혹되어 트럼프를 선택한 미국은 언젠가 큰 대가를 치루게 될 것이다. 2017년, 러시아의 공작질과 협잡질, 힐러리에 대한 비호감, 결정적으로 당시 FBI국장 코미의 헛발질로 트럼프가 미국대선을 이긴 후 지금까지 갖고 있는 생각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도 이런 결론은 크게 바뀌지 않았지만 상당히 괜찮은 수준을 르포를 통해 겉에 드러난 사실 이면을 보여주고 있다.  일정한 부분은 수긍할 수 있는 깊은 절망, 미래에 대한 공포, 하지만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날들이 다시 와주길 바라는 마음, 트럼프라는 떠벌이가 그걸 해주겠다는 말 그 자체에 눈과 귀를 닫고 그를 지지한 사람들이 사실은 그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볼 계층임은 한국의 극우현상과 다르지 않다.  세상이 변했는데 따라서 변하지 못하고 계속 과거의 영광을 다시 가져오려는 사람들. 그 와중에 탓하는 건 가장 약한 유색인종, 불법이민자들, 외국인들.  미국자동차회사들이 공장을 외국으로 이전하기 전에 이미 오랜 호황의 끝에 매너리즘에 빠져 제품의 품질이 점점 저하되어 일본차에게 주류의 자리를 내주고, 경영부진을 타개하기 위한 원가절감의 취지로 볼 수 있는 이전문제. 더 이상 석탄을 사용하면 지구가 박살날 지경이라서 전 세계적으로 사용을 줄여야함에도 불구하고 옛날, 자기 아버지나 할아버지 시대의 광산업지역의 호황을 다시 가져오고 싶어하는 사람들.  그들이 직면한 절망의 현실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으되 그들의 칼이 향한 방향도, 선택한 병기도 모두 틀렸고 하락은 계속될 것이고, 점점 더 극단으로 갈 30%의 그들.  그런 30%를 탄탄한 지지층으로 잡아 재선하려는 트럼프. 이미 이 르포 이상의 분석을 했겠지만 민주당의 후보군들이 읽고 최소한 할말과 안 할말은 가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개개인은 열심히 일하고자 하는 사람들이고 나쁜 사람들이 아니니 이들 또한 끌어안아야 트럼프를 물리칠 수 있을테니까.


독립서점의 붐이 분 것도 벌써 시간이 꽤 지난 듯, 한창 유행하던 시절 생겨난 서점들의 폐점소식을 듣게 된다. 사실 서점만으로 생계를 꾸리는 건 이미 어디서나 쉬운 일이 아닌 것이 마진율을 따져보면 200만원을 벌기 위해서는 대략 1000만원어치의 매출을 올려야 하고, 이는 임대료와 물가에 비춰 보면 넉넉하기는 커녕 대다수의 서점주인은 다른 부업이나 주소득원이 없으면 최저생활도 힘들 것이기 때문. 이런 와중에도 잘 살아남아 영업을 이어가는 서점들이 없지는 않은데 아마 이상북스는 그들 중에서도 꽤 이름을 탄 곳이 아닌가 싶다.  주인장의 저술활동도 그렇고 다소는 엔지니어스러운 자세도 도움이 되었겠지만 그 유명세로 벌 수 있는 다른 수입보다더 더 큰 성공요소는 아마도 그의 냉철한 현실인식이 아닐까. 다만 이 바닥도 꽤나 case by case라서 책의 제목은 '내가' 작은 책방 꾸리는 법이 더 잘 어울린다.  내가 여유가 많이 생기는 어느 시절이 오면 작은 서점을 꾸려서 영어로 번역된 한국책, 그리고 그 원서 정도를 중심으로 작은 책방을 해보면 어떨까 싶다만, 전적으로 돈은 못 벌 것 같고, 잘해야 내 놀이공간이자 사람을 만나는 공간이 될테니까 답은 건물주가 되어야 한다는 것...-_-:  기실 요즘 언제까지 생계를 위한 일을 할 수 있을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가득한, 지칠대로 지친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어서 아득하니 멀게 느껴지는 이야기. 


팔레스타인을 알기 위한 공부의 첫 독서. 가진 책이 거의 없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꾸준히 알아갈 생각이다. 우선은 객관적인 입장에서 보는 책을 읽은 후 이스라엘의 관점에서 다룬 책도 볼 생각은 하고 있다만 사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이토록 비대칭적인 전쟁에서는 팔레스타인편에서 책을 보는 것이 곧 객관적이라는 생각을 한다. '객관성'이란 말이 오용되면 본질을 희석하는 도구가 되어버리는 걸 이미 "Black Lives Matter"에 대해 등장했던 "All Lives Matter"이란 구호를 통해 접했던 바, 공정하게 다룬 사실을 찾는 건 틀린 것이 아니지만 이를 통해 컨택스트가 교묘하게 사라지거나 왜곡되는 건 피해야 한다.  남의 땅에 그냥 들어가서 학살을 일삼고 나치들에게 당한 짓을 고스란히 팔레스타인사람들에게 자행하고 있는 현실은 그 어떤 다른 해석도 용인하지 않는 것이다.



No Japan은 알겠는데 책에서는, 그것도 이런 일이 터지기 전에 주문한 책이 30-40일 후에 도착하는 현실에서는 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사실 아베와 일본정부, 정치인, 혐한론자들이 밉지 일본의 모든 것이 밉지는 않은 것이 솔직한 맘이니까. 


이 시대의 일본작품은 늘 말하지만 잃어버린 우리의 근대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그 외에도 뭔가 아련하고 몽환적으로 아예 없었던 우리의 다른 근대를 이런 독서를 통해 꿈꿔보게 하는 망상의 재미도 있으니.  


벌써 주요내용이 까맣게 사라진 듯 기억이 어렵다. 술을 줄여도 아마 뇌의 퇴행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겠지만 알콜성치매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건 아닌지.  재미있게 읽었다는 기억 외엔 남은 것이 별로 없다.  책을 한번이라도 좀 뒤적거리고 왔을 것을.  내가 여기서 이걸 쓸 줄, 적어도 오늘 아침에는 알 수 없었으니.


25주년을 기념해서 재단장하고 나온 판본인데 크게 달라진 건 모르겠고 그저 존댓말이 반말로 바뀐 정도? 내용은 많이 잊고 있었는데, 이걸 읽은 2012년의 기억이 다시 떠오르기는 한다. 뭔가 여자애가 종종 등장하는 하루키소설의 모티브에 대한 의문을 표시하는 글을 쓴 것이 7년 전이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완전히 같으면서도 많이 다른 인간일게다. 

그래도 태평양전쟁이나 중일전쟁 시절 일제가 저지른 온갖 나쁜 짓에 대한 '희생자' 또는 '운명론'의 희석이 없어 거부감이 적다.  


이제 슬슬 gym으로 가서 30분이라도 뛰어줄 시간이다.  조금만 더 머물다 가야지. 커피도 공짜로 얻어 마셨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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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덥지 않은 여름, 보통 같았으면 화씨 100-110도의 낮 최고온도였을 날씨가 무더운 어제와 오늘 대충 90도 초입을 유지하고 있다. 아마 이틀간 뭔가 태양이 달아오른 듯, 내일부터 갑자기 79도로 뚝 떨어진다고 하니 지구온난화에 따른 이상기후는 이제 섬과 연안지방이나 극지방에 국한된 일이 아니다. 


다시 맥주를 끊어내고 칼로리를 낮추는 시작을 위해 어제는 와인을 마셨다. 여름에는 아무래도 시원한 맥주에 가벼운 안주가 적절하겠지만 와인도 화이트계열은 여름과 잘 맞는 편이다. 물론 내가 화이트보다는 레드계열을 선호하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지만.  잘 마신 건 좋았으나 역시 아침이 늦고 말았다. 그래도 일주일에 한번으로 정한 음주와 양으로 그리 힘들지는 않았지만 아침시간의 낭비는 주말엔 특히 더 아깝다. 쉬는 날은 길게, 일하는 날은 짧게 지나갔으면 하는 마음이라서.  어쨋든 먹은 건 바로 빼야하니 한창 더울 오후 2-3시엔 gym으로 가서 열심히 오늘의 근육운동을 끝내고 달리기를 할 예정이다. 심폐운동만 하는 날이 아니면 근육운동 후 30분 정도의 달리기면 딱 좋다고 하는데 30분을 하면 그 다음 30분을 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기 때문에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다면 한번의 운동에서 1000칼로리는 충분히 태울 수 있다. 


4년에 1000권 혹은 그 이상의 책을 읽는 것이 현재 진행중인 인생의 큰 목표들 중 하나다. 여기에 여행, 저술, 공부, 수양 같은 건 아직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일종의 버킷리스트. 4년/1000권을 잡은 이유는 40세부터 리셋해서 죽기 전에 10000권의 책을 읽어보고 싶기 때문이다. 먹고 사는 일에 걱정이 없다면 공부를 하면서 책을 읽고 운동을 하고 정신수양을 하면서 평화롭게 하와이에서 살 수 있을텐데, 그러면 아마 연 300권 정도는 거뜬히 읽어낼 수 있을텐데...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여름의 끝이기도 하고 방학이 대충 2-3주 후면 끝날 것이라서, 그리고 이 정도면 바닷가에서 놀기 딱 좋은 날씨라서, 길에도 차가 별로 없고 서점에도 생각보다는 사람이 적다. 아마 바닷가나 휴가를 떠나지 않은 사람들은 죄대 쇼핑몰에 쳐박혀 있을 것이다. 근래의 경기를 타고 7년전부터 엄청난 확장을 하고 지금은 거의 다섯 배로 커진 공간, 자본주의의 천박함이 모든 면에서 전시되는 곳.  정해진 엄청난 액수의 월세로, 부동산세금/공용공간유지/보험비용으로, 거기에 매출의 일정한 퍼센트로 상인들을 착취하는 곳, 대기업조차도 장사가 안되면 버틸 수 없다는 무시무시한 공간. 그곳에 발길을 끊은지 오래지만 - 사람이 많은 건 딱 질색이고 굳이 몰에 가지 않아도 좋은 상품을 저렴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은 널린 나라니까 - 이야기를 들어보면 봉건시대의 농노제가 떠오르는 구조적인 착취가 아닌가 싶다. 사실 현대의 상용부동산이란 것이 결국 현대판 농노제라고 보는 의견도 많이 있거니와 그 중에서도 으뜸가는 곳이 쇼핑몰이란 공간이다. 


아케치 고고로 시리즈. 새로운 작품도 아니고 아마 내가 가진 버전으로만 4-5권의 책이 있을 것이다. 에도가와 란포는 아무래도 초창기의 작가라서 그런지 뭔가 번안스럽고 뭔가 아마추어의 느낌이 강한 작품들이 다수 있는데 '엽기의 말로' 혹은 '엽기의 끝'으로 알려진 이 작품도 그런 범주에 속한다. 란포 또한 종종 이런 이유로 자신의 작품을 다시 쓰거나 중단했다가 다시 편집하고 수정하기도 했는데 이 작품은 그런 과정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구조적인 결함이나 작중인물들의 당위성이 많이 떨어진다.  현대의 작가가 준비해서 개작을 해도 좋을만큼 곳곳에 구멍이 있고 이걸 메우면 훨씬 더 나은 구성과 전개에서 결말까지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 많이 아쉽다.  마치 60년대와 70년대의 악당처럼 악당은 '왜'가 없이 그저 저지르고 포섭당하는 사람도 '왜'나 '어떻게'가 없이 그냥 포섭당하고 만다. 그런 면에서 보면 아케치 고고로는 긴다이치 고스케나 가미즈 교스케와 함께 3대 명탐정의 반열에 오르기엔 무리가 따르는 인물이다. 물론 그건 작품이 쓰인 시기와 발전상에 따른 차이라서 어쩔 수 없고 일본 최초의 탐정이란 상징성이 있으니 인정해야 하겠지만 이렇게 실수가 잦고 단서와 범인을 자주 놓치는 탐정은 아무래도 곤란하지 않을까. 


'열하광인' 아니면 '방각본 살인 사건'을 시작으로 구할 수 있는 김탁환작가의 글은 거의 다 찾아서 읽었다. 절판이 되어 미처 구하지 못한 책을 빼고는 그의 소설과 글모음도 모두 구해서 갖고 있을만큼 적절한 픽션과 역사를 그처럼 잘 버무려내는 건 대단한 일이다. 흥행여부를 떠나 영화로 만들어진 건 책의 멋진 부분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했다고 생각할만큼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능력이 탁월하다. 


과거를 회상하는 방법이 아닌 작중의 시절이 그대로 현재의 시점인 화자 이명방, 그리고 무척이나 매력적인 괴인이지 기인 김진이 무려 23년 동안 이어진 소설 - 대소설로 구분짓는 - 의 결말을 둘러싸고 벌이는 추리극이다. 장치도 훌륭하고 여인네들이 사건의 전면과 배경에 배치된 것도 시대상을 볼 때 무척 신선하다. 희망찬 정조의 시대 그 이면의 불안감 그리고 서학을 둘러싼 혼란함도 잘 그려낸 것 같다.  백탑파 시리즈의 넷플릭스급의 드라마화가 시급하다. 


'라드츠 제국'시리즈의 첫 권은 도둑맞았기 때문에 다시 구해야 하고 다시 구할 때까지는 그 생각이 나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 이야기는 거의 한 달을 두고 읽은 것 같은데 그만큼 자전거처럼 책을 읽으면서 할 수 있는 심폐운동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덕분에 첫 권처럼 이번의 책도 스토리의 기억이 중구난방이다. 어쨌든 우주 곳곳에 지난 천 년간 퍼진 군주의 객체들의 전쟁이 이어지고 있는 것 같고, 그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주인공과 주변인물들이 또 한 건을 해결한 것 같다. 정신을 넣었다 뺐다 할 수 있는 인간개체, 개인적인 나와 정신을 공유하는 다수의 나라는 개념은 이제 어느 정도 이해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쉽게 넘어가지는 않은 소설이다.  '아작'의 책도 모두 구해야하는데, 8월의 퍼포먼스가 좋으면 여러 차례에 나눠서 모두 사들일 생각을 하고 있다. 


'주석 달린 셜록 홈즈'는 품절된 것을 제외하고 우선 구하기 시작했고 조만간 교보를 통해서 모자란 걸 구할 생각이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전집은 8권인가 되는 걸 드디어 하나씩 구하기 시작했다. 요걸 다 구하면 그 다음엔 '아작'과 함께 도올선생의 책을 하나씩 구할 생각이고 여기에 잠시 멈춘 박종현선생의 헬라스 철학에 대한 책을 사들일 것이다. 박종현선생의 책을 모두 갖춘 후에는 아마 그간 사들인 천병희선생의 완역본을 하나씩 시작해보는 것도 괜찮겠다.  


여전히 하와이에서의 삶을 꿈꾸고 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당장 실행하지 못하고 있지만, 태평양기준시간에 맞춰 하와이에서 일을 하고 현지시간으로 오후 2-3시면 일을 마치고 남은 하루를 길게 책을 읽고 차를 마시면서 평화롭게 보내는 삶 말이다. 새벽 4시에 일어나서 가볍게 운동을 하고 6시면 일을 시작하고 오후 2시나 3시 (켈리포니아의 오후 5시나 6시)면 하루를 마치고 남은 긴 하루를 책을 읽고 기분에 따라서는 해변을 달리거나 요가를 하는 것도 좋겠다. 이제 금년의 생일이 지나면 43세가 되는 반생의 가운데서 이런 행복한 미래의 상상이라도 해야 버텨낼 수 있을 것 같다. 더 젊은 시절에 하와이를 만났더라면 아예 커리어의 시작을, 아니 사무실을 차릴 때 호놀루루로 갔을 것을. 늦게 만난 탓에 이렇게 가슴앓이만 이어지고 있다.  45세는 고작 2년이니 어려울 것인데 그래도 40대가 다 지나가기 전에는 하와이로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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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기다려온 앤디 워홀의 전시회를 가게 될 것이다. 8/1에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의 일년 회원가입 후 가능하면 그 주의 토요일에 예약을 해볼 생각이다. 그간 이런 저런 경로로 많이 접했지만 제대로 그의 작품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 될 것이다. 그간 터너, 고흐, 램브란트, 루벤스, 고갱, 클림트, 그리고 모네까지 봤고 그 외에도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이런 저런 작품들을 감상했는데, 여전히 어렵지만 처음보다는 더 즐길 수 있을만큼의 감식안 같은 것이 생겼기 때문에 은근히 기대가 된다.  


늘 그렇듯이 오롯히 모든 걸 책임지고 있는 늙은이라서 먹고 사는 일 말고도 여러 가지로 시간을 빼앗기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업무가 많이 밀렸다. 거기에 여전히 사무실의 공간을 rearrange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계속 끝이 나지 않고 있음에 지쳐서 어제와 오늘은 그저 놀고 말았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모든 걸 다음 주로 미뤄버렸다. 좀더 시스템을 잘 만들어서 꾸준히 일이 진행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간 solo로 일해왔으니 내맘대로의 회사였던 탓에 이게 쉽지는 않다. 


시작도 끝도 같다는 원의 개념으로 살기엔 짧은 인생이라서 직선거리로 달려가는 100년도 못되는 삶에서 하루가 아니라 한 시간도 아깝게 생각해야 하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낭비하는 시간이 많다. 뭔가 현타스럽지만 가끔 드는 생각이다.


어제는 트랙을 달리고 오늘은 기계를 달렸다. 어떤 운동을 하든 그런 면이 있지만 달리기를 하면 특히 몸이 가벼워진 걸 느낄 수 있다. 걸을 때 뭔가 다리에 힘이 붙고 가벼운 느낌을 받는 것이고 다리와 허리의 움직임이 좋아진다. 


서점도 좋고 도서관도 좋다는 주의라서 둘의 차이를 크게 두지는 않는 편이다. 책으로 먹고사는 작가나 업계의 사람들은 서점을 통한 개별적인 판매가 더 낫다고 하던데 도서관도 꾸준히 책을 사들이는 곳이니까 마찬가지가 아닌가 하다가도 잠재적 구매자들이 책을 빌려본다는 면에서는 또 다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지금은 조금 다르겠지만 언젠가 사람의 역사에서 보면 책은 무척이나 귀한 물건이었다. 지의 매개체이자 보관함이고 필사의 시대를 지나 인쇄기로 찍어내고도 책이 넘치기 시작한 건 아무리 넓게 잡아도 19세기 어느 시점이 아니었을까. 아니, 20세기 중반을 넘어 당장 내가 국중을 다니던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까지도 책을 빌려 읽어야하는 친구들이 많았으니 어쩌면 워낙 모든 것이 비싸진 탓에 책값은 상대적으로 싸게 느끼게 된 21세기부터 그나마 '책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무엇이란 말이 등장했는지도 모르겠다. 유유의 짧은 기획물이고 크게 남는 내용은 없으나 굳이 구한 건 역시 책을 사랑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궁금했기 때문이고 뭔가 하나라도 건지면 좋고 아니면 말자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살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도서관을 따로 추릴 만큼 많은 곳을 다녀보지 못했다.  중학생 때 가서 소설 마루타를 읽다가 더 크면 읽으라며 빼앗아간 인천중앙도서관 (이미 국민학교 3학년 때 정비석의 소설 손자병법과 초한지를 여러 번 읽은 나에게 말이다) 외엔 한국에서의 도서관방문기억이 없고, 미국에서의 도서관은 대학교 때 UCSC의 McHenry Library와 Science Library, 그리고 각 칼리지마다 있었던 도서관보다는 조용한 공부공간으로 기억하는 작은 공간들, 그보다 전에 고등학교 때 몇 번 갔었던 버클리의 시립도서관이 내가 가본 도서관의 전부다.  어차피 돈이 없으면 밥값을 아껴서 책을 구하던 나에겐 따라서 서점이 도서관보다는 훨씬 가까운 곳이다. 멋진 도서관이 많은건 물론 좋은 일이고 누구나 와서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은 소중하다. 나같은 사람에게도 도서관에서 구해서 읽었다면 사지 않았을 책도 많이 있기 때문에 하물며 책값을 아껴야 하는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도, 도시나 국가전체의 어떤 교양의 측면에서도 도서관은 중요하다. 뭐 그런 생각을 했다는 얘기다.


어쩌다 보니 이리 이어진다. 읽은 순서는 다르지만. 유수의 서점들에 대한 짧은 글, 그야말로 각주와도 같은 글과 그림을 모아놓은 잔잔한 책. 바인딩이 좀 위태스러운 건 맘에 안 들지만. 도시나 지역, 동네의 지적생활의 focal point같은, 아니 gathering place같은 그런 좋은 서점들이 계속 사라져감이 아쉽다. 유명하거나 전통이 있는 서점, 아니 대형서점까지도 조금씩 점포를 줄여가는 것이 현실이니까. 단순히 책을 읽지 않는 시대를 넘어 즉각적이고 찰나적인 글을 선호하고 깊이보다는 넓이를, 음미보다는 즉효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류의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같은 판형으로 나온 책의 여섯 번째. 하루키의 에세이는 워낙 이런 저런 판본과 출판사에서 다양하게 번역해놔서 새로운 것이 거의 없지만 이렇게 나오면 아니 살 도리가 없고 마치 신선한 새글을 읽는 듯, 적당한 망각이 버무려져 즐겁게 읽어버리고 만다. 우습게도 이미 읽은 책은 이렇게 처음부터 읽어나갈 수 없는 것이 하루키에세이의 재활용라는 것. 잘은 모르겠지만 새로운 글은 몇 개 있다고 봤는데 새로운 글이라기 보다는 내가 잊었거나 다른 판본에서 빠진게 아닌가 싶다. 


달리기를 즐기는, 사실 매년 마라톤도 몇 번씩 꾸준히 뛰고 철인3종도 도전하고 무려 100km의 울트라마라톤도 완주한 고수답게 꾸준한 글쓰기는 달리기의 덕분이라고 하는 하루키의 글이 떠오른 건 어제의 달리기에 이어 오늘은 기계위에서 65분간 5.75마일을 찍고 다시 자전거기계에서 38분을 찍은 오늘이었다. 하루키는 기계보다는 바깥에서 달리는 걸 선호하는데 그건 거의 모든 런너들이 그렇기 때문에 특별할 건 없다. 다만 그가 제시하는 이유는 좀 생각해보게 되는데 (1) 뭔가 나쁘지 않으면서도 기계위에서 뛰고 나면 땀의 웅덩이가 퍼지는 느낌, (2) 그보다 운동을 하면서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사실 값으로 치면 얼마 안하겠지만 gym의 불을 밝히고 계절에 따라 냉난방을 돌리고, 기계를 이용하는 사람의 숫자를 생각하면 그런 면도 있겠지 싶었다. 다만 비가 오거나 너무 추운날은 어쩔 수가 없고 또 variation을 두고 뛰거나 꾸준한 측정을 하기에도 기계의 이점이 있다. 여기에 나의 경우 기계에서 뛰고 나면 쿨다운으로 스핀을 돌리면서 칼로리를 좀더 태울 수 있어 종종 사용할 수 밖에 없으니.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품에서는 종종 일본과 세계추리소설의 고전이 언급된다. 이런 reference로 등장한, 아니 아마도 '외딴섬 살인사건'에서 차용된 몇 가지의 모티브들 중 하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책. 기대만큼 특별하진 않았지만 구성의 트릭이랄까 반전 같은 건 좀 신선했다. 하지만 사건의 무대가 되는 장소인 '리라장'이란 이름이 불러일으키는 관심이 피크였고 소설은 그냥 추리극을 보듯이 읽었다. 생각해보니 용의자를 독자에게 펼쳐놓고 하나씩 줄여가면서 교묘하게 배치한 일루션과도 같은 시선돌림은 좀 괜찮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나저나 이런 사건을 겪고도 참 잘 살아가는구나 싶은 것이 추리소설의 주인공이나 등장인물이다. 시리즈가 이어지면 더구나 보통의 사람이 한번 접하기도 힘든 트릭살인이나 연쇄살인을 늘상 겪게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던 일을 하며 살아나기 추리소설주인공의 멘탈도 보통이 아닌게다. 아니, 그들이 가는 곳마다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걸 보면 알고보니 이들이야 말로 연쇄살인마들이고 사건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교묘하게 짜집기되어 전혀 엉뚱한 사람이 범인으로 세워지고 마는 건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지금 막 떠올려봤다.


리비우스 로마사는 이제 겨우 첫 권을 읽었을 뿐이니 아마 시리즈가 다 나오면 한번에 느낌만 남길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2권까지 나왔음). 이건 또 언제 다 나오려나. 


주말은 푹 쉬고 여전히 팔꿈치는 아프지만 근육운동도 하고 달리기도 계속 하는 것으로 하루키처럼 꾸준하게 해나갈 수 있는 정신의 근육과 심폐력을 키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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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의 7월이 대충 9일이면 끝난다. 8월이면 학기제를 채택하고 있는 대부분의 학교들이 중순에서 하순사이에 모두 개학을 하기 때문에 어떤 상징적인 의미로의 여름도 얼마 안 남았다고 볼 수 있다. 더운 해에는 9월까지도 상당히 덥지만 이곳의 금년기온은 대체로 낮은 편이라서 8월만 잘 견디면 가을로 넘어갈 것이다. Global Warming에 의해 빙하가 녹고, 그 차가운 물이 난류에 영향을 끼쳐서 연안지방이 추워질 것이라고 Inconvenient Truth에서 이야기한 것이 벌써 거의 20년이 다 되어가는데, 당시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심각한 기후변화가 벌써 현실이 된 것이다. 그간 갈아넣은 돈과 지구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빈국들의 희생으로 적어도 서방세계에서는 식량부족 등 삶에 있어 심각한 문제를 겪지는 않고 있지만, 이대로 가면 아마 이념이나 종교가 아닌 오로지 생존을 위한 세계전쟁과 그 속의 수많은 국지전, 그보다더 더 많을 크고 작은 싸움들까지 그야말로 세계종말이 눈깜짝할 사이에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Doomsday Prep은 정신나간 짓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말 그대로 Doomsday Prep을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하는건 아닌지.  


책읽기가 좀 부진했고 일도 그렇고 뭔가 좀 풀어진 느낌으로 7월을 보낸 것 같다. 늘 일요일의 각오는 새롭지만.  그래도 책장을 다시 배치하는 등 최대한 사무실공간을 활용하기 위한 정리를 다시 시작했으니 어느 정도 진행이 되면 새로운 가구를 주문하는 등 뭔가 좀더 정돈된 공간이 만들어질 것이다.  


지금까지 읽고 모은 추리소설시리즈에서 가장 긴 건 애거서 크리스트의 작품전집이다. 그런데 모두 다 나온다면, 그리고 내가 모두 구해서 본다면 가장 긴 시리즈는 87분서시리즈가 된다. 뉴욕을 꼭 닮은 1950년대의 아이솔라시티 (예전엔 아이솔라노라고도 본 것 같다)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해결하는 경찰드라마인데 추리소설의 요소도 종종 등장하지만 지금까지 본 느낌은 역시 형사소설이 더 맞겠다는 생각이다.  여자만 전문적으로 터는 연쇄강도사건이 발생하고, 그 위로 다른 폭력성향의 인물이 등장하고, 이들 중 하나와는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늘 그렇지만 이런 걸 해결하는건 현실에서는 경찰과 형사들의 탐문수사인데, 유력한 용의자의 알리바이에 잠깐 당황하다가 갑작스런 하지만 당위성이 충분한 결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처럼 담담하게 형사소설이라는 장르를 통해 한 시대를 들여다보는 재미는 단연코 87분서시리즈가 최고라고 생각된다.  그러면서도 제임스 엘로이보다는 더 가볍기 때문에 쉽게 읽히는 작가 에드 맥베인의 작품이 계속 번역되어 나오길. 이 시리즈는 미국에서도 모두 구하려면 상당한 노력과 아마존으로의 굴종이 예상되기 때문에.


특정의도는 없으나 특정학과라는 공정을 통해 글쟁이(?)가 양산되는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다. 조정래작가도 그렇고 과거 우리가 아는 많은 작가들이 다양한 경험을 얻고 오랜 습작을 거쳐 자기만의 문체로 오랜 세월에서 만들어지는 소재를 글로 만드는 걸 보면 더욱 그런 편견아닌 편견이 심해진다. 아사다 지로 또한 이런 면에서는 좋은 예가가 된다. 개인으로서도 그렇고 시대배경도 그렇고 작가가 된 시점도 그렇고, 좀더 독특하고 깊은 이야기가 쏟아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 기교나 물건을 만드는 솜씨는 가르치고 배워질 수 있지만 아사다 지로나 조정래 같은 작가들을 보면 작가라는 건 가르치거나 배우는 것으로 만들어질 수 없다는 생각을 이어가게 된다.  표제작을 비롯해서 좋은 이야기를 많이 담고 있다.  이번에 새롭게 얻은 책.




늘 재미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고 MCU로 이미 온 지구로 퍼진 세계관의 배경을 볼 수 있는 그래픽노블. DC도 상당한 것들이 많지만 MCU가 영화로 더 성공했기 때문에 훨씬 더 친숙하게 느껴진다. 캡틴아메리카가 버키를 다시 찾는 이야기는 영화의 소재로도 쓰였는데 앤트맨의 에피소드는 영화와는 조금 다른 면도 있어서 아주 새롭게 볼 수 있었다. 언젠가 기회가 되어 알라딘중고매장을 간다면 이런 녀석들을 잔뜩 구해올 생각이다.  다른 면에서는 좀 얕을 수 있지만 아메리칸 팝컬쳐난 서브컬쳐는 충분히 진지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는 분야라고 보는데 평생의 아마추어 역사학도로서 특히 시대상을 보여주는 사료적 가치가 높다고 생각된다.  


리비우스 로마사 첫 권의 진도가 좀 더디다. 아무래도 그간 소설에 많이 치중된 독서라서 그런지 논픽션을 읽는 속도가 많이 떨어진 것 같다. 계속 모아들이고 있는 이와나미시리즈도 그렇고 책장을 정리하면서 나오는 이런 저런 논픽션을 좀더 읽어나가야 할 것이다.


새로운 한주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경건하게 하루를 보내며 충전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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