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기다려온 앤디 워홀의 전시회를 가게 될 것이다. 8/1에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의 일년 회원가입 후 가능하면 그 주의 토요일에 예약을 해볼 생각이다. 그간 이런 저런 경로로 많이 접했지만 제대로 그의 작품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 될 것이다. 그간 터너, 고흐, 램브란트, 루벤스, 고갱, 클림트, 그리고 모네까지 봤고 그 외에도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이런 저런 작품들을 감상했는데, 여전히 어렵지만 처음보다는 더 즐길 수 있을만큼의 감식안 같은 것이 생겼기 때문에 은근히 기대가 된다.  


늘 그렇듯이 오롯히 모든 걸 책임지고 있는 늙은이라서 먹고 사는 일 말고도 여러 가지로 시간을 빼앗기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업무가 많이 밀렸다. 거기에 여전히 사무실의 공간을 rearrange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계속 끝이 나지 않고 있음에 지쳐서 어제와 오늘은 그저 놀고 말았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모든 걸 다음 주로 미뤄버렸다. 좀더 시스템을 잘 만들어서 꾸준히 일이 진행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간 solo로 일해왔으니 내맘대로의 회사였던 탓에 이게 쉽지는 않다. 


시작도 끝도 같다는 원의 개념으로 살기엔 짧은 인생이라서 직선거리로 달려가는 100년도 못되는 삶에서 하루가 아니라 한 시간도 아깝게 생각해야 하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낭비하는 시간이 많다. 뭔가 현타스럽지만 가끔 드는 생각이다.


어제는 트랙을 달리고 오늘은 기계를 달렸다. 어떤 운동을 하든 그런 면이 있지만 달리기를 하면 특히 몸이 가벼워진 걸 느낄 수 있다. 걸을 때 뭔가 다리에 힘이 붙고 가벼운 느낌을 받는 것이고 다리와 허리의 움직임이 좋아진다. 


서점도 좋고 도서관도 좋다는 주의라서 둘의 차이를 크게 두지는 않는 편이다. 책으로 먹고사는 작가나 업계의 사람들은 서점을 통한 개별적인 판매가 더 낫다고 하던데 도서관도 꾸준히 책을 사들이는 곳이니까 마찬가지가 아닌가 하다가도 잠재적 구매자들이 책을 빌려본다는 면에서는 또 다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지금은 조금 다르겠지만 언젠가 사람의 역사에서 보면 책은 무척이나 귀한 물건이었다. 지의 매개체이자 보관함이고 필사의 시대를 지나 인쇄기로 찍어내고도 책이 넘치기 시작한 건 아무리 넓게 잡아도 19세기 어느 시점이 아니었을까. 아니, 20세기 중반을 넘어 당장 내가 국중을 다니던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까지도 책을 빌려 읽어야하는 친구들이 많았으니 어쩌면 워낙 모든 것이 비싸진 탓에 책값은 상대적으로 싸게 느끼게 된 21세기부터 그나마 '책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무엇이란 말이 등장했는지도 모르겠다. 유유의 짧은 기획물이고 크게 남는 내용은 없으나 굳이 구한 건 역시 책을 사랑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궁금했기 때문이고 뭔가 하나라도 건지면 좋고 아니면 말자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살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도서관을 따로 추릴 만큼 많은 곳을 다녀보지 못했다.  중학생 때 가서 소설 마루타를 읽다가 더 크면 읽으라며 빼앗아간 인천중앙도서관 (이미 국민학교 3학년 때 정비석의 소설 손자병법과 초한지를 여러 번 읽은 나에게 말이다) 외엔 한국에서의 도서관방문기억이 없고, 미국에서의 도서관은 대학교 때 UCSC의 McHenry Library와 Science Library, 그리고 각 칼리지마다 있었던 도서관보다는 조용한 공부공간으로 기억하는 작은 공간들, 그보다 전에 고등학교 때 몇 번 갔었던 버클리의 시립도서관이 내가 가본 도서관의 전부다.  어차피 돈이 없으면 밥값을 아껴서 책을 구하던 나에겐 따라서 서점이 도서관보다는 훨씬 가까운 곳이다. 멋진 도서관이 많은건 물론 좋은 일이고 누구나 와서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은 소중하다. 나같은 사람에게도 도서관에서 구해서 읽었다면 사지 않았을 책도 많이 있기 때문에 하물며 책값을 아껴야 하는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도, 도시나 국가전체의 어떤 교양의 측면에서도 도서관은 중요하다. 뭐 그런 생각을 했다는 얘기다.


어쩌다 보니 이리 이어진다. 읽은 순서는 다르지만. 유수의 서점들에 대한 짧은 글, 그야말로 각주와도 같은 글과 그림을 모아놓은 잔잔한 책. 바인딩이 좀 위태스러운 건 맘에 안 들지만. 도시나 지역, 동네의 지적생활의 focal point같은, 아니 gathering place같은 그런 좋은 서점들이 계속 사라져감이 아쉽다. 유명하거나 전통이 있는 서점, 아니 대형서점까지도 조금씩 점포를 줄여가는 것이 현실이니까. 단순히 책을 읽지 않는 시대를 넘어 즉각적이고 찰나적인 글을 선호하고 깊이보다는 넓이를, 음미보다는 즉효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류의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같은 판형으로 나온 책의 여섯 번째. 하루키의 에세이는 워낙 이런 저런 판본과 출판사에서 다양하게 번역해놔서 새로운 것이 거의 없지만 이렇게 나오면 아니 살 도리가 없고 마치 신선한 새글을 읽는 듯, 적당한 망각이 버무려져 즐겁게 읽어버리고 만다. 우습게도 이미 읽은 책은 이렇게 처음부터 읽어나갈 수 없는 것이 하루키에세이의 재활용라는 것. 잘은 모르겠지만 새로운 글은 몇 개 있다고 봤는데 새로운 글이라기 보다는 내가 잊었거나 다른 판본에서 빠진게 아닌가 싶다. 


달리기를 즐기는, 사실 매년 마라톤도 몇 번씩 꾸준히 뛰고 철인3종도 도전하고 무려 100km의 울트라마라톤도 완주한 고수답게 꾸준한 글쓰기는 달리기의 덕분이라고 하는 하루키의 글이 떠오른 건 어제의 달리기에 이어 오늘은 기계위에서 65분간 5.75마일을 찍고 다시 자전거기계에서 38분을 찍은 오늘이었다. 하루키는 기계보다는 바깥에서 달리는 걸 선호하는데 그건 거의 모든 런너들이 그렇기 때문에 특별할 건 없다. 다만 그가 제시하는 이유는 좀 생각해보게 되는데 (1) 뭔가 나쁘지 않으면서도 기계위에서 뛰고 나면 땀의 웅덩이가 퍼지는 느낌, (2) 그보다 운동을 하면서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사실 값으로 치면 얼마 안하겠지만 gym의 불을 밝히고 계절에 따라 냉난방을 돌리고, 기계를 이용하는 사람의 숫자를 생각하면 그런 면도 있겠지 싶었다. 다만 비가 오거나 너무 추운날은 어쩔 수가 없고 또 variation을 두고 뛰거나 꾸준한 측정을 하기에도 기계의 이점이 있다. 여기에 나의 경우 기계에서 뛰고 나면 쿨다운으로 스핀을 돌리면서 칼로리를 좀더 태울 수 있어 종종 사용할 수 밖에 없으니.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품에서는 종종 일본과 세계추리소설의 고전이 언급된다. 이런 reference로 등장한, 아니 아마도 '외딴섬 살인사건'에서 차용된 몇 가지의 모티브들 중 하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책. 기대만큼 특별하진 않았지만 구성의 트릭이랄까 반전 같은 건 좀 신선했다. 하지만 사건의 무대가 되는 장소인 '리라장'이란 이름이 불러일으키는 관심이 피크였고 소설은 그냥 추리극을 보듯이 읽었다. 생각해보니 용의자를 독자에게 펼쳐놓고 하나씩 줄여가면서 교묘하게 배치한 일루션과도 같은 시선돌림은 좀 괜찮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나저나 이런 사건을 겪고도 참 잘 살아가는구나 싶은 것이 추리소설의 주인공이나 등장인물이다. 시리즈가 이어지면 더구나 보통의 사람이 한번 접하기도 힘든 트릭살인이나 연쇄살인을 늘상 겪게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던 일을 하며 살아나기 추리소설주인공의 멘탈도 보통이 아닌게다. 아니, 그들이 가는 곳마다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걸 보면 알고보니 이들이야 말로 연쇄살인마들이고 사건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교묘하게 짜집기되어 전혀 엉뚱한 사람이 범인으로 세워지고 마는 건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지금 막 떠올려봤다.


리비우스 로마사는 이제 겨우 첫 권을 읽었을 뿐이니 아마 시리즈가 다 나오면 한번에 느낌만 남길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2권까지 나왔음). 이건 또 언제 다 나오려나. 


주말은 푹 쉬고 여전히 팔꿈치는 아프지만 근육운동도 하고 달리기도 계속 하는 것으로 하루키처럼 꾸준하게 해나갈 수 있는 정신의 근육과 심폐력을 키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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