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덥지 않은 여름, 보통 같았으면 화씨 100-110도의 낮 최고온도였을 날씨가 무더운 어제와 오늘 대충 90도 초입을 유지하고 있다. 아마 이틀간 뭔가 태양이 달아오른 듯, 내일부터 갑자기 79도로 뚝 떨어진다고 하니 지구온난화에 따른 이상기후는 이제 섬과 연안지방이나 극지방에 국한된 일이 아니다. 


다시 맥주를 끊어내고 칼로리를 낮추는 시작을 위해 어제는 와인을 마셨다. 여름에는 아무래도 시원한 맥주에 가벼운 안주가 적절하겠지만 와인도 화이트계열은 여름과 잘 맞는 편이다. 물론 내가 화이트보다는 레드계열을 선호하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지만.  잘 마신 건 좋았으나 역시 아침이 늦고 말았다. 그래도 일주일에 한번으로 정한 음주와 양으로 그리 힘들지는 않았지만 아침시간의 낭비는 주말엔 특히 더 아깝다. 쉬는 날은 길게, 일하는 날은 짧게 지나갔으면 하는 마음이라서.  어쨋든 먹은 건 바로 빼야하니 한창 더울 오후 2-3시엔 gym으로 가서 열심히 오늘의 근육운동을 끝내고 달리기를 할 예정이다. 심폐운동만 하는 날이 아니면 근육운동 후 30분 정도의 달리기면 딱 좋다고 하는데 30분을 하면 그 다음 30분을 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기 때문에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다면 한번의 운동에서 1000칼로리는 충분히 태울 수 있다. 


4년에 1000권 혹은 그 이상의 책을 읽는 것이 현재 진행중인 인생의 큰 목표들 중 하나다. 여기에 여행, 저술, 공부, 수양 같은 건 아직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일종의 버킷리스트. 4년/1000권을 잡은 이유는 40세부터 리셋해서 죽기 전에 10000권의 책을 읽어보고 싶기 때문이다. 먹고 사는 일에 걱정이 없다면 공부를 하면서 책을 읽고 운동을 하고 정신수양을 하면서 평화롭게 하와이에서 살 수 있을텐데, 그러면 아마 연 300권 정도는 거뜬히 읽어낼 수 있을텐데...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여름의 끝이기도 하고 방학이 대충 2-3주 후면 끝날 것이라서, 그리고 이 정도면 바닷가에서 놀기 딱 좋은 날씨라서, 길에도 차가 별로 없고 서점에도 생각보다는 사람이 적다. 아마 바닷가나 휴가를 떠나지 않은 사람들은 죄대 쇼핑몰에 쳐박혀 있을 것이다. 근래의 경기를 타고 7년전부터 엄청난 확장을 하고 지금은 거의 다섯 배로 커진 공간, 자본주의의 천박함이 모든 면에서 전시되는 곳.  정해진 엄청난 액수의 월세로, 부동산세금/공용공간유지/보험비용으로, 거기에 매출의 일정한 퍼센트로 상인들을 착취하는 곳, 대기업조차도 장사가 안되면 버틸 수 없다는 무시무시한 공간. 그곳에 발길을 끊은지 오래지만 - 사람이 많은 건 딱 질색이고 굳이 몰에 가지 않아도 좋은 상품을 저렴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은 널린 나라니까 - 이야기를 들어보면 봉건시대의 농노제가 떠오르는 구조적인 착취가 아닌가 싶다. 사실 현대의 상용부동산이란 것이 결국 현대판 농노제라고 보는 의견도 많이 있거니와 그 중에서도 으뜸가는 곳이 쇼핑몰이란 공간이다. 


아케치 고고로 시리즈. 새로운 작품도 아니고 아마 내가 가진 버전으로만 4-5권의 책이 있을 것이다. 에도가와 란포는 아무래도 초창기의 작가라서 그런지 뭔가 번안스럽고 뭔가 아마추어의 느낌이 강한 작품들이 다수 있는데 '엽기의 말로' 혹은 '엽기의 끝'으로 알려진 이 작품도 그런 범주에 속한다. 란포 또한 종종 이런 이유로 자신의 작품을 다시 쓰거나 중단했다가 다시 편집하고 수정하기도 했는데 이 작품은 그런 과정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구조적인 결함이나 작중인물들의 당위성이 많이 떨어진다.  현대의 작가가 준비해서 개작을 해도 좋을만큼 곳곳에 구멍이 있고 이걸 메우면 훨씬 더 나은 구성과 전개에서 결말까지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 많이 아쉽다.  마치 60년대와 70년대의 악당처럼 악당은 '왜'가 없이 그저 저지르고 포섭당하는 사람도 '왜'나 '어떻게'가 없이 그냥 포섭당하고 만다. 그런 면에서 보면 아케치 고고로는 긴다이치 고스케나 가미즈 교스케와 함께 3대 명탐정의 반열에 오르기엔 무리가 따르는 인물이다. 물론 그건 작품이 쓰인 시기와 발전상에 따른 차이라서 어쩔 수 없고 일본 최초의 탐정이란 상징성이 있으니 인정해야 하겠지만 이렇게 실수가 잦고 단서와 범인을 자주 놓치는 탐정은 아무래도 곤란하지 않을까. 


'열하광인' 아니면 '방각본 살인 사건'을 시작으로 구할 수 있는 김탁환작가의 글은 거의 다 찾아서 읽었다. 절판이 되어 미처 구하지 못한 책을 빼고는 그의 소설과 글모음도 모두 구해서 갖고 있을만큼 적절한 픽션과 역사를 그처럼 잘 버무려내는 건 대단한 일이다. 흥행여부를 떠나 영화로 만들어진 건 책의 멋진 부분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했다고 생각할만큼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능력이 탁월하다. 


과거를 회상하는 방법이 아닌 작중의 시절이 그대로 현재의 시점인 화자 이명방, 그리고 무척이나 매력적인 괴인이지 기인 김진이 무려 23년 동안 이어진 소설 - 대소설로 구분짓는 - 의 결말을 둘러싸고 벌이는 추리극이다. 장치도 훌륭하고 여인네들이 사건의 전면과 배경에 배치된 것도 시대상을 볼 때 무척 신선하다. 희망찬 정조의 시대 그 이면의 불안감 그리고 서학을 둘러싼 혼란함도 잘 그려낸 것 같다.  백탑파 시리즈의 넷플릭스급의 드라마화가 시급하다. 


'라드츠 제국'시리즈의 첫 권은 도둑맞았기 때문에 다시 구해야 하고 다시 구할 때까지는 그 생각이 나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 이야기는 거의 한 달을 두고 읽은 것 같은데 그만큼 자전거처럼 책을 읽으면서 할 수 있는 심폐운동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덕분에 첫 권처럼 이번의 책도 스토리의 기억이 중구난방이다. 어쨌든 우주 곳곳에 지난 천 년간 퍼진 군주의 객체들의 전쟁이 이어지고 있는 것 같고, 그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주인공과 주변인물들이 또 한 건을 해결한 것 같다. 정신을 넣었다 뺐다 할 수 있는 인간개체, 개인적인 나와 정신을 공유하는 다수의 나라는 개념은 이제 어느 정도 이해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쉽게 넘어가지는 않은 소설이다.  '아작'의 책도 모두 구해야하는데, 8월의 퍼포먼스가 좋으면 여러 차례에 나눠서 모두 사들일 생각을 하고 있다. 


'주석 달린 셜록 홈즈'는 품절된 것을 제외하고 우선 구하기 시작했고 조만간 교보를 통해서 모자란 걸 구할 생각이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전집은 8권인가 되는 걸 드디어 하나씩 구하기 시작했다. 요걸 다 구하면 그 다음엔 '아작'과 함께 도올선생의 책을 하나씩 구할 생각이고 여기에 잠시 멈춘 박종현선생의 헬라스 철학에 대한 책을 사들일 것이다. 박종현선생의 책을 모두 갖춘 후에는 아마 그간 사들인 천병희선생의 완역본을 하나씩 시작해보는 것도 괜찮겠다.  


여전히 하와이에서의 삶을 꿈꾸고 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당장 실행하지 못하고 있지만, 태평양기준시간에 맞춰 하와이에서 일을 하고 현지시간으로 오후 2-3시면 일을 마치고 남은 하루를 길게 책을 읽고 차를 마시면서 평화롭게 보내는 삶 말이다. 새벽 4시에 일어나서 가볍게 운동을 하고 6시면 일을 시작하고 오후 2시나 3시 (켈리포니아의 오후 5시나 6시)면 하루를 마치고 남은 긴 하루를 책을 읽고 기분에 따라서는 해변을 달리거나 요가를 하는 것도 좋겠다. 이제 금년의 생일이 지나면 43세가 되는 반생의 가운데서 이런 행복한 미래의 상상이라도 해야 버텨낼 수 있을 것 같다. 더 젊은 시절에 하와이를 만났더라면 아예 커리어의 시작을, 아니 사무실을 차릴 때 호놀루루로 갔을 것을. 늦게 만난 탓에 이렇게 가슴앓이만 이어지고 있다.  45세는 고작 2년이니 어려울 것인데 그래도 40대가 다 지나가기 전에는 하와이로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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