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에 시작한 하루에 50페이지 이상 읽기로 다시 도전하고 있는 '마의 산' 완독.  이번에 읽으면서는 일단 아무래도 일어판의 중역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어쨌든 오늘까지 240페이지까지 왔으니 더 읽어도 좋고 아니어도 좋다. 대략 10/15을 전후로 완독이 가능한 일정.  


이번 주간은 Jury Duty Summon을 받아서 대기상태로 매일 오전 11시와 오후 5시마다 일정을 보고 오라고 하면 오후나 다음 날 아침까지 법원에 가야 한다. 만약 뽑힌다면 꼼짝없이 배심원으로 재판에 참관하여 판결봉사(?)를 해야 하는데 자영업자에게는 무척 큰 부담이 된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눈 딱 감고 현재의 법체계와 시행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을 피력해서 스스로를 날려버릴 수도 없고 (만약 그랬다가는 판사에게 찍혀 최소한 교육이나 면허정지를 먹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아주머니들처럼 줄기차게 아이와 뭔가를 하기로 했다는 뻥을 시전할 수도 없고.  그저 내 순서가 오기 전에 모든 selection이 끝나기를 바랄 수 밖에.  오늘도 오전 11시에 확인해서 오후에 나오라고 하면 달려가야 한다.  


생각해보니 소송전문이 아니라서 일 때문에 법원에 간 건 몇 번이 안되고 거의 대부분 법원에 갔던건 모두 Jury Duty Summon때문이었던 것 같아 조금 우습다. 


어쨌든 '마의 산'은 매일 조금씩 읽고 나머지 독서시간에는 다른 책들을 읽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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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의 산', 아니 어쩌면 '토마스 만'이라는 작가 자체가 나에겐 애증이 공존하는 작품이고 작가이다. 사무실을 차리고 한창 벌어들이는 돈을 책에 투자하기 시작하던 시점에 구해서 열심히 읽다가 말고, 몇 년이 지나서 다시 읽다가 말고, 그렇게 세 번 정도를 읽다 말기를 반복한 작품이다. 조금 핑계를 대자면 내 생각으로는 '토마스 만'의 문체는 딱딱하고 길며 매우 high density에 전개도 무척 느리기 일쑤다. 다 읽어보고 말해야 하겠지만 지금까지 읽은 느낌으로는 그렇다. 


눈을 뜨고 언제부터였는지 기억할 수 없는 어린 시절에 한글을 떼고 내가 기억하는 한 내 주변엔 언제나 책이 있었으니 대충 독서인생 40년을 지나고 있다고 하겠다. 그간 안 읽었거나 못 읽은 책은 넘치지만 그 오랜 세월 책을 읽다가 포기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마의 산'을 넘지 못하면 토마스 만의 다른 작품들을 못 읽을 것 같고 ('요셉과 그의 형제들'에 관심을 갖고 있다), 언제까지나 찜찜한 맘이 가시지 않을 것 같아서 마침 다가온 가을의 쌀쌀한 주말의 저녁인 어제 '마의 산' 등정에 다시 도전하기로 맘을 먹었다.  


단, 이 책을 끌어안고 다른 건 안 읽으면 40년간 만 권을 읽고자 2017년부터 지켜온 연간 250권 이상의 독서계획에 차질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어 하루에 꾸준히 조금씩 읽기로 했다. 붙잡고 계속 읽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책의 양은 한정이 되어 있으므로 어렵고 긴 책은 그저 꾸준히 일정한 양을 읽는 것으로 충분히 일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침과 저녁은 매우 쌀쌀한 본격적인 가을의 날씨를 만끽하며 새벽에 미사를 다녀와서 운동을 하고, 아침 느즈막히 서점에 나가서 '마의 산' 둘째 날의 할당량을 읽고 (하루에 대략 50페이지, 이렇게 하면 대충 10월 중순까지는 독파가 가능하다) 금요일에 책을 한 권 사면서 받은 쿠폰으로 이 즈음이면 나오는 seasonal커피인 pumpkin spice latte를 한 잔 잘 마셨다. 칼로리 때문에 보통은 brew커피를 마시지만 (5칼로리 vs. 200-700칼로리) 이 계절엔 종종 높은 칼로리를 감수하고 PSL을 마신다. 


금년 5월부터 새로 구입해 사용하던 노트북이 수리중이라서 (순전히 S/W문제) 예전의 lenovo를 갖고 나갔는데 베터리가 금방 나가버려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이렇게 된장국을 끓이면서 글을 쓰고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남들이 이미 '개미'등 여럿을 읽고나서도 아마 최소한 십년을 지났을 즈음에 갑자기 빠져 읽기 시작했다. 내 기억으로는 '타나토노트'가 시작이었던 것 같은데 책을 깊이 읽은 탓인지 뭔지 처음으로 유체이탈을 경험한 것이 남는다.  누구나 갈 수는 있지만 어느 누구도 결코 다시 돌아와서 이야기해줄 수 없는 삶 이후의, 무엇에 대한 탐구를 이어가는 듯한 '죽음'은 왜 작가가 여전히 잘 팔리는 작가인지 알 수 있게 해준다. 우연히 죽은 화자가 영매의 도움을 받아서 자신이 죽은 이유를 찾아다니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활극처럼 재미있게 읽었고, 결론적으로 작가는 '윤회론'으로 현재 가닥을 잡은 것처럼 생각된다. 죽음과 영혼, 그리고 정신의 세계를 탐험하던 '타나토노트'에서 '천사들의 제국'으로, 거기서 다시 '신'으로 갔던 세계는 잠깐 '죽음'에서 좀더 미시적인 관점에서 건너간 다른 세상의 이야기를 그려내는 것이다. 여전이 비슷한 세계관이나 풀이가 다소 지겨운 면이 있어 '제 3의 인류' 시리즈를 읽다가 말았던 것 같은데 그간 나온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들을 찾아서 간극을 메워야 할 것 같다.















다섯 권으로 끝난 줄 알았던 작품이 네 권 더 있다는 걸 알게된 후 잠시 멈춰진 모험에 다시 몰입하는 날을 기다렸고, 중간에 멈추가 싫어서 네 권이 모두 갖춰진 후, 그리고 결말을 맺는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남은 이야기의 끝을 향해 달렸다. '하얀 늑대들'시리즈의 특이한 점이기도 하고 많이 알려진 점이지만 이 책의 주인공은 보통의 판타지와 많이 다르고, 전개 곳곳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갈등의 해결이나 봉합의 과정과 결말도 다른 부분이 많다. 그런 것들이 모여서 비록 다른 판타지의 모티브가 종종 생각남에도 불구하고 아류작으로 치부할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그 덕분에 상당한 감정이 이입된 멋진 주변인물들이 언젠가는 사라질 수도 있다는 걱정을 안고서 읽었다는 것. 결국 아주 커다란 사건, 세계 자체가 붕괴할 수도 있는, 그리고 이야기의 모든 것이 관련된 거대한 일의 마무리를 짓게 되지만 뭔가 더 이어질 이야기가 갑자기 매듭이 지어진 듯한 아쉬움은 어쩔 수가 없다.  검술실력도, 마법도, 어떻게 생각을 해도 천재적이라고는 볼 수 없는 주인공은 적어도 이 세계에서는 그리 흔하지 않다. 이름만 들어본 '하얀 로냐프 강'도 언제 이렇게 다시 나와주었으면 한다.


내 서재가 생긴 이래 처음으로 뭔가 이런 저런 말이 많이 오간 계기가 되었던 삼체 3부.  엄청난 거리와 공간, 시간을 달려온 대작의 마지막이 완성되었다. 누구에게든 자신있게 권할 수 있고 심지어 SF와는 거리가 먼 노옹에게도 intrigue를 선사할 수 있는 멋진 작품이다. 책을 읽는 즐거움을 조금이라도 빼앗기 싫어서 스토리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했다. 그전 이야기의 중심, 그러니까 main story만 달리느라 중간의 이런 저런 사건들에 대한 보다 더 세밀한 전개가 없었는데 이번에 BN에서 보니 '삼체'세계관의 팬픽 같은 작품이 Baoshu라는 작가에 의해 쓰인 걸 봤다. Ken Liu의 support를 받았다고 하니 조만간 구해볼 생각이다.  지금까지 읽어온 훌륭한 SF가 많이 있다.  이 책도 좀더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는 그런 classic의 반열에 오를 것으로 생각된다.  무려 불초생의 문제제기(?)에 힘입어(?) 극히 작은 부분이지만 수정이 된다고 하니 적절한 때 구하면 무리 없이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히틀러는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은 채 엄청난 구라와 뻥카로 1939년의 폴란드침공 이전까지의 세력확장을 했다는 건 생각보다는 덜 알려진 사실이다. 흔히들 말하는 히틀러의 전격전 (이건 사실 구데리안이 입안/계획/실행)이나 제대로 된 전쟁준비는 1939년까지도 적정수준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 역사의 정설이며 윌리엄 샤이러의 '베를린 일기'를 읽어봐도 그런 정황들이 많이 나온다. 어쨌든 히틀러는 당시 독일을 견제할 수 있었던 유일한 두 나라, 영국과 프랑스의 태만과 무능에 크게 힘입어 조금씩 주변의 영토를 먹어들어갔고, 이 소설은 그 일부였던 오스트리아의 병합을 둘러싼 최후의 순간을 재구성한 것이다.  미래에서 바라본 관점과 당시의 모습을 잘 섞었으며 종종 이렇듯 엉망인 다음 6년을 만들어낸 장본인들 중 상당수가 그리 나쁘지 않은 미래를 맞이했다는 걸 위트있게 비꼰다. '콩쿠르상'수상작은 로맹 가리를 읽으면서 알게된 (난 정말 무식하다) 프랑스의 권위있는 상으로써 띠지의 광고를 보고 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즐겁고 긴박하게 읽은 소설.


3부작의 두 번째. 인간은 이제 신으로 진화하는 단계인가. 빈부격차에 따른 진화의 차별성은 어떻게 할 것인가. 자아와 인성의 객체성과 신비성에 기반한 모든 가치관과 정치경제사회제도의 붕괴를 눈앞에 두었다고 할 수도 있는 지금, 다가올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요즘 갑자기 핫해진 미국민주당의 대선경선후보인 앤드류 양의 말처럼 많은 것들은 결과가 아닌 더 큰 일에서 비롯된 현상이자 과정인가. 읽는 내내 다가올 4-50년을 어떻게 살아야 그나마 숨이 붙어 있는 나날들을 그래도 보다 더 평온하게 보낼 수 있을지 고민을 했다. 불가역적이고 불변의 영역으로 생각하던 많은 것들이 조금씩 힘을 잃어갈 것이고 빠른 과학기술의 변화와 적용으로 앞으로도 계속 많은 직업들이 사라져갈 것이 분명한 다음 반세기를 살아남는 방법이 있을까. 때론 절망하면서 때론 담담하게 읽을 수 밖에 없었고 딱히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다 괜찮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기에 더더욱 희망적인 메시지를 받지는 못했다. 무척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책. 어떤 미래예측을 보면 그저 장밋빛으로 가득하지만 이 책은 절대 그런 책이 아니다. 다음의 세 번째를 곧 시작할 예정이다.


이곳의 오늘은 9/30. 오늘 중으로 한 권을 더 읽을 가능성은 적기 때문에 현재까지의 집계로 9월 중 25권을 읽었고, 2019년 현재 200권을 읽은 것으로 2017-2018-2019년 현재의 집계는 701권이다. 2020년의 끝에서 1000권까지 가는 것이 첫 4년의 목표라서 아직까지는 순조롭다.  집중력이 워낙 떨어지는 사람이라서 이렇게 수량으로라도 목표를 세울 필요가 있고 이를 달성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둘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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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10-01 09: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의산..
제가 언젠가 여기에서 마의산 이야기를 보고 나도 도전하겠다!! 해놓고서는 아직 도전도 못하고 있는 마의산.... 이네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
마의산은.. 뭘까요?

transient-guest 2019-10-01 09:17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정말 뭘까요. 영어번역을 보면 Magic Mountain이라고 되어 있는데 원문의 뜻이 궁금합니다. 이게 번역이 좀 이상해서 동서문화사 (일어판 중역일 듯)책을 다 읽으면 얼마전에 구입한 열린책들에서 나온걸 다시 볼 생각입니다. ㅎ
 

예전에 재미있게 본 EBS 문화사시리즈 "명동백작"을 통해 해방과 한국전쟁을 전후로 한 한국문화사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그때 처음으로 박인화시인, 김관식시인, 김수영시인, 카프에 대해 알게 되었고 등장인물들 중 기인처럼 보이는 공초 변영로선생에 대해 흥미를 갖게 되었다. 드라마에서 접한 선생은 유유자적하며 담배를 즐겨 태우고 약주를 즐기던 여유로운 모습으로 그려졌는데 늘 멋지다고 생각했었다. 


남은 책인 시집과 수필선집 정도인데 이번에 큰 마음을 먹고 지만지에서 나온 '변영로 수필선집'을 구했다.


아뿔사. 책을 펼치니 한문이 반이다.  

아버지의 강요로 억지로 천자문을 쓰기도 여러 번, 거기에 한문도 과목으로 배웠건만 알고 있는 한자는 아무리 모아봐도 20개나 될까? 알파벳은 기본적으로 대충은 알고, 영어도 읽고 스페인어도 읽을 수는 있고 한글도 알고 있어 지금까지는 잘 모르고 살았는데 글을 모르는 까막눈의 심정이 어떤 건지 알겠다.  이 책을 제대로 읽으려면 옥편이 있어야 하는데 옥편을 사용하는 방법도 모르고...


결국 고이 모셔둘 수 밖에 없겠다.
















PS. 방금 깨달은 실수. 내가 흥미를 가진 공초선생의 본명은 오상순. 위에 쓴 변영로선생은 두주불사의 수주선생으로 유명한 다른 분. 예전에 어떤 소설에서 술을 마시면 술이 깰까봐 차가운 곳에 나가지 않는다던 수주선생이 바로 변영로선생이다.  공초선생의 책을 구한다면서 이런 착각이 이어져 수주선생의 책을 구했다.  바보 같지만 조금 엉뚱하고 재밌다는 생각에 별도의 수정을 하지 않고 이렇게 첨언을 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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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9-09-24 15: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이버 한자사전 필기인식기 사용하시면 옥편 없이도 한자 보실 수 있어요!

transient-guest 2019-09-25 03:06   좋아요 0 | URL
그게 진짜 한문이 많아서 일일이 확인하면서 읽자니 하루에 한 패이지도 어려울 듯. 물론 언젠가는 도전해보겠습니다.ㅎㅎ
 

안녕하세요?


댓글로 주신 설명과 의견 잘 보았습니다.

공개로 글을 주셨기에 저도 공개로 답변을 드리고자 합니다.


일단 거친 표현과 다분히 인신공격적이고 신상모욕적인 표현을 사용한 부분에 대하여 사과드립니다.

그간 책을 읽으면서 종종 번역이나 편집에 대한 불만을 갖고 있었고, 이런 맥락에서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댓글을 보고 나서 역자 '허유영'이란 세 글자가 아닌 사람 '허유영'이 실체화되는 느낌이었고 다른 무엇보다 무척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후 제 글과 님의 댓글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 드리지만 개인에 대한 나쁜 표현은 하지 말았어야 하며 앞으로도 제가 조심할 부분이며 님께 사과가 필요한 행동이었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저도 책에 대한 글을 쓸 때 더 신중할 것입니다.  


책을 번역함에 있어서 단순한 직역이 아닌 저자와 원문의 의도를 훼손하지 않는 차원에서 적절히 직역과 의역을 병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아가서 단순히 언어를 옮기는 선을 넘어서 어쩌면 원작을 번역하는 과정에서의 단어사용과 문장구성 등 다양한 요소에 있어 역자만의 독특한 캐릭터가 책에 반영되기 때문에 역자는 단순한 언어번역을 넘어 창작자의 역할을 한다고도 알고 있습니다. 돌아가신 이윤기 작가님도 이에 대한 비슷한 말씀을 하신 걸로 기억하며 실제로 많은 소설가들이 종종 좋아하는 작품의 번역을 맡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 또한 단순한 직역은 특히 소설에서는 좋은 번역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________________

온종일 이어진 피비린내 나는 전투가 거의 막바지에 다다를 무렵 콘스탄티누스 11세가 벌 떼처럼 달려드는 오스만 군대를 보며 큰 소리로 외쳤다.
˝내 목을 베러 오는 기독교도가 한 놈도 없단 말이냐!˝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이 부분의 중국어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在一天的惨烈血战接近尾声时,君士坦丁十一世面对着蜂拥而来的奥斯曼军队,高喊一声:“难道就没有一个基督徒来砍下我的头吗?!”

______________________


말씀하신 것처럼 원전에서 류츠신의 원전이 그랬다면 저는 SF소설이라서가 아니라 류츠신의 실수가 아니었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봅니다.  SF에서 종종 과거의 역사를 비틀거나 차용하는 경우가 있고 삼체 3부에서처럼 사실에 몇 가지의 허구를 섞어 이야기를 펼치기도 합니다만, 이 경우에는 문맥이나 사실관계에서 볼 때 무척 이상합니다.  마치 칠천량전투에서 일본수군에게 박살이 나는 와중에서 원균이 적진에 뛰어들기 직전에  '내 목을 베러 오는 조선군졸이 한 놈도 없단 말이냐'처럼 억지스럽게 느껴집니다. (물론 원균은 그런 말을 한 적도 없고 적진에 뛰어들기는 커녕 도망가버렸지만).


궁금해서 조만간 켄 리우 작가에게 메일을 보내볼 생각입니다.  답변을 해줄지는 모르겠지만 제 생각으로 이 부분의 원문표현이 류츠신의 오류가 아니었다고 해도 너무 이상해서 켄 리우의 번역과정에서 역사적으로 전승되는 텍스트를 사용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서재는 제가 꾸준히 책을 읽고 이를 기억하기 위해 글을 올리는 공간이고 특별히 남에게 보여준다거나 남을 의식하지는 않으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종종 거친 표현이나 정확하지 않은 글을 올리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자만 이번에 님의 댓글을 보고 느낀 바가 있어 다른 건 몰라도 책에 대한 글을 씀에 있어서 '사람'에 대한 공격이나 비난을 하지 않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별로 중요한 글도 아니고 서재 또한 그러한데 일부러 오셔서 댓글로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차분한 님의 글을 보고 많이 부끄럽게 생각했습니다.  Thanks for being a bigger person here.


끝으로 저는 해외에 있어 책을 보시주시게 되면 책값보다도 배송비가 더 나올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수정본은 제안만 고맙게 받고 나중에 기회가 되면 제가 다시 구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익명성을 유지하는 공간이므로 제 이름은 쓰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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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9-09-24 13:0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뵙습니다. ㅎㅎ
삼체는 워낙 유명한 소설이라 저도 언젠가는 읽어야지 하고 있었는데... 오늘도 구입을 할까 말까 검색을 하다가 님의 글을 봤습니다. 삼체에 제가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비잔틴 제국의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의 최후가 등장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콘스탄티누스 11세의 저 대사는 맞는 말입니다. 부연 설명이 첨부되어야 하는데 그런 게 없으니 오해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리고 ‘놈‘은 ‘사람‘ 쯤으로 고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로마제국 쇠망사의 관련 부분을 옮겨봅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비잔티움 군은 점점 늘어만 가는 투르크 병사들에게 완전히 제압되었다. 이 무리들 속에서 황제는 총사령관과 한 명의 병사로서의 임무를 훌륭히 소화하면서 오랫동안 버텼지만 마침내 그의 모습도 사라졌다. 그의 옆에서 함께 싸우던 귀족들은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팔라이올로구스와 칸타쿠제누스라는 명예로운 이름을 지켜주기 위해 분투했다. 황제의 서글픈 외침이 들렸다. “누구 내 목을 쳐 줄 그리스도교인 없소이까?” 황제의 마지막 두려움은 이교도의 손에 자신의 목숨을 맡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절망 속에서도 콘스탄티누스는 현명함을 잃지 않은 채 자의를 벗어 던졌다. 이런 아수라장 속에서 그는 한 무명 병사에게 붙잡혀 목숨을 잃었고 다른 수많은 전사자들 속에 파묻혔다 (민음사판 로마제국쇠망사 6권 p514)

transient-guest 2019-09-25 03:30   좋아요 1 | URL
안녕하시죠? 삼체는 구입해서 보고 퍼뜨릴 가치가 충분한 멋진 소설입니다.
알려주신 덕분에 저도 간만에 덕질을 해보게 되었네요. 일단 저는 로마제국쇠망사를 찾아본건 아니라서 먼저 이를 찾았고 (1)대광서림의 일어중역판, (2)민음사의 최근판 (님과 같은 아마도), 그리고 (3)영문판까지 찾았는데 로마제국쇠망사를 근거로 하면 말씀대로 류츠신의 원전과 허유영역자의 번역이 그대로 맞습니다. 즉 류츠신이 틀린 건 아니겠습니다.

제가 근거로 했던 건 온라인에서 찾은 것으로 나중에 술판 메메드 밑에서 쓰인 Michael Critobulus라는 사람의 account로 ˝The City is fallen and I am still alive˝라는 말이고 Philip Sherrad라는 사람이 Constantinople: iconography of sacred city˝란 책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참고하시라고 위키 올립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Constantine_XI_Palaiologos#cite_note-26
https://en.wikipedia.org/wiki/Michael_Critobulus

1410-1470사이의 사람으로 추정되며 이 account가 신빙성이 있다면 기번보다 훨씬 앞섰고 황제와 동시대의 사람이라는 점, 특히 1453년의 함락 당시 살아있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다른 곳에서도 인용한 런치만의 책의 주요 source로 사용된 듯 합니다.

줄리어스 노리치의 ‘비잔피움 연대기‘에서는 기번의 학설을 따라 비슷한 최후로 기록됐습니다.

결론적으로 사료에 따른 기록은 정교회측, 서유럽, 아랍권 등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 같고, 기록 및 이를 취사선택하는 후대의 사서편찬과정에서의 차이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일단 번역오류가 아닌 선택의 문제였고 류츠신의 원전 및 한국어번역은 기번을 따랐다고 보며 켄 리우의 영문번역에서는 이를 대신하여 다른 기록을 따라 의역했다고 생각됩니다. 즉 번역오류이슈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제가 제기했던 문제나 표현방식 등 신중하지 못했던 점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덕질했네요.ㅎㅎ

whalien 2019-09-24 18: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삼체 3부 역자 허유영입니다.
글 올려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제게도 더 겸손하고 신중한 자세로 번역하도록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transient-guest 2019-09-25 03:07   좋아요 1 | URL
역자님.
다시 말씀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쓴 글은 지워야 마땅하나 저의 잘못을 상기하고 실수를 지워버리지 않는 의미에서 그냥 두겠습니다. 계속 꾸준한 활동 부탁 드리겠습니다.

whalien 2019-09-25 06: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콘스탄티누스의 최후까지 새로 알게 되어 감사합니다.
송구한 부탁이지만, 기존 글의 말미에 후속 상황이 있음을 설명하는 짧은 한 줄을 추가해주실 수 있을까요?
모바일에서는 제 댓글이 접힌 상태로 노출돼서 댓글을 미처 읽지 못하고 지나치는 독자들이 오해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오역에 대한 지적과 질책은 역자인 제가 마땅히 받아야 하지만, 삼체 3부의 번역 전반에 대한 독자들의 불신이 훌륭한 작품과 류츠신 작가에게 애꿎은 피해를 주지 않을지, 그 걱정이 제일 큽니다.
송구하지만 부탁드립니다.

transient-guest 2019-09-25 07:22   좋아요 2 | URL
제가 생각하는 대로 수정해서 업데이트임을 알리고 개별적인 설명을 bold로 더했습니다. 혹지라도 미진하여 걱정하시는 부분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whalien 2019-09-25 07:35   좋아요 2 | URL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transient-guest 2019-09-25 07:37   좋아요 2 | URL
한번도 역자나 저자와 직접 소통해본 경험이 없습니다. 비록 제 실수로 안좋은 일이 계기가 됐지만 그간의 책덕후생활에서 여러 모로 잊지 못할 경험이 되었네요.
 

9/24 현재: 그간 역자와 나눈 말씀과 다른 분들의 확인 및 다시 찾아본 부분 등 여러 모로 수정할 부분이 있어 조금 더 글을 남기게 되었다.  다만 있는 건 그대로 두고 댓글처럼 몇 가지 설명하고자 한다.  내 거친 표현이나 여러 모로 문제가 있는 것들에 대한 부연설명은 다른 글에 썼으니 책과 번역에 관한 내 오해와 사실관계만 따로 적는다.


"유감"은 좀 거창한 표현이지만 달리 말할 길이 없다. 많은 팬들이 무척 오래 기다려온 3부의 출간, 거기게 쌓인 기대만큼 훌륭한 이야기였지만 첫 단원부터 최소한 두 건의 번역 혹은 편집의 오류를 발견하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내가 중국어를 하는 것이 아니라서 켄 리우가 번역한 영문판과 대조를 했지만 그런 대조가 없었더라도 번역자나 편집자에게 최소한의 세계사 상식이 있었다면 아니, 문맥을 따져봤다면 바로 잡았을 오류였다.  또 한 부분의 경우 영문판과 국문판의 번역이 각각 직역인지 의역인지에 따라 조금 다르게 평가할 수 있지만 분명히 문제는 있어 보이는 부분이다. 이후로는 소설의 재미에 빠져 읽느라, 그리고 워낙 생소한 개념들이 많았던 관계로 특별히 따져볼 수 없었기 때문에 뭔가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중간 중간 조금 이상한 부분들은 있었던 것 같다. 읽는 재미를 덜어낼 정도로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았으니 이들은 패쓰.  하지만 지금부터 길게 늘어놓을 이야기는 실수보다도 그걸 잡아내지 못했다는 점에서의 태만이 아쉬운 것이다.  


누가 더 중국어 번역을 잘 했는지 따져보긴 어렵지만 켄 리우의 실력과 위치에 점수는 더 주고자 한다. 중국계 미국인이고 소설을 쓰는 사람이고 매우 높게 평가 받는 SF작가이다.


Page 21. bold표기를 주의하자.

콘스탄티노픙른 절체절명의 위기에 내몰려 있었지만 아직 절망하기는 일렀다...오스만제국의 진지에서도 전쟁에 대한 회의감과 염증이 확산되고 있었다.  여러 장군들이 비잔틴제국에서 내놓은 최후 조건을 받아들이고 철군하자고 주장했다오스만제국의 패퇴가 아직 현실이 되지 못한 것은 오로지 그 믿음??? 때문이었다.  -> 벌써 뭔가 어색하다. 그러니까 오스만제국의 사기도 낮은데 버티는 건 믿음 때문이라는데 앞뒤 없이 무슨 믿믕?


콘스탄티누스는(!!!) 라틴어에 능통하고 박학다식하며 예술과 과학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었다. 자신이 순조롭게 왕위를 물려받을 것임을 알면서도 단지 후환을 없애기 위해 친아우를 욕조에 빠뜨려 익사시킨 사람이었다. -> 콘스탄티누스는 친아우를 욕조에 빠뜨려 익사시킨 적이 없다. 동로마제국의 황제가 라틴어에 능통한 건 자랑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고.  콘스탄티누는 유능한 행정가이나 군인이었고 성실했다고 하는데 (1453 콘스탄티노플 최후의 날, 스티븐 런치만) '박학다식'하고 '예술과 과학'에 조예가 깊었는지는 모르겠다.


같은 부분의 영문번역이다.

Constantinople was in desperate straits, but not all hope was lost...Morale was low among the Ottoman camps. Most commanders secretly wanted to accept the truce terms offered by the Byzantine court and retreat. (강화조건을 '최후 조건'으로, 내심 받아들이길 원했다고 봐야 할 부분을 '주장'했다고 번역했다. 사소한 부분이고 의역으로 봐줄 수도 있지만 느낌은 완전히 다르다).  The only reason the Ottoman had not yet retreated was because of a single man. ('오로지 그 믿음'이란 번역은 어떻게 봐도 말이 안된다. '오로지 한 사람 때문이었다'로 번역했어야 하는데 다음 부분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He was fluent in Latin, knowledgeable about the arts and sciences, skilled in warfare; he had not hesitated to drown his brother in a bathtub to secure his own path to the throne...('오로지 한 사람'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는' 라틴어에 능통하고 예술과 과학에 밝았으며 병법에도 조예가 깊은 사람이었다 정도가 낫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순조로운 왕위계승과 무관하게 동생을 죽인 것이 아니라 '왕위계승권을 지키기 위해 동생을 욕조에서 익사시키는 걸 주저하지 않은 것이다) -> 아랍제국의 군주인 메메드 2세는 실제로 그렇게 알려져있고 그가 '라틴어'에 능통한 건 '당연한'일이 아니라서 worth mentioning한 부분이다. 


*결론적으로 번역자는 비잔틴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콘스탄티누스 11세와 비잔틴을 침공한 오토만제국의 메메드 2세를 섞어 놓은 것인데 멀쩡하게 비잔티움의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황제들을 혼용해버리는 것이다.  역사에 무지하고 기본적인 상식도 부족하고 보이고, 부주의하고 문장의 흐름에도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편집자는 마지노선에서 이런 것들을 잡아냈어야 하는 마지막 사람인데 역시 같은 의미로 무능했다.  다음 문장을 보면 이런 무지가 확연하다.


9/24--> 이 부분에서 유일한 오류라면 '그 사람 또는 그'로 번역되었어야 할 부분이 메메드2세가 아닌 콘스탄티누스로 표기된 것이다. 역자께서 인정하신 부분이다. 다른 부분은 결론적으로 번역과정에서 직역/의역의 표현/결정에 따른 차이였을 뿐이다.   



page 31. 

온종일 이어진 피비린내 나는 전투가 거의 막바지에 다다를 무렵 콘스탄티누스 11세가 벌 떼처럼 달려드는 오스만 군대를 보며 큰 소리로 외쳤다.

"내 목을 베러 오는 기독교도가 한 놈도 없단 말이냐!" ??????? 기독교왕국의 왕이 이슬람제국의 군대에 에워싸여 자기의 목을 베러 오는 '기독교도가' 없냐고 외칠 이유는 없다.  차라리 '이슬람교도가 한 놈도 없단 말이냐'라고 했으면 많이 봐줘서 의역이라고 하겠다만...영문을 보자.


As the bloody slaughter of the day was coming to its inevitable end, Constantine, faced with the swarming Ottoman masses, shouted, "The city is fallen and I am still alive." -> 눈깔이 해태인지 문맥은 개가 먹었는지...영문이 의역인지 직역인지 내가 확인할 길은 없다만 기독교제국의 마지막 황제가 마지막 전투에서 기독교도가 자기 목을 베러 오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보단 훨씬 더 자연스럽다.  1분의 검색을 통해 그 말은 실제로 그가 최후로 남긴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성은 함락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살아있구나"는역사적으로 전승되는 동로마제국 마지막 황제의 말이다.  


*켄 리우의 번역은 원전을 충실하게 번역했을 뿐만 아니라 가급적 의역보다는 직역에 가까운, 즉 원문을 최대한 지키고 존중하는 차원에서 이뤄졌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에 반해 한국외대 중국어전공 및 통번역석사출신의 번역자는 적어도 이 부분들의 번역에 있어서는 원문을 훼손했고, 부정확했고, 맥락도 엉망인 번역을 했을 뿐이라서 다른 부분들의 경우도 많이 의심스럽다.  


발번역을 한 두번 보는 것도 아니고 삼체 3부가 나와준것만 해도 고맙지만, 그래도 번역도 너무 아쉽고 편집은 말할 것도 없다.  책값 17500에서 얼마나 편집과 번역에게 배분되는지 모르지만 이건 좀 아니다.


9/24-->전승되는 콘스탄티누스황제가 남겼다는 최후의 말은 두 번전인 것 같다. 류츠신의 원전에서는 그대로 '내 목을 베로 오는 기독교도가 한 놈도 없단 말이냐' 정도가 사용됐고 한국어판은 이를 그대로 번역했다.  오류로 제기했고 역자께서도 일부 인정하신 부분인데 붉은 돼지님의 지적에 따라 추가조사한 결과 이는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쇠망사의 기록이다.  '비잔티움 연대기'에서도 그대로 차용됐다. 켄 리우의 번역은 이 대신 좀더 오래된 기록을 가져온 것으로 추정되는 다른 책/저자의 글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동시대인의 기록으로 보이는 원전에 의거하면 황제가 남긴 마지막 말은 '성은 (혹은 도시는) 함락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살아있구나, 또는 도시는 함락되었어도 나는 여전히 살아있다' 정도로 번역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번역오류가 아니었고 역사적인 사실의 오류도 아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역자께 드리는 사과의 글에서도 말했거니와, 이번 건에서 보인 내 경솔하고 막된 표현이 더 큰 문제였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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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lien 2019-09-21 18: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삼체 3부의 역자 허유영입니다.
기대하신 책인데 실망시켜드려 우선 죄송합니다.
역자로서 사과드려야 마땅하고, 또 오해하고 계신 부분도 있어서 설명 드리려고 합니다.

˝오스만제국의 패퇴가 아직 현실이 되지 못한 것은 오로지 그 믿음 때문이었다. 콘스탄티누스는...˝
이 부분에서 ‘그 믿음‘과 ‘콘스탄티누스‘는 지적해주신 대로 명백한 오역입니다.
편집 과정에서 소통 착오로 인해 오역인 채로 인쇄되었습니다. 자세한 사정을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결과적으로 역자인 제 책임입니다. 1쇄 출간 직후에 발견해서 2쇄 인쇄 때 바로잡았습니다. 죄송합니다.

그 외에 지적하신 부분은 오해가 있어 이해를 돕고자 설명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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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장군들이 비잔틴제국에서 내놓은 최후 조건을 받아들이고 철군하자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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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의 중국어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大部分将领都主张答应拜占庭帝国提出的最后条件而撒兵。˝

중국어 문장을 그대로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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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종일 이어진 피비린내 나는 전투가 거의 막바지에 다다를 무렵 콘스탄티누스 11세가 벌 떼처럼 달려드는 오스만 군대를 보며 큰 소리로 외쳤다.
˝내 목을 베러 오는 기독교도가 한 놈도 없단 말이냐!˝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이 부분의 중국어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在一天的惨烈血战接近尾声时,君士坦丁十一世面对着蜂拥而来的奥斯曼军队,高喊一声:“难道就没有一个基督徒来砍下我的头吗?!”

˝내 목을 베러 오는 기독교도가 한 놈도 없단 말이냐!˝
이 문장은 “难道就没有一个基督徒来砍下我的头吗?!”라는 중국어 원문을 그대로 번역한 것입니다.
류츠신이 어째서 역사적 사실과 다른 말을 써넣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사실을 기록한 역사서가 아니라 허구를 가미한 소설이기에 제 임의로 원문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번역했습니다. 저는 이 말을 비잔틴제국을 지키지 못한 죄인인 자신을 기독교도들 스스로 처단해주길 바랐다는 뜻으로 이해했습니다. 켄 리우는 역사적 사실대로 바꾸는 쪽을 택한 것 같습니다.

지적해주신 부분 외에 다른 부분도 영문판을 기준으로 한국어판의 오역을 판단한다면 수많은 오역을 발견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영문판과 중문판이 100퍼센트 일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원문과 완벽하게 일치하도록 직역한다면 역자는 그저 성능 좋은 번역기에 불과할 것입니다. 원문의 의미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도착어를 모국어로 하는 독자들이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번역하는 것이 역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영문 번역판과 한국어 번역판을 비교해 번역서의 전체적인 분위기나 가독성의 우열을 논할 수는 있겠지만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의 오역을 판정하는 건 무리가 있습니다. 물론 중국어 원문을 명백히 잘못 번역했다면 변명의 여지없는 오역이겠지만요. 오역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지만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따끔한 지적 뼈아프게 받아들이고 더 신중하게 번역하겠습니다.
댓글로 연락처 알려주시면 오역이 수정된 2쇄를 보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