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타 문명을 일으킨 미노스

스킬라, 다이달로스, 이카로스, 테세우스, 아리아드네, 탈로스, 황소 숭배...

 

1

크레타(Creta)는 그리스 남쪽 에메랄드 빛 푸른 바다, 동부 지중해에 둘러싸여 있는 섬이다. 얼핏 날아가는 새 모양처럼 길고 폭이 좁게 생겼다. 이 섬의 원주민은 미노아 인(Minoans)’이라고 불리었다. 미노아 사람들은 황소를 신성한 동물로 숭배하였다. 고고학자들이 오랜 노력 끝에 발굴한 크레타 유적 곳곳에 그 흔적이 여럿 남아 있는데, 그중에는 미노아 인들이 황소 뛰어넘기같은 일종의 운동경기를 했던 자취도 많이 있다.

상상해 보자. 긴장한 빛이 역력한 한 소년이 맨손으로 경기장 안에 있고, 건너편에는 성난 황소 한 마리가 앞발로 거칠게 땅을 긁어대고 있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구경꾼들의 함성으로 분위기는 절정을 향해 치닫고, 황소는 당장이라도 튕기듯 돌진해 올 것만 같다. 곧 거친 쇳소리와 함께 황소 앞을 가로막았던 청동 울타리가 올려지면, 소년은 맹렬하게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황소를 뛰어넘어야 한다. 성공하면 우레와 같은 큰 갈채를 받겠지만, 만약 실패라도 한다면 소년은 죽은 목숨이나 진배없다. , 어떤가? 독자라면 자신 있겠는가?

황소 뛰어넘기는 신을 경배하는 축제의 가장 중요한 행사 중 하나였다. 미노아 인들은 올림포스의 절대자들이 그 경기를 좋아한다고 생각했고, 경기가 끝나면 황소를 제물 삼아 신에게 감사의 의미를 담은 제사를 올렸다.

한편으로 황소 뛰어넘기 경기는, 소년에서 전사가 되었음을 인증하는 일종의 통과의례이면서, 재능이 뛰어난 소년을 전문적인 선수로 발탁하기 위한 오디션 역할을 한 것으로도 보인다. 발탁된 소년은 마치 지금의 프로스포츠 선수처럼 육성되어 민중들로부터 많은 인기를 누렸을 것이다.

크레타는 비록 농업국이었지만 미노아 사람들은 배를 만드는 기술로도 유명했다.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크레타 해상에는 흉포한 해적들의 출몰이 잦았다. 당시까지만 해도 바다를 지배하는 특출난 민족이 없었기 때문에 해상은 해적들의 앞마당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미노아 왕은, 지중해를 확보해야 다른 나라와 교역할 수 있었으므로 어떻게든 해적을 소탕해야만 했다. 미노아 인들에겐 튼튼한 전함을 만들 능력이 있었고, 왕은 의지가 있었으니 꾸물거릴 필요가 없었다. ‘미노스(Minos)’ 왕은 크고 작은 다양한 종류의 전선을 축조하고, 동시에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여 막강한 해군을 길러냈다. 그렇게 해서 그는 지중해 일대를 지배한 최초의 해양 왕이 될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바다에서의 패권은 육지에까지 미쳐 크레타는 당시 가장 강력한 국가로서 주변국을 호령하기에 이르렀다.

미노아라는 명칭도 바로 이 미노스 왕의 이름을 딴 것이다. 자 그럼, ‘크레타(미노아) 문명의 시작을 연 미노스 왕을 쫓아 신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2

수소의 몸을 한 제우스(Zeus)’와 눈망울이 큰 소녀 에우로페(Europe)’가 크레타에 발을 디디자, 어두웠던 섬이 환하게 밝아지면서 형형색색 아름다운 꽃들이 만개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그녀는 자신이 타고 온 수소가 여느 황소가 아님을 알았다. 그런 생각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수소는 건장한 사람의 모습으로 바뀌었고, 그 둘은 서로 사랑을 나누었다. 이러한 사랑의 결실로, 당대를 넘어 후대까지 많은 그리스인으로부터 숭배를 받은 미노스 왕과, 공정하고 정직했던 라다만티스, 그리고 막내 사르페돈이 태어났다. 제우스는 에우로페와의 사랑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때 자신이 변신했었던 아름다운 수소를 밤하늘의 별자리로 만들었는데 이것이 지금의 황소자리이다.

그렇다, 크레타 문명의 아버지 미노스는 위대한 신 제우스의 아들이었다. 하지만 이 가족관계를 대외적으로 유지하기가 곤란했는지 어머니 에우로페는 당시 크레타의 지도자 아스테리오스(Asterios)’와 정식으로 결혼하였고, 마침 아스테리오스 왕에게는 자식이 없었으므로 삼 형제 중 장남인 미노스가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그 과정이 뭐 그렇게 썩 질서 있고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었다.

에우로페의 두 아들 미노스와 라다만티스 형제는 어릴 때부터 티격태격 다툼이 잦았다. 막내 사르페돈은 두 형제와 나이 차이도 제법 있었거니와 유약하여 이 다툼에 끼어들지 않았다. 미노스와 라다만티스는 사소한 일부터 중요한 사안까지 거의 의견이 일치한 적이 없었고, 사사건건 서로 반목하고 헐뜯었다.

그러던 중 둘이 아주 크게 싸운 적이 있었다. 사춘기에 접어들던 그들이 동시에 한 소년에게 마음을 두게 된 것이다. 때는 왕위계승권을 둘러싸고 크레타 왕국이 형과 동생, 두 진영으로 나누어져 한창 물밑 암투가 진행되고 있을 때였다. 처음에 아스테리오스 왕은 형제 중 가장 정직했던 라다만티스를 후계자로 마음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엔 형을 지지하는 세력이 판세를 뒤집었고, 미노스는 연적이자 정적인 동생 라다만티스를 크레타에서 추방하였다. 그 후 동생은 다시는 크레타섬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고, 그리스 보이오티아 땅으로 피신했다가 그 삶을 다하자, 지하 세계에서 죽은 자들의 영혼을 심판하는 재판관으로 임명되었다.

이때부터 미노스는 의붓아버지 아스테리오스 왕을 계승하여 크레타 왕국을 통치했다. 그러나 미노스 왕의 진짜 정적은 다름 아닌 어머니 에우로페였다. 에우로페는 그 옛날 수소의 등에 업혀 크레타섬으로 넘어올 때의 그 순진한 처녀가 아니었다. 그녀는 지혜롭고 자존심이 강했으며 어떤 어려운 문제라도 스스로 극복하는 것에 낯설지 않은 강인한 여성이었다.

에우로페는 옳지 않은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하면서, 나랏일에 자주 간섭하여 감 놓아라, 배 놓아라참견을 일삼았다. 일종의 강력한 정치적 견제세력으로 그 역할에 충실했던 것인데, 그럼에도 미노스 왕은 어머니와의 정면충돌은 가능하면 피하려고 노력했다. 충돌은 고사하고 더 나아가 미노스 왕은 억지로라도 그녀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니 에우로페에게는 아버지 제우스가 사랑의 선물로 주었던 세 가지 무시무시한 선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 가지 선물 중, 첫 번째는 절대 목표를 빗나가는 일이 없는 창이었다. 두 번째는 아주 빠르고 날쌔면서도 성질이 사납고 고약한 사냥개였다. 그리고 마지막 선물이 아주 유용하면서도 신기한 것이었는데, 거대한 청동 인간 탈로스(Talos)’가 바로 세 번째 선물이었다. 청동 인간이라니? 그렇다면 최초의 만들어진 인간’, 최초의 안드로이드인 셈이다.

사실 청동 인간은 제우스가 절름발이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Hephaistos)’에게 명하여 세상에 나오게 된 성물이었다. 이 청동 로봇의 몸속에는 목부터 발목까지 이어지는 하나의 관이 있었는데, 이것이 사람의 혈관 노릇을 했다. 이 혈관을 통하여 신의 피 이코르가 흐르는데, 탈로스의 발뒤꿈치에 박힌 못을 뽑아내면 그 구멍으로 이코르가 흘러나와 작동을 멈추게 된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그 못을 뺄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곳에 접근하는 것이 사실상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탈로스는 하루에도 대여섯 번씩 크레타의 도시 외곽과 해변을 순찰하면서 해안에 정박하려는 침략자들의 배를 물리치곤 했다. 크레타 왕국의 입장에서는 이만한 수호신도 없었다. 한번은 사르데냐 사람들이 크레타섬에 침입하여 불을 지르며 난동을 부린 적이 있었다. 그때 청동 인간 탈로스가 불 속으로 뛰어들어 제 몸을 벌겋게 달군 뒤, 적들을 하나씩 끌어안아 모두 태워 죽였는데, 미노스는 이때의 광경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청동 로봇이 어머니 에우로페의 소유였으니 미노스로서는 어찌 어머니에게 대놓고 거역할 수 있었겠는가. 게다가 어차피 어머니 소유의 모든 것이 크레타의 자산이므로 결국은 자기 것이 될 텐데 무리수를 둘 이유도 없었다.

그렇게 두 모자간의 긴장 관계가 유지되는 중에도 크레타 왕국은 나날이 번성하고 있었다. 제우스는 미노스에게 나라를 잘 통치할 수 있도록 공정한 법률을 내려주었다. 크레타 시민들도 자신들의 왕이 제우스 아들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몹시 자랑스러워했으므로 미노스가 제시한 법률도 아주 공정한 것으로 생각하여 믿고 따랐다.

태양신 헬리오스(Helios)’는 크레타섬에 따스한 햇볕을 내려 열매와 농작물이 잘 자랄 수 있도록 해주었다. 거기에 더해 헬리오스는 자기의 딸이 미노스의 아내가 되는 것까지 흔쾌히 허락하였다. 당시 태양 숭배라는 것이 지중해 주변국에서 그리 흔한 일이 아니었음에도 미노스가 태양신에게 해마다 고개 숙여 감사를 드리고, 푸짐하게 제삿밥을 올린 것을 어여삐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미노스는 태양신 헬리오스의 딸 파시파에(Pasiphae)’를 아내로 맞이하여 아들 글라우코스안드로게오스’, 아리아드네(Ariadne)’파이드라(Phaedra)’를 낳았다. 올림포스의 최고 존엄인 제우스와 태양신 헬리오스의 축복까지 받았으니 미노스 왕과 그 자손들은 과연 평탄한 꽃길만 걸었을까?

 

3

신화는 그렇게 밋밋하지 않다. 그리스 신화에서 그 존재가 미약하여 자주 거론되지 않는 두 아들 이야기부터 간단하게 짚고 넘어가겠다.

미노스와 파시파에의 첫째 아들 글라우코스가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어느 평범한 날 오후 어린 왕자는, 누가 가져다 놓았는지 궁전 한 모퉁이에 있는 꿀단지를 발견했다. 본능에 따라 손을 담가 꿀맛을 본 어린아이는 그 달짝지근함에 반해 꿀단지 더 깊은 곳으로 손을 내밀다가 그만 단지 속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세 살 남짓한 아이가 혼자 힘으로 빠져나오기가 어려울 만큼 단지가 컸던 것일까, 아니면 그 달콤한 유혹을 적정선에서 뿌리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을까, 어린 왕자는 그 달콤함 속에서 죽고 말았다.

미노스 왕은 금이야 옥이야 키운 아들이 오랫동안 보이지 않자 왕자를 찾기 위해 대대적인 수색을 벌였지만, 도무지 찾을 길이 없었다.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결국, 미노스 왕은 델포이 신탁에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미노스 왕은 신탁이 일러준 대로 점술에 능한 아르고스의 예언자 폴리에이도스(Polyeidos)’에게 사라진 왕자를 찾아줄 것을 의뢰했다. 아니, 명령에 가깝다고 해야겠다.

엉겁결에 왕가에 고용된 사설탐정이 된 폴리에이도스는 홀로 조용한 창고에 들어가 추리를 시작했다. 해결하지 못하면 뜻하지 않게 황천길에 들어설 수도 있는 문제여서 골똘히 집중했을 것이다. 그러나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고,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도 유분수지, 아무런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현장에 답이 있는 법, 생각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었다. 폴리에이도스는 왕자의 요람이 있는 침실부터 뛰놀던 궁전 안팎 여기저기를 다니며 작은 실마리를 찾으려고 동분서주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올빼미 한 마리가 궁중으로 날아드는 것을 보았다. 이상한 생각이 든 그는 올빼미가 내려앉은 곳을 향해 잰걸음으로 달려갔다. 과연 그곳에 꿀단지가 있었고, 폴리에이도스는 그 안에서 이미 심장이 멈춘 왕자를 발견하였다. 왕자가 사라진 지 여러 날이 지났건만, 꿀 덕분이었는지 시신은 거의 부패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었다.

폴리에이도스는 왕자를 찾아내는 것까지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나, 이미 숨을 거둔 왕자의 생명을 되살릴 수는 없음을 미노스 왕 앞에 고백했다. 그러나 잡을 지푸라기가 없었던 미노스 왕은 막무가내였다.

아니다. 그대가 왕자를 찾았으니 아이의 생명도 되찾을 수 있을 것이 분명하다. 반드시 왕자를 살려내 짐을 기쁘게 하라.”

이렇게 해서 폴리에이도스는 싸늘하게 식은 왕자의 주검과 함께 정식 장례 전 시신을 보관하는 장소에 감금되었다. 그런데 감금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뱀 한 마리가 -소리를 내며 기어 나와 죽은 왕자의 몸으로 다가갔다. 폴리에이도스는 그 뱀을 가차 없이 밟아 죽였다. 왕자의 시신까지 훼손된다면 자신은 정말 살아남을 수 없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어디서 왔는지 다른 뱀이 죽은 뱀 위에 어떤 잎 넓은 풀을 가져다 놓자 그 뱀이 다시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폴리에이도스는 죽은 글라우코스를 똑같은 풀로 회생시켰다. 하지만 그 후로 이 왕자가 어떻게 됐다는 것인지, 더 있을 법도 한데 글라우코스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신화에서 좀 더 비중 있는 역할을 한 것은 다른 아들 안드로게오스였다. 안드로게오스가 열다섯 살이 되었을 때, 미노스 왕은 세상을 경험하게 하고자 아들에게 정성스럽게 작성한 추천장을 들려 아테네 왕 아이게우스(Aegeus)’에게 보냈다.

그런데,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식이 크레타의 궁전에 전해졌다. 아테네에 잘 있어야 할 아들 안드로게오스가 사망했다는 것이다. 아이게우스 왕이 사냥을 하러 나갈 때 안드로게오스를 데려갔는데 그 사냥에서 사자에게 물려 죽었다는 말도 들리고, 아테네에서 열린 운동경기 대회에서 안드로게오스가 아테네 사람을 제치고 우승하자, 이걸 시기하여 아테네 왕이 아들을 죽여버렸다는 소문도 들렸다. 마라톤 평원에서 미쳐 날뛰던 황소를 잡으러 나갔다가 미친 황소의 뿔에 치여 죽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연유가 무엇인지 간에 죽은 것만은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아들의 죽음에 몸에 있는 모든 털이 곤두설 정도로 격분한 미노스 왕은 크레타섬에 있는 병력을 모두 끌어모아 아테네를 향해 총공격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몸소 최정예 함대를 이끌고 아테네 땅으로 가서 아직 약소국이었던 아테네를 인정사정없이 마구 짓밟았다.

당시 아테네는 설상가상으로 역병까지 돌아 많은 시민이 죽거나 기력을 잃어 제대로 된 응전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결국, 아테네 왕은 델포이 신탁의 뜻대로 미노스 왕이 요구하는 모든 요구를 조건 없이 수락한다는 아주 굴욕적인 협정을 맺고 항복했다. 변명의 여지 없는 완벽한 패배였다.

이어지는 미노스 왕과 아테네 이야기는 자세히 후술하기로 하고, 크레타로 돌아오는 귀향길에 있었던 또 다른 싸움에 흥미로운 대목이 있으니 살펴보자.

 

4

아테네 땅에 한껏 분풀이하고 돌아오는 길에, 미노스 왕에게는 꼭 손을 봐야 할 나라가 또 있었다. 다른 주변국과 달리 사사건건 자신의 심기를 건드리며 조공 바치는 것도 거부하고 있던, 알카토오스라는 나라였다. 더군다나 그 나라 왕 니소스(Nisos)’는 자기의 아들을 죽게 한 아테네 아이게우스 왕의 동생이었으니 그 나라를 혼내줄 명분은 충분했다.

그런데 이 니소스 왕의 정수리 백발 한가운데에는, 신의 은총인지 저주인지 모를, 보라색 머리카락이 한 줌 있었다. 그의 머리에 이 머리카락이 남아 있는 한, 어떤 정복자도 그 왕국을 무너뜨릴 수 없었다. 말하자면 니소스 왕에게 보라색 머리카락이란 마치 삼손(Samson)’의 긴 머리카락과도 같은 것이었다. ? 그런데 삼손의 그 머리칼, 결국에는 사랑하는 연인 데릴라의 손에 잘리지 않았던가?

싸움이 시작된 이래 여러 달이 지났으나 양국의 전세는 어느 한쪽으로도 기울지 않은 채 지루한 소강상태가 이어지고 있었다. 한쪽은 성을 포위한 채 어떻게 해서든 무너뜨리려 하고, 다른 한쪽은 성에 의지한 채 끈덕지게 버티고 있는 모양새였다. 그러나 이렇게 장기전이 된 데에는 무엇보다도 날개 달린 승리의 여신 니케(Nike)’가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양쪽 진영의 하늘을 번갈아 날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알카토오스 왕국 성벽에는 제법 높은 탑이 하나 있었고, 니소스 왕에게는 딸 스킬라가 있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음악의 신 아폴론(Apollo)’이 황금으로 만든 수금을 내건 이후로, 그 벽돌 하나하나에 아름다운 선율이 스며들어 있다는 성벽이었다. 스킬라에게는 이 성벽 위의 탑으로 올라가 이 성벽에다 돌멩이를 던지며 거기에서 나는 소리를 즐기는 취미가 있었다.

스킬라는 미노스 왕과 자기 아버지의 군대가 전쟁을 벌이고 있는 동안에도 습관처럼 이곳으로 올라가 가까이서 벌어지는 전투 상황을 구경하고는 했다. 이러는 동안 스킬라는 적장 미노스 왕에 대해서 자세히 알게 되었다.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Aphrodite)’와 장난꾸러기 신 에로스(Eros)’가 그녀의 가슴 깊은 곳에 다녀간 것은 그때였다.

스킬라의 눈에 비친 미노스는 한마디로 완벽한 인간이었다. 그녀가 보기에, 미노스가 깃털 장식 투구를 쓰고 있으면 투구가 미노스에게 그렇게 잘 어울려 보일 수가 없었고, 미노스가 번쩍거리는 청동 방패를 들면 그 방패가 미노스에게 그렇게 딱 어울려 보일 수가 없었다. 그때 스킬라의 눈에는 미노스 왕이 누더기를 걸치고 깡통을 들고 있어도 좋아 보였을 것이고, 스킬라의 귀나 코에는 왕의 방귀마저 그 소리는 아름다운 선율이요, 그 냄새는 향긋한 꽃내음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왕의 모든 것이 좋아 죽을 지경이었다.

어쩌다가 미노스가 민얼굴을 드러내고, 흰 거품을 뿜는 말의 고삐를 잡아채는 것을 보면 스킬라는 그만 현기증으로 쓰러질 지경이었으니 말을 더해 무엇하랴. 이 모두가 미노스 왕을 향한 불타는 듯한 사랑 때문이었다. 타오르는 갈증 때문이었다.

스킬라는 나이 어린 공주에 지나지 않았으나 할 수만 있다면 용감하게 적진을 뚫고 들어가 미노스 왕을 만나고 싶었다. 급기야 그녀는 크레타 진영의 야영 막사를 바라다보고 이렇게 중얼거리기에 이르렀다.

미노스 왕은 아들의 죽음을 복수하려고 이 전쟁을 일으켰다지. 그에게는 명분도 있고, 막강한 군대도 있다. 우리는 이 전쟁에서 질 게 분명해. 우리 운명이 그렇다면 사랑을 위하여 내가 성문을 열어주는 것이 낫지 않은가. 더 이상의 살육을 막고, 저분이 피를 흘리는 일이 없게 하는 편이 낫지 않은가. 이렇게만 하면.”

스킬라의 마음은 이런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오래지 않아 스킬라는 아버지의 왕국을 미노스에게 바치고 전쟁을 끝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아버지를 생각하면 쉽게 행동에 옮길 수 없었다. 마음이 하루 밤낮에도 셀 수 없을 만큼 이쪽저쪽을 오고 가다가 마침내 사랑을 택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성문을 열어야 하나? 적진에 편지를 묶은 화살을 날려야 하나? ! 아버지의 보라색 머리카락!

스킬라가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속절없이 운명의 밤이 찾아 왔다. 스킬라는 이 평화로운 시간을 틈타 살며시 아버지의 침실로 숨어 들어가 기어코 하지 말아야 할 끔찍한 짓을 저질렀다. 딸이 아버지의 머리로부터, 아버지의 목숨과 운명이 걸린 머리카락을 훔친 것이다. 데릴라가 천하장사 삼손의 머리카락을 잘랐던 것처럼, ‘코마이토암피트리온(Amphitryon)’을 위해 아버지의 황금빛 머리카락을 잘라냈던 것처럼.

보라색 머리카락을 손에 넣은 스킬라는, 곧바로 적진을 뚫고 들어가 미노스 왕 앞으로 갔다. 왕은 적국의 공주 스킬라가 이 야밤에 자신을 찾아온 것을 보고는 짐짓 놀랐다. 스킬라는 망설임 없이 아버지 니소스 왕의 보랏빛 머리카락을 두 손 모아 바치며 미노스 왕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랑이 저에게 죄를 짓게 했습니다. 제가 드리는 사랑의 맹세와 이 보랏빛 머리카락을 받으시고, 이 머리카락이 단순한 한 줌의 머리카락이 아니고 제가 바치는 제 아버지의 머리인 줄 알아주소서.”

그런데 스킬라의 말을 듣고 있던 미노스 왕의 얼굴은 서서히 일그러지고 있었다. 미노스 왕은 매우 공정한 사람이어서 공정왕이라고 불리기까지 하는 사람이다. 얼마나 공정했냐 하면, 죽어서도 하데스(Hades)’의 나라에서 재판관 노릇을 할 정도로 공정했다. 공정한 미노스는 공정하지 못한 스킬라가 저지른, 천륜을 저버린 전대미문의 죄악에 기겁하고는 스킬라를 크게 꾸짖었다.

이 시대에 너같이 더러운 것이 있었구나. 신들이시여, 대지는 저것을 내치시고, 어떤 땅 어떤 바다도 저것 에게는 허락하지 않게 하소서. 그리고 스킬라 너 잘 들어라, 내 아버지 제우스 신의 요람이었던 크레타섬에 너같이 더러운 것이 들어오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

미노스 왕은 그렇게 고국과 아비를 배신한 스킬라를 내치고, 운명이 정해준 그대로 니소스 왕의 궁전으로 들어가 니소스 왕을 굴복시켰다. 니소스 왕의 정수리에 있던 문제의 그 머리카락은 당연히 보이지 않았다.

공정한 정복자 미노스 왕은, 정복당한 적들에게 갖가지 합당한 조치를 한 연후에, 자신이 거느린 함대에 돛을 올릴 것을 명령했다. 출항 명령을 받은 함대는 아쉬울 것 하나 없이 차갑고 싸늘한 뒷모습만 남기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미노스 왕은 자기가 크게 꾸짖은 스킬라의 행동을 자신의 사랑하는 딸, 아리아드네가 적국의 왕자 테세우스(Theseus)’에게 똑같이 저지를 줄을 이때만 해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된 스킬라는 먼 바다로 나가는 군함을 반은 얼빠진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스킬라는 군함들이 파도를 타는 것을 본 다음에야, 자신의 철없는 행동이 가져온 수치스러운 결과를 뼛속 깊숙이 받아들였다. 죽은 아비를 살릴 수도 없고 빼앗긴 나라를 되찾을 수 없는, 부질없는 짓인 줄 알면서도 스킬라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폭발시켰다.

어디로 가느냐, 이놈아! 그대에게 승리를 안겨준 나를 두고, 무정한 이여! 내 조국은 이제 망하고 말았다. , 아버지 니소스 왕이시여, 저에게 벌을 내리소서!”

허공으로 흩어지는 자신의 외침을 혼자 감당하면서 스킬라는 바다에 풍덩뛰어들었다.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가 다시 떠오른 스킬라의 얼굴은 눈물인지 바닷물인지 모를 물기로 덮여 있었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멀어지는 함대 쪽을 향하여 헤엄쳐 가기 시작했다. 증오에 찬 열정의 힘이었던가, 단숨에 크레타의 함대까지 헤엄쳐 간 스킬라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으로 미노스 왕이 타고 있는 우두머리 배의 뱃전에 착 달라붙었다.

그런데 그때 어디서 왔는지 물수리 한 마리가 가까운 하늘에서 이를 내려다보고는 미끄러지듯 내려와 그 뾰족한 부리와 날카로운 발톱으로 뱃전에 매달린 공주의 손등을 찍었다. 물수리는 다름 아닌 보라색 머리카락이 잘려나간 후 미노스 왕에게 최후를 맞이하고 물수리로 몸이 뒤바뀐 스킬라의 아버지 니소스 왕이었다.

스킬라는 고통에 못 이겨 뱃전을 잡았던 손을 놓았다. 그러나 스킬라는 물 위로 떨어지지 않았다. 뱃전을 놓는 순간 부드러운 미풍이 스킬라를 하늘로 감아올린 것이다. 깃털처럼 하늘로 오른 스킬라는 그제야 제 몸에 하얀 깃털이 돋아난 것을 알았다. 그녀도 아버지처럼 새가 된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처럼 물수리가 된 것이 아니라 그녀는 희디흰 백로가 되었다.

물수리는 오늘날에도 옛날에 품었던 앙심을 버리지 못했는지, 하늘 높이 날다가 백로를 발견하면, 부리와 발톱으로 백로를 사정없이 공격한다고 한다. 풀리지 않는 옛 시절의 한을 풀어보려는 몸부림처럼 말이다.

무사히 크레타로 돌아온 미노스 왕은 함대를 항구에 정박시키고, 떠날 때 했던 서약에 따라 백 마리의 소를 아버지 제우스 신에게 제물로 바쳤다.

 

5

그런데 크레타 군이 아테네와 일전을 치르기 전, 미노스 왕가에 남부끄럽고 황당한 일이 있었다. 사실 미노스 왕이 약소국 아테네를 치게 된 명목상의 이유는 아들의 복수였으나, 겉으로 말하지 못할 다른 이유도 있었더랬다.

여러분은 미노스 왕이 아우인 라다만티스와 크레타의 왕권을 두고 다툴 때를 기억할 것이다. 둘이 다투다가 형 미노스의 미움을 사 동생 라다만티스가 크레타에서 쫓겨나 보이오티아로 밀려나고, 결국 형 미노스가 선왕의 뒤를 이어 크레타의 왕의 자리에 올랐던 일 말이다.

사실, 이 과정에 바다의 신 포세이돈(Poseidon)’이 개입하여 미노스를 도와주었기 때문에 미노스가 왕좌를 차지할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포세이돈은 미노스의 기도에 응답하여 그에게 파도 거품으로 만든 크고 빛깔 고운 황소를 보내주기까지 했다.

그런데, 미노스는 이 소가 탐이 났던지 약속대로 포세이돈 신에게 제물로 바치지 않고 왕궁에 딸린 화려한 외양간에 꼭꼭 숨겨두었다. 대신 들판에서 어슬렁거리던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소를 제물로 올려 바다의 신을 속이려 들었다.

마땅히 받아야 할 경배를 받지 못한 것에 화가 난 포세이돈은 이 일을 그대로 두고 볼 아량 있는 신이 아니었다. 가장 낯뜨거운 방법으로 미노스를 욕보이기로 작정한 것이다. 바다의 신은 크레타의 왕비 파시파에로 하여금 자신이 미노스에게 보내준 늠름한 황소에게 비정상적인 감정을 품게 함으로써 이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왕비 파시파에는 궁전의 외양간에 있는 이 잘생긴 황소를 볼 때마다 품지 말았어야 할 상상을 했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 하다가 부질없음을 깨닫고 그만두었어야 했다. 파시파에도 그러려고 하긴 했다. 그만두어야지 수차례 허벅지를 꼬집으며 다짐했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오히려 상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더 노골적으로 변했다.

파시파에의 정욕은 그 무렵 크레타에 머물던 아테네 출신의 손재간 좋은 대장장이 다이달로스(Daidalos)’에 의해 실현되었다. 다이달로스가 누구던가? 독특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로 수많은 건축물을 만든 당대 최고의 재간둥이 아니던가? 쿠마이에 있는 아폴론 신전, 시칠리아의 아라본 강 저수지, 셀리노스의 증기 목욕탕 등을 만든 장본인이 아니던가? 그러니 그가 일단 마음먹으면 만들지 못할 것이 없다고 보는 편이 맞다. 양 볼이 발갛게 상기되어 있는 파시파에의 얼굴을 보다못해, 다이달로스는 작정하고 파시파에가 듣기 좋은 말을 했다.

여왕이 저 황소에게 느끼는 감정을 저 황소도 똑같이 여왕에게 느끼도록 할 요량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고는 자신의 비밀 작업장에 틀어박혀 며칠 밤낮으로 뚝딱거리더니 왕비 파시파에 앞으로 기품마저 느껴지는 암소를 한 마리 대령했다. 파시파에는 속으로 왜 갑자기 암소?’라고 생각하며 다이달로스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여러분도 알다시피 살아 숨 쉬는 진짜 암소가 아니라 다이달로스에 의해 만들어진 이른바 기계 암소였다. 다이달로스가 말해 주지 않으면 그 사실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게 만든 암소였다. 다이달로스가 실제와 똑같은 암소를 만들었다면 아마 누구라도 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분간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다이달로스는 인공 암소의 속을 파내어 그 안에 파시파에가 들어갈 수 있게 하였다. 엉덩이 부분에는 적당한 크기의 구멍이 나 있었다. 파시파에의 두 팔은 암소의 앞발 자리에, 두 다리는 암소의 뒷발 자리에 꼭 맞게 들어갔다.

일러준 대로 바퀴 달린 암소 안으로 파시파에가 들어가자 다이달로스는 이 암소를 끌고서 포세이돈의 황소가 있는 외양간으로 갔다. 그러고는 살며시 암소만 소 우리에 밀어 넣고서는 자리를 피했다. 굳이 이후에 일어날 장면까지는 보고 싶지도 않았거니와 그것이 왕비에 대한 당연한 예의라고 여긴 것이다. 이윽고 황소는 이 암소를 진짜 암소인 줄 알고 외양간이나 저 들판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교접을 이루었다.

그리고 열 달이 지나 달이 찰 만큼 차자 파시파에는 왕실이 발칵 뒤집힐 정도로 흉측한 핏덩어리를 출산했다. 그것은 울음소리도 여느 사람의 아이와는 완전히 달랐다. 이때 태어난 것이 바로 머리는 황소 대가리이고 그 아래는 인간인 반인반수의 괴물 미노타우로스(Minotauros)’이다. 미노타우로스는 미노스의 황소라는 뜻이다.

미노타우로스는 곧바로 미노스 왕과 크레타의 큰 골칫거리가 되었다. 포악할 뿐만 아니라 꼭 먹어도 사람고기를 즐겨 먹었기 때문이기도 했거니와, 아내의 간통으로 태어난 그런 흉측한 괴물이 이 나라를 활보하게 놔둔다면 미노스 왕은 두고두고 세간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미노스 왕은 이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절대, 도저히 저 괴물을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결단코!

 

6

이야기의 흐름상 파시파에와 불미스러운 짓을 저지른 이 대담한 황소가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 앞서 말했듯이 미노스 왕에게 화가 많이 나 있던 바다의 신 포세이돈은, 분이 덜 풀렸는지 이 소에게 한가지 임무를 더 주었다. 때는 고대 그리스 최고의 영웅 헤라클레스(Herakles)’가 자신의 처자식을 죽인 죗값을 치르기 위해 저 유명한 열두 가지 과업을 한 창 치르고 있을 때였다.

포세이돈은 자신이 미노스에게 보낸 황소를 파시파에와 그렇고 그런 관계로 만들어 놓고 곧바로 이 황소를 미치게 만들어 궁전의 외양간을 뛰쳐나오게 하였다. 그리고는 미친 황소가 크레타섬의 논밭을 인정사정없이 짓밟게 하여 백성들의 모든 원망이, 모든 재앙의 원인인 미노스 왕으로 향하게 손을 썼다. 정작 미치고 팔딱 뛰고 싶은 것은 미노스 왕이었는데도 말이다.

미노스가 아르고스 왕에게, 성미 거친 짐승 잘 잡기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천하장사 헤라클레스의 파견을 요청한 것이 바로 이 무렵이었다.

아르고스 왕의 명을 받고 크레타섬으로 건너간 헤라클레스는 이다산 기슭에서 이 황소를 따라잡고 한참 힘을 겨루었다. 그러나 승부는 쉽지 않았다. 힘이 다한 헤라클레스와 황소는 서로 멀찍이 물러서서 숨결을 가다듬었다. 누가 짐승인지 대충 보면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양쪽 모두 불같은 야성을 뿜어내고 있었다. 먼발치에서 싸움을 구경하던 미노스 왕이 답답한 마음에 큰소리로 헤라클레스에게 물었다.

나의 형제 헤라의 영광이여, 그대는 황소를 잡으러 온 사람인가? 아니면 어르며 같이 놀러 온 사람인가? 도무지 알 수가 없네그려.”

헤라클레스는, 거룩한 짐승을 가로채어 왕위에 오르고도 전혀 부끄러워하거나 반성할 줄 모르는 배다른 형제, 미노스 왕에게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왕은 포세이돈 신 덕분에 왕위에 올랐으면서도 신에 대한 의무에는 충실하지 못했소. 황소가 말하는데 장차 소 때문에 욕을 좀 보실 거라고 합디다.”

미노스는 그렇지 않아도 왕비 파시파에 때문에 창피해서 얼굴을 못 들고 다니던 참이어서, 헤라클레스의 이 말에 부끄럽고도 당황한 기색을 감추기 어려웠다. 그러나 애써 태연한 척 말한다. 약간 티는 났을 것이다.

그런가? 그러면 아우가 이 형님을 위해 저 발정난 황소의 숨통 좀 끊어주게나. 저 황소를 죽여 지금이라도 바다의 신께 사죄의 제사를 올려야 하지 않겠나.”

이제서요?”

이렇게 말하고 헤라클레스는 황소를 죽이는 대신 산채로 사슬로 묶어 타고 온 배에 싣고는 자기가 떠나온 곳, 아르고스 왕국으로 돌아갔다. 이것이 헤라클레스의 열두 과업 중 일곱 번째 과업이었다. 헤라클레스에게 별별 어려운 숙제를 내주었던 아르고스 왕은 무슨 꿍꿍이속이 있었던지 크레타 원정 기념이라면서 그 황소를 헤라클레스에게 주었다.

그러나 헤라클레스는, 포세이돈이 보낸 짐승이라는 게 마음에 걸렸던지 이 황소를 풀어주었다. 아닌 게 아니라 황소는 온 그리스 땅을 다 헤집고 돌아다니며 크레타섬에서 그랬던 것처럼 갖은 행패를 부렸다.

이때를 전후하여 미노스 왕은 어지러운 나라의 상황을 피해 둘째 아들 안드로게오스를 유학 차 아테네로 보냈던 것인데, 아들이 객지에서 비명횡사하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그 복수로 앞서 본 것처럼 아테네를 공격하여 항복을 받아낸 이후의 이야기가 지금부터 전개된다.

 

7

헤라클레스에게 황소 문제를 맡겨놓고 있는 동안에, 미노스 왕은 더 중요한 문제로 바빴다. 이미 아들의 복수를 위해 아테네, 알카토오스와 오랜 기간 전쟁을 치렀고, 이제는 미노타우로스의 문제를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미노스 왕은 이미 자신을 위해 세상에서 제일 멋진 궁전 크노소스(Knossos)를 지어 준 다이달로스가 자신의 아내 파시파에에게 요상한 소를 만들어 준 것이 불쾌했다. 그러나 그의 재주를 빌릴 수밖에 없었던 미노스는 우선 다이달로스에게 철통 요새인 미궁, 라비린토스(Labyrinthos)를 짓게 한 후, 그 안에 미노타우로스를 가두어 버렸다. 그 미궁은 너무나 복잡한 미로로 되어있어 들어가면 그 누구도 살아나올 수 없도록 만들어졌다.

비록 철통같은 감옥에 가두었으나 미노타우로스를 굶겨 죽일 수 없었던 미노스는 강대국의 왕으로서 전후 협정에 따라 아테네에 명령을 내려 미노타우로스의 먹이로 쓸 제물을 보내라고 했다. 이미 미노스 왕과의 전쟁에서 참패를 당했던 약소국 아테네의 왕 아이게우스는 이를 거절할 수 없었다.

그때부터 아테네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해마다 일곱 명의 여자와 일곱 명의 남자를 크레타로 보내야 했다. 아테네 왕은 매년 아테네에 있는 모든 사람의 이름을 적어 그릇에 담아 놓고, 제비뽑기로 열네 명의 희생자를 뽑았다. 제비뽑기 철이 돌아오면 아테네 전역은 비통함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세월은 흘러 아이게우스 왕이 우여곡절 끝에 아들 테세우스와 재회하게 되었고, 그로부터 또 2년이 흘렀다.

이제 아테네의 왕자가 된 테세우스가 열여덟 번째 생일날 바닷가를 거닐고 있을 때였다. 한가롭게 산책을 하던 테세우스는 바닷가에서 슬피 울고 있는 늙은 부모들과 모래 위에 정박해 있는 검은 색 돛을 단 배를 발견했다. 크레타로 향하기 전 괴물의 먹잇감으로 선발된 젊은이들과 가족들의 이별 장면이었다.

자초지종을 모두 알게 된 테세우스는 분노했고 한탄했다. 스스로 희생자 무리에 끼어 크레타로 가서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미노스의 부당함을 바로잡고자 결심했다. 아테네의 왕이자 테세우스의 아버지인 아이게우스는 아들을 말렸지만, 테세우스의 결심은 확고했다. 젊은 왕자는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아테네 인들 구출에 성공하면 검은 돛을 흰 돛으로 바꾸어 달고 돌아오겠다는 굳은 약속과 함께 기어이 크레타로 향했다.

미노스 왕은 어김없이 이번에도 아테네의 희생양들이 도착하자 직접 크레타 해안으로 마중 나갔다. 아테네의 왕자까지 왔다니 나가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미노스 왕은 틀림없이 오래전 아테네에서 열다섯 나이에 비명횡사했던 아들, 안드로게오스를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왕의 뒤에는 그의 아름다운 딸 아리아드네가 다소곳하게 따르고 있었다. 그러나 미노스 왕의 착잡한 마음과 달리 테세우스를 알아본 그녀의 눈빛은 가늘게 흔들렸다. 그녀의 심장도 방망이질하듯 뛰었지만 아무도 눈치채진 못했다.

미노스는 테세우스를 포함한 열네 명의 희생자 무리를 우선 크노소스 궁전에 가두었다. 그러나 테세우스는 그곳에서 희생 제물로 바쳐질 날만을 기다린 것은 아니었다. 갇혀 있는 동안에 테세우스는 당대 최고의 권력가인 미노스 왕의 통치술을 곁눈질로 배웠고, 가장 앞선 크레타 문명을 몸소 체험하는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되었으며, 미노스의 아름다운 딸 아리아드네를 알게 되었다.

적국 아테네의 왕자를 사랑하게 된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를 그냥 죽도록 내버려 둘 수 없었다. 비록 그가 어찌어찌하여 미노타우로스를 죽인다 해도 어떤 수로 미로를 빠져나올 수 있겠는가. 끝없이 헤매다가 결국에는 지쳐 쓰러져 굶어 죽을 것이 틀림없었다. 아리아드네로서는 그건 절대 안 될 일이었다.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의 먹이로 던져지게 될 어느 날 이른 저녁, 감옥 주변을 서성이는 수줍은 그림자가 있었다. 테세우스에 대한 연정이 점점 커져 이제 스스로 그 감정을 누를 수 없었던 아리아드네 공주는 테세우스를 살릴 확실한 방법을 알고 있었다. 밤이 깊어지면 사랑하는 테세우스와 아테네 인들은 미노타우로스의 먹이로 던져질 것이므로 그 전에 행동해야 했다. 아리아드네는 어두워지기 전 시종의 도움을 받아 횃불과 청동 몽둥이, 그리고 털실 한 뭉치를 가지고 감옥으로 찾아가 테세우스에게 건네주었다.

이 횃불로 길을 밝히세요. 그리고 이 털실 한쪽 끝을 미로 입구 기둥에 묶고 돌아올 때 이정표로 삼으세요. 소저는 그대를 위해 아버지를 배신한 몸, 떠나실 때 저도 함께 데려가 주세요. 저는 그대의 사랑을 대가로 태어나 자란 이 나라를 떠나려 합니다.”

테세우스는 별 대꾸 없이, 아리아드네가 일러주는 대로 해서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미로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실뭉치를 이용하는 방법을 생각한 것이 다이달로스였는지 아니면 아리아드네였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아무래도 전자의 견해를 따르는 것이 맞을 듯싶다. 이후 미노스 왕이 다이달로스와 그의 아들 이카로스에게 취한 행동을 보면 그도 아마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여기까지가 오늘날 복잡한 상황을 헤쳐나가거나 난해한 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실마리를 아리아드네의 실타래(Ariadne’s Thread)’라고 부르게 된 유래이다. 중세 영어에서는 을 의미하는 단어로 ‘clewe’를 썼다고 한다. 수수께끼 같은 어려운 문제를 푸는 단서, 실마리를 뜻하는 현대 영어 클루(clue)’의 어원이다. clue는 그리스 신화에서 나왔다.

셜록 홈즈(Sherlock Holmes)’에르퀼 푸아로(Hercules Poirot)’ 같은 유능한 탐정들은 항상 이 실마리를 찾기 위해 온갖 재주를 동원한다. 일단 실타래만 잡으면 사건 해결은 시간문제이기 때문이다.

 

8

테세우스는 미궁에서 탈출한 직후 아리아드네와 함께 아테네의 젊은이들을 데리고 크레타섬을 빠져나와 아테네로 향했다. 아리아드네가 이미 이 상황을 대비하여 탈출선을 준비해 두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테세우스는 출발하기 직전 일행들과 함께 크레타의 모든 함선의 밑바닥에 커다란 구멍까지 내놓은 상태였다.

이런 신출귀몰할 기습작전 탓에 바다의 지배자 미노스는 달아나는 테세우스 일행을 먼 산 바라보듯 눈뜨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자기 나라와 자기 아버지를 배반한 스킬라에게는 그토록 엄격했던 미노스 왕은 자신의 딸이 똑같은 일을 저지른 것을 알았을 때,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추측하건대 아마 똥 씹은 표정과 같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대왕마마, 집안 단속부터 좀 하시지 그러셨어요.

미노스 왕이 그렇게 자책하고 있을 때, 테세우스 일행은 귀향 중에 먹을 물도 구하고 잠시 쉬어갈 겸 낙소스(Naxos) 섬에 들렀다. 그런데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가 곤히 잠든 틈에 그곳에 아리아드네를 홀로 남겨두고 떠났다. 테세우스는 비록 그녀의 도움으로 괴물을 죽이고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지만, 그것은 감사할 일일 뿐 사랑으로 보상할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그녀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아버지와 조국을 배신한 여인이 아닌가!

테세우스는 곧 아리아드네 공주를 미련 없이 기억 속에서 지워버렸다. 그리고 테세우스 일행은 며칠을 더 항해해 해가 떠오를 때쯤 고국 아테네의 항구에 닿았다. 그런데 테세우스는 너무 서둘렀던 것일까, 아니면 낙소스섬에 아리아드네를 떼어놓고 온 것에 대한 벌이었을까, 검은 돛을 흰 돛으로 바꾸는 것을 깜빡 잊고 말았다. 개선장군과 같은 자신의 귀향에 모두가 기뻐할 줄 알았는데, 많은 사람이 슬피 울고 있는 것에 테세우스는 불길함을 느꼈다.

불길한 예감은 늘 그러하듯이 이번에도 틀리지 않았다. 테세우스가 자신의 나라 해안에 도착하여 제일 먼저 들은 것은 아버지의 부고 소식이었다. 왕은 아들이 타고 떠났던 배가 검은 돛을 달고 돌아오는 것을 보고, 자신의 사연 많은 아들이 죽었음을 확신하고서는 실의에 빠져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는 것이다. 테세우스는 하늘을 보고 울부짖으며 자신의 가슴을 치고 또 쳤다. 자신의 경솔함에 저주를 퍼부었다.

어쨌거나 이 일로 해서 테세우스는 생각보다 빨리 아테네의 왕이 되었고, 아버지의 죽음을 기려 아테네 주변의 바다를 에게해(Aegean Sea)’라고 이름 지었다. 에게해는 아이게우스의 바다라는 뜻이다.

 

9

잠시, 낙소스섬에 홀로 남겨진 미노스 왕의 딸 아리아드네의 뒷이야기를 살펴보고 가야겠다. 테세우스가 아테네 젊은이들을 데리고 낙소스섬을 떠난 후에야 잠에서 깬 아리아드네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 의해 배반당했다는 것을 알고 흐느껴 울었다. 올림포스 천상에서, 슬픔에 잠긴 아리아드네를 보고 있던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그녀가 가여웠다. 그래서 무정하게 떠나간 인간 세상의 애인 대신 천상의 애인을 짝지어 주겠노라 마음먹었다.

아리아드네가 남아 있던 섬은 포도주의 신이자 부활의 신인 디오니소스(Dionysos)’가 마음에 들어 자신의 거처로 삼고 있던 섬이었다. 그래서 티레노스의 선원들이 소년 모습의 디오니소스를 유괴하여 몸값을 받아낼 궁리를 할 때, 어떤 마음 착한 선원에게 무사히 그를 데려다주면 은혜를 잊지 않겠다고 했던 섬도 바로 낙소스였다.

디오니소스는 제 신세를 한탄하고 있는 아리아드네를 발견하고, 그 모습이 눈과 마음에 들어 그녀를 위로하고 아내로 삼았다. 디오니소스는 아리아드네에게 결혼 선물로 보석이 주렁주렁 달린 황금관을 주었다. 아리아드네는 포도주 신과 함께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살았는지는 분명치 않다. 아마도 아리아드네가 디오니소스를 추종하는 첫 번째 마이나데스(Mainades)’였을 지도 모른다.

후일 아리아드네가 죽자 디오니소스는 결혼 선물로 주었던 황금관을 벗겨 하늘로 던졌다. 관이 하늘로 날아가면서 보석은 점차 그 빛을 더 밝게 발하더니 마침내 밤하늘의 별이 되었다. 옛 모습 그대로, 아리아드네의 관은 지금도 밤하늘 한 귀퉁이에 박혀 왕관자리라는 이름으로, 무릎 꿇은 헤라클레스자리뱀자리사이에서 아름다운 별자리로 남아 반짝이고 있으니, 오늘 밤이라도 여러분은 그 흔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당장 집에서 가장 가까운 천문대를 찾아 천체망원경에 여러분의 눈을 가져다 대보기 바란다.

 

10

한편, 크레타의 미노스 왕은 여전히 무척 화가 나 있었다. 애지중지했던 딸이 자신을 배반하고 이국 사내에게 눈이 멀어 미노타우로스를 죽게 한 것도 화가 났고, 실타래를 이용해 미궁에서 나오는 방법을 아리아드네에게 알려주어 테세우스가 달아날 수 있도록 해준 다이달로스에게는 더욱더 화가 나 있었다.

결국, 미노스는 다이달로스를 그의 아들 이카로스(Icaros)’와 함께 미궁에 가두어 버렸다. 그러나 다이달로스가 누구던가? 미궁을 직접 만든 장본인이 아니던가? 가장 뛰어난 제조기술을 지닌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의 후손이 아니던가? 게다가 아테네 사람으로서 이 도시의 수호여신인 팔라스 아테나(Pallas Athena)’로부터도 온갖 기술을 내려받은 이가 바로 그 아니던가? 사람들은 다이달로스를 능가할 수 있는 자는 사람과 신을 통틀어 그의 선조인 헤파이스토스 신 외에는 아무도 없다고 말해오지 않았는가? 다이달로스에 대해 더 알아보기 위해 그의 과거 속으로 시간을 거슬러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 봐야겠다.

그는 아테네 사람이다. 그가 크레타섬으로 오게 된 연유는 이렇다. 다이달로스는 앞서 말했듯이 신의 축복을 받아 당대 최고의 기술자이자 과학자로 명성이 자자했으니, 자연스럽게 그에게 기술을 배우기 위해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이들 중에는 그의 조카 탈로스(Talos)’도 있었다.

군계일학이라고 할 만큼 솜씨가 좋았던 탈로스는 곧 뱀이나 물고기의 등뼈를 보고 톱을 발명했다. 그는 또 두 개의 쇳조각을 붙이고, 그 한쪽 끝은 못으로 고정하고 반대편 끝은 뾰족하게 갈고는 두 조각으로 다시 벌려 원을 그리는 양각기를 만들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가 만든 톱과 양각기를 보고 청출어람이라며 그의 재주를 높게 샀다. 다이달로스는 장인으로서의 유명세에 걸맞지 않게 인성은 많이 부족했던지 이것을 질투했다. 그는 자기 능력과 업적에 지나칠 정도로 긍지를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와 어깨를 겨룰 자가 있다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다이달로스는 어느 날 탈로스와 함께 높은 탑에 올라갔다가 기회를 엿보아 조카이자 제자를 탑에서 밀어버렸다. 아무것도 모르고 갑자기 변을 당한 탈로스는 땅으로 추락해 뼈마디가 모두 으스러지고 말았다. 그는 자신의 꿈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꽃다운 나이에 저승의 객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발명하는 재주를 총애하는 아테나 여신이 이 가여운 소년을 구하여 자고새로 변하게 했다. 이 새는 지금도 나무 위에는 집을 짓지 않고, 높이 날지도 않는다. 떨어져 혼이 난 기억이 높은 것을 피하는 것이리라.

살인자 다이달로스는 이 범죄가 발각돼 아테네 법정의 소환 명령을 받았으나 판결이 내려지기 직전에 크레타로 도망쳤다. 미노스 왕은 도망자 신세였던 다이달로스를 받아들였고, 다이달로스는 아르키메데스(Archimedes)’ 같은 후대의 위대한 공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도와준 미노스 왕을 위해 봉사해 오다가 지금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런 그가 미노스 왕을 배신한 죄로 다시 자신이 만든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이니, 사람 세상의 일이라는 것이 다람쥐 쳇바퀴처럼 시간의 반복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다시 여기는 크레타의 미궁, 죄수 다이달로스는 아들 이카로스에게 말했다.

비록 우리가 이곳에 갇혀 있지만, 공기와 하늘은 뚫려 있다. 우리는 저 창공으로 날아가면 돼.”

그냥 앉아서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므로 다이달로스는 곧바로 아들 이카로스와 함께 탈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는 미궁 안으로 떨어져 여기저기 널려있는 새의 깃털과 미로의 모퉁이와 골목을 밝히고 있는 횃불을 보고 궁리 끝에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이내 다이달로스는 새들의 깃털을 주워 모으더니 횃불의 밀랍을 이용해 아들과 자신에게 꼭 맞는 날개 두 쌍을 만들기 시작했다. 날개를 어깨에 달고 하늘을 날아 탈출하려고 한 것이다.

모든 준비가 끝난 다이달로스 부자는 스스로 생각해도 기발한 작전이라고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 다이달로스가 심호흡을 한 번 하더니 마지막 주의사항을 말했다. 그는 아들에게 절대로 너무 높이 날아서도, 너무 낮게 날아서도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다. 하늘 높이 날면 몸에 붙인 밀랍이 태양에 녹아 날개가 떨어져 죽을 것이고, 너무 낮게 날면 바다의 습기에 날개가 축축해져 역시 추락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대개의 아들이 그 아비의 말을 한 귀로 흘려버리듯이 이카로스는 아비의 말을 새겨듣지 않았다. 이카로스는 자신의 몸이 둥둥 떠 하늘을 날고 있다는 것에 놀라면서도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했다. 더 높이 올라간다면 어떤 기분일까, 구름 위에는 무엇이 있을까, 저 바다 끝 어디까지 볼 수 있을까, 날개를 퍼덕일수록 알고 싶은 것이 점점 늘어갔다. 이카로스는 아버지의 경고를 잊고 점점 높이 헬리오스가 끄는 태양 마차 가까이 올라갔다. 다이달로스는 아들을 붙잡을 틈도 말릴 겨를도 없었다.

이카로스는 햇살에 눈이 부셔 눈살을 찌푸린 순간 몸이 기우뚱하는 느낌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날갯죽지에 붙어 있어야 할 깃털이 하나둘씩 떨어지고 있는 게 보였다. 밀랍이 녹아 흘렀던 것인데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이카로스는 떨어져 나간 깃털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바다에 떨어져 죽었다. 이카로스가 풍덩소리와 함께 바다 밑으로 사라질 때, 자고새 한 마리가 물 위를 스치듯 지나갔다.

이후 이카로스는 후세 사람들에게 과학기술이 갖는 위험성의 상징이자 가능성의 한계를 깨뜨리려는 갈망의 상징이 되었다. 또한, 실패할 것이 두려워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시도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일컫는 이카로스의 날개(Wings of Icaros)’라는 말의 유래가 되었다.

한 가지 더 짚을 것은, 바다에 추락한 이카로스의 시신을 수습하여 양지바른 곳에 묻어준 이가 헤라클레스였다는 사실이다. 당시 헤라클레스는 옴팔레(Omphale)’ 여왕 밑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었는데 여행을 꽤 자유분방하게 하고 다녔다.

헤라클레스는 돌리케섬 여행 중에 이카로스의 시신이 섬 해안으로 밀려온 것을 보았다. 그는 죽었으나 아직 수려한 미모를 잃지 않은 이카로스를 돌리케섬 햇볕 잘 드는 곳에 정성스레 묻어주고 이카로스가 죽어서 밀려왔던 섬 앞바다 이름을 이카로스의 바다라는 뜻으로 이카리아(Icaria)’라고 부르게 했다.

이카로스의 아버지 다이달로스는 그 은공에 보답하느라고 그 장한 손재주로 헤라클레스 대리석상을 빚어 피사에다 세웠다. 헤라클레스는 살아 있는 동안에 대리석상으로 선 최초의 영웅일 것이다. 하지만 이 대리석상의 명은 길지 못했다. 한밤중에 자기 대리석상을 본 헤라클레스는 그것이 살아 있는 괴물인 줄 알고 돌멩이를 냅다 집어 던졌다. 천하장사 헤라클레스가 집어 던진 돌멩이를 맞았으니 그 대리석상, 어떻게 되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아마 박살이 나고 말았을 것이다.

 

11

다이달로스는 슬픔에 잠긴 채 무사히 시칠리아로 도망갔다. 미노스 왕은 다이달로스 부자가 달아났다는 말에 어이없고 황당해서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누구도 탈출 불가능하다는 천하의 요새라더니 벌써 횟수로는 두 번째, 사람 숫자로는 열여섯 명이나 도망간 꼴이 되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미노스 왕은 그리스 전역 방방곡곡에 방을 붙여 다이달로스 부자를 수배하였다. 직접 신고하는 자뿐 아니라, 사소한 풍문이라도 고하기만 하면 큰 상금을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몇 해가 지나도록 감감무소식, 왕은 점점 조바심이 들었고 이렇게 해서는 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가지 묘안을 생각해냈다.

그래 제 꾀에 넘어오도록 하자. 이렇게 하면 제깟 놈이 그 알량한 재주 자랑을 참을 수 없을 것이다.”

묘안이란, 다이달로스가 늘 자부하던 문제해결 능력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미노스 왕은 주변의 크고 작은 여러 나라에 무장한 함대를 파견하여 자신에게 조공을 바치는 모든 왕에게 풀기 어려운 문제를 하나 냈다.

소용돌이 모양의 소라 껍데기에다 한 번에 실을 꿰는 방법을 아는 사람에게 큰 상을 내리겠소.”

그 문제를 푸는 자는 다이달로스밖에 없을 테니 이를 맞히는 왕의 나라에 다이달로스가 있을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얼마 후, 정말로 소식이 들려왔다. 시칠리아의 코칼로스 왕이 다음과 같은 기막힌 해답을 보내온 것이다.

꼬불꼬불한 소라 껍데기 끝에 구멍을 뚫고 허리에 실을 맨 개미를 그 구멍으로 들여보내면 됩니다. 개미가 결국 구멍 난 껍데기 끝으로 나오게 될 테니, 바로 이것이 한 번에 실을 꿰는 방법이 아니고 무엇이겠소.”

물론, 이 대답은 다이달로스가 알려준 것이었다. 약속대로라면 코칼로스 왕은 상을 받아야 했으나 돌아온 것은 협박과 회유였다. 미노스 왕은 시칠리아 해안에 모든 함대를 집결시킨 후, 코칼로스 왕에게 죄인 다이달로스를 보내라고 엄포를 놓았다.

그러나 시칠리아 왕 코칼로스는 자기 품으로 날아온 새를 쫓는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이번이 독재자 미노스를 죽일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이달로스와 더불어 한 가지 계책을 세웠다.

우선 코칼로스는 다이달로스를 돌려보내는 척하면서, 승리자 미노스 왕을 자신의 왕궁으로 초대해 귀한 손님 대접하는 관례대로 했다. 산해진미와 진수성찬으로 미노스의 경계를 느슨하게 하고 나서 적당한 기회를 엿보다가, 미노스 왕에게 피로도 풀 겸 자신의 딸들이 준비한 커다랗고 화려한 욕조에서 목욕할 것을 권하였다. 승리에 도취 된 미노스는 의심은커녕 흡족한 마음으로 욕조에 몸을 담갔다. 완전한 무장해제였다.

미노스가 그렇게 알몸으로 탕 안에서 시칠리아 여인들과 희롱을 하고 있을 때, 코칼로스 왕은 미리 계획한 대로 배관 기술의 달인 다이달로스를 시켜 목욕탕과 연결한 관으로 펄펄 끓는 물을 틀게 했다. 코칼로스 딸들도 자신들에게 부여된 임무대로 바가지와 양동이를 이용하여 뜨거운 물을 쏟아부었다. 그렇게 미노스는 뜨거운 물에 데어 죽었다. 문명을 일으킨 위대한 왕의 죽음은 이토록 허무했다.

신들이 미노스 왕의 죽음을 애도하여, 저승 세계에 그의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바로 죽은 사람들을 심판하는 저승 세계의 재판관이 된 것이다. 저승 세계의 법정에서는 죽은 자들이 그들이 살아생전에 선행을 베풀었는지, 악행을 저질렀는지 심판을 받는다. 세 명의 재판관들은 미노스, 아이아코스, 그리고 미노스의 아우였던 라다만티스였으니, 미노스는 죽어서 아우와 재회하게 된 셈이다.

미노스는 지하 감옥 타르타로스(Tartaros)’와 하데스의 궁전 뒤쪽 엘리시온(Elision)’으로 갈라지는 갈림길에 딱 버티고 앉아 혼령들을 기다리고 있다. 미노스는 그 혼령들이 저지른 이승에서의 죄에 따라 타르타로스로 보내야 할지, 엘리시온으로 보내야 할지 심판한다. 타르타로스의 재판관은 미노스의 동생 라다만티스였는데, 그는 혼령들을 심판하여 지상에서 지은 죄를 자백하게 한 다음 그 경중에 따라 벌을 내렸다.

 

12

인연은 좋든 싫든 끊어지지 않는 사슬로 엮여 있는가, 미노스와 테세우스의 악연은 미노스 왕이 죽어서도 끝나지 않았다. 왕이 된 테세우스는 아마존의 여왕 히폴리테(Hippolyta)’와 결혼하여 아들 히폴리투스(Hippolytus)’를 두고 있었다. 그런데 운명의 수레바퀴가 어떻게 돌아갔던지 테세우스는 미노스의 또 다른 딸이자 아리아드네의 누이인 파이드라(Phaedra)’를 후처로 맞았다.

다시 반복되는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파이드라는 의붓아들 히폴리투스에게 연정을 품게 된다. 히폴리투스에게 사랑을 고백했지만 거절당한 파이드라는 한 통의 편지를 남기고 자살했다. 그 편지에는 히폴리투스가 자신을 욕보이려 했다는 거짓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 편지를 읽고 분노를 참지 못한 테세우스가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대신 복수해 달라고 빌었다. 어느 날 히폴리투스가 이륜차를 몰고 해변을 달리고 있을 때 파도를 헤치고 괴물이 뛰쳐나와 말을 기겁하게 했다. 깜짝 놀란 말들이 발광하며 날뛰자 이륜차는 산산조각이 났고, 억울한 히폴리투스는 이 사고로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때 히폴리투스의 나이는 열네 살에 불과했다. 이렇게 비참한 운명의 충격은, 종종 당사자들이 아닌 다음 세대의 자손들을 향해 거대한 해일처럼 닥치곤 한다.

암튼 이 의붓아들에게 사랑을 느낀 파이드라 이야기에서 심리학 용어가 하나 생겼다. 어머니가 아들에게 사랑을 느껴 비극적 결말을 맞게 되는 것을 일컬어 바로 파이드라 콤플렉스(Phaedra Complex)’라고 한다.

 

13

아테네 인들은 전통적으로 미노스에 대해 적대적인 감정을 지니고 있었으므로, 아테네의 중세 작가들은 시, 희곡, 전설 같은 여러 문학작품에서 미노스 왕을, 미노타우로스라는 괴물의 먹잇감으로 아테네 젊은이들을 던져주었던 인물로만 치우쳐서 묘사하곤 했다. 하지만 강력하고 공정한 통치자로서 재임 기간 그가 이룩한 업적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우선 그가 크레타 왕국을 크게 일으켜 유럽 최초의 문명인 크레타 문명을 일구어낸 장본인인 것을 잊어선 안 된다. 크레타 문명은 기원전 2000년경부터 기원전 1400년경까지 존속한 지중해의 크레타섬에서 번영한 고대문명으로, 에게 문명의 일부이고 그리스 문화의 시작이었다. 곧 그리스인들의 뿌리이자 정체성 그 자체가 미노스가 일으킨 크레타 문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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