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

프로크루스테스, 메데이아, 미노타우로스, 파이드라, 페이리토오스...

 

1

이제 아테네(Athens)로 눈을 돌려보자. ‘테베크레타와 달리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 중에서 비교적 약소국에 속했던 아테네가 어떻게 그리스의 중심이 될 수 있었을까? 트로이 전쟁 이전까지 헤라클레스(Herakles)’와 더불어 전 그리스에서 가장 유명한 영웅인 테세우스의 탄생과 성장을 보면 알 수 있다.

테세우스는 아테나의 왕 아이게우스(Aegeus)’와 트로이젠의 공주 아이트라(Aithra)’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이 출생과정에는 약간의 혼선이 있었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Poseidon)’이 아이게우스가 아이트라와 관계를 갖기 전후에 아이트라의 침실을 방문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된 사실인지 알아보자.

아이게우스 왕은 결혼한 지 여러 해가 지나도록 아들이 없었다. 몇 해 전에 두 번째로 맞이한 칼리오페 여왕에게도 역시 태기가 전혀 없었다. 왕실에 2세가 없는 기간이 계속되자 야심으로 똘똘 뭉친 아이게우스 왕의 아우 팔라스와 그의 50명이나 되는 아들들이 호시탐탐 왕좌를 노리기에 이르렀다. 나이가 불어날수록 점점 불안을 느낀 이 아테네 왕은 아무래도 파르나소스 산허리에 있는 델포이 신전으로 가서 아폴론(Apollo)’의 신탁을 들어봐야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내용이 두루뭉술하기로 유명한 델포이 신전의 신탁내용은 이번에도 헷갈리는 것이었다.

왕이여, 돌아가는 길에 술 부대의 주둥이를 조심해라!”

밑도 끝도 없는 신탁을 받아든 아이게우스 왕과 일행은 고향 아테네로 돌아가는 길에 변방의 자그마한 도시국가 트로이젠이라는 곳에 잠시 들러 쉬어가게 되었다. 당시 트로이젠은 현자 피테우스 왕의 통치 아래에 있었는데, 피테우스 왕은 아테네의 영웅 아이게우스를 평상시부터 흠모해 왔었다. 그에게는 과년한 딸이 있었으니, 이번 기회에 당시의 일반적인 관례에 따라 융숭한 손님 대접을 한다면 좋은 인연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서로 마셔라, 부어라호응하면서 여독을 풀다가, 아이게우스는 피테우스 왕의 뜻대로 잔뜩 취해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아이트라의 침실로 옮겨진 아이게우스는 다음 날 아침 자기 옆에 누워있는 아이트라 공주를 보고서야 돌아가는 사정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아이게우스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공교롭게도 그날 밤, 바다의 신 포세이돈도 아이트라의 침실을 찾아 서로 사랑을 나누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아이게우스만 몰랐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이트라 역시 아버지 피테우스 왕의 바람대로 아이게우스 왕하고만 사랑을 나누었다고 생각했다. 나중 일이지만 그때 태어난 테세우스도 아이게우스를 생부로 여겼음이 신화 이야기 곳곳에 발견되니 친생자 확인은 이 정도로 하자. 앞으로 테세우스는 바다 위에서만큼은 곤욕을 치를 일은 없을 것 같다는 정도로 정리하면 되겠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직 테세우스가 태어나기 전인 어느 화창한 날 아이게우스는 자신의 나라 아테네로 떠날 채비를 마친 후 아이트라와 마주했다. 아이트라의 눈에는 진작부터 눈물이 글썽였다. 공주의 눈물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 아이게우스는 자기 칼과 가죽신을 커다란 섬돌 밑에 넣어두고는, 장차 아들이 태어나거든 그 아이가 다 자라 그 돌을 들어 올릴 힘과 용기가 생겼을 때 자신에게 보내라고 당부했다. 그때 이 칼과 가죽신을 징표로 삼으라고 당부했다. 여러 해 동안 왕자를 잉태하지 못해 상심해 있을 칼리오페 여왕이 있는 아테네의 궁전으로 함께 가자는 말은 선뜻 하지 못했다.

아이게우스 왕이 떠나고 아이트라의 아랫배는 점점 불뚝해지기 시작했다. 달이 모두 차자 아이트라는 건강한 사내아이를 낳았다. 기쁨에 찬 공주는 아버지 피테우스 왕과 상의하여 이 아들의 이름을 테세우스(Theseus)’라고 지었다. 그 이름의 속뜻은 묻혀 있는 보물이라는 뜻이었다. 테세우스는 태어날 때부터 기골이 장대했고 울음소리 또한 우렁찼다. 테세우스는 외가인 트로이젠 궁전에서 최고의 스승들로부터 왕가의 법도를 배우고, 가장 훌륭한 전사들로부터 싸우는 법을 익히며 무럭무럭 자랐다.

테세우스의 어린 시절 일화 중, 헤라클레스를 만났던 일을 빼놓을 수 없겠다. 그의 나이 여섯 살 때의 일이다. 헤라클레스가 맨손으로 키타이론산의 사자를 때려죽이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으니까 헤라클레스의 나이는 아마 열일곱 살 무렵이었던 것 같다. 헤라클레스가 자신의 마스코트이자 시그니처인 사자 가죽을 쓰고 나타나자 애어른 할 것 없이 진짜 사자가 나타난 줄 알고 모두 혼비백산 도망치는데 오직 여섯 살배기 테세우스만 도끼를 들고 뛰어나왔다. 헤라클레스야 뭐 당돌한 꼬마의 행동에 씨익 한번 웃어주고 갈 길 갔겠지만, 아무튼 두 영웅의 첫 만남은 이랬다.

그리고 세월은 또 활을 떠난 화살같이 흘렀다. 그렇게 테세우스가 열여섯 살이 되었다. 그는 아버지를 닮아 유난히 힘이 세고 영리한 청년으로 성장했다. 특히 그의 레슬링 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나날이 발전했는데, 트로이젠에서는 아무도 그를 당할 자가 없었다. 오죽했으면 외조부 피테우스 왕이 손자를 보고 포세이돈 신의 아들이라고 확신하는 마음이 생겼을까.

청년 테세우스는 몸만 튼튼해진 것은 아니었다. 워낙 어려서부터 영리했으니 단순한 지적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무언가가 불완전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에게는 왜 아비가 없는지 궁금했다. 테세우스에게 사춘기가 왔던 것일까? 아니다, 그것은 근본에 대한 당연한 물음이었다.

테세우스는 가장 확실한 답을 알고 있는 어머니 아이트라에게 물었다. 아이트라는 오래전 아이게우스가 말한 때가 되었음을, 아들과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했다.

아이트라는 아들의 손을 이끌고 옛날 아이게우스가 떠나면서 일러두었던 섬돌 앞에 서서 아들에게 섬돌을 들어보도록 했다. 그러자 테세우스는 조금의 망설임 없이 간단하게 돌을 들어 올리고 그 밑에 있던 아테네 왕가의 칼과 아버지 아이게우스가 신었던 가죽신을 발견했다. 아이트라는 칼과 가죽신을 아들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너의 아버지는 아테네의 아이게우스 왕이시다아버지를 찾아 뵈어라! 이 칼과 신발이 그 신표이다.”

어머니로부터 자초지종을 전해 들은 테세우스는 아버지가 자신을 아주 버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테네의 정당한 왕위계승권이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까지 깨달았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아마도 그리운 아버지를 만나봐야겠다는 마음이 훨씬 더 컸을 것이다.

테세우스는 그리 오래 망설이지 않았다. 아버지가 남겨준 가죽신을 신고 아테나 왕가의 문장이 새겨진 칼을 찬 채 아버지와의 만남을 향해, 아테네를 향해 길을 나서기로 했다. 칼집의 칼은 제 소명을 다하기 위해 트로이젠 최고의 대장장이가 이미 벼려 놓은 상태였다.

당시 육로에는 흉포한 도적 떼가 빈번하게 출몰하여 길손의 목숨을 빼앗고 재물을 약탈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머니 아이트라뿐만 아니라 외조부 피테우스 왕은 한결 가깝고 수월한 바닷길로 갈 것을 권유했다. 그러나 용기백배 열혈청년 테세우스는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처음 만나게 될 아버지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해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육로를 택하기로 마음먹었다. 자신도 당시 한창 이름을 떨치던 헤라클레스처럼 그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영웅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테세우스도 이 여행이 무척이나 멀고 험한 여행이 될 것이며, 한편으로 자기 자신을 온 세상에 증명할 좋은 기회가 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2

때는 그리스 전역에 있는 도둑 떼를 닥치는 대로 잡아들이던 헤라클레스가 자신의 손에 너무 많은 피를 묻힌 것 때문에 죗값을 치르느라고 옴파로스 땅의 옴팔레 여왕 밑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을 즈음이었다. 세상은 헤라클레스의 오랜 부재로 다시 도둑 떼가 날뛰고 있었다. 헤라클레스는 도둑을 죽여도 꼭 그 도둑이 나그네를 죽이던 방법으로 죽이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는 일찍이 종살이를 하기 전, 나그네를 잡아 제물로 쓰던 부시리스라는 도둑을 죽일 때는 잡아서 제물로 썼고, 씨름 겨루기로 나그네를 죽이는 안타이오스를 만나서는 씨름으로 온몸을 부러뜨려 죽였다. 또 박치기의 명수 테르메로스는 박치기로 머리를 깨뜨려서 죽였다. 못된 짓거리를 뜻하는 테르메로스의 장난(Termerian Mischief)’이라는 말은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헤라클레스의 열혈 팬, 테세우스는 어떻게 했을까? 팬은 인기스타를 따라 하기 마련이다. 테세우스도 아버지를 찾아 떠난 여행길에서 만나는 도둑들을 죽일 때면 헤라클레스가 하던 대로 똑같이 하게 된다.

테세우스가 첫 번째 도적을 마주친 곳은 에피다우로스라는 도시였다.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신전과 경기장이 있는 아담한 도시였지만, 그곳에는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의 아들인 야만인 페리페데스라는 자도 살고 있었다. 아버지가 만들어 준 쇠막대인지 청동곤봉인지를 늘 가지고 다니면서 도적질을 일삼았던 이 야만인은 테세우스를 보자마자 늘 하던 대로 이 몽둥이를 휘둘렀다. 그러나 결과는 여느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단 한 번에 페리페데스를 패대기친 테세우스는 몽둥이를 빼앗아 야만인이 남들에게 한 것처럼 쳐 죽이고 나서 청동 몽둥이를 전리품 목록 제일 상단에 올려놓았다. 그때부터 테세우스는 항상 이 청동 몽둥이를 지니고 다녔다. 마치 헤라클레스 코스프레처럼.

다음으로 만난 악당은 코린토스 지방의 시니스라는 거인이었다. 이 거인은 지나가는 사람을 불러 큰 전나무 구부리는 일을 도와달라고 부탁한 후, 나무가 끝까지 다 휘어 팽팽하게 되면 얼른 그 나무를 놓아버렸다. 그렇게 되면 멋모르고 그를 도와주던 사람은 하늘 높이 내던져져 결국 온몸이 박살 나게 된다. 테세우스는 시니스가 즐기던 이 수법을 그대로 적용하여 그를 죽였다. 시니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아름다운 딸이 있었는데 잘생기고 듬직한 테세우스를 사랑하게 된 이 처녀는 테세우스를 유혹하여 그의 아이까지 임신하게 되었다. 테세우스도 그녀를 진정으로 좋아했던 것 같다. 테세우스는 훗날 이 처녀가 좋은 남편을 만나 잘 살도록 끝까지 돌봐주었다.

테세우스의 세 번째 업적은 페리페데스로부터 획득한 몽둥이를 사용해서 흉악한 멧돼지를 처치한 일이었다. 이 멧돼지는 암퇘지로 인근 지역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그것을 막아서는 농부들을 무참히 죽여 모든 사람의 근심거리가 되고 있었다. 테세우스는 막다른 길목에서 이 짐승과 맞닥뜨리자 대번에 문제의 그 암퇘지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정수리를 향해 청동 몽둥이를 휘둘렀다. 딱 한방이면 충분했다.

네 번째 과업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에서 이루어졌다. 이 절벽에는 스케이론이라는 노상강도가 살고 있었는데, 이 불한당은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아다가 절벽을 등지게 하고 자신의 발을 씻도록 강요한 후, 수틀리면 발로 걷어차서 절벽 아래 바다에 떨어뜨려 죽여왔다. 절벽 밑에는 항상 굶주려 있는 늙은 거북이 한 마리가 큰 입을 벌리고 있다가 떨어진 사람을 잡아먹었다. 이 강도도 자기가 했던 똑같은 방법으로 테세우스에게 죽임을 당했다.

다섯 번째는 레슬링이었다. 아테네에서 멀지 않은 메가라(혹은 엘레시우스)라는 곳에 이른 테세우스는 이곳의 왕 케르키온과 레슬링 시합을 해야 했다. 이 왕은 자신은 결코 패배를 모르는 레슬링 선수라고 자부했다. 그는 자신과 시합을 벌여 패배한 사람을 죽이는 재미로 사는 폭군 중의 폭군이었다. 테세우스는 이 왕을 백드롭이나 헤드록 같은 다양한 레슬링 기술을 써서 때려눕힌 후 다시 길을 떠났다. 레슬링이라면 테세우스의 가장 큰 장기였던 것을 케르키온은 알 리가 없었다.

메가라에서 아테네로 향하는 마지막 노정에서 테세우스는 마침내 이 여정의 최악의 악당, ‘프로크루스테스(Procrustes)’와 만나게 된다. 프로크루스테스는 나그네를 들이고는 자신의 침대까지 안내해 침대에 눕게 했는데, 침대보다 키가 작은 사람은 흠씬 두들겨 침대 길이 만큼 늘여서 죽이고, 침대보다 키가 큰 사람은 침대 밖으로 나온 머리나 다리를 잘라내어 죽이는 사이코패스였다. 그의 이름도 바로 이 엽기적인 행각에서 비롯되었다. 프로크루스테스란 바로 잡아 늘이는 자또는 두드려서 펴는 자를 뜻한다. 테세우스는 이 엽기 연쇄살인마도 지금껏 유지해온 원칙을 지켜 그 방식대로 죽였다. 이 일화에서 무언가를 자신만의 기준대로 억지로 끼워 맞춰놓은 것을 이르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Procrustean Bed)’라는 말이 생겼다.

, 이 정도면 자신을 충분히 증명했다고 할 수 있을까? 친자 증명을 넘어서서 왕위를 계승할 자격을 갖춘 후계자임을 증명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테세우스는 무사히 아테네 궁전에 입성하여 그리운 아버지를 만나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을까?

그보다 앞서, 그들이 비록 살인과 강도를 일삼는 무작배기, 무뢰한이었다 하더라도 테세우스 자신의 손에 묻힌 피의 죗값이 가볍지 않은데, 이대로 괜찮을 것인가?

 

3

발 없는 말()이 말 없는 발()보다 빠르다고 했던가, 그의 영웅적인 행적에 대한 소문은 그보다 앞서 아테네에 도착했다. 테세우스가 아테네 국경에 이르렀을 때 척 보아도 내공이 심상치 않아 보이는 현자 몇 명이 테세우스 앞을 가로막았다.

우리나라를 찾은 당신은 아티카 사람들의 근심거리를 말끔히 해결해 주었구려. 그러나 당신의 이 업보는 어쩌겠소, 이 늙은이 말대로 따라줄 수 있겠소?”

당시 그리스에는 남자가 죄를 닦을 때 여장을 하는 풍습이 있었더랬다. 테세우스는 무슨 말인지 짐작하고, 자신이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검은 피얼룩이 아직 남아 있었다. 그때 수염이 가장 희고 무성했던 현자가 테세우스에게 옷 한 벌을 내밀었다. 소박한 여인의 옷이었다. 이렇게 해서 테세우스는 자신의 죗값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서 여장을 한 채 아테네의 국경을 넘게 되었다.

여장한 테세우스가 아폴론 신전 옆을 지날 때였다. 가옥의 지붕을 수리하던 아테네 사람 한 명이 그를 보고 여인에게 희롱하듯이 하대하며 수작을 부리는 것이 아닌가. 어이없던 테세우스는 아무 말 없이 근처에 정차에 있던 우마차 쪽으로 가더니, 묶여 있는 황소 두 마리를 멍에에서 풀어, 차례로 공중으로 집어 던졌다. 황소는 지붕보다 더 높이 솟아올랐다가 떨어졌고, 그 충격으로 즉사하고 말았다. 그 광경에 화들짝 놀란 아테네 사람도 지붕에서 떨어졌다. 그 후부터 테세우스를 희롱하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

여기는 아테네의 궁전. 이제는 늙어 기력이 약해진 아이게우스 왕은 이 영웅이 자신의 씨에서 자란 아들인 줄은 모른 채 길손을 대우하는 예로 맞이할 준비를 했다. 그러나 아테네의 왕실에는 테세우스의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바로 아이게우스의 후처 중 한 명인 악녀 메데이아(Medeia)’였다.

메데이아는 당대를 호령한 또 다른 영웅이었던 이올코스의 이아손(Iason)’과 끔찍하게 헤어진 뒤, 도망쳐 나와 아이게우스의 아내가 되어있었던 차였다. 왕비 메데이아는 자신이 낳은 아들 메도스가 왕좌를 물려받게 하려고 가장 강력한 경쟁자가 될 테세우스를 해치울 계획을 세웠다. 그녀는 테세우스가 선동을 일삼는 왕의 동생 팔라스와 한통속이라고 이미 총기가 많이 사라진 남편 아이게우스에게 거짓으로 말했다. 그리고는 테세우스를 시켜 당시 아티카 동쪽의 마라톤 지방을 소란하게 하던 괴물 황소를 잡아 오게 하라고 왕을 부추켰다. 이때 메데이아는 자신의 장기인 마법을 사용했다.

아버지와의 만남을 간절하게 고대했던 테세우스는 실망하지 않았다. 이 또한 자신을 증명하기 위한 추가된 과업이라고 생각했다. 괴물 황소와 대결해서 살아 돌아온 사람은 그때까지 아무도 없었지만, 테세우스는 오래지 않아 이 괴물을 산 채로 잡아 와 성대한 제의의 희생 제물로 바쳤다.

악녀 메데이아는 첫 번째 계획이 실패로 돌아간 것을 알자,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두 번째 테세우스 제거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테세우스의 공훈을 축하하기 위해 마련된 연회석상에서 메데이아는 아이게우스 왕에게 독이 든 포도주잔을 건네주며 무서운 황소를 무찌른 이 용감한 용사에게 전해주라고 말했다.

저 사람은 당신에게 두고두고 우환거리가 될 거예요. 팔라스 일가와 손잡고 당신을 해하려 들면 저도 어쩔 수 없어요. 왕께서는 걱정거리를 미리 없애셔야 해요. 자요, 여기 이 포도주를 상으로 내리시기만 하세요.”

그 말을 옳게 여긴 아이게우스 왕이 가득 찬 포도주잔을 들어 올리며 뜻을 전하자, 테세우스가 왕이 하사하는 포도주잔을 건네받기 위해 아버지 앞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돌아가는 상황으로 봐서는 메데이아의 사악한 의도가 실현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테세우스가 독배를 받아들고 막 마시려던 순간, 아이게우스는 이 영웅이 차고 있는 칼이 바로 예전에 자신이 징표로 트로이젠 땅 아이트라 공주에게 맡겨놓은 칼임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동시에 영웅이 신고 있는 가죽신 쪽으로 눈을 돌렸다. 비록 세월의 때가 묻어 낡고 거칠었지만 낯설지 않았다.

자랑스러운 아들을 만난 아이게우스 왕은 가눌 수 없는 기쁨에 두 팔로 테세우스를 격렬하게 껴안았다. 다행스럽게도 그의 두 팔에는 딱 그 정도의 힘이 남아 있었다. 이 바람에 독배는 테세우스의 손에서 떨어져 와장창 깨지고 말았다. 동시에 메데이아의 사악한 계획도 흩어진 독 포도주처럼 엎질러진 물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 부자지간의 상봉은 많은 위기를 극복하고 우여곡절 끝에 이루어졌고, 마녀 메데이아의 음모는 백일하에 드러났다. 그녀는 아들 메데스와 함께 아테네에서 추방되어 동쪽에 있는 아시아 땅으로 쫓겨갔다. 후일 메데이아는 그곳에다 나라를 세우는데, 이 나라가 바로 구약성서메데라고 부르는 뒷날의 페르시아이다.

테세우스는 숙부 팔라스와 그의 아들들까지 축출하고, 아이게우스 왕의 적통으로서 모든 아테네 국민 앞에 아테네 왕자로 당당히 인정받게 되었다. 바야흐로 아테네는 태평성대를 이루었다.

그러나 테세우스에게 있어 지금까지의 모험은 앞으로 다가올 더 큰 위험의 전주곡에 불과했다. 다가오는 위험은 단순히 도적을 물리치고 짐승을 퇴치하는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아직 치러야 할 진짜 시험이 남아 있었다.

 

4

시계를 조금만 뒤로 돌려 테세우스가 태어나기 전으로 잠시 다녀오자. 한 세대 앞, 당시 그리스 일대 가장 강력한 국가였던 바다 건너 크레타의 미노스(Minos)’ 왕에게는 골칫거리가 하나 있었다. 자신의 아내 파시파에가 간통으로 낳은 반은 소이고 반은 사람인 괴물 미노타우로스(Minotauros)’가 바로 골치를 아프게 하는 화근이었다. 미노타우로스는 미노스의 황소라는 뜻이다.

미노스 왕은 다이달로스가 지어 준 미궁에 미노타우로스를 가두고 강대국의 왕으로서 인근 아테네에 명령을 내려 미노타우로스의 먹이로 쓸 제물을 보내라고 했다. 이미 미노스 왕과의 전쟁에서 참패를 당했던 약소국 아테네의 왕 아이게우스는 이를 거절할 수 없었다.

그때부터 아테네는 해마다 일곱 명의 여자와 일곱 명의 남자를 크레타로 보내야 했다. 아테네 왕은 때가 되면 아테네에 있는 모든 사람의 이름을 적어 그릇에 담아 놓고, 제비뽑기로 열네 명의 희생자를 뽑았다. 제비뽑기 철이 돌아오면 아테네 전역은 비통함으로 가득 찼다. 몇 차례 그렇게 아테네 사람들이 제물로 크레타로 보내지고 있을 때, 아이게우스 왕과 편모슬하에서 반듯하게 장성한 테세우스 부자가 우여곡절 끝에 상봉하게 되었던 것이다.

부자간의 이루지 못한 정을 나누던 어느 날 아테네의 왕자 테세우스가 바닷가를 거닐고 있었다. 그날은 그의 열여덟 번째 생일이었다. 한가롭게 산책을 하던 테세우스는 바닷가에서 슬피 울고 있는 아테네 사람들과 모래 위에 정박해 있는 검은 색 돛을 단 배를 발견했다. 상가의 표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초지종을 모두 알게 된 테세우스는 분노했고 한탄했다. 그는 스스로 희생자 무리에 끼어 크레타로 건너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미노스의 부당함을 바로잡고자 결심했다.

어떻게 해서 되찾은 아들인데 다시 사지로 몰아넣을 수 없었던 아버지 아이게우스는 아들을 말렸다. 그러나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불같은 테세우스의 결심은 확고했다. 하물며 자기 나라와 자기 백성에 관한 것이라면 더 말해 무엇하랴.

테세우스는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아테네 인들 구출에 성공하면 검은 돛을 흰 돛으로 바꾸어 달고 돌아오겠다는 굳은 약속과 함께 기어이 크레타로 향하는 배 위에 올랐다. 떠나는 배 위에는 가려 뽑은 열세 명의 젊은 남녀를 뒤에 두고 테세우스가 망망대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청동 몽둥이를 움켜쥔 그의 손과 팔뚝은 굳은 각오를 웅변하듯 푸르스름한 힘줄이 또렷하게 올라와 있었다.

 

5

미노스 왕은 어김없이 이번에도 아테네의 희생양들이 도착하자 직접 크레타 해안으로 마중 나갔다. 아테네의 왕자까지 왔다니 나가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미노스 왕은 틀림없이 오래전 아테네에서 열다섯 나이에 비명횡사했던 아들, 안드로게오스를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왕의 뒤에는 그의 아름다운 딸 아리아드네가 다소곳하게 따르고 있었다. 그러나 미노스 왕과 달리 테세우스를 알아본 그녀의 눈빛은 가늘게 흔들렸다. 그녀의 심장도 방망이질하듯 뛰었지만 아무도 눈치채진 못했다.

미노스는 테세우스를 포함한 열네 명의 희생자 무리를 손재간으로는 당대 최고인 다이달로스가 만들어 준 크노소스 궁전에 가두었다. 정해진 때가 되면 그들은 미궁으로 던져진 후 괴물의 밥이 될 것이었다.

그러나 테세우스는 그곳에서 희생 제물로 바쳐질 날만을 기다린 것은 아니었다. 이 안에 갇혀 있는 동안 테세우스는 당대 최고의 권력가인 미노스 왕의 통치술을 곁눈질로 배웠고, 가장 앞선 크레타 문명을 몸소 체험하는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되었으며, 미노스의 아름다운 딸 아리아드네를 알게 되었다.

적국 아테네의 왕자를 사랑하게 된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를 그냥 죽도록 내버려 둘 수 없었다. 비록 그가 어찌어찌하여 미노타우로스를 죽인다 해도 어떤 수로 미로를 빠져나올 수 있겠는가. 끝없이 헤매다가 결국에는 지쳐 쓰러져 굶어 죽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건 안될 일이었다.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의 먹이로 던져지게 될 어느 날 이른 저녁, 감옥 주변을 서성이는 수줍은 그림자가 있었다. 테세우스에 대한 연정이 점점 커져 이제 스스로 그 감정을 제어할 수 없었던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를 살릴 확실한 방법을 알고 있었다. 밤이 깊어지면 사랑하는 테세우스는 미노타우로스의 먹이로 던져질 것이므로 그 전에 행동해야 했다. 아리아드네는 어두워지기 전 시종의 도움을 받아 횃불과 청동 몽둥이, 그리고 털실 한 뭉치를 가지고 감옥으로 찾아가 테세우스에게 건네주었다.

이 횃불로 길을 밝히세요. 그리고 이 털실 한쪽 끝을 미로 입구 기둥에 묶고 돌아올 때 이정표로 삼으세요. 소저는 그대를 위해 아버지를 배신한 몸, 떠나실 때 저도 함께 데려가 주세요. 저의 바람은 그것뿐입니다.”

아리아드네는 돌아갔고 드디어 시간이 되었는지 테세우스와 열세 명의 젊은이들은 험악한 간수들에게 이끌려 미궁의 입구에 다다랐다. 간수들은 아리아드네 공주의 부탁으로 테세우스의 손에 들린 청동 몽둥이를 보고도 눈감아 주었다. 간수들은 그깟 몽둥이쯤으로 생각했고, 미노타우로스에겐 무용지물이라고 여겼으며, 공주로부터 받아 챙긴 금화의 대가치곤 하찮은 배려라고 생각했다. 간수들은 털실의 존재까지는 눈치채지 못했으리라.

간수들은 테세우스 일행을 입구 너머로 밀어 넣고 철커덩청동 문을 닫고 사라졌다.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가 일러주는 대로 털실 한쪽 끝을 기둥에 묶고 털뭉치를 술술 풀어가며 미궁 안으로 들어갔다. 꼬불꼬불 어디가 어딘지 작은 횃불 하나로는 분간하기 힘들었다. 오늘따라 별도 달도 빛을 내지 않았다. 그나마 군데군데 벽에 붙은 촛대 받침에서 타고 있는 불빛이 있어 다행이었다.

얼마쯤 들어갔을까, 테세우스는 희미하게 짐승의 울부짖음을 들었다. 괴성은 갑자기 가깝게 들리다가도 다시 멀어지고 또 바로 옆에서 나는 것처럼 크게 들리기를 반복했다. 가까이 들릴 때는 거친 숨소리마저 느껴졌다. 뛰어오는 소리와 벽을 긁는 소리에 소름이 돋았다.

테세우스는 두 손으로 청동 몽둥이를 부여잡고 만약의 상황에 대비했다. 발길에 부딪히는 유골들, 뚫린 천장을 통해서 들려오는 밤 까마귀의 울음소리가 분위기를 더욱 스산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복잡한 미로를 좌측으로 우측으로 헤매길 계속하는데 갑자기 고막 찢어지는 비명이 들렸다. 행렬 뒤에서 첫 번째 희생자가 난 것이다.

재빨리 뒤쪽으로 달려간 테세우스는 드디어 괴물과 맞닥뜨렸음을 알았다. 뒤이은 젊은이 하나가 소리 난 쪽으로 횃불을 드리우자, 미노타우로스가 첫 번째 희생자의 다리 한쪽을 마저 입에 넣고 있었다.

갑자기 거센 바람이 불더니 들고 있던 횃불과 벽에 붙어 있던 불들을 꺼뜨려 버렸다. 갑작스러운 암흑, 테세우스는 미노타우로스가 있는 쪽으로 냅다 달려나갔다. 상대도 그를 향해 괴성을 지르며 뛰어오고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이때다 싶어 청동 몽둥이를 뒤로 제쳤다가 힘차게 휘둘렀다. 타격감이 테세우스의 손에 진동을 주었다고 생각한 찰나, 아테네 사람들은 소리와 함께 털썩하고 주저앉는 소리를 들었다.

그중에 한 명이 어디서 횃대에 불을 붙여 가져왔다. 그 순간 테세우스가 왼손으로 아직 숨통이 끊어지지 않은 미노타우로스의 뿔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몽둥이를 들어 올려 짐승의 대가리를 강타했다. 괴물은 죽었고 아테네의 젊은이들은 테세우스를 연호하며 진정한 영웅의 탄생을 지켜보았다.

구름에 가려진 셀레나가 어둠을 밝혔다. 테세우스는 꾸물거릴 겨를이 없었다. 테세우스는 일행들과 함께 거의 풀리다 싶은 실뭉치를 들고 늘어진 실을 따라 왔던 길을 되짚어 서둘러 미로를 빠져나갔다. 미로의 입구에는 약속대로 아리아드네가 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까지가 오늘날 우리가 복잡한 상황을 헤쳐나가거나 난해한 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실마리를 흔히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라고 부르게 된 유래이다.

실뭉치를 이용하는 방법을 생각한 것이 다이달로스였는지 아니면 아리아드네였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아무래도 전자의 견해를 따르는 것이 맞을 듯싶다. 비록 다이달로스가 아테네에서 죄를 짓고 미노스 왕의 보살핌을 받고 있었지만, 고국에서 온 왕자를 흉측한 괴물의 한 끼 식사 거리로 내버려 둘 수는 없었을 것이다. 설혹 괴물을 죽인다 해도 자신이 지은 미궁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죽게 될 것을 그가 모를 리 없었다. 그렇게 된다면 테세우스의 죽음에 자신의 책임이 가볍지 않게 되는 것이고, 조국을 두 번이나 배신한 반역자로 영원토록 손가락질을 당할 것이 분명했다. 이후 미노스 왕이 취한 행동을 보면 그도 아마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테세우스는 미궁에서 나오자마자 야밤을 틈타 아리아드네와 아테네의 젊은이들과 함께 크레타를 빠져나와 아테네로 향했다. 아리아드네가 미리 손을 써 탈출선을 준비해 두었고, 미노스 왕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테세우스가 탈출선에 오르기 전 일행들과 함께 크레타의 모든 함선의 바닥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 놓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신출귀몰할 기습작전 탓에 바다의 지배자 미노스는 달아나는 테세우스 일행을 눈뜨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테네 사람들은 테세우스의 생부일지도 모를 막강한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이 젊은 영웅을 도와주었을 것이라고 즐겨 이야기했다.

이후 아테네의 전설적인 왕이 될 테세우스가 이룬 이 바다에서의 성공담이야말로 B.C. 6세기에 아테네가 농업국에서 해양국으로 발돋움하여, 오래전부터 크레타의 미노스가 장악해 왔던 에게해의 패권을 탈취하는 데 자극제가 되었다.

 

6

테세우스 일행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잠시 휴식을 위해 낙소스 섬에 들렀다. 그런데 테세우스는 그곳에 아리아드네를 홀로 남겨두고 떠났다. 이를 두고 혹자는 테세우스가 이제 쓸모없어진 그녀를 버린 것이라고도 하고, 혹자는 아리아드네를 보고 아내로 삼으려고 디오니소스 신이 개입한 것이라고도 이야기했다.

그러나 테세우스는 비록 그녀의 도움으로 괴물을 죽이고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지만, 그것은 감사할 일일 뿐 사랑으로 보상할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 아닐까. 사랑은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강요한다고 해서 이뤄지는 법이 아니다. 하물며, 천륜과 인륜까지 저버린 물불 가리지 않는 사랑은 위험할 수도 있다. 테세우스는 그 점을 우려했던 것일 게다.

테세우스 일행을 태운 배는 며칠을 더 항해해 해가 떠오를 때쯤 아테네의 항구에 닿았다. 그런데 테세우스는 너무 서둘렀던 것일까, 아니면 낙소스(Naxos)섬에 아리아드네를 떼어놓고 온 것에 대한 죗값이었을까, 그만 검은 돛을 흰 돛으로 바꾸는 것을 까맣게 잊고 말았다. 개선장군과 같은 자신의 귀향에 모두가 기뻐할 줄 알았는데, 많은 사람이 슬피 우는 것에 테세우스는 불길함을 느꼈다.

불길한 예감이 늘 그러하듯이 테세우스의 예감도 적중하고 말았다. 아버지 아이게우스 왕이 배의 검은 돛을 보고, 자신의 사연 많은 아들이 죽었음을 확신하고 실의에 빠져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진 것이다. 이 일로 해서 테세우스는 생각보다 빨리 아테네의 왕이 되었고 아버지의 죽음을 기려 아테네 주변의 바다를 에게해라고 이름 지었다. 에게해는 아이게우스의 바다라는 뜻이다.

아테네 국민은 너나 할 것 없이 머나먼 크레타에서 이루어낸 테세우스의 영웅적 업적에 열광했다. 자신의 예상보다 빨리 왕이 된 테세우스는 민중들로부터 얻은 막강한 권력과 신망을 이용하여 정치적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자치권을 가지고 있던 아티카 지방의 많은 도시를 흡수하여 아테네를 그 중심으로 만들었다. 이것은 아테네가 후에 고대의 가장 중요한 도시국가로 성장하는 토대가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에 따르면 테세우스는, 혼자서 통치하는 군주제를 포기하고, 민주주의를 지향한 최초의 통치자였다.

 

7

테세우스와 익시온(Ixion)’의 아들 페이리토오스의 예사롭지 않은 우정도 짚고 넘어가야겠다. ‘페이리토오스(Peiritoos)’걸어서 다니는 자라는 뜻이다. 이들의 우정은 거의 모든 브로맨스의 효시로 어린 애들처럼 싸우면서 싹텄다.

한 번은 페이리토오스가 마라톤 평원을 침범하여 아테나 왕 테세우스 소유로 되어있는 소 떼를 끌고 가려 했다. 그는 날이면 날마다 테세우스의 영웅적 업적에 대하여 귀가 따가울 만큼 들어왔던 타라 그가 얼마나 대단한 영웅인지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어 일부러 도발했더랬다. 테세우스 왕은 자기의 재물을 지켜야 했으므로 이 약탈자를 퇴치하러 출정했다.

그런데 여기서 짚고 갈 것이 하나 있다. ‘소 떼 훔쳐 가기는 당시 명문가의 젊은이들이 즐겨 했던 일종의 레저 활동 중 하나였다는 것이다. 아예 명칭을 소 떼 몰고 가기라고 해야 할까, 이는 마치 숲속에서 들짐승을 사냥하는 것을 나쁘지 않게 보았던 것과 비슷하다.

들판의 소 떼를 성공적으로 몰고 자신들의 영토에 부려 놓으면 도적질했다고 손가락질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자랑거리가 되었다. 원래의 소 떼 주인이 그런 약탈(?) 행위를 미리 막거나, 나중에 되찾아 오면 그만인 것이다. 그러나 놀이에도 항상 정도가 있는 법, 그게 지나치면 간혹 불상사가 일어나기도 했다. 이 시대에 이런 짓을 했다간 대번 절도죄를 입건되겠지만, 당시의 상황을 지금의 잣대로 보면 신화 읽기가 고달프게 되니, 이해하고 넘어가자.

여기는 다시 테세우스와 페이리토오스가 대치하고 있는 들판. 테세우스가 평원에 도착한 후, 얼마 되지 않아 페이리토오스를 발견하고 추격에 나섰다. 페이리토오스는 자신이 유리한 지형까지 테세우스를 유인했다고 생각한 순간, 말머리를 돌려 테세우스와 합을 겨루기 시작했다. 그러나 좀처럼 결론이 나지 않았다. 잠시 뒤로 물린 두 영웅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에게 매료당했다.

지금까지 적으로 마주했던 두 사람은 지금까지 있었던 전투와는 다른 공기 냄새를 맡았다. 마주한 지 오래지 않아 말로만 듣던 위풍당당한 테세우스의 모습에 경탄한 페이리토오스는 화평을 제안하는 표시로 오른손을 내밀며 소리쳤다.

대왕의 물건에 손댄 이 사람의 죗값을 마땅히 물어 주시오. 내가 무엇으로 이를 배상하면 좋겠소?”

그러자 아직 영웅의 면모가 남아 있던 테세우스 왕도 화끈하게 화답했다.

그대의 우정이면 충분하다.”

걸어 다니는 자숨겨져 있는 보물을 찾았다고 해야 할까?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우정을 서약했다. 맞잡은 손과 마주치는 눈빛은 이미 십년지기 친구 같았다. 그 후 두 사람은 그때의 서약을 중히 여겼고 이들의 우정은 오래 계속되어 많은 모험을 같이 겪게 된다.

그날 이후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페이리토오스의 결혼식 날이었다. 테세우스도 친구의 청첩을 받고 이 결혼식에 축하사절로 참석했다. 그런데 잔치 도중 켄타우로스(Kentauros)’ 족과 라피타이 족 사이에 큰 싸움이 일어났다. 켄타우로스 족이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다가 페이리토오스의 신부를 겁탈하고 다른 여자들을 납치하는 만행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이때 테세우스는 친구를 도와 수많은 켄타우로스 족을 해치웠다.

 

8

테세우스가 한번은 테베에 간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테세우스는 평소 흠모하던 그리스 최고의 영웅 헤라클레스를 만났다. 사실은 여섯 살 때 한번 본적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주변에서 이야기해준 기억이지 테세우스 자신은 잘 기억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이제 장성하여 아테네 왕의 자격으로 만난 것이니, 진짜 만남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이 만남은 여러 가지로 유쾌한 만남은 아니었다.

헤라클레스, 그날도 포도주를 많이 마시기는 했으나 술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날의 일은 헤라클레스에 대한 노여움이 극에 달한 어머니 신 헤라(Hera)’의 권능 때문이었다.

헤라클레스는 여신의 뜻대로 미쳐 발광한 나머지 자신의 아내와 아이들을 죽이는 씻지 못할 대죄를 저질렀다. , 테세우스가 헤라클레스를 만난 것은 자기 가족들을 죽인 헤라클레스가 어느 정도 제정신으로 돌아온 바로 직후였다. 헤라클레스가 피 묻은 손을 들여다보며 얼빠진 얼굴을 하고 있을 때 테세우스가 사건 현장으로 기척도 없이 들어온 것이다. 참으로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대강을 짐작한 테세우스가 다짜고짜 헤라클레스의 그 피 묻은 손을 덥석 붙잡았다. 테세우스의 손에 그 피가 묻은 것은 물론이다. 헤라클레스는 눈을 부라리며 테세우스를 나무랐다.

이 피는 내가 죽인 내 아내와 내 자식의 피다. 이 피를 그대 손에 묻히면 내가 받을 죗값을 나누어 받아야 한다는 것도 모르는가?”

헤라클레스의 말에 테세우스는 그의 손을 놓지 않고, 더 힘주어 잡으며 대꾸했다.

나는 그대와 더불어 기꺼이 이 죗값을 나누어 치르겠습니다. 그대와 나의 믿음이면 능히 이 죄를 닦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헤라클레스의 손을 이끌고 죄 닦을 방법을 물으러 델포이 신전이 있는 파르나소스산으로 향했다. 테세우스는 아폴론 신이 맡긴 뜻을 물어 헤라클레스의 죄를 씻어주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고 헤라클레스는 신탁을 받았다. 그 유명한 헤라클레스의 열두 가지 과업이 시작된 것이다.

이 일로 헤라클레스는 테세우스로부터 위로를 받았고, 자신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으니 테세우스에게 큰 빚을 지게 된 셈이 되었다. 그리고 그 은혜는 나중에 그에 합당한 보상으로 되돌려 준다.

 

9

테세우스는 앞에서 본 것처럼 헤라클레스의 죄 많은 손을 잡아 그의 죗값을 나누어 가졌다. 그리고 실제로 그 약속을 실천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헤라클레스의 아홉 번째 과업에 동행한 것이다. 아홉 번째 과업이란 적대적인 바다, 흑해 연안의 호전적인 여인족, 아마조네스의 여왕 히폴리테(Hippolyta)’의 허리띠를 가져오는 일이었다.

아마조네스(Amazones)’는 여자들로만 이루어진 종족으로 알려져 있다. ‘없다는 뜻의 유방을 뜻하는 마조스가 결합한 것으로, 그녀들이 활을 쏘는데 거추장스러웠던 오른쪽 유방을 제거한 데서 유래한다. 그리하여 젖가슴이 없는 종족이라는 뜻의 아마조네스라고 이름 붙여진 것이다.

아마조네스는 오로지 종족 보존을 위해서만 이방의 남자들과 일시적으로 관계를 가졌다. 태어난 남자아이들은 내다 버리거나 불구로 만들어 노예로 부려먹었고 여자아이들만 거두어 길렀던 잔혹한 종족이었다. 이들은 이렇게 모계사회를 이루면서 주변국들과 계속 갈등 관계를 유지하였고, 히폴리테 여왕 시대에 이르러 그들의 영향력을 프리기아 지방으로 확대하였다.

이즈음에 헤라클레스와 테세우스가 히폴리테의 허리띠를 손에 넣기 위해 아마존 원정길에 나선 것이었다. 결국, 헤라클레스는 히폴리테의 허리띠를 손에 쥐었고, 그 결과 히폴리테의 아마조네스와 테세우스의 아테네는 전면전에 가까운 전쟁을 벌이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테세우스는 아마존족을 격퇴하고 이 아마존 여왕을 아테네로 데려오는 데에 마침내 성공하였다.

어떤 이들은 그녀가 포로로 잡혀 왔다고 하고, 또 다른 이들은 그들이 서로 사랑하게 되어 자발적으로 왔다고도 하는데, 아무래도 후자가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아마존족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그녀들은 포로로 잡혀간 여왕을 구출하겠다고 아테네로 쳐들어와 이 나라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어떤 이들은 오랜 전투 끝에 결국 아테네가 이들을 무찔렀다고 주장하고, 또 어떤 이들은 서로 평화조약을 맺었다고 전하고 있는데, 이번에도 후자의 편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낫다 싶다. 왜냐하면, 테세우스 왕과 히폴리테 여왕 사이에 아들 히폴리투스(Hippolytus)’가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랑의 증거인 아들 히폴리투스와 평화조약에도 불구하고 히폴리테는 테세우스에게 버림받는다. 그리고 결국 비극적인 최후를 맞게 된다. 아마존족의 이인자 펜테실레이아(Penthe sileia)’가 그녀를 죽이는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10

테세우스는 히폴리테 여왕이 세상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애증의 섬나라 크레타를 치고 그 나라 왕의 누이 파이드라(Phaedra)’를 데려와 두 번째 아내로 삼았다. 당시 크레타는 미노스 왕의 사후, 그의 아들 데우칼리온(Deucalion)’ 왕이 통치하고 있었다.

운명의 수레바퀴가 다시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그렇다, 테세우스는 미노스의 또 다른 딸이자, 자신이 이용하고 버렸던 아리아드네와 자매간인 파이드라를 왕비로 맞은 것이다. 부적절한 정욕의 대명사 파시파에를 어머니로 둔 여인 말이다.

파이드라는 아름답기도 했거니와 개성과 자존심이 몹시 강한 여자였다. 다시 반복되는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파이드라는 의붓아들 히폴리투스에게 연정을 품게 되었다. 그녀는 상사병에 걸려 잠 못 이루는 밤이 늘어가자 하루가 다르게 야위어갔다. 그러나 그녀는 자존심 때문에 전처소생에게 자신의 감정을 고백하지 못하고 있었다. 생기를 잃어가고 있는 여왕을 딱하게 생각한 몸종이 주제넘게도 조심스럽게 말씀을 건넸다.

자존심도 중요하시겠지만, 목숨이 걸린 문제이니 한번 마음만이라도 전해보시지 그러세요.”

파이드라는 그 말을 옳게 여겨, 자존심을 꺾고 애절한 마음을 담은 사랑의 편지를 히폴리투스에게 보냈다. 그러나 히폴리투스는 이성이든 동성이든 연애감정과는 담을 쌓고, 오로지 자신의 몸을 수련하고 지식을 갈구하기에도 바빴던 청년이었다. 하물며 의붓어머니라니! 의붓아들의 반응은 냉담하지 못해 야멸찼다. 청년은 다음과 같은 송곳 같은 말로 계모의 접근을 거부했다.

더러운 말을 듣지 않은 것으로 하듯이, 이 더러운 글은 보지 않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파이드라의 연서를 들고 갔던 몸종은 돌아와서 히폴리투스가 한 말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자신의 주인에게 고했다.

파이드라의 길잃은 사랑은 증오로 변했다. 그녀는 남편 테세우스 왕 앞으로 한 통의 편지를 남기고, 잠옷을 갈가리 찢은 다음 알몸상태로 자결했다. 그 편지에는 히폴리투스가 자신을 욕보이려 했다는 거짓 내용이 적혀 있었다.

당신의 아들, 히폴리투스를 벌하소서. 당신이 집을 비운 사이 히폴리투스가 제 어미와 다름없는 저를 능멸하고 희롱했습니다. 이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참을 수 없고, 저는 히폴리투스 같은 하늘 아래, 같은 지붕 아래 살 수가 없답니다. 부디 먼저 가는 저를 용서하소서!”

이 편지를 읽고 분노를 참지 못한 테세우스는 아들을 나라 밖으로 추방한 것도 모자라, 자신의 아버지일지도 모르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대신 복수해 달라고 빌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바람이 적잖이 불던 어느 날, 패륜아로 낙인찍힌 히폴리투스가 이륜차를 몰고 해변을 달리고 있을 때였다. 히폴리투스의 얼굴빛만큼이나 스산하게 어두운 정오 무렵이었다. 바닷바람이 거세지더니 잔잔했던 바다에 파도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귀청을 파고드는 굉음과 함께 파도를 헤치고 거대한 바다 괴물이 뛰쳐나와 달리던 말을 기겁하게 했다. 깜짝 놀란 백마가 발광하며 날뛰자 고삐가 올리브 가지에 걸리면서 이륜차는 산산조각이 났고, 히폴리투스는 고삐에 온몸이 감긴 채 큰길로 나뒹굴었다. 억울한 히폴리투스는 이 사고로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때 히폴리투스의 나이는 겨우 열네 살에 불과했다. 이렇게 비참한 운명의 충격은, 종종 당사자들이 아닌 다음 세대의 자손들을 향해 거대한 해일처럼 닥치곤 한다.

당시 히폴리투스는 아르테미스 여신을 섬기고 있었는데, 이 억울한 죽음을 가엽게 여겼는지 아르테미스는 명의 아스클레피오스를 시켜 히폴리투스를 되살렸다. 아르테미스는 이 히폴리투스를 의심 많은 아버지의 권력에서 해방시키고자 이탈리아로 데려가 에게리아라고 하는 요정에게 보호를 맡겼다.

암튼 이 의붓아들에게 사랑을 느낀 파이드라 이야기에서 심리학 용어가 하나 생겼다. 어머니가 아들에게 사랑을 느껴 비극적 결말을 맞게 되는 것을 일컫는 파이드라 콤플렉스(Phaedra Complex)’라는 말, 바로 이 이야기에서 유래된 것이다.

 

11

떠돌이 영웅 페이리토오스가 친구를 찾아 아테네로 온 것은 테세우스가 후처 파이드라를 잃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그런데 페이리토오스는 왕비와 아들을 잃고 상실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테세우스 왕을 위로한답시고 엉뚱하다 못해 황당한 제안을 했다.

제우스 신의 딸이 천하의 미인이라고 합니다. 쌍둥이들의 누이 헬레네(Helene)’ 말입니다. 이 처녀를 데려다 부인으로 삼으세요.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헬레네? 그녀는 신화의 시대를 통틀어 그리스 최고의 미녀로 알려진 여인이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인정한 천하일색이다. 그녀의 미모 때문에 저 유명한 트로이 전쟁이 발발하지 않았던가. 더구나 으뜸 신 제우스의 딸이면서 쌍둥이 영웅인 카스토르(Castor)’폴리데우케스(Polydeuces)’의 동생이었다. 함부로 추근댔다가는 뼈도 못 추릴 상황이 전개될 것이 뻔한 제안을 페이리토오스가 위로랍시고 하고 앉아 있는 것이다.

그런데 더 가관인 것은 테세우스의 태도였다. 친구의 제안에 덧붙여 페이리토오스에게도 제우스 신의 딸을 신부로 맞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이런 터무니 없는 제안에 그가 맞장구를 치다니, 이것도 영웅의 특권인가? 그리스 로마 신화에 정통한 이윤기 선생은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영웅 열전 Ⅰ」 테세우스 편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영웅에게는 상승과 하강의 주기가 있다. 영웅도 때가 되면 쓰러진다. 외부의 적에 의해 쓰러지기도 하고 내부에서 싹트는 오만에 휘둘리다 쓰러지기도 한다. 오만이 부주의를 부추기는 것이다.>

테세우스는 오만했고 부주의했다. 부인과 아들을 잃은 상실감이 그것들의 정도를 더했을 수도 있다. 언감생심 제우스의 딸을 납치할 마음을 먹다니, 예로부터 어른들이 말씀하시기를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한다고 했다지만 이 오만은 백 퍼센트 테세우스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할 오만이었다.

제우스의 딸을 아내로 얻고 싶다는 이 두 사람의 공통의 똘끼가 이 오만한 대화를 말장난으로 끝내지 않고 실행에 옮기도록 했다. 테세우스와 페이리토오스는 헬레네를 붙잡아 테게아 땅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당시 테세우스는 쉰 살 중늙은이인데 견주어 헬레네는 고작 열두 살이었다. 테세우스는 고민하는 척하다가 너무 어린 헬레네를 아테네로 데려가는 대신 친구에게 잠시 맡겨두고 헬레네의 나이가 찰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나 헬레네가 납치되고 얼마 안 있어 그녀의 오빠들인 스파르타의 범 같은 쌍둥이 장수, 카스토르와 폴리데우케스가 군사를 이끌고 동생을 찾아 나섰다. 그들이 그리스 반도를 샅샅이 뒤져 헬레네를 구출한 것은 이즈음의 일이다.

헬레네 있는 곳을 쌍둥이 장수에게 귀띔해 준 사람은 아테네 출신 아카데모스였다. 쌍둥이 장수들은 아카데모스의 공을 높이 사 아테네 근방 올리브 숲이 울창한 그의 고향을 아카데메이아(Academeia)’로 명명하고, 아테네를 공격할 때 이 마을만은 공격하지 못하도록 했다. 아카데메이아는 아카데모스의 마을이라는 뜻이다. 후일 플라톤이 여기에다 학교를 세우고 철학을 강의하면서부터 이 땅은 아주 유명해졌다.

그러나 오만한 두 납치범은 헬레네가 오라비들 손에 이끌려 스파르타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페이리토오스는 테세우스에게 이번에는 약속대로 자기의 신붓감을 찾으러 가자고 졸랐다. 페이리토오스는 딱하게도 암흑의 나라 하데스(Hades)’의 왕비 페르세포네(Persephone)’를 골랐다. 페이리토오스, 아무래도 잠시 정신 줄이 외출했었던 게 틀림없다.

테세우스는 위험한 줄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 통이 큰 친구를 위해 함께 하데스가 다스리는 저승으로 물어물어 내려갔다. 곧바로 두 사람은 저승에서 하데스 손에 잡혔다. 하데스는 살아서 땅밑에 내려온 침입자들로부터 내려온 연유를 듣자 그만 자신도 모르게 하고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지하 세계의 으뜸 신, 하데스는 살다 살다 이렇게 어이없는 일은 처음이었다. 암흑의 여왕 페르세포네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데스는 두말하지 않고 침입자들에게 그에 맞는 합당한 벌을 내렸다. 죽음의 궁전 앞 레테의 바위에 앉아 반성 좀 해보라고 한 것이었다. 레테의 바위는 망각의 의자였다. 망각의 강 레테를 건너 저승으로 들어오고도 한이 많아 이승의 일을 잊지 못하는 망령을 위해 마련된 의자였다. 테세우스와 페이리토오스의 이 의자에 앉자마자 땅 위의 일을 까맣게 잊었다. 한낱 인간인 주제에 죽지도 않았는데 저승 세계에 얼쩡거리더니 꼴이 아주 우습게 됐다.

이때 두 짝패에게는 참 다행스럽게도, 열두 가지 과업을 수행 중인 헤라클레스가 마지막 임무를 수행하러 하데스의 나라에 내려와 있었다. 헤라클레스의 마지막 임무는 머리 셋 달린 저승의 파수꾼, ‘케르베로스(Kerberos)’를 지상으로 데려가는 과업이었다. 그는 볼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망각의 의자에 앉아 죗값을 치르고 있는 테세우스를 발견했다. 헤라클레스는 테세우스를 보자마자 예전의 일을 떠올렸다.

내 아내와 자식들 피가 묻은 내 손을 잡아 그 죄를 나누어지고자 했던 테세우스 아닌가? 그대는 필시 그 죗값을 치르느라고 여기 이 망각의 의자에 붙잡혀 있는지도 모르겠구나. 이제 내 손을 잡거라. 내가 그대의 죄를 함께 닦을 차례가 되었다.”

그러나 망각의 의자에 앉아 있는 테세우스가 헤라클레스와 헤라클레스가 말하는 말을 기억할 리 만무했다. 멍하니 그냥 앉아 있을 뿐이었다.

망각의 의자에 한 번 앉으면 그 엉덩이를 뗄 수 없다. 그러나 헤라클레스는 한번 앉으면 영원히 앉아 있어야 하는 망각의 의자에서 무작정 테세우스를 번쩍 들어 올렸다. 그러나 테세우스의 엉덩이는 의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하데스의 권능은 역시 장난이 아니었다. 한차례 실패한 헤라클레스가 소리를 내며 다시 힘을 썼다. 그러자 테세우스의 엉덩이가 의자에서 떨어지는데, 가만히 보니 엉덩이 살은 고스란히 바위에 붙어 있었다. 이때부터 테세우스는, 뾰족 엉덩이로 세상을 나돌아다니지 않으면 안 되었다고 한다. 온 그리스 사람들이 아티카(아테네) 사람들을 뾰족 궁둥이들(Lean bottoms)’이라고 놀려먹는 것도 그들이 대부분 테세우스의 자손들이기 때문이다.

테세우스를 내려놓은 헤라클레스는 이번에는 페이리토오스의 겨드랑이에 두 손을 넣었다. 그러나 그 순간, 시칠리아 밑에 묻혀 있던 거인 엔켈라두스(Enceladus)’*가 돌아눕는 바람에 대지와 함께 저승 땅이 크게 흔들렸다. 이 바람에 페이리토오스의 겨드랑이에 들어가 있던 헤라클레스의 두 손이 쑥 빠지고 말았다. 저승에서는 한번 놓친 손은 다시 잡을 수 없는 법, 헤라클레스는 하는 수 없이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페이리토오스의 초점 없는 표정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알아채지 못한 듯했다.

헤라클레스는 머리 셋 달린 케르베로스를 어깨에 둘러멘 채 테세우스의 손을 잡고 황급히 스틱스강 쪽으로 내달아, 이윽고 저승문을 벗어났다. 그때 테세우스 왕은 세상의 빛이 이토록 밝고 좋은 것인지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12

테세우스가 페이리토오스와 함께 지하 세계에서 허송세월하던 사이, 헬레네의 오빠 폴리데우케스와 카스토르는 스파르타 군대를 이끌고 아테네로 진군했다. 무주공산인 아테네를 함락하는 것은 손바닥 뒤집는 일보다 쉬운 일이었다. 두 쌍둥이 장수는 아테네에 새로운 왕을 세우고, 테세우스의 흔적을 지워버렸다. 얼마지 않아 헤라클레스의 도움으로 테세우스가 아테네로 돌아왔지만 이미 그의 영광은 한 줌 기억으로만 남은 뒤였다.

새로 아테네의 왕이 된 메네스테우스는 헬레네를 납치하여 전쟁의 빌미를 제공한 테세우스를 비판하며, 아테네 시민들이 그에게 반감을 품도록 선동했다. 아테네에 테세우스가 설 자리가 없었다.

테세우스의 인생은 숱한 모험과 승리의 연속이었지만 종말은 이토록 슬펐다. 테세우스는 마침내 백성들의 신망을 잃고 아테네에서 쫓겨났다. 하는 수 없이 테세우스는 파이드라의 오빠 데우칼리온이 다스리던 애증의 섬 크레타를 향해 출발했다. 데우칼리온이 그의 보호를 약속했던 것이다.

그러나 테세우스가 탄 배가 길을 벗어나는 바람에 스키로스섬의 왕 리코메데스의 궁전에 몸을 의탁해야 했다. 리코메데스 왕은 처음에는 이제 세월이 흘러 백발이 성성한 늙은 영웅 테세우스를 환대했으나 결국은 등을 돌리고는 그를 죽이고 말았다. 비겁하게도 늙고 힘없는 테세우스를 절벽에서 밀어버렸다.

이렇게 위대한 왕 테세우스는 쓸쓸하고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였다. 아테네 사람들은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인 후, 아테네 젊은이들을 태우고 돌아왔던 탈출선은 잘 보관하여 기념물로 삼았으면서도, 테세우스에 대해서는 좀처럼 과거의 존경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아테네 군대가 마라톤 평원에서 페르시아 군대와 맞붙어 싸울 때 아테네 병사들은 하나같이 그 전투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은 테세우스 덕분이라고 말했다. 아테네 군대가 밀릴 때 테세우스가 자신들과 함께 페르시아 군대에 대항하여 싸우는 환영을 보았다는 것이다.

이 신기한 목격담은 아테네 사람 전체에게 퍼져 이제라도 자신들의 영웅에 대하여 합당한 대우를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에 아테네 장군 키몬(Kimon)’은 스키로스섬으로 건너가 테세우스의 유해가 묻힌 곳을 수소문하였다. 그는 어느 날 하늘을 선회하는 독수리 한 마리가 갑자기 어떤 언덕에 앉더니 부리와 발톱으로 쪼고 할퀴는 것을 보았다. 그 장소를 파보았더니 과연 인골이 발견되었고 기몬 장군은 그 유해를 테세우스의 것이라고 여겨 수습해서 아테네 땅으로 이장했다. 이 유해는 영웅 테세우스를 위해 세운 테세이온이라는 신전에 안치되었다. 그때부터 아테네 사람들은 테세우스를 신처럼 섬겼다.

 

13

테세우스는 반은 역사적인 실제 인물이다. 기록에 따르면 그는 여러 종족을 통합하고 아테네를 수도로 삼아 아티카 땅을 단일 국가로 만들었다. 이 대사업을 기념하여 그는 아테네의 수호신인 아테나 여신을 위해 판 아테네(범 아테네 축제)’를 창시했다. 이 축제가 그리스의 다른 경기와 다른 점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즉 이 축제에는 아테네 사람들만 참가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엄숙한 행진이 축제의 주류를 이룬다는 점이다. 이 행진을 통해 페플론’, 곧 아테나의 성의(聖衣)파르테논 신전으로 운반되어 이 여신상 앞에 봉헌되는 것이다.

신화학자들은 테세우스가 반신반인이었던 헤라클레스와 여러 측면에서 유사하다고 본다. 즉 아테네에 실존했던 역사적 인물인 테세우스를 헤라클레스라는 거울에 반사 시켜 아테네에 적합한 새로운 영웅의 모습으로 재탄생시켰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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