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장 행복한 탐정 시리즈 4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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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탐정 시리즈'의 스기무라 사부로는 재벌의 데릴사위다. '이마다 콘체른'이라는 대기업 오너의 딸과 결혼하면서 남자 신데렐라 같은 삶을 살게 되었지만 소심하면서도 평범한 그는 욕심없는 인물이었다. 흔히 막장 드라마에 등장하는 회사를 차지하기 위해 음모와 배신을 일삼는 유형은 아니라는 거다. 그래서 그가 잘 살길 바랬다. 하지만 작가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속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한 어림없는 소리다.

야마나시 현 작은 산골 마을에서 태어나 대학을 도쿄로 진학했던 스기무라는 아동서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다가 아내를 만났다. 사이에 딸 하나를 두고 오손도손 정겹게 사나 싶었지만 결혼 십 일년만에 이혼한 채 38살의 돌싱으로 살고 있다. 그간의 사건들을 통해 자신의 재능을 발견했던 것은 다행이었을까. 오히려 인생에 독이었던 것일까.

<누군가>,<이름 없는 독>,<십자가와 반지의 초상>을 재미나게 읽었던 내게 <희망장>은 기대하게 만드는 작품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하나의 사건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대신 작가의 선택은 옴니버스식 짧은 추리들로, 마치 일주일간 매일 같은 시간 기다렸다가 <명탐정 코난>을 보는 격이었달까.

어떤 에피소드는 그 결말이 소소했고, 또 어떤 사건의 결말은 엉뚱했다. 인간적으로는 '다행이다' 싶어지는 결말들이었지만 독자로서는 '좀 더 강렬한 결말일 수는 없었나?' 싶어지는 대목이기도 했다. 뭔가 큰 사건이 일어난 것처럼,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것처럼 기대하게 만들었다가 한순간에 훅 바람이 꺼져버리는 격이랄까. 

[성역]의 경우엔 죽은 할머니가 생전과 달리 아주 부유한 모습으로 되살아나 놀란 이웃 주민이 탐정 스기무라에게 의뢰한 사건이었다. 어머니를 빚지게 만들었다는 특정 종교에 심취한 딸의 거취, 사라진 시체, 죽음을 예고하는 의문의 전화.....상상력을 부풀리기에 충분한 일들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생존이 확인되면서 진실은 너무나 쉽게 행운 하나로 그녀의 인생역전이 설명되어져 버렸다.

[희망장]은 요양원에서 늙은 아버지가 내뱉었던 말이 내심 찜찜했던 아들의 의뢰였다. 뉴스를 보고 있던 아버지가 "나는 잘 알아 머리에 피가 올라서 손을 대고 말았다"라는 살인을 암시하는 말을 한 것. 살인자의 아들일지도 모른다는 괴로움 속에서 고민하다가 탐정을 찾아 아버지의 과거를 조사해달라고 의뢰하기 쉽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이 사건 역시 흉악한 과거와 대면하지 않아 좋았다. 약간 김빠지긴 했으나.

[모래 남자], [도플갱어] 역시 <화차>나 <모방범>의 스케일을 기대했던 독자라면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추리소설 매니아라면 '김전일'이건 '코난'이건 가리지 않고 그 재미를 찾아내는 것처럼 큰 범죄가 아니라 이웃의 소소한 의뢰를 해결해나가는 그 모습 속에서도 남다른 재미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약간 김새는 느낌은 어쩔 수 없다. '미야베 미유키'라는 브랜드 네이밍은 어마어마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노련함은 '사건'이 아닌 '사람'에 주목하게 만드는 힘을 발휘한다. 캐릭터로 치자면 소심하고 밋밋한 말 그대로 재미없는 유형인 스기무라를 향해 '행복해졌으면....'하는 응원을 보내게 만드니까. 살아있지도 않은 그에게 친근감을 느끼게 만드는 것. 언제나 '사람'을 잊지 않게 만드는 작가여서 나는 그녀의 글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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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과 강철의 숲
미야시타 나츠 지음, 이소담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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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아름다운 이름의 제목이었더라면....이 서정적인 소설을 한 눈에 알아보게 만들지 않을까. 지금의 제목은 마치 밤하늘 속 반짝이는 작은 별처럼 숨겨져 있는 것만 같아 안타깝게 느껴진다.

2016년 일본 서점 대상 1위 라는 타이틀은 매년 몇몇 책들이 출판될 때마다 봐 왔던 문구라서 새삼스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 꼭 읽어야겠다!! 마음 먹게 된 것은 작가 미야베 미유키의 추천어 때문이었다.  "이 소설의 물처럼 스며드는 듯한 문장에 매료되었다"라는.

 

 

소설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첫문장은 매우 짧았다.

숲 냄새가 났다(p7)

이 짧은 문장만 읽고 잠시 상상해 본다. 거대한 숲 한가운데 있는 커다랗고 검은 피아노 한 대. 떠올려지는 영상은 '피아노의 숲'이라는 애니메이션이었다. 혹시 천재 피아니스트가 등장하는 이야기일까? 하지만 밤이 흐르고 열일곱 살이 되었다는 주인공 '도무라'는 피아노를 연주하는 사람이 아니라 조율하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고2때 담임으로부터 손님을 체육관으로 안내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던 그는 이타도리가 피아노를 조율하는 모습을 본 뒤 자신의 진로를 결정했다. 혼슈에 있는 조율사 전문학교에서 2년간 수학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에토 악기에 취직한 것이다.

 

이사할 때마다 오곤 했던 피아노 조율사를 눈여겨 본 일은 없었다. 가끔 그들이 "요즘 피아노와 달리 아주 좋은 피아노를 소유했다. 울림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건낼때면 피아노를 한 번  흘긋 쳐다봤을 뿐, 조율하는 작업을 유심히 관찰해 본 적이 없었다. 물론 그 앞에서 연주해 본 일도 없다. 어려서부터 당연스레 있던 가구 중 하나(?)처럼 여겼던 악기인 피아노는 더이상 볼 수 없게 된 이후 뒤늦게 그 소중한 가치를 깨달았지만,,,, 곁에 있을 때는 정말 몰랐었다. 이토록 오래오래 그리워하게 될 줄은...오래된 친구였는데 갑작스레 이별하게 될 때까지 소중히 여겨주지 못했던 것 같아 아직도 가슴아프다. 피아노를 떠올리면.

개인적으로 아주 오래된 피아노와 이별한 경험이 있어 <양과 강철의 숲>을 읽게 되면 혹여 눈물이 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생각보다 이야기는 담담하게 읽혔다. 아마 연주자의 이야기가 아니여서일까. <피아노의 숲>보다는 되려 <귀를 기울이면>쪽에 가까운 듯한 이야기 속에서 도무라는 일류 피아니스트를 위한 조율을 꿈꾸는 초보 장인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었다.

 소중하게 보살핌을 받지 못한 피아노는 원래 지닌 음색을 되살리기 어렵기에 수리를 거절당할 때면 이상할 정도로 낙담이 되곤 했다는 도무라만큼 피아노를 사랑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그는 연주를 할 줄 모른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좋은 연주를 할 수 있는지 방법을 알고 있고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위해 개인의 연주법에 따라 맞춤 조율이 가능한 조율사였다. '피아노 앞에 있는 동안에는 시간의 흐름 밖에 있다'(p254)는 한 문장이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는 집중하고 있었고 소리를 손으로 잡아내는 일을 하고 있었다.

 

사람간의 갈등이 드라마틱하게 등장하는 소설은 아니지만 한 권 분량의 책으로 집필된 건 역시 작의 필력 덕분이었을까. 마츠모토 토모의 <kiss>처럼 달달한 스토리와 연주곡들이 소개되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양과 강철의 숲>은 페이지를 넘길 때 마다 이름모를 곡들이 연주되고 있는 듯한 착각으로 귀를 흔들며 읽어야 했다. 어디선가 피아노 소리가 울리고.. 그 소리를 실눈 감고 듣고 있을 도무라가 상상되는 소설 <양과 강철의 숲>은 잔잔했지만 그 감동만큼은 피톤치드 내음처럼 오래오래 남겨질 듯한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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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1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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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탐정 김전일의 명대사처럼 "범인은 이 안에 있다!"를 외쳐야하는 것일까. <고백>을 뛰어넘을만한 후작이 나오지 않아 안타까웠던 작가 미나토 가나에의 신작 <리버스>는 꽤 괜찮은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는 <고백>만큼이나 뛰어난 구성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첫문장부터 독자를 충격에 휩싸이게 했던 <고백>보다는 잔잔하게 시작된다. 그래서 자칫 흔히 보았던 일본 탐정 애니메이션처럼 범인이 있고 이를 밝혀가는 과정으로만 보여질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반전이 등장해 허를 찔린다. 아, 진심으로 놀랐다. 서로가 숨겨왔던 비밀을 모두 털어놓았다고 안심하던 바로 그때 머릿 속을 총알처럼 스쳐지나가는 그 옛날의 그 순간. '아 ! 그를 죽인 것은 그것이었구나!' 내가 후카세였다면 '총맞은 것처럼' 딱딱하게 굳어 소금인형처럼 변해버렸을지도 모른다......한줄기 빛처럼 찾아온 잔인한 깨달음이라니......!

 

 

작은 회사에서 근무 중인 후카세는 단골 커피전문점인 '클로버 커피'에서 현재의 여자친구인 미호코를 만났다. 그 여자친구에게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고 내용은 <후카세 가즈히사는 살인자다>였다. 답변을 요하는 여자친구에게 어디서부터 어떻게 털어놓아야 할까. 삼 년 전 여름에 일어났던 그 사고를.....

 

 

숙부의 별장이 있는 마다라오카 고원으로 놀러가자고 제안했던 무라이는 당일 늦게 오게 되었고 다니하라,아사미,히로사와, 후카세가 먼저 도착하게 되었다. 태풍으로 비가 몰아치던 밤, 고기에 술을 곁들여 먹던 그들에게 전화벨이 울리고 자신을 데리러 오라는 무라이의 재촉에 히로사와가 총대를 지고 출발하게 되었다. 면허가 없던 후카세는 미안한 마음에 커피에 꿀을 타 가는 길에 쉬엄쉬엄 마시며 안전운전하라고 챙겨보냈고 한참 후, 벼랑 아래에서 차는 불타고 히로사와는 빠져나오지 못했다.



아닌 척했지만 그들 모두의 기억 속에 고이 접어두었던 죄책감이 어느날 갑자기 도착한 편지 한 통으로 인해 현재의 삶으로 떠올라버렸다. 정말 그들 중에 이 편지를 보낸 사람이 있는 것일까. 그러고보니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얼마전에 읽은 적이 있다. 역시 일본소설가의 작품이었던 그 소설 속에서는 전화가 걸려오면서 어린시절을 되짚어보게 되는 것이 약간 다르긴 하다. 하지만 그 소설이 괴기스러운 분위기와 공포감을 자극한다면 미나토 가나에의 <리버스>는 궁금증과 함께 풀어내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만든다.

 

 

결국 후카세는 여자친구가 시작한 일임을 발견하게 되면서 그녀의 추억 속 히로사와가 친구인 자신을 얼마나 특별하게 생각하며 챙겼는지 깨닫게 된다. 그리움과 고마움 그리고 미안함이 교차되는 가운데 끝이라고 생각했던 마지막장에서 '꿀'에 대한 기억이 등장하며 단 한 줄로 독자를 180도 뒤집어 버리긴 했지만.



마지막에 준비된 반전이 정말 신의 한 수 였다. 그래서 그간 <고백>에 견줄만한 작품이 없었다는 아쉬움을 <리버스>가 한방에 날려 버렸다. 그보다는 아니지만 그만큼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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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뚜껑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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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과 함께 쌓이는 것들이 있다.

어떤 삶을 사느냐에 따라 쌓여가는 것들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의 문체는 간결하다. 내용도 짧다. 하지만 라이트하게 읽은 것에 비해 남겨지는 것들의 존재감은 강하다. 그래서 <키친> 이후에도 꾸준히 신간을 찾아 읽고 있다. 그 중 최근에 읽은 <바다의 뚜껑>은 휴양지의 달달한 로맨스가 실린 것도, 두 여인간의 치열한 갈등관계가 성립된 것도 아닌 평범해보이는 이야기였지만 역시 인상적인 소설이었다.

 

어쩌면 밋밋해 보일지 모르는 이 소설의 마리는 유별나게 빙수를 좋아하는 젊은 여성으로 우연히 빙수 한 그릇을 먹으러 갔다가 고향으로 귀향할 결심을 하게 된다. 물론 고향으로 돌아왔어도 그녀가 아는 소중한 것들은 하나도 남아 있질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평 남짓한 가게에서 트렌드와 상관없는 심플한 빙수들을 판매하며 소박하게 살고 있었다.

 

 

"힘든 것에 비하면 시간은 아주 금세 지나가고,

거기에는 아주 작은 부분이나마 꿈을 이룬 신비한 반짝임은 분명하게 존재했다"

(p32)

 

 

이곳에 할머니 사후, 재산분쟁의 시끄러움 속을 빠져나온 하지메가 도착한다. 엄마친구 딸인 예쁜 그녀가 살짝 귀찮았던 것도 잠시, 너무 마르고 너무 힘들어 보이는 하지메를 빙수가게로 데려오고 휴일을 함께 보내면서 점점 자매처럼 절친이 되어갔다. 그녀들은. 20대여도, 30대여도, 40대여도 좋을 두 여인의 조합. 이야기의 기-승-전-결의 순서는 어쩌면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을 읽으면서는 그닥 의미없는 찾기인지도 모른다. 이야기의 흐름보다는 그녀가 심플하게 내뱉어놓은 문장, 문장 속에서 명언보다 값진 멋진 표현들을 찾아낼 수 있으므로. 그것만 모아도 바닷가에서 주워 목걸이를 완성하게 되는 조개껍질처럼 수북하게 탑이 쌓인다.

 

 

"될 때까지 계속 한다는 것은 전혀 아름다운 일이 아니라,

너무 소박해서 답답하고, 따분하고, 똑같은 나날의 반복인 것만 같지만...

하지만 무엇인가 다른 게 있다.

거기에는 분명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나는 계속 간다"

(p140)

 

 

도망치듯 빠져나온 곳에서 하지메는 상처를 치유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 좋아하는 빙수 한 그릇으로 인해 작은 빙수가게 사장이 된 마리처럼. 유명해지지 않아도 도심 속에서 초고속으로 승진하며 바삐 살지 않아도 삶은 나름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작가는 말해주고 싶었던 것일까.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하며 주변을 돌아보며 살 수 있는 여유, 사람을 좋아하며 살아가는 힘을 이 작가의 글을 통해 얻는다. 언제나 그랬듯이. 이번에도-.

 

 

"모두가 자기 주변의 모든 것에 그만큼 너그러울 수 있다면, 이 세상은 틀림없이....."

(p151)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도 자신만의 속도로 느리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틀린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다. 주어진 삶이 소중한 것은 그들도 우리도 같다. 세월과 함께 쌓여가는 것들이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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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에서 두 번째 사랑
마키타 요헤이 지음, 민경욱 옮김, 오카다 요시카즈 각본 / arte(아르테)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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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가끔 케이블을 통해 지나간 방송으로 보고 있는 [끝에서 두 번째 사랑]에 원작이 있는 줄 미처 알지 못했다.  드라마가 있었고 그 드라마를 소설로 옮겨놓은 책을 발견한 모양인데 현재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와 제목이 같아서 읽어보고 싶어졌다. 처음부터 현재까지 죽 연달아 보지 못했기에 소설을 통해 정리하듯 읽으면 좋겠다 싶어져서.

 

각색된 한국 드라마는 원작과는 약간 차이를 보이는데 인물의 설정이나 나이, 문화적인 정서부분에서 역시 한국 드라마쪽이 훨씬 정감이 가는 것은 사실이다. 익숙해서 그런가. 일본 소설 속 주인공도 40대 중반의 방송국 드라마 프로듀서다. 혼자 사는 싱글이며 같은 환경의 여자 친구 둘과 모여서 수다떨기를 통해 업무의 스트레스를 내려놓는다. 한국 드라마 속에서는 친구들이 각각 스포츠 센터 강사이자 오너, 학습지 선생님인 것과 달리 일본 소설 속에서는 음악계, 출판계에 종사하고 있어 일상부터 전문적인 영역까지 서로 나눌 이야기가 더 풍성해 보였다.

 

한국 드라마 속에서는 비슷한 나이때인 남자주인공이 소설 속에서는 몇 살 연상으로 나오는 것과 웹투니스트로 등장하는 때묻지 않고 철들지 않은 막내 여동생이 원작에서는 데이트 앱으로 남자들을 꼬셔 몇 명이나 나오는지 확인하는 모습들이 초반에 등장해서 깜짝 놀라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친동생처럼 함께 어울려 살고 있는 쉐프인 연하남도 소설 속에서는 친 남동생으로 등장한다. 주변인물들에 대한 포지션이 약간씩 달라 그 느낌도 살짝 다르다. 물론 똑같을 수는 없다. 그러면 재미가 없어질테니까. 문화나 정서적인 측면에서도 각색된 쪽이 훨씬 익숙해서 좋았다.

 

하지만 가장 큰 차이는 소설 속에서는 발견할 수 없었던 '깊이감 있는 공감'을 드라마 속에서는 종종 발견하게 된다는 점이다. 40대. 혼자인 남녀. 각각 안정된 직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 속을 파고든 외로움이라는 것에 대처해나가는 어른스러움. 성장이 아닌 이해와 인정을 통한 그 어른스러움이 시청률과 상관없이 돌리던 채널을 고정하게 만든 것과 달리 소설은 로맨스에 집중되어 진행되는 것 같아서 약간 그 흥미를 주춤거리게 만든다. '공감'이라는 키워드가 빠진 이야기를 읽고 있는 느낌이랄까.

 

소설을 먼저 보고 드라마를 보았더라면....일본 드라마를 먼저 보고 한국 드라마를 보게 되었더라면...또 다른 느낌을 받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단순히 먼저 보게 된 한국 드라마와 그 소설이 의도치 않게 자꾸만 비교되어서 본연의 재미를 떨어뜨려 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10대, 20대의 이야기 속에서 30대, 40대의 이야기가 묻히지 않고 지속적으로 등장해준다는 면은 참 고마운 일이다.

 

여자는 나이가 들수록 점점 업그레이드 되기 때문에 어느 시점에서건 아름답다고 얘기했던 어느 독일의 여성학자의 말처럼 소설 속 치아키도 드라마 속 강민주도 내면에서부터 이끌어내는 성숙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듯 해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실제 인물이라면 응원하고 싶어지는 그들. 드라마는 과연 어떻게 끝나게 될지 몇 부 남지 않았지만 꾸준히 지켜보려 한다. 비슷하게 종결되겠지..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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