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뚜껑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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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과 함께 쌓이는 것들이 있다.

어떤 삶을 사느냐에 따라 쌓여가는 것들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의 문체는 간결하다. 내용도 짧다. 하지만 라이트하게 읽은 것에 비해 남겨지는 것들의 존재감은 강하다. 그래서 <키친> 이후에도 꾸준히 신간을 찾아 읽고 있다. 그 중 최근에 읽은 <바다의 뚜껑>은 휴양지의 달달한 로맨스가 실린 것도, 두 여인간의 치열한 갈등관계가 성립된 것도 아닌 평범해보이는 이야기였지만 역시 인상적인 소설이었다.

 

어쩌면 밋밋해 보일지 모르는 이 소설의 마리는 유별나게 빙수를 좋아하는 젊은 여성으로 우연히 빙수 한 그릇을 먹으러 갔다가 고향으로 귀향할 결심을 하게 된다. 물론 고향으로 돌아왔어도 그녀가 아는 소중한 것들은 하나도 남아 있질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평 남짓한 가게에서 트렌드와 상관없는 심플한 빙수들을 판매하며 소박하게 살고 있었다.

 

 

"힘든 것에 비하면 시간은 아주 금세 지나가고,

거기에는 아주 작은 부분이나마 꿈을 이룬 신비한 반짝임은 분명하게 존재했다"

(p32)

 

 

이곳에 할머니 사후, 재산분쟁의 시끄러움 속을 빠져나온 하지메가 도착한다. 엄마친구 딸인 예쁜 그녀가 살짝 귀찮았던 것도 잠시, 너무 마르고 너무 힘들어 보이는 하지메를 빙수가게로 데려오고 휴일을 함께 보내면서 점점 자매처럼 절친이 되어갔다. 그녀들은. 20대여도, 30대여도, 40대여도 좋을 두 여인의 조합. 이야기의 기-승-전-결의 순서는 어쩌면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을 읽으면서는 그닥 의미없는 찾기인지도 모른다. 이야기의 흐름보다는 그녀가 심플하게 내뱉어놓은 문장, 문장 속에서 명언보다 값진 멋진 표현들을 찾아낼 수 있으므로. 그것만 모아도 바닷가에서 주워 목걸이를 완성하게 되는 조개껍질처럼 수북하게 탑이 쌓인다.

 

 

"될 때까지 계속 한다는 것은 전혀 아름다운 일이 아니라,

너무 소박해서 답답하고, 따분하고, 똑같은 나날의 반복인 것만 같지만...

하지만 무엇인가 다른 게 있다.

거기에는 분명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나는 계속 간다"

(p140)

 

 

도망치듯 빠져나온 곳에서 하지메는 상처를 치유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 좋아하는 빙수 한 그릇으로 인해 작은 빙수가게 사장이 된 마리처럼. 유명해지지 않아도 도심 속에서 초고속으로 승진하며 바삐 살지 않아도 삶은 나름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작가는 말해주고 싶었던 것일까.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하며 주변을 돌아보며 살 수 있는 여유, 사람을 좋아하며 살아가는 힘을 이 작가의 글을 통해 얻는다. 언제나 그랬듯이. 이번에도-.

 

 

"모두가 자기 주변의 모든 것에 그만큼 너그러울 수 있다면, 이 세상은 틀림없이....."

(p151)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도 자신만의 속도로 느리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틀린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다. 주어진 삶이 소중한 것은 그들도 우리도 같다. 세월과 함께 쌓여가는 것들이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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