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에서 살 생각인가?
이사카 고타로 지음, 민경욱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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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머리를 식히고 싶었다. 그래서 펼쳐든 이사카 고타로의 소설 <화성에서 살 생각인가?>. 작가의 소설은 <사신 치바>를 읽으면서 시작되었는데 골라든 첫 작품이 너무 좋아서 줄줄이 다음 작품을 찾아 읽게 된 케이스였다. 이후 <마왕>,<골든 슬러버>등을 읽으면서 도 언제나 내 마음 속 넘버원은 <사신 치바>였다. 그만큼 독특했던 소설이라 작가의 다음 작품들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결국 <화성에서 살 생각인가?>라는 독특한 제목의 책에 이르렀다.

앨리스를 이상한 나라로 이끈 토끼처럼...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은 제목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이번 작품 역시 독특했다. 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래서 무게감을 체감하며 읽었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후에도 가볍게 날려 버릴 수 없었다. 이번 내용 역시. 연작 드라마를 보듯 영상이 그려지는 필체 속에서 내 시선은 한 남자를 따라가고 있었다. 앨리스를 이상한 나라로 이끈 토끼처럼 그의 꽁무늬를 쫓으면서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평화 경찰'이라는 조직을 통해 '안전 구역' 주민들을 통제하고 있는 국가. 그 옛날 톰 크루즈가 주연했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범죄를 예측해서 범죄자를 미리 단죄한 것처럼 '평화 경찰'은 지역을 옮겨다니면서 위험요소로 분류된 사람들을 처형한다. 더 무서운 건 일반 시민들이 그들의 단죄를 받아들이는 자세다. 비판없이 "모두 옳을 것이다'라고 믿음으로써 이웃의 죽음을 묵과한 그들 역시 죄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교묘하게 국민을 공범으로 만들어버린 국가는 이미 국민 개인을 '사람'이 아닌 '지배의 대상'으로 보고 있었고 '평화 경찰'은 지배의 도구로 전락해 버렸다. 정의로움을 명분삼은 정의가 상실된 국가.

그곳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슈퍼맨처럼, 배트맨처럼. '정의의 편'이라는 다소 정리되지 않은 이름으로 나타난 그는 해녀복처럼 위아래가 붙은 올블랙 라이더 슈트 차림에 고글을 쓰고 목검을 든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지만 행동은 영웅의 그것이었다. 사실 그는 조용히 살고 싶은 남자였다. 사람 좋았던 할아버지가 선행을 베풀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살할 수 밖에 없었던 사연, 성실했던 아버지가 불길 속에서 사람들을 구하다가 질식사한 일은 '타인을 돕는 일은 죽음과 연결된다' 는 교훈만을 남겼기 때문이다.

'정의'나 '위선'에 좋은 추억이 없었던 그를 복면의 영웅으로 등민 사건은 가까이에서 일어났다. 아내의 죽음과 오모리 오가이 군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아무리 선량하게 산다고 해도 마지막 순간이 평온하지는 않다

아내의 죽음이 남긴 교훈은 강렬했다. 아내의 죽음 이후, 마음을 잡지 못하고 이발하러 온다는 단골손님까지 거절한 채(그의 직업은 이발사)낡은 오토바이를 타고 나간 드라이브 길에서 취객에게 얻어맞는 택시 운전사를 발견했다. 그리고 오가이 군이 나타나 그를 제지했다. 하지만 술취한 남자는 자신을 평화경찰이라고 밝히면서 운전사와 오가이 군에게 총을 발사했다. 아내의 죽음만큼이나 충격적인 일이 일어나 버린 것.

하지만 그를 절망하게 만든 일은 다음 날 일어났다. 신문보도에서는 위험인물인 운전사를 평화경찰이 사살했다고 쓰여졌으며 오가이 군은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단두대를 세우는 사람을 믿어서는 안 돼'라고 했던 아내의 말이 떠올려지며 그는 이제 평화경찰을 신뢰할 수 없게 되었다.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단 한 번뿐인 인생을 가지고 노는 놈들에게 한 방을 보여주고 싶었던 그로 인해 국가의 제도가 흔들거렸다. 이 점이 시사하는 바는 굉장히 컸다. 작년, 우리에게 '촛불집회'가 다가왔던 것처럼!!! 작지만 큰 개인의 힘! <화성에서 살 생각인가?> 속에서도 발견했다. 정의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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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병동 병동 시리즈
치넨 미키토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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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알바가 순식간에 악몽으로 변했다"

 

 

 

하야미즈 슈고에게 한 주에 한 번 방문하면 되는 다도코로 요양병원에서의 당직 아르바이트는 그야말로 '꿀알바'였다. 괜찮은 알바비에 비해 할 일이 너무 없었던 것. 소개해준 선배 의사 덕에 작년부터 알바당직을 서고 있지만 사건이 있던 날은 사실 그가 근무해야하는 날짜가 아니었다. 고자카이(선배 의사)에게 사정이 생겨 당직을 바꿔주었던 것. 그리고 꿀알바는 하루 아침에 지옥행으로 변했다.

응급환자가 없어 당직실에서 잠을 자고 있던 슈고는 곧 호출되었다. 편의점 강도가 인질을 이끌고 병원을 접수했기 때문에. 게다가 인질인 마나미는 총상을 입은 상태였다. 치료를 위해 처음으로 수술실 문을 열었던 슈고 앞에 나타난 건 최첨단 시설을 갖춘 수술실이었고 놀랄 틈도 없이 그는 봉합을 서둘러야 했다. 하지만 수술 침대가 두 개. 이상한 일이긴 했다.

끝이 아니었다. 핸드폰이 갑자기 터지지 않았고 유선 전화는 모두 차단되어 있었다. 인질범의 행동반경과 어긋나 있는 곳까지. 내부 조력자가 있는 것일까? 의심되는 상황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가장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사람은 병원장이었는데, 그는 슈고의 출근 전 이미 퇴근했어야 하는 사람이었다. 인질극이 한참 벌어지는 가운데 홀연히 나타난 그가 여러가지 이상한 행동을 일삼기 시작했다. 그가 내부조력자인 것일까.



요구에 응하면 새벽에 병원에서 나가겠다는 인질범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들은 밤 9시부터 새벽 5시까지 여덟시간만 잘 버티면 된다. 하지만 원장은 다른 일을 벌이고 있었다. 갑자기 들이닥친 편의점 강도, 일곱 환자, 알지 못했던 첨단 수술장비, 문이 잠긴 창고, 비밀금고, 3천만 엔이라는 거금을 들이밀어도 돈 말고 다른 것을 내어놓으라는 강도의 태도, '원장을 조심하라'는 간호사의 경고, 이식 수술을 받은 이름 없는 어린 환자....

 


 

폐쇄된 병원 전체가 밀실이 되어 버린 상황 속에서 홀연히 발견된 의문의 차트 속 '신주쿠 11'의 의미가 밝혀지면서 미스터리 소설은 크라임 소설로 변해버렸다. 그동안 보호자가 없는 환자들을 받아온 병원의 선한 이미지는 한순간 추락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인질이었던 마나미가 3천만 엔과 함께 사라지면서 소설은 다시 미스터리로 치환된다.



모든 의문이 풀리고 마지막 몇 장을 남겨두었을 때 안도의 한숨을 쉬어서는 안되었다. 작가는 마지막 한 방을 남겨두었으므로. '에필로그' 파트를 읽으면서 소름이 돋았던 건 독자로서는 너무나 감사할 일이었다. 하룻밤이라는 시간적 제약과 밀실이라는 환경적 제약은 긴장감을 조성하기 충분했고 하나하나 풀어지는 미스터리는 숨막히는 심리전에서 작은 숨구멍을 만들어주었다.

 

 


"내일 아침까지 무사히 살아 나갈 수 있을까?"

 

 

 

연쇄살인이 일어난다거나 자극적인 살육이 자행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인간에 대한 심한 배신감이나 상대적인 박탈감을 남기는 소설도 아니었다. 그래서 오히려 정신적인 상흔없이 읽기 좋았다. 주변에 편하게 권하면서. 

 

 

- 해당 출판사로부터 책만을 제공받아 성실히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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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재판 - 사람이 아닌 자의 이야기 다카기 아키미쓰 걸작선 2
다카기 아키미쓰 지음, 김선영 옮김 / 검은숲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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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재판>>이라는 묵직한 제목이 전하는 무게는 대단했다. 독자의 호불호가 갈리는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와 달리 극찬의 리뷰들이 많아 꼭 읽고 싶었던 다카기 아키미쓰의 법정소설에는 탐정 대신 신문사 법정 기자와 변호사 햐쿠타니가 등장한다. 다소 케케묵은 구석이 있지만 강직한 변호사인 햐쿠타니 요시로의 아들이자 유명한 투자 상담사의 딸인 금손 아내를 둔 변호사 햐쿠타니는 금전적인 제약없이 재판에 임하는 제법 운 좋은 남자였다. 그런 그의 앞에 무라타 가즈히코가 나타났다. 한때 배우였으며 유부녀와 사랑에 빠져 그 남편을 죽이고 그 여자마저 죽였다는 죄목으로 공판이 시작된 것은 1960년 6월 15일이었다.

살인과 사체유기 중 일부만 시인하고 있는 피고에게 일본의 '감사동일체'라는 제도는 약일까? 독일까? 법정 드라마를 몇 편 봤다고 해서 대한민국의 법에 능통할 리 없다. 국맨 대다수를 뒷목잡게 만든 최순실의 법정 소식과 전직 대통령의 구속, 특검의 활약을 그 어느때보다 유심히 보고 들었지만 여전히 법은 도통 모르쇠 투성이다. 우리의 법도 그러한데 하물며 멀고도 가까운 나라인 일본의 법이 쉽게 다가올 리 없다. 하지만 소설은 검사동일체라는 어려울 수도 있는 제도를 '모든 검사는 그 공직 수행에 관한 한 한 사람의 인격과 동등하다'는 한 줄로 쉽게 요약해놓았다. 개념은 어렵지 않았다. 수사 도중 검사게 교체 되어도 그 입장은 동일하다는 의미이므로.

결정적인 증거가 나타나지 않는 가운데 검사의 최종구형은 '사형'이었다. 변호사의 최종변론이 남아 있긴 했지만 별로 달라질 것 같지 않아 답답함이 목까지 차올랐다. 다 이해했다고 보기 어려웠으나 글이 이끄는대로 잘 따라왔다고 생각했는데 검사의 구형은 마치 작품의 마지막 페이지를 남겨놓은 심정과 같았기 때문이다.

'사형'이 '징역 3년/집행유예 5년'으로 판결날 때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 쉴 수 있었다. 단 <파계재판>은 한 번 읽고서는 완전히 읽었다고 말하기 어려운 소설이었다. 그 결말을 알고 있지만 앞으로 두 세번, 특히 판결 직전은 반복해서 유심히 읽고 또 읽어볼 작정이다. 너무 시간에 쫓겨서 읽다보니 필름이 뚝뚝 끊어진 영화를 본 것처럼 석연찮은 부분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 전에 좀 더 긴 여유시간을 두고 이 소설을 찬찬히 다시 읽을 계획이다. 여전히 한 사람의 인생을 판결하기에 인간은 부족함이 많아 부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 기준이 정의로운 법이라면 모두 앞에 평등하다는 전제하에 좀 더 날카로운 칼날을 휘둘러주길 바라는 마음도 또한 한 켠에 새겨두고 있다.

 

 

보통 사람들은
행복하게 태어난 사람들은
그런 열등감은 도저히 이해 못할지도 모릅니다
p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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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은 왜 살해되는가 다카기 아키미쓰 걸작선 1
다카기 아키미쓰 지음, 김선영 옮김 / 검은숲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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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승부수를 찾았을 때
아마추어는 바로 그 수를 두어버리지만
프로는 그 수를 아껴두고 다른 수를 둔다는 거야

p351

 

 

 

요코미조 세이시의 '긴다이치 쿄스케'와 함께 3대 명탐정으로 불리고 있다는 다카기 아키미쓰의 '가미즈 교스케'.

세월이 흘러도 리메이크 될만큼 시대를 아우르는 추리소설인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과 견주어지는 소설이라고해서 찾아 읽게 되었는데, 과연 그 명성에 걸맞을만큼 훌륭했다.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 라는 작품명만 보고선 비슷한 장르 소설 몇을 떠올리기도 했지만 작가는 작가만의 방식으로 사건을 몰아가며 범인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켜나간다.

 

 

 

 

'살인예고'로 인형을 활용한 추리소설들은 많다. 코난에서도 마술 에피소드가 등장했을만큼 마술과 인형은 종종 보아왔던 조합이다. 하지만 전혀 시시하지 않았다. 작가 무려 1920년 생. 세계 2차대전 시대를 살았던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감안하고 볼 때 더 놀라고 만다.

'마리 앙투아네트 처형'이라는 타이틀로 올려질 마술은 공연을 앞두고 중단된다. 마술도구인 인형 머리가 공연을 앞두고 사라져 버렸기 때문. 게다가 공연을 함께 준비한 미즈타니 료헤이와 교노 유리코의 삐걱되는 관계도 수상쩍다. 기요틴이 사용되는 위험한 공연인만큼 두 사람의 호흡이 무엇보다 중요할텐데도 불구하고 둘의 사이는 냉랭했다. 여기서 사라진 인형 머리는 곧 머리가 잘린 인간의 시체와 함께 발견되는데 놀랍게도 죽은 여인은 유리코로 추정된다. 누가 ? 왜? 무슨 이유로? 살인을 저지른 것일까.

도쿄대 의학부 법학과를 졸업한 서른 다섯의 명탐정 가미즈 교스케가 이 사건을 파고들면서 또 다른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다시 인형이 등장하면서 인형이 왜 필요한가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된다. 

결국 결혼식날 범인은 검거되고 트릭은 밝혀진다. 과거의 원한으로 특정인을 범인처럼 몰고갔으나 결국 인간의 욕심이 이 모든 비극을 낳았다는 점에서 '역시 인간이 가장 추악한가' 되새겨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약간 옛스러운 말투를 제외하면 한여름, 작가별로 쌓아놓고 읽기에 적당한 장르소설인 셈이다. 이 참에 가미즈 교스케 시리즈를 몽땅 찾아 읽어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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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비너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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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인사드립니다, 아주버님"

 

 

 

어느날 갑자기 듣도보도 못했던 제수씨가 나타나 동생의 실종을 알린다면......! 너무나 수상쩍어 보이지 않을까. 게다가 수의사인 데시마 하쿠로와 야가미 아키토는 아버지도 성도 다른 형제였다. 복잡한 집안 사정으로 인해 형제애를 쌓으며 자라지 못했고 마치 남처럼 서로 삶에서 멀어져 있었다. 이미. 그런데 동생의 아내가 나타나 외국에서 둘이서만 결혼을 해서 집안에서는 아무도 자신의 존재를 아는 사람이 없으니 도와달라고 요청해왔다. 그녀를 야가미 집안에 소개하기 위해 그 껄끄러운 사람들과 다시 마주쳐야하는 하쿠로.


왜 그는 가에데를 덜컥 믿고만 것일까.



오랜만이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읽게 된 건. 한동안 그의 브랜드 네이밍은 '절대불변'이었는데, 장르 불문하고 그가 쓴 모든 글이 재미있어 신간이 나오기 무섭게 읽어대곤 했었지만 지난 몇 년 사이 약간 시들해졌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위험한 비너스>는 몇 장만 넘겨 보았을 뿐인데 '범죄의 내음'이 가득했다. 독자로 하여금 기대하게 만드는 요소들로 채워져 있어 전반부를 읽는내내 마음껏 추리를 하며 여러 갈래의 결말을 지어보기도 하고, 아키토의 실종과 욕심 많은 야가미가 사람들을 용의선상에 올려보기도 했으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믿어야 좋을지 모를 가에데의 말들을 되짚어보면서 범인을 추론해 보기도 했다.


미스터리는 그 과정을 즐기게 되는 장르라 읽는 내내 즐거울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소설은 끔찍한 장면을 나열하거나 작의적인 표현으로 눈을 불편하게 만들지도 않았다. 다만 우연이라고 생각해왔던 과거의 일들이 연계된 진실이며 단편적인 기억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면서 결국 범인이 노렸던 것은 재산이 아닌 친부가 그렸던 그림 한 장 때문이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 하쿠로가 느꼈을 감정을 고스란히 함께 공감하게 만드는 놀라운 수작이 <위험한 비너스>다.

 

 

하쿠로의 친부는 다정한 사람이었지만 그리 유명한 화가는 아니었다. 그랬던 그가  뇌종양 판정을 받은 후 전혀 다른 화풍의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데 당시 간호부였던 아내 '데이코'는 <후천성 서번트 증후군>을 연구중이던 의사 '야가미'를 믿고 남편의 치료를 맡겼고 약간 호전되는 듯 했으나 남편인 가즈키요는 사망해버렸다. 이후 데이코는 아들 하쿠로를 데리고 야가미가로 재가했고 몇 년 후 아키토라는 남동생이 생겼다. 자식이 없어 사랑을 듬뿍 쏟아주었던 이모와 겐조이모부와 달리 야가미가 사람들은 다정하지 않았고 물과 기름처럼 겉돌던 그는 어머니의 자살 후 야가미가와 완전히 멀어져 버렸던 것. 아버지가 그렸던 <관서의 망>이라는 그림. 어쩌면 자살이 아니라 타살일지도 모를 16년 전 어머니의 죽음. 그리고 사라진 새 아버지의 연구 보고서.



스케일이 크지는 않지만 드라마 <비밀의 숲>에서처럼 누구나 용의자가 될 수 있고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모두가 수상해보이는 인물관계도 탓에 끝까지 특정한 한 사람을 집어낼 수는 없었다. 범인에 주목하기 보다는 '가에데'가 어떤 인물인지가 살짝 더 궁금했고 의문투성이인 제수씨에게 끌리는 하쿠로의 감정선이 더 흥미롭기도 했다. 어떤 페이지에서는.

 

 

모든 비밀이 속시원하게 밝혀졌지만 결말은 생각만큼 어둡진 않았다. 잘못된 선택을 한 인간이 있었고 과거의 자신을 후회하며 올바른 선택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게 되었다. 어린시절 외롭고 쓸쓸했을 한 남자의 과거 기억이 모두 따뜻하게 변할 순 없어도 이제라도 행복을 위해서 그가 용기를 낼 것이라는 건 짐작할 수 있었다. <관서의 망>은 정말 인간이 발을 들이밀어서는 안 될 영역이었을까.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된다면 이 그림은 얼마나 신비스럽게 표현될까. 보고싶다. 영상화 되는 모습을!!!



생각보다 양이 방대했다. 다 읽는데 꼬박 하루가 소요되었다. < 용의자 x의 헌신>,<유성의 인연>,<붉은 손가락>만큼 좋았다. 개인적으론. 물론 그 이상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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