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 혹은 혼

 

  김신용

 

  혼자 밥 먹는 거...... 마치 처마 끝에 매달려 떨어질 때를 기다리는 물방울 같은 거......

  일할수록 더 가난해지고 지겹도록 일을 해도 제자리를 못 벗어나

  꿈도 희망도 포기한 민달팽이 세대처럼...... 혹은 n세대처럼

  모든 걸 포기하고 무연無緣사회로 가는 길목에서, 혼자 밥 먹는 거 같은......

  마침내 저녁이 없는 삶이어서, 걸으면서 컵라면이나 김밥으로 한 끼를 때우면서

  컵라면이나 김밥 한 줄의 없는 영혼을 상상하는...... 없는 영혼을 상상하므로

  자신도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므로

  비로소 존재한다고 느끼면서...... 그렇게 물방울처럼 떨어질 때를 기다리는......

  그렇게 물방울처럼 떨어질 때를 기다리고 있는...... 이 결심이...... 다짐이....... 추락이....... 낙하가......

  혼밥의 혼이라고, 눈을 빛내고 있는 것 같은...... 그래, 아무리 일을 해도 가난을 못 벗어나는 워킹 푸어처럼

  그렇게 스스로 포에지 푸어가 되어...... 아무런 의미 없이 떨어지는

  물방울 하나의 의미를 위하여...... 낮은 처마 끝에 매달려서도

  추락의......, 그 빛나는 순간을 기다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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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신용 시인의 여덟 번째 시집이라고 한다.

  얼마 전에 편혜영 소설가의 신작 소설집에 대해서 인물들의 온도와 동감動感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평가한 적이 있다. 바꾸어 말하자면 인물들이 서사를 이끄는 재료로() 그 의미가 한정되면서 박제화되어 있는 양상을 띤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인물 형상화가 현대 사회 속에서 무감각해진 인간들을 은유하는 것인지 아니면 조탁 및 세공 능력의 부족에서 기인하는 것인지는 알지 못한다. 아마도 전자와 후자가 작품에서 동시에 작용하는 것으로 판단되는데 그럼에도 인물들을 정형화된 수법으로 반복 생산하고 있다는 느낌을 감추기 어렵다.

   김신용의 시 한편을 읽고 나니까 편혜영 소설에서 느꼈던 아쉬움과 의구심이 어느 정도는 해소되는 느낌을 받는다. 흔해빠진 비유를 들다면 이 사람은 여전히 몸에서 나오고 있는 피를 종이에 옮긴다. 그것은 자신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이며 때로는 타인의 혈관에서 흘렀던 피이다. 한국 문학에서 피를 찍어서 글을 쓴다는 작가들은 예전보다 희소해졌다. 세련과 독창과 첨단을 말하는 목소리는 높은데 세속의 누추와 결여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이것을 단순히 타인의 고통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작가의 인식과도 어떻게 공명하는지 고찰해야 하는 시도는 잘 보이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는다. 이런 갑갑증이 느껴질 때 나는 김신용의 시집을 집어든다.

   적어도 나에게 김신용은 고은, 서정주와 같은 이름값 높고 세계적인 명성을 누렸던 시인들보다 몇백 배는 더 훌륭한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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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로 - 편혜영 소설집
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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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 소설은 공학적인 완결성은 어지간한데 인물 개개인의 온도와 동감動感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서사와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서 작위적으로 만들어진 인간들이 작품에 소용되는 형국이랄까. 뜻밖의 불행과 일상의 불안과 변치않는 불우를 다루는 기량은 뛰어나지만 이 솜씨만 유난히 도드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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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9-10-07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때부턴가 이 작가의 작법과 주제성이 상당히 ‘정형화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까닭을 알기 어려운 불운과 불행에 속절없이 무너져서 불우한 처지가 되고, 대의나 윤리의 중요성을 아주 모르지는 않으나 이러한 것들의 현실적인 효용을 의심하면서 순응적/체념적 인간이 되어가는 이들의 풍경을 작품에서 반복 제시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편혜영의 작품 세계에 앞으로 더 이상 변화가 없다면, 이쯤에서 그 이의 책을 더 이상 읽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체공녀 강주룡 - 제23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박서련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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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인 설계도는 빼어나지만 최종적인 만듦새가 아쉽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암야의 시대를 살았던 어느 여성 노동자의 생애를 재구성하려는 작의作意는 드높고 훌륭하나 그 이의 혁명 동력이 내/외적으로 형성되는 내력과, 약자들의 파업이 촉발되고 추진되는 과정에 대한 서술은 다소간 빈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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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9-10-04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주룡이라는 여성 노동자의 생애를 총체적으로 다루고 싶었다면 분량(이 작품의 분량은 240쪽이다)을 좀 더 늘려서 썼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와는 다르게 강주룡의 노동 투쟁사에 초점을 맞추려고 했다면 주인공의 공장 입소와 파업의 동인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서술이나 묘사로 도입부를 채웠어야 한다고 본다. 240쪽이라는 분량 내에서 특정인의 삶(결혼, 독립운동, 사별, 농삿일, 공장 노동, 파업, 단식, 고공 농성 등등) 전부를 담으려고 하니 서술과 묘사가 전체적으로 성기다는 느낌을 감추기 어렵다.
 
회랑을 배회하는 양떼와 그 포식자들
임성순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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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집 앞뒤에 실린 단편들은 공력이 어지간한데 중반부에 있는 작품들은 도약력이 부족해 보인다. 이 작가의 전작前作들처럼 초반에는 열정이 넘치나 중반부/후반부에 갈수록 추진력이 낮아진다. 소재/주제에 대한 공부도 중요하나 서사 직조술/장악력도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소설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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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9-09-28 15: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느꼈던 것은 소설의 내용보다 작품집 말미에 실린 작가의 말이었다. 이 책은 평론가의 해설 대신에 작가가 특정 시기에 어떠한 심정으로 이 글을 썼는지 그 사정을 상세하게 풀어내고 있다. 임성순은 이 책에 해설이 없는 이유를 이런 식으로 설명한다.
1. 평론가의 해설을 받는다면 그만큼 책 출간 시간이 늦어진다.
2. 해설을 받고자 한다면 최소한 몇 주는 기다려야 하나 작가의 말은 주말 이틀의 시간만 주어져도 완성할 수 있다.
3. 일찍 책을 내야만 태업할 명분이 생긴다.
이 작가, 이런 부분은 참 마음에 든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09-28 13: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이 시도 재미있네요. 그렇죠. 작가의 말이 들어가야지. 왜 쓸데없이 비평가의 해석을 담는지...

수다맨 2019-09-28 15:58   좋아요 1 | URL
어느 평론가의 글에서 읽었던 내용으로 기억합니다만 영미권에서는 현역으로 활동하는 작가의 소설집이나 장편소설에 해설을 다는 경우는 적다고 하더군요. 대신 고전의 반열에 든 소설들을 위주로 이 작가/작품의 문학적 위상과 위의를 재고하고자 평문을 붙이는 사례는 꽤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언젠가부터 작품 말미에 비평가의 해설이 들어가는 관행을 회의적인 시선으로 보게 되더군요. 작품 분석을 충실히 하지도 못하면서 지면을 본인이 열심히 공부한 서구 이론의 박람장으로(만) 만들 때가 잦아서요. 그래서 임성순 작가처럼 ‘얼른 책 출간해서 조금이라도 인세 당겨서 받고, 열심히 놀아야겠다‘는 식으로 소회를 밝히는 부분이 참으로 마음에 들었습니다 ㅎ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9-09-29 18: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학동네가 처음 시도했죠. 제가 알기로는.... 소설 책에 비평문 담는 시도는 문학동네 스타일이었습니다.

수다맨 2019-09-30 15:32   좋아요 1 | URL
소설책 말미에 해설을 싣는 관행은 사실 예전부터 있기는 했습니다. 다만 이 관행이 본격적으로 문제시된 시기가 말씀하신 대로 문학동네가 생긴 뒤부터였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신생 출판사였던 문학동네는 기존의 출판사들(문지, 창비 등등)과 경쟁해야 했는데 이 업계에서 생존하기 위해선 스타 작가들을 배출해야 한다는 욕구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출판사의 여러 시도와 모색 속에서 선택된 작가가 신경숙이고 책이 출간될 때마다 황종연, 류보선, 백낙청 등이 호의적인 해설을 달아주었던 것으로 기억나네요.
개인적으로 제일 민망하게 느껴졌던 글은 백낙청의 ˝외딴방˝ 해설이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09-30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ㅎ황종연, 류보선 유명하죠. 특히, 나는 류보선 평론 보면 정말 닭살이 돋던데..... 이 양반 목소리 들으면 한국 문학은 노벨문학상 10번은 타고도 남습니다..

수다맨 2019-10-01 20:21   좋아요 1 | URL
그래도 황종연, 류보선 정도면 (과장적 언사나 과도한 억견을 내보일 때도 있지만) 비평가로서의 정도를 나름대로는 지키려고 한다는 느낌도 받습니다. 어쨌거나 이 사람들은 문학 연구자로서 경력을 시작했고 나중에 자신의 저작이 문학사적, 국문학적으로 어떠한 평가를 받을지 어느 정도는 신경을 쓴다고 해얄까요.
개인적으로 제일 마음에 차지 않는 평론가는 (상술한 두 사람과 다르게 창작가이기도 한) 남진우입니다. 그래도 위 두 사람은 특정 작품에의 상찬과는 별개로 권력 욕구나 인정 욕구, 원한 감정이 글에서 크게 느껴지진 않는데 남진우는 이 세 가지를 다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는 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10-04 13:52   좋아요 0 | URL
인정!
 
어제는 봄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2
최은미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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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감도 강한데 기시감도 강한 소설이다. 어느 중산층 여성의 고독과 공동空洞을 짚어내는 필력은 값지나 이러한 시도와 방향성은 흔해진 감이 있다. 멀리로는 오정희의 문학세계가, 가깝게는 은희경과 한강의 몇몇 작품들이 생각나는데 여성을 고립적/비의적 존재로(만) 비유하려는 필법은 좀 식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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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9-09-27 11: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는 오정희를 좋아하지 않지만 이번 작품을 읽으면서 이 작가가 후대 여성 작가들에게 끼친 영향력과 자극력이 엄청나다는 것을 ‘다시‘ 실감했다. 그럼에도 이런 소설을 읽고 나면 ‘터프한‘ 여성 캐릭터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이를테면 ˝토지˝의 젊은 최서희 같은 인물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