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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대기 - 택배 상자 하나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 보리 만화밥 9
이종철 지음 / 보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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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줌의 과장도, 허세도, 감언도 없는 생의 ‘날비린내‘를 풍기는 책이 있다. 이런책을 만나면 독자로서 판단하려는 욕구는 사라지고 치열한 삶을 살아온 저자에게 마땅히 가져야 하는 존경심은 더욱 커진다. 조지 오웰, 김신용, 한승태 같은 작가들이 적힌 나만의 목록에 이종철이라는 이름도 추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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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기사: 우리 같은 택배기사들은 아프거나 다쳐서는 안 돼. 가족이 상을 당해도 낮에는 배송하고 방에 장례를 치러야 할 거야. 젠장! 

저자(까대기 아르바이트): 왜 그런 거예요?

택배기사: 알바님. 특수 고용직이라고 들어봤어요? A택배 회사는 지점장과 택배 지점 운영에 대한 위탁계약을 맺어요. 그리고 지점장은 택배 기사와 배송 영업에 대한 위탁계약을 하죠. 결국 회사는 배송 서비스를 기사에게 위탁한 게 되고 택배를 배송한 뒤 건당 수수료를 받는 거죠. 택배 기사들 대부분은 자기 소유 차량에 개인 사업자로 일하고 있어요. 개인 사업자다 보니 수수료 수입을 뺀 나머지 경비는 자기가 부담하죠. 한 달 배송 수수료 수입에서 기름 값에 차량 유지비에, 할부금에, 부가세에, 전화비에, 식대에, 지점 운영비를 빼고 나면..... 그러면서 A택배 회사와 계약 관계로 회사의 업무 명령을 따라야 해요. 당일 배송이 원칙이구요. 고객한테 불만 접수되면 벌점 매겨집니다. 배송 중에 분실, 파손은 기사 책임인 거 아시죠? 그래서 기사가 아프거나 사고가 나서 다치면? 그건 기사 사정이고. 배송을 못하거나 늦어지면? 계약 위반으로 기사 책임이 되는 거죠. 개인 사업자인데 개인 사업자의 자율성은 없고 노동자인데 노동자의 권리는 없는 게 바로 특수 고용직이죠. 알바님. 택배 기사들이 한 달에 얼마 버는지 들으면 아마 깜짝 놀랠 걸요?

저자: 왜요?

택배기사: 너무 적어서요

-----이종철, "까대기" 120~123쪽 


택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곤고하고 씁쓸한 현실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다.

올해는 전태일이 산화한지 50년이 되는 해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전태일의 가족을 청와대에 초청했고 고인에게 국민훈장을 추서했다. 고인이 받은 훈장은 1등급(무궁화)으로 노동계 인사에게는 처음으로 수여된 것이라고 한다. 대통령은 '상생과 연대를 실천한 열사의 삶을 노동존중사회 실현으로 함께 이어가야 한다'는 당부를 전태일재단 이사장에게 남겼다고 한다.

그런데 말이다.

진정으로 노동존중사회를 만들고 싶다면 훈장 수여나 그럴듯한 당부를 넘어서 우선 전태일 3법(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모든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 적용+모든 노동자에게 노조할 권리 보장)부터 국회에서 통과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나 모든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 수 있는 권리가 법적으로 보장(노조법 2조 개정)된다면 그동안 노동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특수 고용직의 입지도 상당 부분 나아질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전태일 3법과 관련한 법안 제정 및 개정에 대해서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이쯤 되면 대통령이 흠모 어린 헌사를 바치건, 1등급 훈장을 수여하건 간에 어떠한 반가움도 감흥도 생기지 않는다. 그의 비극적인 죽음을 기억하고, 노동 열사의 정신을 호출하는 것만으로 집권여당은 자신들의 할 일을 다 마쳤다고 자평하는 것이다. 기념은 박제에 불과해지고 실천과 혁명은 시기상조로 폄훼된다.  

그저 쇼통이라는 말만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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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의 향기 - 아웃케이스 없음
마틴 브레스트 감독, 크리스 오도넬 외 출연 / 유니버설픽쳐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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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의욕을 상실한 사람이 훈훈한 ‘영거 브라더‘를 만나서 좌절을 극복하고 살아갈 의지를 북돋는다는서사는 대부분 통속극으로 치닫는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는 묘한 아우라와 품격이 있는데 이는 전적으로 알파치노라는 배우의 저력에서 비롯된다. 내용은 예사로우나 ‘탱고‘의 여운만은 깊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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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20-05-20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이 영화가 알 파치노의 연기력 빼면 볼 것이 그다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알 파치노의 연기력마저도 그의 다른 주연작에서 보인 열연보다 더 특별하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때로는 문학성 높다고 알려진 시보다 ‘사랑밖에 난 몰라‘ 류의 노래가 더 마음에 기껍게 다가올 때가 있다. 앞을 보지 못하는 나이 든 남자가 젊은 여인에게 (평소의 까탈스럽던 성격은 싹 감추고) 탱고 한 번만 추자며 정중하게 요청하는 장면을 볼 때면 지금도 헛웃음이 나온다. 언젠가 밀란 쿤데라는 ˝무의미의 축제˝라는 책에서 이렇게 쓴 적이 있다.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심지어 아무도 그걸 보려 하지 않는 곳에도, 그러니까 공포 속에도, 참혹한 전투 속에도, 최악의 불행 속에도 말이에요. 하지만 단지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사랑해야 해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이 소설에서 나는 실제 벌어진 당시의 모든 상황과 정황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실상 열흘이라는 기간이 산술상으로는 짧은 시간이지만, 5.18의 경우는 단순한 시간 개념의 울타리를 훨씬 뛰어넘는다는 특수성을 가진다. 한 도시 전역에 걸쳐서 많게는 수십만 명이 동시에, 끊임없이, 격렬하게 요동치는 상황 안에는 그야말로 서로 다른 수백 수천 가지의 사건과 무대와 장면, 그리고 수만 수십만 가지의 서로 다른 체험과 반응과 해석이 공존할 수밖에 없다. 가히 거대한 폭포처럼 급격하고 복잡 다양하게 분출되는 그 같은 흐름들을 불과 몇 권의 소설로 충분히 담아낸다는 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때문에 나는 그 전체적인 흐름을 따라가되, 세부적인 구성에 있어서는 보다 핵심을 이루는 몇몇 중요한 사건과 사실들을 중심 기둥으로 삼아 소설을 전개시키고자 했다. 역사적인 실재 사건을 소설로 다루는 데는 작가의 상상력이란 필수적이면서 또한 위험 부담이 따른다. 사실과 상상력ㅡ 그 둘 사이에서, 적어도 이번 소설에 관한 한, 나는 최대한 사실성에 의지하려 했다.

그를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의 체험담이나 증언, 이미 발표된 자료들을 충분히 참고했다. 물론 내 자신의 체험 역시 유용했다. 특히 이 분야에선 기념비적이라고 할 2만 5천여 매의 방대한 자료집인 "광주민주항쟁사료전집"(한국현대사사료연구회 편)에 수록된 5백 명의 증언록은 많은 도움이 되었다. 물론 그 같은 자료들 간에는 필연적으로 각기 어느 정도의 편차가 드러나게 마련인데, 나로서는 신중한 검토 과정을 거쳐 나름대로 최대한 객관적인 사실을 토대로 그것들을 작품 속에 재구성하려고 노력했다.

또 실제 사건 발생 시각에서부터 당시의 시가지 풍경, 건물의 위치, 도로와 골목, 시민들의 분위기 등등에 이르기까지 가급적 사실 그대로 재현하고자 애썼다. 이 소설을 읽어가다 보면, 어떤 공간이나 상황에 대해 더러 지나치리만큼 세세하고 지루하게 묘사한 부분이 적지 않을 터인데, 그것은 당시의 시간적, 공간적 상황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작가의 욕심 때문이다. 물론 그 욕심이 때로는 소설적인 긴장감을 다소 이완시켰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로서는 이것이 단지 소설로서만이 아니라 비교적 사실에 충실한 하나의 기록물로서도 남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이 작품을 써왔던 것이다."

ㅡ 임철우의 "봄날 1" 13~14쪽


소설가 임철우는 서문에서 지난 십 년 동안의 집필 여정이 어떠했는지를 상세하게 밝히고 있다. 올해는 광주 민주화 항쟁이 일어난지 40년이 되는 해이고 그 당시 대학생이었던 작가는 어느새 칠순을 바라보는 노인이 되었다. 

이 작가가 지난 세기에 썼던 글을 내 서재에 옮겨 적으면서 글쓰는 이의 집념과 정신과 윤리성이 무엇인지 새삼 돌아보게 된다. 아울러 학살의 주동자들(전두환과 신군부)과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이들의 나팔수와 수족 노릇을 해온 무리(미통당과 지만원 부류)들, 이따위 인간들과 여전히 내가 한 땅에서 숨쉬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언제나 말하는 바이지만 사람이기를 완전히 포기한 이들에게는 그에 맞는 대접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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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엘리트들은 하나의 집단으로서 자신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누가 자신들의 일원이 아닌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보호하는 "계급"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다른 이들과 분리하고 구별지어 주는 독특한 문화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엘리트들은 훨씬 더 "잡식성"이어서, 사회적 경계나 차별점들을 꽤나 자유롭게 넘나들며 자신들을 문화적으로 구성해 낸다. 그들은 더 이상 자신들이 배제하는 것이 무엇이냐를 가지고 스스로를 규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재 그들이 가진 힘은 모든 것을 포괄하는 데서 생겨난다. 엘리트들을 엘리트로 특징짓는 표식은 단일한 관점이나 단일한 목적이 아니라, 사회계층 전반에서 (나오는 것들을) 고르고 선택하고 결합하고 소비할 수 있는 그들의 능력에 있다. "인텔리 속물(고급문화만을 향유하려 하는 인텔리층)"은 이제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 자리를 대체한 건 상류 문화와 하류 문화,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모든 것을 자유롭게 소비하는 범세계적인 엘리트이다.

그들은 세상 어디에 있든 편안해 안다. 우리는 심지어 우리 사회 엘리트들에게 이런 잡식성 다원주의를 요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우리는 귀족적인 대통령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가 원하는 건 영국 여왕과 함께 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도 알지만 동시에 맥주 한 잔을 놓고 접이식 의자에 앉아 정상회담을 하면서도 편안해할 줄 아는 사람이다. 

ㅡ 셰이머스 라만 칸 "특권" 281~282쪽



저자는 과거의 특권층이 일종의 배타적인 귀족주의를 보였다면 오늘날의 엘리트들은 잡식성 다원주의를 보이고 있다고 진단한다. 전자는 가시적인 장벽을 세워서 엘리트와 비엘리트를 구분했다면 후자는 외관상으로는 벽을 허물어서 공생공락의 미덕을 강조하는 듯하면서도 사실은 '보이지 않는' 벽을 구축해서 여전히 경계를 짓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각주에도 나오지만, 오바마와 문재인 같은 일국의 지도자들은 일반 서민들과 함께 맥주 미팅을 갖는 장면을 종종 연출한 바 있다. 이들은 과거의 지도자들과는 다르게 권위적(백악관)이거나 폐쇄적(궁정동 안가)인 공간에서 과감히 나와서 자신도 일반 서민들과 다르지 않으며 누군가를 함부로 배제하거나 소외시키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전달한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2010년경에 "진보집권플랜"의 공동저자였던 조국 교수와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는 피씨방에 들러서 트위터로 다수의 네티즌들과 열띤 소통의 시간을 가진 적이 있다. 이날 조 교수는 3000명이나 되는 네티즌들로부터 팔로워 신청을 받았고 트윗을 통한 대화는 약 75분 동안 이어졌다. 

저자인 셰이머스 라만 칸의 견해에 따르자면 우리 시대의 엘리트는 일견 개방적이고도 민주적인 이들로 보이며 나아가 평등화라는 가치를 전파하는 전도사들처럼 비치기도 한다. 그러나 세상은 평등하지 않고 접근 기회와 가능성은 모두에게 골고루 주어져 있지 않으며 도리어 일부에게 편중되어 있다. 그럼에도 대통령/언론인/교수 같은 이들이 대중문화(SNS, 유튜브, 치맥 등)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거기에 편안감과 즐거움을 느끼는 모습을 보이면 일종의 착시 현상이 생긴다. 이곳은 기울어진 운동장이자 장벽이 세워진 벌판인데 저들이 모두의 친구이자 아군처럼 보이게 되는 것이다. 

이 책에서 특권이란 일반적으로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 접촉하게 되는 지배층/상류층의 어떤 표식(자산가 부모, 고스펙, 고학비, 인맥, 학맥, 증여 등등)을 뜻한다. 엘리트와 기득권은 말한다. 우리는 더 이상 배타적인 서클이 아니며 오히려 민주적인 집단이라고, 아이돌의 음악도 들을 줄 알고 온라인 상에서의 소통도 할 줄 알며 서민적인 식당에 들러서 다른 이들과 소주잔을 부딪칠 수 있다고, 이처럼 개방되고 평등한 세상 안에서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여기서 상술했던 이들이 가졌던 표식은 희미해지면서 저들은 노력해서 출세한 재능 있는 사람들이자 포용성과 개방성을 겸비하고 있다는 시각이 생겨난다. 그리고 (실제로 공정하지도 않고 자신의 능력만으로 그 자리에 오른 것이 아님에도) 공정과 능력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부상해서 엘리트를 정당화하는 무기로 사용된다.

이제 삼 분의 이쯤 읽은 셈인데, 이 책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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