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역 2번 출구 앞에는 먼지가 날리는 중이어서 시야가 부옜다. 양복을 입은 세 명의 남자들이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나누어 주면서 하느님을 믿는지 물었고 이차선 도로를 지나가는 차들은 매연을 내뿜으면서 서행했다. 도로 양편에는 무언가를 부수고, 만드는 공사가 이어지고 있었다. 펜스 너머로 보이는 포클레인은 삽날로 쇳덩이를 부수는 중이었고 반대편에서는 노란색 안전모를 쓴 사람들이 비계 위에서 회색빛 타일을 건물 외벽에 붙인 뒤 이음새에 실리콘을 부어서 마감을 했다. 누군가는 이러한 풍경을 보면서 아쉬움이나 불쾌감과 같은 감정을 느꼈을 수도 있을 테지만 나로서는 정서적 친밀감과 심적인 편안감을 동시에 느꼈다. 그곳의 풍경은 안산의 어딘가를, 공장이 밀집한 공단 지역이나 개발의 손길이 크게 미치지는 않은 역사 앞, 피부색과 눈빛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생계를 도모하는 어느 거리의 정경과 닮아 있었다.
나는 직진을 하다가 외벽이 유백색인 건물에 도착했다. 유리문 앞에는 사진전과 관련된 내용이 쓰인 노란색 배너가 있었고 벽 너머에서는 남자 바리스타가 커피를 유리컵에 따르는 중이었다. 사진전이나 그림전을 간 경험은 드물었으나 카페 안에 갤러리가 있다는 애기를 들었던 적은 없었다. 나는 안으로 들어왔고 카페 한구석에 있는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을 발견했다. 계단을 타고 아래로 내려오니 개나리색 천이 드리워진 입구가 보였다. 그곳이 갤러리였고 작가는 구석진 곳에 있는 나무 의자에 앉아 있었다.
갤러리는 지하에 있어서 공기가 위쪽보다 상대적으로 서늘했다. 작가가 바닷속 온도와 질감을 살리고자 이러한 공간을 택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피부에 찬기가 끼치고 회남색 타일들이 깔린 바닥을 보고 있으려니 머릿속이 어두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우윳빛 벽에는 단원고 교실의 풍경을 찍은 사진들이 잇따라 붙어 있었고 갤러리 한가운데에는 작가가 그곳에서 직접 가져온 책상이 조명을 받아서 윤광이 흘렀다. 책상 위에는 바나나우유와 여러 종류의 과자들과 노란색 조화, 겉표지에 도라에몽이 그려진 책과 하트 모양의 포스트잇들이 있었다. 작가는 책을 펼쳐서 책상의 주인인 남학생의 아버지를 보여 주었다. 그의 얼굴은 수척했고 책상에는 마른 꽃들이 많았다. 학생의 아버지는 교실에 들를 때마다 꽃을 가져왔고 그것이 시들어도 치우지 않았다. 그의 아내, 학생의 어머니는 교실에 들렀다가는 참척慘慽의 고통이 늘어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여지껏 이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작가의 설명도 이어졌다.
필립 로스의 "휴먼 스테인"이라는 소설에는 월남전 참전 경력이 있는 레스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전쟁에서 살아온 뒤에도 살육의 경험들로 인해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게 되면서 육체와 정신이 망가지는 지경에 이른다. 미국에서는 이러한 PTSD에 시달리는 재향군인들을 돕고자 여러 재활 프로그램이 시행되고 있지만 레스와 같은 인물들이 비극적인 경험의 반복 재생에서 벗어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지는 못한다. 작중에서 레스는 (재활 프로그램의 일환인) 중국 식당에서 음식을 고르고 식기를 사용해서 식사하는 행위 일체에 거부감과 두려움을 느낀다. 그는 물컵을 드는 것만으로도 식은땀을 흘리며 그곳에 있는 동양인들을 보면서 정글 속에서 맡았던 누군가의 땀내와 바닥의 흙내를 기억하며 몸서리를 친다.
누군가의 죽음에서 비롯한 개개인의 심적 고통은ㅡ 이것이 예상치 못했던 참척이건 원치 않는 살육이건 간에ㅡ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일부 사람들은 그들이 피의 정글을, 피의 바다를 결국에는 통과한 셈이니 더 이상 과거의 기억에 얽매여서 살아서만은 안 된다는 논지의 주장을 할 때가 있다. 그러한 논리의 주장자들은 피와 관련된 극적인 경험을 해 보지 못한 사람들로 보인다. 피의 정글과 바다를 거쳐 온 뒤에도 해당자들의 몸에는 피가 묻어 있다. 앞으로 그 이의 생애에 행복과 축복과 관련된 사건들이 이어진다고 해도 그 피는 완전히 씻겨지지 않는다. 도리어 피로서 피가 씻기는 광경을 평생 동안 마주하는 고통에 직면하는 경우가 많다.
갤러리에서 내 시선에 유난히 들어왔던 사진은 교실 안 풍경과 복도 정경이 겹쳐진 듯한 모습으로 찍힌 작품(맨 아래 사진)이었다. 하나의 사진 안에 두 개의 장면이 중첩되어 있어서 작품은 사실의 재현이라는 본래 목적을 초과해서 몽환적이고도 착란적인 이 미지를 포착하는 데 성공한다. 작가는 카메라의 오작동으로 인하여 실수로 이 사진이 찍혔으나 그러한 결과물이 마음에 들어서 결국 전시회에 걸게 되었다는 사정을 밝혔다. 그러면서 이 '실수'는 단순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안산의 교실에서 사진을 찍고 찍느라 길고긴 시간을 보냈던, 본인의 작가적인 노력과 열정에 따른 운 좋은 보상일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작가는 설명이 끝난 뒤에도 타인의 슬픔에 반응하고 공감하려 하는 공동체주의와 이타주의를 여러 번 말머리에 올렸다. 그 이의 창작 목적은 슬픔과 죄책감, 애도와 희망에 방점을 둔 것으로 내게 보였다. 나는 이 작가가 착한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약간의 우려가 들었다. 이 사진들이 지닌 의의와 가치를 그 정도로 한정 지어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느 한쪽에선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기념하는 행사가 이어지고 있지만 다른 한쪽에선 이 사건의 반복 언급에 염증을 느끼거나 나아가 폭언을 일삼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러한 이들은 크게 두 부류인데 첫 번째는 여전히 503에 대한 애정과 흠모를 가지고 있으며 세월호 사건이 그들의 영도자에게 부정적인 여파를 주었다고 보는 이들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세월호 사건과 비견될 정도인 비극적인 사건들(예컨대 천안함 참사)이 있음에도 사람들이 오로지 전자에만 가치를 부여하고 후자는 소홀히 대하고 있다는 입장을 표명하는 이들이다.
이러한 주장은 한국 역사에서 일어난 끔찍한 비극들을 총괄적/복합적으로 파악하지 못하는 이해도의 결여를 드러내고 있으며 나아가 서로 다른 망자(들)의 존엄에 위계와 차등을 나누려는 저의(천안함 사건은 군인들의 위대한 순국이나 세월호 사건은 단순 사고사일 뿐이다)마저 엿보인다. 따라서 이와 같은 의견은 무익할 뿐만 아니라 무례하며 과거의 비극적인 사건들을 반성적/발전적으로 성찰한 만한 기회와 동력을 조금도 제공해 주지 못한다.
나는 갤러리에 있는 사진들을 보면서 국가 권력의 폭압적인 작용(5.18 민주화 항쟁)과 국가 권력의 태만적/무책임적 행태(세월호 사건)는 사실상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 동전의 이름은 집정자와 그 추종 세력의 자격 미달이자, 정부의 존재 의의 상실이다. 그렇다면 '세월호 사건 이후'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망자들에 대한 연민과 추도도 필요하겠지만 그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있다. 이제 세월호 사건은 공식적인 기억의 장이자,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될 역사의 '아프고 부끄러운' 기록으로 자리매김하는 과정에 있다. 그럼에도 현재 이러한 과정에 반기를 들면서 503의 석방과 명예 회복을, 망자와 그 유가족들의 존엄을 훼손하려는 시도들이 여러 층위(인터넷, 광장 등)에서 나타나고 있다. 극언을 하자면 사람으로서 도리와 염치를 저버린 이들에게는 그에 따른 대접을 해야 한다. 이들의 발언을 '표현의 자유'라는 문구를 통해서 감싸거나, 관용주의적인 태도로 대해서는 안 된다. 요컨대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세월호 사건을 조롱/폄훼/왜곡하려는 이들에게 비난과 처벌이라는 이름의 몽둥이를 좀 더 제대로, 휘둘러야 한다는 것이다.
망각에 맞서서, 재현의 노고를 아끼지 않았던 작가의 집념에 진정으로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