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에서 철학을 만나다
데이먼 영 지음, 서정아 옮김 / 이론과실천 / 2016년 8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제 - Philosophy in the Garden, 2012년

  저자 – 데이먼 영

 

 

 

 

 

  책을 처음 접했을 때 제목을 착각했다. 원래는 ‘철학을 만나다’인데 ‘철학자를 만난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목차를 읽고는, 왜 작가들만 잔뜩 있을까 의아해했었다. 작가 중에 철학적 생각으로 책을 쓴 사람만 모아둔 걸까? 그런데 작가 중에 자신만의 철학 없이 글을 쓰는 사람이 어디 있어? 나중에 제목을 제대로 알고 얼마나 얼굴이 화끈거리던지……. 다른 사람에겐 말을 안 해서 다행이었다.

 

  이 책은 열 한 명의 작가를 소개하고 있다. 그들이 선정한 이유는 단 하나, 제목에도 나와 있지만, 자신만의 정원을 가꾼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물론 정원이라고 하지만, 땅보다는 분재를 아낀 사람도 있긴 하다. 그러니까 자연을 사랑하고 식물과 함께하는 삶을 살았던 작가들이라고 해야 할까?

 

  시골집에서 정원을 가꾸며 사색을 즐기는 것을 좋아했고, 그럴 때만 글을 쓸 수 있었던 ‘제인 오스틴’. 그녀는 자연의 이치에 따라 변화하는 정원을 보며 세속적 가치를 추구하는 동시에 신앙으로 위안을 얻었다. 그녀의 작품에 넓은 정원이 나오는 건, 다 이유가 있었다. 침실에 분재를 놓고, 그것을 지켜보는 걸 즐겼다는 ‘마르셀 프루스트’. 비록 분재에는 나무 한 그루만이 있지만, 그를 그걸 통해 숲을 상상했다고 한다. 또한, 그에게 분재는 통찰력을 얻을 수 있는 관찰의 대상이고 동시에 기억을 되살리는 매개체였다고 한다. 몽크스 하우스에서 묵묵히 정원을 가꿨던 ‘레너드 울프’.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그는 폭력과 야만이 모든 것을 파괴하는 것을 막고자 노력했다. 그에게 정원은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곳이자, 인간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간이기도 했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직접 정원을 가꿨다기보다는, 정원에서 산책하며 사색하기를 즐겼다. ‘생각 나무’라 이름 붙인 레몬 나무숲은 휴식처가 아닌, 있는 그대로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과감한 도전 공간이었다.

 

  ‘콜레트’는 이 책에서 처음 알게 된 작가다. 잦은 스캔들, 과감한 작품 내용에 따른 악평과 인간관계에 관한 실망감을 정원의 꽃들로 대체했다고 볼 수 있다. 변덕스럽지도 않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 꽃은, 그녀의 욕망을 잠재우는 데 도움을 주었다. ‘장 자크 루소’에게 정원은 바쁜 삶에서 숨을 돌리고, 최상의 자신을 재발견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원예학과 식물학을 통해, 그는 관찰하고 분석하며 묘사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었다. ‘조지 오웰’은 ‘주라 섬’에서 낫을 들고 땅을 고르며 정원을 가꿨다. 그에게 정원은 실험실이었고 지식의 보고였다. 농작물이 생각대로 자라지 않기에, 그는 가설과 검증 그리고 사실로 드러나는 과정을 중시했다. ‘에밀리 디킨슨’은 거의 은둔 생활을 했지만, 그녀는 화초를 통해 외부와 소통하고 상상력을 발휘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불교와 일본 정원에 매료되었다. 그는 돌과 나무, 연못의 조화를 통해 쉼 없는 혁신을 꿈꿨다. 창조와 파괴, 제작과 변형을 자극제 삼아 더 충만한 삶을 추구했다.

 

  각자 생각하는 바에 따라,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도 달랐다. 어떤 이는 실존과 존재를, 또 어떤 이는 종교적 위안을, 또 다른 어떤 이는 변치 않는 뭔가를 찾아내고 갈구했다. 하여간 그들은 정원 가꾸기를 통해 자신과 사회, 그리고 세상에 관해 생각하고 정리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바로 그들의 저서이고 말이다.

 

  문득 요즘 쓰는 감상문이 예전처럼 재미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책을 읽는 시간이 전보다 줄어드는 대신, 넋 놓고 유튜브 방송 보는 시간은 늘었고 말이다. 나에게도 정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난 흙만 지는 것도 싫고, 땅에서 나오는 벌레도 싫어하니까 정원은커녕 화분도 소용이 없을 거야,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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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シライサン , 2019

  감독 - 오츠 이치

  출연 - 이나바 유, 이토요 마리에, 오시나리 슈고, 타니무라 미츠키

 

 

 

 

  갑작스러운 친구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한 ‘미즈키’와 뜬금없는 동생의 죽음을 보게 된 ‘하루오’. 석연찮은 점을 느낀 하루오는 미즈키를 찾아간다. 거기서 죽은 두 사람이 같은 곳에서 일했고, ‘에이코’라는 다른 친구와 함께 여행을 갔다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에이코를 찾아간 둘은 여행지에서 그들이 들은 괴담에 관해 알게 된다. 자신의 이름을 아는 사람을 찾아가 죽인다는, 눈이 기괴하게 큰 여자에 관한 이야기였다. 둘은 처음에는 믿지 않았지만, 이야기하던 에이코마저 ‘시라이 상’이 온다며 죽어버리자 공포에 휩싸인다. 그날 이후 미즈키는 낯선 존재가 주위를 맴도는 걸 느끼는데…….

 

  영화 ‘주온’ 시리즈나 ‘링’ 시리즈에서도 생각했지만, 특정인이 아닌 무작위 대상을 노린 저주는 찝찝하고 짜증 나며 뒤끝이 영 좋지가 않다. 이건 나만 혼자 법을 잘 지키고 선하게 산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집을 보러 갔는데, 거기가 악령이 깃든 곳이라면? 내가 영화를 하나 보려고 했는데 우연히 재생시킨 영상이 사실 저주의 원혼이 깃든 거라면?

 

  이 영화도 그런 류의 작품이었다. 괴담 중에 듣는 이를 화들짝 놀라게 하면서 마무리 짓는 유형이 있다. 중반까지 조용히 말하면서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다 끝에 가서 누군가를 가리키며 ‘다음은 너!’ 내지는 ‘네 뒤!’ 같은 고함을 치는 것이다. 수학여행이나 더운 여름밤에 한두 번은 해봤거나 당해봤을 것이다. 원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웃음과 함께 넘어가겠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럴 수가 없다. 정말로 다음은 너라고 지목된 사람에게 귀신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마무리는 어쩐지 링이 떠올랐다. 폭탄 돌리기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확률 게임이라고 해야 할까? 인간은 비밀을 간직하지 못하는 존재인가 보다. 하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남에게 말하지 못해 대나무밭에서 소리친 사람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니까. 아니면 나만 당할 수 없다는 마음인 걸까? 그리고 시라이상이 인간의 계산대로 움직인다는 보장도 없는데 말이다. 막말로 내 앞에 몇 년 후가 아니라 당장 오늘 밤에 나올 수도 있는데 말이다. 너무 단순하고 자기 편의 위주의 생각이었다. 뭐,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아무 말 아니 아무 계획이나 세우는 거겠지만.

 

  눈구덩이가 푹 파여 피가 뚝뚝 떨어지는 여자 귀신이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영화는 그냥 그랬다. 중간중간 딴짓을 하면서 봐도 이야기를 따라잡는데 전혀 어색하지 않았고, 귀신이 나오는 장면도 처음에는 ‘오!’했는데 보면 볼수록 그냥 그랬다. 매번 비슷한 상황에 똑같은 자세로만 나오지 말고, 조금씩이라도 변화를 주면 더 좋았을 텐데. 깜짝 놀라게 하는 장면도 별로 없고, 변화 없이 반복적인 귀신 등장 장면은 지루하기만 하고……. 설정은 괜찮았는데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나 배경에 관한 부분들이 매우 아쉬운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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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Enola Holmes, 2020

  원작 - 낸시 스프링거의 ‘사라진 후작 The Case of the Missing Marquess, 2018’

  감독 - 해리 브래드비어

  출연 - 밀리 바비 브라운, 헨리 카빌, 샘 클래플린, 헬레나 본햄 카터

 

 

 

 

  어릴 적에 아빠를 잃고 이미 다 큰 두 오빠는 런던으로 떠난 후, ‘에놀라’는 엄마와 단둘이 교외에서 자유로운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녀의 생일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엄마가 사라진다. 집으로 돌아온 두 오빠, ‘마이크로프트’와 ‘셜록’은 사라진 엄마의 행방보다 에놀라의 상태에 더 경악한다. 19세기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상과는 전혀 거리가 먼 상태로 길러진 에놀라. 마이크로프트는 그녀를 기숙학교로 보내 전통적인 여성으로 교육하겠다 말한다. 이에 반발한 에놀라는 직접 엄마를 찾겠다고 몰래 런던으로 가는 기차에 올라탄다. 그곳에서 그녀는 가출한 귀족가의 후계자 '튜크스베리'를 만난다. 얼떨결에 후계자의 목숨을 노린 암살자에게서 벗어난 둘은, 겨우 런던에 도착한다. 그리고 에놀라는 엄마가 남긴 흔적을 찾아가는데…….

 

  만약 새로운 청소년 탐정의 등장이라면, 이 작품은 꽤 괜찮은 점수를 줄 수 있다. 19세기의 사회적 분위기에 맞지 않는 주체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한 소녀의 이야기이자, 그런 그녀를 응원하는 연대와 억압하려는 반대자들의 대립을 배경으로 사건이 벌어지고 이를 해결하려는 주인공의 고군분투기가 유쾌하게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여성에게 투표권을 주느냐 마느냐의 선택이 달린 사회적 이슈를 두고 무조건 성별로 편이 나뉘는 게 아닌,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따라 의견이 갈린다는 점도 괜찮았다. 무조건 여자라고 여자 편을 드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 남자라고 남자 편을 드는 게 아니었다. 자칫 무겁게 흘러갈 수 있는 주제와 분위기였지만, 적당한 무게감으로 흘려보냈다.

 

  하지만 원작이 이미 그 유명한 ‘셜록 홈즈’라는 이름을 뒤에 업고 있기에, 그 부분에서 생각하면 상당히 불만족스러운 영화였다. 이 작품은, 어떻게 말하면 셜록 홈즈 시리즈의 스핀오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셜록 홈즈가 아닌, 있었는지 존재도 불명확한 여동생을 주인공으로 했으니 말이다. 그러면, 적어도 본편에 해당하는 시리즈의 인물들 성격은 비슷하게 설정해야 하는 건 아닐까? 에놀라의 주체성을 강조하고 가출 이유를 주기 위해서라지만, 그 당시 사회적 인식이나 교육이 그러했다고 하지만, 마이크로프트와 셜록의 행동은 너무 어울리지 않았다. 

 

  특히 그런 면은 홈즈 집안의 장남인 마이크로프트에서 제일 심했다. 추리력을 비롯한 뛰어난 지적 능력 때문에 국가적 위기가 닥칠 때마다 지도층에서 의지한다는 마이크로프트는 여기서는 그냥 돈 한 푼에 절절매는 수전노에 앞뒤가 꽉 막힌 꼰대 아재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에놀라를 기른 어머니가 마이크로프트도 길렀을 텐데, 어떻게 그렇게 다른지 의문이었다. 딸은 독립적이고 임기응변에 강하도록 길렀으면서, 아들은 그냥 꼰대로 기르다니! 설마 아들이라고 어릴 때부터 기숙학교에 집어넣고, 직접 가르치지 않았던 걸까? 아! 삼 남매의 나이 차가 그렇게 많이 난 이유가, 혹시 에놀라의 엄마가 후처여서 그런 건가? 그것도 아니면, 이 시리즈의 작가가 마이크로프트를 너무너무너무 싫어했던 모양이다.

 

  셜록도 원작과 다르긴 마찬가지다. ‘저 남자가 친절하게 사람을 대하는 성격이 아닌데’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저렇게 남의 얘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일일이 대꾸해주는 셜록이라니! 거기다 너무 인간적이다. 여동생 바보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것도 원작의 셜록과는 거리가 있었다. 원작에서는 형을 높이 평가하고 존경하는 모습을 보일 때가 있었지만, 영화에서는 그런 부분이 전혀 없었다. 마치 꼰대 형과 사춘기 반항아 조카 사이에서 어찌할 줄 몰라하는 삼촌 같았다.

 

  주인공을 돋보이려고 적수가 되는 상대나 주위 사람을 허접하고 바보로 만드는 기법은 많이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왜냐고? 바보로 만들어야 할 상대가 거의 130년 동안 천재로 소문이 자자한 홈즈 형제니까 말이다. 굳이 마이크로프트와 셜록을 깎아내리지 않고서 에놀라의 능력을 띄우는 방법은 많았을 것이다.

 

  홈즈 집안의 막내라는 타이틀이 없었다면, 불만 없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였다. 원작이 있는 영화를 보면 자연스럽게 소설에 관심이 갔는데, 이번 작품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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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 죽이기 ㅣ 죽이기 시리즈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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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クララ殺し, 2016

  저자 – 고바야시 야스미

 

 

 

 

  ‘도마뱀 빌’은 ‘호프만 우주’라는 세계에 도착한다. 그는 그곳에서 ‘클라라’라는 소녀와 ‘드로셀마이어’라는 이름의 판사를 만난다. 둘은 도마뱀이 말할 줄 안다는 사실과 그가 지구가 아닌 또 다른 세계에서 왔다는 이야기에 놀란다. 우연히 지구에서 재회한 셋. 다른 세계에서는 도마뱀 빌이지만, 지구에서는 대학원생인 ‘이모리’는 ‘로텐 글라라’와 그녀의 이모부인 ‘드로셀마이어’ 교수를 만난다. 글라라는 누군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며 이모리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사건을 조사하던 중, 이모리는 함정에 빠져 죽고 마는데…….

 

  어찌 된 일인지 모르지만, 이 책은 읽기가 어려웠다. 그 전에 읽은 ‘곽재식의 세균박람회, 2020’은 과학책임에도 불구하고 그냥 술술 넘어갔는데, 이 책은 소설인데도 책장 넘기기가 힘들었다. 왜 그럴까 생각해봤다. 아마 등장인물의 이름이 낯설어서가 아닐까 싶다. 그동안 읽은 책이 일본이나 영미권의 호러추리SF스릴러 작품이라서, 독일계 이름은 익숙지가 않아서였던 것 같다. 게다가 이 시리즈는 지구와 다른 세계의 인물이 아바타라는 개념으로 묶여 있어서, 그걸 구별하는 것도 쉬운 건 아니었다. 그래서 초반 3분의 1 정도는 이름에 따른 인물 구별이 어려워서, 읽기가 어려웠다. 오죽하면 책을 덮어버릴 정도였다. 물론 구별이 가능해진 다음에는 진도가 쭉쭉 나갔지만 말이다.

 

  지난번에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죽이려고 했다면, 이번에는 ‘호두까기 인형의 클라라’가 죽을 위기에 처했다. 왜 동화 속의 어린 소녀들을 죽이려고 하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됐다. 도마뱀 빌은 이번에도 세계를 떠돌다가 다른 장소에 도착했고, 거기서 또 사건을 떠안고 말았다. 덩달아 빌의 ‘아바타라’인 이모리 역시 지구에서 비슷한 일을 겪고 말이다. 어떤 작동 원리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이모리는 죽어도 죽지 않는다. 그렇다고 아예 안 죽는 불사의 존재는 아니다. 그가 안 죽는 이유가 지구와 호프만 우주에서 벌어진 사건을 해결하는 힌트가 된다.

 

  처음에 휠체어를 탄 클라라가 등장하기에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 Heidi, 1880’가 배경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다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호프만 우주’라는 말 때문이었다. 뒤이어 ‘호프만 우주인데 왜 주인공이 클라라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호프만이 쓴 동화의 주인공 이름은 발레와는 다르다는 사실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음, 그 이상은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서 패스하겠다.

 

  사건의 트릭은 상당히 교묘하고 영악했다. 두 세계를 연결하는 본체와 아바타라는 존재가 있지만, 누가 누군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제대로 악용한 예라고 할 수 있다. 거기까지 가는 과정이 까다롭고 헷갈리며 쓸데없는 말장난으로 좀 짜증도 났지만, 결말까지 다 읽고 나면 괜찮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 스포일러가 될까 자세히는 말하지 못하지만, ‘인간과 기계의 차이가 뭘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기계 인간을 죽이면 살인죄가 성립될까? 자신을 인간으로 알고, 누구보다 인간적이었던 기계 인간은 기계인가 인간인가? 피와 살점으로 이루어진 것이 인간이라면, 몸의 90%가 기계로 이루어진 존재는 인간일까 기계일까? 로봇이나 안드로이드가 나오는 작품을 볼 때마다 드는 의문이었는데, 아직도 잘 모르겠다.

 

  세 번째 이야기를 읽고는 싶은데 그렇다고 빨리 읽고 싶지는 않은, 조금 시간을 두고 읽고 싶은 그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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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Lily Collins - Inheritance (인헤리턴스) (2020)(지역코드1)(한글무자막)(DVD)
Various Artists / LIONSGATE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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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제 - Inheritance, 2020

  감독 - 본 스테인

  출연 - 릴리 콜린스, 사이먼 페그, 코니 닐슨, 체이스 크로포드

 

 

 

 

  부유한 정치가인 ‘아처 먼로’가 갑자기 사망한다. 유언장을 펼쳐보니, 뜻밖에도 부인과 아들에게는 엄청난 유산을 물려주고 딸 ‘로렌’에게는 상대적으로 적은 금액만 남아있었다. 하지만 변호사는 남들 모르게 비밀리에 봉투 하나를 건넨다. 아버지가 그녀에게만 남긴 것이라면서 말이다. 봉투에 있던 USB의 영상을 본 로렌은, 지하 벙커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30년 동안 갇혀 있었다는 남자 ‘모건’을 만나게 되는데…….

 

  주연을 맡은 두 배우가 익숙하다. 우선 릴리 콜린스는 영화 ‘백설공주 Mirror, Mirror, 2012’에서 처음 봤고, 사이먼 페그는 명작 ‘새벽의 황당한 저주 Shaun Of The Dead, 2004’로 얼굴을 익힌 배우였다. 사이먼 페그는 주로 코미디물에서만 접했던 배우였기에, 스릴러 장르에서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도 되었다. 하지만 영화는 아쉬웠다. 그 이유를 설명하려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설정을 밝혀야 한다. 그래서 다시 한번 말하겠다. 영화는 실망스러웠다.

 

 

 

** 여기서부터 스포일러 대량 투척!!!!!!! **

 

 


 

** 스포일러가 싫으시면 돌아가시오!!! **

 

 




 

  영화는 지하 벙커에 갇혀서 악과 독으로 똘똘 뭉친 남자와 사회 물은 먹었지만 그렇다고 찌들지 않은 젊은 검사의 심리 대결로 이어진다. 아니, 이어질 뻔했다. 거의 반평생을 갇혀 살면서 악의로 가득한 사람을 상대하기엔, 상대가 너무 순진했다. 그러니까 범죄자의 거짓에 휘둘리다가 진실을 알고 충격과 공포에 놀란 꼬꼬마 검사의 고군분투기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릴 것이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아버지는 딸에게 저 사람의 처분을 맡겼는지 몰랐다. 남자가 자신이 갇혔던 이유라고 얘기한 게 말이 되지 않았다. 교통사고의 공범이자 목격자이기에 가뒀다고? 그리고 30년 동안 가둬두고 가끔 찾아와 얘기하고 게임을 하고 그랬다고? 그냥 아버지가 그 남자를 너무 사랑해서 납치 감금했다는 게 더 신빙성이 있어 보였다. 그런데 딸은 그걸 믿었다! 검사라면서! 자기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죽은 희생자를 몰래 묻을 정도의 사람인데, 겨우 공범의 협박이 무서워서 평생을 가뒀다고? 그런 말을 믿은 거야? 어떻게 검사가 범죄자가 하는 말을 그대로 믿어? 설마 범죄자들 사이에서 호구 검사라고 불리는 거 아냐? 다른 뭔가가 있는지 왜 조사 안 해? 영화 초반에 강성이고 타협하지 않는 성격이라는 걸 보여주는데, 후반에서는 그런 성격이 완전히 무너진다. 막말로 그를 풀어주면 어디 가서 이상한 소리를 지껄일지 모르는데, 그걸 허용한다고? 범죄자가 안 그러겠다는 말을 믿어? 30년 동안 독을 품은 남자의 말을?

 

  결말 부분에 가면, 진짜 이유가 나온다. 왜 로렌만 유산을 적게 받았는지, 왜 그의 처분을 그녀에게 맡겼는지 말이다. 그는 교통사고의 공범이기도 하지만, 그 전에 엄마를 강간한 남자였다. 그러니까 로렌은 모건의 딸이었다. 만약 아처가 모건을 가둬두고 그의 딸이 자신을 아빠라고 부르며 자라는 모습을 복수라고 생각했으면, 30년 동안 가둬둔 이유로 충분하다. 그런데 그것도 모건이 로렌에 대한 애정이 있을 때나 가능한 게 아니었을까? 영화를 보면, 모건은 로렌에게 애정이 거의 없었다. 차라리 한두 살 때까지 로렌을 모건과 만나게 해서 딸이라는 인식이 생긴 다음 빼앗았다면, 더 괴로웠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다른 방법도 많은데 굳이…….

 

  여기서 이런 생각이 든다. 아처는 무슨 생각으로 로렌에게 그를 떠넘겼을까? 아마 그는 로렌을 진심으로 딸로 여기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정말로 사랑했다면, 그녀를 자기 친딸로 여겼다면 절대로 그녀에게 진실을 알 기회를 주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런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면 그 누구도 모건에 관해 알 수가 없었을 테니 말이다. 아처가 죽고 아무도 방문하지 않았다면 아마 그는 굶어 죽지 않았을까? 아, 혹시 재개발해서 땅을 파헤쳤을 때 시체가 나올까 봐 겁먹은 걸까? 그런 거였구나. 시체 처리를 맡겼는데 애가 너무 순진해서 넘어가고 만 거였구나. 아니면 로렌의 출생마저 용납할 수 없어서 존재 자체가 죄악이라 생각해, 그녀에게도 복수하고 싶었던 걸까?

 

  초반까지는 긴장감도 적당하고 둘의 대결이 흥미로웠는데,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이게 뭐야라는 생각과 함께 좀 지루했다. 용두사미가 된 거 같은 영화였다. 특히 ‘아임 유어 파더!’라는 대사가 너무도 밋밋하고 지루하게 느껴졌다. 그 유명한 대사가 나온 작품은 부자간의 대립이 극에 달했을 때 나와 충격이 컸지만, 이 영화는 흐름이 지루해지고 어느 정도 그럴 거라는 예상을 하고 있을 때 나와서인지 그냥 그랬다.

 

  나름대로 연기 괜찮게 한다는 소문이 있는 배우와 괜찮은 설정으로 이렇게 만들 수 있을까? 이건 마치 상급 한우를 잘 구워보겠다고 하다가 너무 구워서 뻣뻣하고 질기며 바싹 마른 나뭇가지로 만들어버린 느낌이랄까? 육포도 잘 만들면 맛있는데, 이건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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