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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 Enola Holmes, 2020
원작 - 낸시 스프링거의 ‘사라진 후작 The Case of the Missing Marquess, 2018’
감독 - 해리 브래드비어
출연 - 밀리 바비 브라운, 헨리 카빌, 샘 클래플린, 헬레나 본햄 카터
어릴 적에 아빠를 잃고 이미 다 큰 두 오빠는 런던으로 떠난 후, ‘에놀라’는 엄마와 단둘이 교외에서 자유로운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녀의 생일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엄마가 사라진다. 집으로 돌아온 두 오빠, ‘마이크로프트’와 ‘셜록’은 사라진 엄마의 행방보다 에놀라의 상태에 더 경악한다. 19세기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상과는 전혀 거리가 먼 상태로 길러진 에놀라. 마이크로프트는 그녀를 기숙학교로 보내 전통적인 여성으로 교육하겠다 말한다. 이에 반발한 에놀라는 직접 엄마를 찾겠다고 몰래 런던으로 가는 기차에 올라탄다. 그곳에서 그녀는 가출한 귀족가의 후계자 '튜크스베리'를 만난다. 얼떨결에 후계자의 목숨을 노린 암살자에게서 벗어난 둘은, 겨우 런던에 도착한다. 그리고 에놀라는 엄마가 남긴 흔적을 찾아가는데…….
만약 새로운 청소년 탐정의 등장이라면, 이 작품은 꽤 괜찮은 점수를 줄 수 있다. 19세기의 사회적 분위기에 맞지 않는 주체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한 소녀의 이야기이자, 그런 그녀를 응원하는 연대와 억압하려는 반대자들의 대립을 배경으로 사건이 벌어지고 이를 해결하려는 주인공의 고군분투기가 유쾌하게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여성에게 투표권을 주느냐 마느냐의 선택이 달린 사회적 이슈를 두고 무조건 성별로 편이 나뉘는 게 아닌,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따라 의견이 갈린다는 점도 괜찮았다. 무조건 여자라고 여자 편을 드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 남자라고 남자 편을 드는 게 아니었다. 자칫 무겁게 흘러갈 수 있는 주제와 분위기였지만, 적당한 무게감으로 흘려보냈다.
하지만 원작이 이미 그 유명한 ‘셜록 홈즈’라는 이름을 뒤에 업고 있기에, 그 부분에서 생각하면 상당히 불만족스러운 영화였다. 이 작품은, 어떻게 말하면 셜록 홈즈 시리즈의 스핀오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셜록 홈즈가 아닌, 있었는지 존재도 불명확한 여동생을 주인공으로 했으니 말이다. 그러면, 적어도 본편에 해당하는 시리즈의 인물들 성격은 비슷하게 설정해야 하는 건 아닐까? 에놀라의 주체성을 강조하고 가출 이유를 주기 위해서라지만, 그 당시 사회적 인식이나 교육이 그러했다고 하지만, 마이크로프트와 셜록의 행동은 너무 어울리지 않았다.
특히 그런 면은 홈즈 집안의 장남인 마이크로프트에서 제일 심했다. 추리력을 비롯한 뛰어난 지적 능력 때문에 국가적 위기가 닥칠 때마다 지도층에서 의지한다는 마이크로프트는 여기서는 그냥 돈 한 푼에 절절매는 수전노에 앞뒤가 꽉 막힌 꼰대 아재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에놀라를 기른 어머니가 마이크로프트도 길렀을 텐데, 어떻게 그렇게 다른지 의문이었다. 딸은 독립적이고 임기응변에 강하도록 길렀으면서, 아들은 그냥 꼰대로 기르다니! 설마 아들이라고 어릴 때부터 기숙학교에 집어넣고, 직접 가르치지 않았던 걸까? 아! 삼 남매의 나이 차가 그렇게 많이 난 이유가, 혹시 에놀라의 엄마가 후처여서 그런 건가? 그것도 아니면, 이 시리즈의 작가가 마이크로프트를 너무너무너무 싫어했던 모양이다.
셜록도 원작과 다르긴 마찬가지다. ‘저 남자가 친절하게 사람을 대하는 성격이 아닌데’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저렇게 남의 얘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일일이 대꾸해주는 셜록이라니! 거기다 너무 인간적이다. 여동생 바보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것도 원작의 셜록과는 거리가 있었다. 원작에서는 형을 높이 평가하고 존경하는 모습을 보일 때가 있었지만, 영화에서는 그런 부분이 전혀 없었다. 마치 꼰대 형과 사춘기 반항아 조카 사이에서 어찌할 줄 몰라하는 삼촌 같았다.
주인공을 돋보이려고 적수가 되는 상대나 주위 사람을 허접하고 바보로 만드는 기법은 많이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왜냐고? 바보로 만들어야 할 상대가 거의 130년 동안 천재로 소문이 자자한 홈즈 형제니까 말이다. 굳이 마이크로프트와 셜록을 깎아내리지 않고서 에놀라의 능력을 띄우는 방법은 많았을 것이다.
홈즈 집안의 막내라는 타이틀이 없었다면, 불만 없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였다. 원작이 있는 영화를 보면 자연스럽게 소설에 관심이 갔는데, 이번 작품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