쿰을 쿠다 황금펜 클럽 Goldpen Club Novel
작가K 지음 / 청어람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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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작가K



  황금펜 영상문학상에서 금상을 받은 작품이라고 한다. KBS와 같이 한 공모전이니, 아마 영상화시키는 것을 감안해서 수상작을 뽑았으리라 짐작이 간다.


  책을 읽어보니, 그 생각이 맞았다. 자잘하게 나뉜 장면 변화는 마치 드라마를 보는 느낌을 주었다. 특히 3장 ‘자라지 않는 아이’ 부분에서 잘 드러나 있다. 죽은 아이의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짧게 번갈아가면서 나온다. 마치 드라마나 영화의 컷처럼 말이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어떤 스릴러 소설에서도 이런 기법을 쓴 걸 읽은 적이 있다. 제목이 뭐더라……. 아! 앨런 폴섬의 ‘추방’이다. 단문으로 이루어진데다가 자잘한 컷으로 나뉘어, 긴장감과 속도감을 주었다.


  이 책의 제목은 독특하다. 꿈이 아니고, ‘쿰’이다.


  몇몇 장르 소설은 용어 정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익숙하게 아는 단어가 다른 뜻으로 쓰일 때도 있고, 작가가 만들어낸 단어도 있다. ‘프레디’나 ‘크루거’ 그리고 ‘아바타’같은 단어를 그냥 익히 알고 있는 뜻으로 이해하고 읽으면 혼란이 올 수 있다. ‘쿰’이라든가 ‘아이데카’같은 것은 작가가 만들어 낸 단어이고 말이다. (아이데카를 검색하니까 무슨 회사 이름이 나온다.)


  글을 읽으면서, 문득 영화 ‘나이트메어’와 ‘매트릭스’가 떠올랐다. 책의 뒷장을 보니, 심사위원들은 ‘인셉션’을 언급한 모양이다. 하긴 이 책에 나오는 ‘쿰의 보늬’와 그 영화의 ‘림보’가 비슷한 개념이긴 하다. 그 대목을 보는 순간, 나도 영화를 떠올렸으니까.


  하지만 꿈과 현실을 오가는 영화의 원류는 ‘나이트메어’라고 생각한다. 또한 글로 된 것은 장자의 ‘나비 이야기’가 있고 말이다. 그러니 이 작품이 ‘인셉션’의 영향을 받았느니 말았느니 얘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에게는 '쿰을 쿠다‘나 ’인셉션‘이나 둘 다 영화 ‘나이트메어’를 떠올리게 했으니까.


  책은 과거와 현재, 꿈과 현실을 마음껏 넘나든다. 그래서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여기가 꿈의 세계인지 현실인지 그것도 아니면 과거인지 현재인지 헷갈린다.


  특히 18장인 ‘이상한 도시’는 갑자기 ‘나’라고 지칭하는 시점으로 진행되어, 의아함마저 주고 있다. 물론 그 ‘나’가 누구인지 곧 알 수 있지만, 처음에는 당황스럽다. 왜 중간에 인칭이 바뀌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그것도 딱 18장만. 물론 이것이 19장과 연관이 되고, 그 인물이 진짜 인간인지 아니면 아이데카로 만들어낸 허상인지 구별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는 한다. 그렇지만 왜 갑자기 이 장만 ‘나’의 입장에서 서술을 해야 했을까?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이 글은 어떤 의미로는 불친절하다는 인상이 들었다. 작가야 다 알고 쓰는 것이지만, 독자는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정보를 접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둘씩 야금야금 작가가 주는 힌트를 토대로 독자는 숨겨진 비밀을 밝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런 부분에서는 점수를 깎고 싶었다. 위에서 언급한 인칭 변화는 둘째 치고, 과거 현재 꿈 현실을 너무 왔다 갔다 해서 혼란스러웠다. 과거와 현재를 너무 세분화시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조금 분량을 늘여서 나누었으면 어땠을까? 한 번에 읽지 않고, 여러 번 나누어 읽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작가가 열심히 글 전반에 깔아둔 복선과 암시가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았다.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또 다른 안타까운 점은 문장이다. 조금만 더 간결체로 적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 간혹 불필요한 단어가 반복되는 걸 볼 수 있다. 문장을 조금만 더 다듬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특히 작가는 대명사를 별로 사용하지 않았다. 예를 들면 250쪽의 ‘새매는 칼잠을 통과한 총알이 칼잠의 등 뒤에 서 있는 유리를 맞혔다는 것을 깨달았다.’처럼 한 문장에서 같은 사람을 반복할 때는 ‘그’로 쓴다고 알고 있는데…….


  물론 이 작품은 뛰어난 작가의 상상력으로 그 점수를 만회한다. 그리고 자잘한 컷의 나눔이 긴장감과 속도감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적절한 비밀 유지와 살짝 맛만 보여주는 숨겨진 정황 등은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다른 장르 소설과는 차별화된 설정이나 구성도 좋았다. 대개 장르 소설은 판타지라고 드래건이 나오고 검기를 뿌리거나 초능력자가 나오는, 주인공이 대책 없는 먼치킨인 경우가 많은데 말이다. 그래서 한국 장르 소설, 특히 판타지 무협 쪽은 손이 선뜻 가지 않는다. 전에는 곧잘 읽었는데.


  그래서 점수를 더 주고 싶다.


  비록 문장은 조금 더 다듬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고, ‘나이트메어’의 향기가 풍겨 나오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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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의 침입자 - 할인행사
필립 카우프만 감독, 도날드 서덜랜드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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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Invasion Of The Body Snatchers

  원작 - 잭 피니의 ‘The Body Snatchers’

  감독 - 필립 카우프먼

  출연 - 도날드 서덜랜드, 브룩 아담스, 제프 골드블룸, 베로니카 카트라이트


 

  원작 소설은 흥미진진하게 읽다가 결말에서 아쉬움을 느꼈었다. 그러다 이 책이 영화화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하지만 원작을 영화화한 작품 중에 재미나게 본 것은 ‘반지의 제왕’밖에 없어서,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런데 검색을 해보니, 은근히 평이 좋았다. 특히 이번 작품이 말이다.


 

  영화의 배경은 도시. 그렇기에 남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고 삭막하고 단절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내가 아는 가족이 변했다고 의심을 하지만,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그런 절박함을 더 보여주고 있다. 그런 말을 하면 당장에 미쳤냐고 병원에 가보라고 권유할 테니 말이다.


 

  비와 함께 도시에 떨어진 작은 정체모를 것들이 서서히 커지는 모습은, 저 당시에 어떻게 촬영했을까하는 의문을 들게 했다. 78년도에 설마 이런 CG가 있었다니! 놀랄 뿐이다.


 

  영화는 원작 소설보다 더 섬뜩하다. 아마 내가 소리에 민감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게다가 소설을 읽으면서 상상했던 장면들이 영상으로 눈앞에 펼쳐지니까, 더 끔직했다.


 

  이 작품의 외계 침입자들은 다른 외계인 영화처럼 막 광선을 쏘아서 건물을 부수지도 않았고, 인간을 식량으로 여기거나 원료로 사용하지도 않았다. 그냥 향이 좋고 예쁜 꽃으로 우리들에게 다가왔다. 꽃병이나 유리컵에 담아놓으면 보기에 좋고, 화단에 심으면 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괜찮은 식물이었다.


 

  그런데 그게 훨씬 더 무서웠다. 


 문득 영화 ‘나이트 메어’가 떠올랐다. 그 영화나 이 영화나 잠을 못 자게 하는 건 마찬가지. 그렇지만 그 영화의 프레디는 엘름 스트리트에 사는 꼬마들만 괴롭히니까, 내가 미국에만 가지 않으면 편하게 잠을 잘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외계 침입자들은 어떻게 피할 수가 없다. 지구는 우주에 떠 있는 별이니 당연히 많은 외계 포자들이 왔다 갔다 할 것이고, 비는 지구에 골고루 내리니 말이다. 식물이 피지 않는 곳이나 비가 아주 적게 오는 지방이 그나마 안전할까? 하지만 그런 곳에서 인간이 생존하는 건…….


 

  ‘내가 네 엄마로 보이니?’라는 오래된 귀신 이야기가 있다. 그걸 듣고 ‘내 엄마가 분명한데 겉만 똑같고 속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면?’하고 상상을 해본 적이 있었다. 이 영화는 그 확장팩이라고 볼 수 있다.


 

  개성이 철철 넘치는 내 가족들이 다 똑같은 말을 하고, 똑같은 생각을 하고, 똑같은 행동을 한다면? 으아, 상상만 해도 재미없다. 밥이 안 넘어갈 것이다. 가족 모임에 가기 싫어질 것이고 말이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재미가 없을까?


 

  다양한 사람들의 각각 다른 개성과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지 영화를 보면서 새삼 깨달았다. 나와 다르다고 남을 배척하거나 싫어하면 안 될 것이다. 그 사람의 존재 자체가 고마운 일이니 말이다. 그런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내 삶이 풍요로워지는 길이라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아무리 양보해도 성범죄자들의 다양성까지는 존중해주고 싶지 않다. 그런 것들은 그냥……이하 생략.


 

 

  아,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눈물이 났다. 이런 절망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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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이 들썩들썩 귀신이 곡할 노릇 세바퀴 저학년 책읽기 10
정혜원 지음, 김지민 그림 / 파란자전거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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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정혜원

  그림 - 김지민

 

  고백하자면, 표지를 보고는 한국 귀신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검은 옷에 갓을 쓴 얼굴이 초록색인 저승사자에 하얀 소복에 긴 머리 휘날리는 처녀 귀신 그리고 거꾸로 매달려 있는 귀신 등등. 한여름에 더위를 식히기에 제격이라는 생각에 조카에게 골라주었다.

 

  그런데 웬걸. 이 책은 그냥 무더위를 쫓기 위한 그렇고 그런 귀신 이야기가 아니었다. 두 명의 아버지와 그들의 두 아들을 통해서 진정한 효란 무엇인지, 사람은 겉으로만 봐서 모른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물론 귀신들의 도움도 컸다.

 

  혼자 떡을 먹다가 죽은 갑수 아비, 구두쇠로 유명하다. 조상님께 드릴 제사상에 음식 차리는 것도 아까워 돈으로 올려놓을 정도이다. 그러니 아들인 갑수도 자연스레 보고 배울 수밖에. 그는 자기가 남긴 재산이 어떻게 될지 몰라서, 저승으로 가지 못한다.

 

  반면에 가난하지만 착한 을수 아비. 비록 을수가 지능이 모자라지만, 사랑을 듬뿍 줘서 키웠다. 그래서 자기가 죽은 후, 혼자 남은 아들이 어떻게 살아갈까 걱정스러워서 저승사자를 따라가지 못한다.

 

  갑수는 아버지가 숨겨둔 재산을 가로채기 위해, 착한 아들인척하면서 사람들을 현혹시킨다. 속으로는 제사상에 올리는 밥의 쌀 한 톨도 아까워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동네 사람들은 진짜 효자라면서, 효자문을 내려달라고 사또에게 건의한다.

 

  을수는 땅에 아버지를 묻으면 외롭고 춥고 쓸쓸할까봐, 몰래 멋진 집을 지어놓고 매일 공양한다. 하지만 그걸 모르는 마을 사람들은 을수가 모자라서 아버지 시체를 갖다 버린 줄 알고 오해를 한다.

 

  결국 참다못한 저승사자를 필두로, 귀신들이 갑수에게는 벌을 주고 을수에게는 복을 주기로 한다. 동시에 아둔한 마을 사람들에게 진실도 알려주고 말이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터였을까? 이야기나 영화에 나오는 귀신들이 인간에게 해를 끼치며 저주만 내리는 대상이 된 것은.

 

  내가 어릴 적에 읽은 한국의 귀신들은 그러지 않았다. 착한 사람에게는 복을 주고, 악한 사람에게는 벌을 내리는 존재였다.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 애들이 읽는 괴담 집에는 그런 귀신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냥 사람을 저주하고 죽이고 친구끼리 괴롭히는 귀신들밖에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정했지만 엄격했던 어린 시절의 우리 귀신을 보는 기분이 들어서 반가웠다. 갑자기 죽은 갑수 아비와 을수 아비. 그리고 동네에 떠돌아다니는 많은 토속적인 귀신들과 저승사자. 이들은 인간을 무조건 괴롭히는 게 아니라, 진짜 효자와 가짜 효자를 구분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들을 깨우치기 위해 자신들의 능력을 사용했다.

 

  그래, 이게 바로 우리네 귀신이다. 다정다감하지만 옳고 그름을 아는 이 땅의 우리가 죽어 된 귀신이니, 당연히 정이 많고 의리가 있는 게 당연한 이치다.

 

  이런 생각을 하니, 그냥 여름에만 반짝 읽고 마는 흔한 귀신 이야기로 생각한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어쩌면 나도 책에 나오는 마을 사람들처럼, 사물을 겉으로만 판단하는 경향이 있나보다. 어린이는 어른의 거울이라는데, 조카가 내 행동을 따라하지나 않을지 걱정이 되었다. 방법은 좋은 책을 많이 읽히는 수밖에 없다. 당연히 이 책은 목록에 들어가 있고 말이다.

 

  이 책의 그림 역시 너무도 멋졌다. 중간에 보면서 웃음이 빙그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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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싱
브래드 앤더슨 감독, 존 레귀자모 외 출연 / 캔들미디어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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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Vanishing on 7th Street

  감독 - 브래드 앤더슨

  출연 - 헤이든 크리스텐슨, 탠디 뉴튼, 존 레귀자모, 테일러 그루두이스


  이걸 애인님과 언제 봤더라. 기억이 안 난다. 하여간 예전에 봤는데, 이제야 감상문을 올리게 되었다. 원제만 보고는 실종 사건을 다룬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포스터를 보고는 ‘이건 뭘까’ 고민을 했었고. 영화를 보고나서야, ‘아!’하고 이해를 했다.


  영화는 무시무시하다. 아주 잠깐 불이 꺼졌을 뿐인데, 사람들이 사라진다. 옷만 남겨두고. 덕분에 하늘을 날던 비행기는 땅으로 추락하고, 모든 도시 시스템은 정지하고 만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지 아무도 모른다. 남아 있는 사람이 있어야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고 그럴 텐데, 어둠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에는 남은 이가 거의 없었다.


  대낮에 에스컬레이터에서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어둠의 기운이 나오는 장면은 오싹했다.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빛을 피해 움직이는 것이 기괴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그림자로만 존재하는 인간들. 그들이 내뻗는 손이 무시무시하게 보였다. 그림자란 원래 본체가 있어야 하는데, 여기서는 혼자 잘도 돌아다닌다. 갑자기 피터 팬이 떠올랐다. 비누칠을 하거나 바느질을 해야 할 텐데, 사람이 없다.


  겨우 살아남은 몇몇의 사람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빛이 없으면 사라진다는 것만 알 뿐.


  하지만 알다시피, 전기라는 것이 발전소에서 공급을 해줘야 하는 것이다. 기계를 움직일 사람이 없으면 공급은 끊기게 된다. 마트에 있는 건전지로 버티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갑작스런 구원자가 등장하지 않으면, 이 영화는 비극적 결말이 될 것이 뻔했다. 그만큼 어둠은 막강했으니까.


  영화는 왜 어둠이 이런 짓을 했는지, 어떻게 그들이 생명체처럼 움직이는지, 사라진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해결책은 뭔지 전혀 알려주지 않는다. 그냥 인간 멸종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음을 알려줄 뿐이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을 안타깝고 안쓰럽고 동시에 헛된 희망의 썩은 동아줄 하나를 잡아보는 심정으로 보았다.


  아, 진짜 이런 결말은 싫다고 외치고 싶었다. 현실이 암울한데, 영화라도 상큼발랄하고 희망을 줘야하는 게 아닐까? 물론 전기가 없어지는 상황에 약간의 공포를 가미해서, 에너지 절약을 하자는 의미로 만들었다면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전기 아껴 써야겠다.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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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한 편지가! 시공주니어 문고 2단계 71
황선미 지음, 노인경 그림 / 시공주니어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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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황선미

  그림 - 노인경



  조카에게 선물할 책을 고르다가, 제목이 너무 웃겨서 읽기 시작한 책이다. ‘나쁜 어린이표’를 쓴 작가이기에, 망설임 없이 고르기도 했고. 그런데 조카보다는 내가 더 좋아하게 되었다.


  사춘기 소년소녀들의 발칙하면서 엉뚱한 대사와 상상력, 그리고 미묘한 감정 변화가 대사와 문장으로 잘 표현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으면서 빙그레 입에 미소가 걸리는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거기다 특징을 잘 잡아낸 그림까지! 톡톡 튀는 글과 깔끔하면서 아기자기한 그림이 잘 어우러지면서, 상황이 더 눈에 잘 들어오고 인물들의 감정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선택한 제일 튀는 대사는 바로 이것이다.


  “난 아홉 살만 지나면 인생이 달라질 줄 알았어. 한 자리 숫자랑 두 자리 숫자는 차원이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냐? 어린애랑 소년처럼. 근데 12월 31일 다음에 1월 1일이 되는 거랑 똑같더라고. 아홉 살이나 열 살이나. 보라고! 열한 살도 다를 게 없잖아. 젠장!”


  아, 진짜 읽으면서 킥킥대고 웃어버렸다. 내가 스무 살 때 깨달은 인생의 진리를 이른 나이에 알아차린 소년들의 항변이 너무도 귀여웠다. 내 앞에 동주나 재영이가 있었다면, ‘어린이들, 세상이란 원래 그런 거야.’라고 말하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을 것이다. 어쩌면 이렇게도 귀여운지.





 
내용은 간단하지만, 생각할 거리는 많았다.


  우연히 가방에 소꿉친구인 영서가 보낸 러브 레터를 발견한 동주. 하지만 불행히도 그 편지는 그에게 보낸 것이 아니다. 가방이 똑같아서 잘못 배달된 것. 게다가 영서가 좋아하는 상대가 반에서 잘난척하는 반장 호진이었고, 그녀가 조만간 외국으로 이사를 갈 것이며, 바라는 선물은 코알라 목 베게라는 것이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동주의 심기를 흐리게 한다. 어릴 적에는 자기가 보호해줘야 했던 영서였는데, 이제는 자기보다 키도 훌쩍 크고 어른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어쩐지 계속 속이 시큰거리고 영 불편하다.


  결국 편지를 돌려보내지도, 원래 가야할 사람에게도 주지 못했다. 그리고 호진이는 다른 아이와 사귀게 되고, 기분이 상한 영서를 보는 동주의 마음은 편치 않다. 자기 탓인 것 같기도 하고.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건 맞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게 이루어지면 그건 첫사랑이 아니라, 유일한 사랑이 될 테니까. 그리고 대개 첫사랑은 그게 사랑이라는 감정이었는지 깨닫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럴 것이다. 시간이 지나가야, ‘아 그게 사랑이었구나.’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 책에서 동주는 여자에겐 관심이 없는, 단짝인 재영이와 어울려 놀기 좋아하는 전형적인 개구쟁이였다. 본문에도 나오지만, 둘은 여자를 싫어해서 결혼은 꿈도 꾸지 말자고 맹세까지 한 사이. 물론 엄마는 예외란다. 엄마는 엄마지 여자가 아니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 영서를 의식하면서, 물론 잘못 온 편지 때문이지만, 그 애를 바라보고, 그 애를 생각하고, 그 애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나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궁금해 한다. 그리고 그 애만 생각하면 마음이 시큰하고 쿡쿡 쑤시는 것 같고.


  읽는 사람은 동주가 영서를 좋아하는 것이라고 다 깨닫지만, 정작 그는 그런 사실은 하나도 알지 못한다. 이건 다 잘못 배달된 편지 때문이라고 화만 낼 뿐이다. 그러다가 영서가 이사 가는 날이 되어서야, 허전함을 느낀다.


  소년은 이제 첫사랑이 남기고간 아픔을 겪는 것이다.


  이 책은 어른들에게 아스라한 첫사랑의 추억을 다시금 떠올리게 만들고 있다. 그 당시 어떤 감정이었는지, 얼마나 아팠는지, 얼마나 순수했는지, 얼마나 절실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아팠는지.

그 잊은 감정들을 되살려, 아이들을 이해하라고 말하는 것 같다.


  ‘학생이 무슨 연애질이야 공부나 해.’라고 윽박지르듯이 말하지 말고, ‘아빠도 그랬는데. 아빠는 말이지…….’ 또는 ‘엄마 어릴 적에 말이야…….’ 라면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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