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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한 편지가! ㅣ 시공주니어 문고 2단계 71
황선미 지음, 노인경 그림 / 시공주니어 / 2012년 6월
평점 :
작가 - 황선미
그림 - 노인경
조카에게 선물할 책을 고르다가, 제목이 너무 웃겨서 읽기 시작한 책이다. ‘나쁜 어린이표’를 쓴 작가이기에, 망설임 없이 고르기도 했고. 그런데 조카보다는 내가 더 좋아하게 되었다.
사춘기 소년소녀들의 발칙하면서 엉뚱한 대사와 상상력, 그리고 미묘한 감정 변화가 대사와 문장으로 잘 표현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으면서 빙그레 입에 미소가 걸리는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거기다 특징을 잘 잡아낸 그림까지! 톡톡 튀는 글과 깔끔하면서 아기자기한 그림이 잘 어우러지면서, 상황이 더 눈에 잘 들어오고 인물들의 감정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선택한 제일 튀는 대사는 바로 이것이다.
“난 아홉 살만 지나면 인생이 달라질 줄 알았어. 한 자리 숫자랑 두 자리 숫자는 차원이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냐? 어린애랑 소년처럼. 근데 12월 31일 다음에 1월 1일이 되는 거랑 똑같더라고. 아홉 살이나 열 살이나. 보라고! 열한 살도 다를 게 없잖아. 젠장!”
아, 진짜 읽으면서 킥킥대고 웃어버렸다. 내가 스무 살 때 깨달은 인생의 진리를 이른 나이에 알아차린 소년들의 항변이 너무도 귀여웠다. 내 앞에 동주나 재영이가 있었다면, ‘어린이들, 세상이란 원래 그런 거야.’라고 말하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을 것이다. 어쩌면 이렇게도 귀여운지.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2/0906/pimg_718692138785848.jpg)
내용은 간단하지만, 생각할 거리는 많았다.
우연히 가방에 소꿉친구인 영서가 보낸 러브 레터를 발견한 동주. 하지만 불행히도 그 편지는 그에게 보낸 것이 아니다. 가방이 똑같아서 잘못 배달된 것. 게다가 영서가 좋아하는 상대가 반에서 잘난척하는 반장 호진이었고, 그녀가 조만간 외국으로 이사를 갈 것이며, 바라는 선물은 코알라 목 베게라는 것이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동주의 심기를 흐리게 한다. 어릴 적에는 자기가 보호해줘야 했던 영서였는데, 이제는 자기보다 키도 훌쩍 크고 어른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어쩐지 계속 속이 시큰거리고 영 불편하다.
결국 편지를 돌려보내지도, 원래 가야할 사람에게도 주지 못했다. 그리고 호진이는 다른 아이와 사귀게 되고, 기분이 상한 영서를 보는 동주의 마음은 편치 않다. 자기 탓인 것 같기도 하고.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건 맞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게 이루어지면 그건 첫사랑이 아니라, 유일한 사랑이 될 테니까. 그리고 대개 첫사랑은 그게 사랑이라는 감정이었는지 깨닫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럴 것이다. 시간이 지나가야, ‘아 그게 사랑이었구나.’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 책에서 동주는 여자에겐 관심이 없는, 단짝인 재영이와 어울려 놀기 좋아하는 전형적인 개구쟁이였다. 본문에도 나오지만, 둘은 여자를 싫어해서 결혼은 꿈도 꾸지 말자고 맹세까지 한 사이. 물론 엄마는 예외란다. 엄마는 엄마지 여자가 아니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 영서를 의식하면서, 물론 잘못 온 편지 때문이지만, 그 애를 바라보고, 그 애를 생각하고, 그 애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나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궁금해 한다. 그리고 그 애만 생각하면 마음이 시큰하고 쿡쿡 쑤시는 것 같고.
읽는 사람은 동주가 영서를 좋아하는 것이라고 다 깨닫지만, 정작 그는 그런 사실은 하나도 알지 못한다. 이건 다 잘못 배달된 편지 때문이라고 화만 낼 뿐이다. 그러다가 영서가 이사 가는 날이 되어서야, 허전함을 느낀다.
소년은 이제 첫사랑이 남기고간 아픔을 겪는 것이다.
이 책은 어른들에게 아스라한 첫사랑의 추억을 다시금 떠올리게 만들고 있다. 그 당시 어떤 감정이었는지, 얼마나 아팠는지, 얼마나 순수했는지, 얼마나 절실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아팠는지.
그 잊은 감정들을 되살려, 아이들을 이해하라고 말하는 것 같다.
‘학생이 무슨 연애질이야 공부나 해.’라고 윽박지르듯이 말하지 말고, ‘아빠도 그랬는데. 아빠는 말이지…….’ 또는 ‘엄마 어릴 적에 말이야…….’ 라면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