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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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どちらかが彼女を殺した

  작가 - 히가시노 게이고

 

 

 

  가가 형사가 나오는 세 번째 작품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애인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둘 중 누가 범인인 것 같냐고 물어보기 위함이었다. 공교롭게도 애인님은 B를 선택했고, 난 A를 짚었다. 애인님이 B가 범인인 이유를 줄줄 늘어놓으면, 난 반격을 했다. 그리고 애인님도 내가 A가 범인인 이유를 말하면, ‘그건 아니지’라고 했고. 아무리 얘기를 해도, 확실하게 범인을 고를 수가 없었다. ‘둘이 공범이 아닐까?’라는 의문도 들었지만, 제목에 누군가라고 했으니 한 명이 범인일 거라 추측했다.

 

 

  그러다 결국 ‘작가가 범인이네.’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긴 맞는 말이다. 그녀를 죽이는 시나리오를 쓴 건 작가니까. ‘작가가 잘못했네.’, ‘작가가 나빠.’라면서, 애인님과의 대화를 끝냈다.

 

 

  그렇다, 우리의 추리력이 모자라서 범인을 못 찾은데 아니다. 작가가 애매모호하게 끝을 맺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유력한 용의자 두 명을 만들어 놓고, 서로 반박할 수 있는 정황 증거도 갖춰놓고, 그냥 그렇게 끝을 낼 수 있는가! 이건 작가가 나쁜 거다.

 

 

  도쿄에서 혼자 살아가던 소노코. 배신당했다는 의문의 말을 남기고 죽은 채로 발견된다. 그녀가 살해당했음을 알아차린 오빠 야스마사는 자살로 증거를 조작한다. 경찰인 그가 직접 범인을 찾아내기 위함이다. 그녀의 연인이었던 남자와 그를 빼앗은 오래된 친구. 둘 중 누군가 동생을 죽였다고 확신한 그는 점점 수사망을 좁혀간다.

 

 

  한편 야스마사가 조작해놓은 자살 현장에서 뭔가 이상함을 느낀 가가 형사 역시 나름대로 사건을 수사한다. 그리고 마침내 범인을 밝혀내는데……. 그런데 독자에게는 알려주지 않는다.

 

 

  책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사랑은 움직이는 거라는 광고 문구처럼, 사람 마음은 바뀌기 마련이니까 소노코에게 이별을 고한 준이치를 이해 못할 건 아니다. 하지만 그 바뀐 사랑의 대상이 꼭 그녀의 베프인 가요코여야 했을까? 가요코도 왜 하필이면 친한 친구의 남자와 사랑에 빠졌을까?

 

 

  이건 예의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소노코와 확실히 관계를 마무리 짓지 않고 어설프게 갈팡질팡한 준이치도 잘못이고, 친구가 좋아하는 걸 뻔히 알면서 연락을 한 가요코도 문제였다. 그러니 가뜩이나 외로움을 많이 타고 조용하고 소심한 성격의 소노코가 배신당했다고, 독한 마음을 품게 되는 건 자연스런 일이었다. 물론 나 싫다고 떠난 남자에게 집착하고 매달린 그녀도 좀 그렇긴 하지만, 안쓰런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녀를 그렇게 독한 짓까지 하게 만든 건 그들이니까.

 

 

  이 책의 교훈은 이것이다. ‘양다리는 좋지 않다. 최소한 관계를 확실히 끝내고 다른 사람을 만나자.’

 

 

  그나저나 아무리 생각해도, 가가 형사는 이 책에서도 공동 주연을 맡고 있다. 야스마사와 함께 사건의 서술을 담당하고 있으니 말이다. 으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으니, 단독으로 나오면 얼마나 엄청날까? 일본 드라마 ‘신참자’에서 가가 형사를 맡았던 배우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저런 상상을 하니, 우와……. 뭔가 엄청나고 무시무시한 분위기. 하지만 책에서 나오는 그의 성격 상,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아쉽지만.

 

 

  애인님에게 준이치처럼 질질 끌면서 우유부단하게 행동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다른 여자가 좋아지면 즉시 말해달라고 했다가 혼만 났다. 내 상상력을 존중해주긴 하지만, 도가 지나치면 봐줄 수 없다는 말과 함께. 이건 다 히가시노 게이고 때문이다! 엉엉엉. 작가가 나쁜거다, 이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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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숲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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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眠りの森

  작가 - 히가시노 게이고

 

 

  ‘졸업’에서 교사가 되겠다던 가가는 형사로 직장을 옮겼다. 어떤 이유인지는 자세히 안 나오지만, 그가 조금씩 풀어놓는 힌트만으로 추리해보자면 대충 이렇다. 학생들을 위한다고 한 일이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왔기에, 교사가 될 자질이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그리고 전편에서 청혼했던 사토코와는 간간히 편지로 안부만 묻는 그런 사이가 되어버렸다.

 

  발레단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밤에 몰래 들어온 침입자를 단원이 엉겁결에 죽이고 만 것. 정당방위를 주장하는 발레단원들. 하지만 피해자를 조사하면 할수록 그가 단순 빈집털이범이 아니라는 심증이 굳어진다.

 

  그러다가 또다시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경찰은 일련의 사건들은 단원들의 과거와 연관이 있다는 확신을 가진다.

 

  전편도 그렇지만, 가가 형사가 단독 주역이라기보다는 공동 주연 같은 느낌을 준다. 사건을 능동적으로 풀어가려고 하거나 서술하는 인물이 있고, 가가 형사는 그 주위를 맴돌면서 또 다른 서술을 해가는 형식이다.

 

  이번 편에서는 발레단원인 마오의 눈과 가가 형사의 눈으로 사건을 풀어가고 있다. 그녀가 단원들이 은밀한 비밀 이야기나 내부 사정을 보여준다면, 그는 외적인 상황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래서 독자는 거의 모든 부분을 알 수 있다. 범인이 누구인지만 빼고 말이다.

 

  이 책의 뒤표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헌신적인 사랑.’

 

  처음에는 설마 ‘용의자 X의 헌신’을 능가하는 사랑이 또 있을까하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책장을 다 넘기고 든 느낌은, 그런 사랑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책과 이 책의 사랑은 약간 의미는 다르지만 말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책에서 보여준 헌신적인 사랑이라는 것은, 남녀 간의 사이보다는 평생 동안 모든 것을 바친 발레에 대한 헌신이었다. 그리고 재능이 뛰어난 유망주를 향한 헌신이기도 하고.

 

  ‘받아들이고 말고 하는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사랑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 세계에서 살던 사람이 잠깐 좋은 꿈을 꾸었다가 다시 원래의 세계로 돌아온 것뿐이죠.’ (p.295)

 

  사랑과 발레가 공존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비극이 일어났다. 아기를 가지면 몸매가 망가지고 출산 후 다시 원상회복하기엔 시간이 너무 걸려서, 전성기의 춤을 추기 어려울 것이라는 그들의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긴 했다.

 

  하지만 모든 발레리나들이 다 솔로는 아니라고 알고 있다.

 

  임신이 안 되도록 피임을 제대로 한다거나, 연애만 하고 결혼은 나중으로 미룬다거나 등등의 방법을 잘 생각했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아무도 죽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어쩌면 그들은 너무 어렸고 다른 방법을 생각할 여유도 기회도 없었을 지도 모른다. 아니, 다른 방법이 있다는 것조차 아예 몰랐을 것이다. 발레 이외의 것은 허용된 적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선생님과 보호자들은 자신들의 욕심에 그들을 다그쳤을 것이다. 물론 그들의 재능을 보호해야겠다는 생각도 있었겠지만, 혹시라도 엇나가서 유능한 발레리나를 잃게 될까 두려웠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자신들이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랑의 표현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참으로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부터 한 가지 길만 강요받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만이 자신의 길이라 믿고 자라왔던, 그렇기에 다른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강요된 천재의 앞길에 축복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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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던트 이블 4 : 끝나지 않은 전쟁 - 아웃케이스 없음
폴 W.S. 앤더슨 감독, 밀라 요보비치 외 출연 / 소니픽쳐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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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Resident Evil: Afterlife

  감독 - 폴 W.S. 앤더슨

  출연 - 밀라 요보비치, 알리 라터, 웬트워스 밀러, 킴 코아테스




  1편의 감독이 다시 돌아왔다. 이런 경우 대개 내가 시작한 것은 내가 마무리한다는 의미가 있는데, 이 영화 5편으로 이어진다. 마무리가 아니라 중간 다리 역할을 하는 거였나?


오프닝은 참으로 멋졌다. 분위기도 좋고 노래도 어울리고. 일본의 번화가. 한 여인이 비를 맞고 서 있다. 가냘픈 몸매에 예쁘장하면서 우수에 찬 얼굴. 입을 열기 전까지는 분위기가 좋았다. 다음 순간, 입을 쫙 벌린 그녀는 지나가는 행인을 공격한다. 아, 이런 바이러스 감염자였다.


  지상에 바이러스를 퍼트리고, 자기들은 지하 깊숙히 숨은 치사한 엄브렐러 녀석들. 물론 앨리스가 가만히 둘 리 없다. 3편에서 복제상태에 있던 자신의 분신을 모두 끌고 온 그녀. 수많은 앨리스들이 벌이는 지하 기지의 액션장면은 참으로 통쾌했다. 문득 영화 ‘매트릭스’를 연상시켰다. 건물 내부의 전투라든지 슬로우와 정지를 적절하게 사용한 것 등등. 그리고 초반에 도쿄가 무너지는 장면을 보고는 속으로 몰래 ‘오오, 나이스!’를 외쳐보기도 했다.


  하지만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진짜 앨리스도 복제 앨리스를 소모품 취급한다는 것이다. 아니, 어떻게 보면 자기 자신일 수도 있는 그들을……. 자기와 닮은 존재를 부정하고 싶은 거였을까? 이른바 동족 혐오?


  전투가 끝나고 그녀는 3편에서 안전한 지역으로 먼저 간 사람들을 찾는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그들은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된 걸까? 게다가 전편에서 같이 싸웠던 여자는 가슴에 이상한 장치를 붙이고 그녀를 공격한다. 겨우 제압하고, 장치를 떼어내니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


  영화의 중반을 보면서, 어딘지 모르게 영화 ‘새벽의 저주’가 떠올랐다. 외부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좀비로 가득 차 있고, 커다란 건물에 몇몇의 생존자들만이 살고 있는. 다만 ‘새벽의 저주’는 쇼핑몰이어서 먹을 게 많았지만, 여기는 감옥이라 건물이 튼튼하다는 장점밖에 없다. 하여간 안으로 들어오려는 좀비들과 아카디아라 추정되는 커다란 배로 가려는 사람들의 대격돌.


  그 와중에 커다란 못 박힌 쇠망치를 가진 거구의 좀비와 얼굴이 갈라지는 이상한 좀비가 나온다. 그런데 이상한 좀비를 보자, 웨슬리 스나입스가 나왔던 영화 ‘블레이드’가 떠올랐다. 거기서도 비슷한 형태의 괴물이 나왔었다. 살짝 인용한 걸까 아니면 디자이너가 같은 사람인걸까 그것도 아니면 뭔가 과학적인 실험을 통한 생체 변환 측정 결과 그렇게밖에 변하지 않는 걸까?


  후반은 또 분위기가 달라진다. 전반과 마찬가지로 정지와 슬로우를 적절하게 사용하고, 1편에서 나왔던 좀비 개가 또 등장한다. ‘어머 반갑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역시 흉측한 모습으로 바뀐다.


  그리고 별로 재미있지 않은, 감독과 대본가 둘이서만 좋아했을 코믹 설정 하나. 아니면 내 개그 코드와 맞지 않은 거일지도.


  겨우 아카디아에 도착해서 사람들을 만났건만, 어디선가 대규모 군용 헬리콥터 수 십대가 날아들기 시작한다. 정확하게 시간을 맞춰서.


  그러니까 엄브렐러 회사에서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말이다. 이미 지표 위의 인간들은 거의 다 좀비로 변한 상태. 그렇다면 저 많은 군인들은 어디서 나온 건지 궁금하기만 하다. 앞에서 앨리스가 박살낸 도쿄 지하는 본거지가 아니었다는 걸까? 그렇다면 이제 전 세계는 기업이 소유하고 있는 것이고, 정부는 존재하지 않는 걸까?


  영화는 이런 식으로 다음 편이 또 있음을 대놓고 말한다. 극장은 놓쳤으니, 빨리 DVD가 나오길 기대해본다. ‘아, 궁금해서 현기증 날 것 같단 말이에요, 빨리 DVD 주세요.’ 이런 철지난 드립을 날려본다. 혹시나 해서.




  그런데 갑자기 든 급궁금증 하나. 도대체 그녀는 어디서 화장품을 구한 걸까?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도 짙은 눈썹과 아이라인, 붉은 입술 그리고 스프레이나 무스로 빗어 넘긴 것이 확실한 머리. 그 어디에도 화장품 가방은 보이지 않는데 말이다.


  궁금증 둘. 애인님은 오리지널 앨리스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난 이번 편의 앨리스가 1편부터 이어지는 그녀가 아니냐고 했는데, 애인님은 아닐 것이라 한다. 그들이 그녀를 지칭하는 말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리고 능력도 예전과 달리 너무도 막강하니, 이건 실험용이 아니고는 가질 수 없다는 것의 애인님의 주장 근거였다. 하지만 난 이번 편 초반에 회사 직원이 그녀에게 주사를 놓고, 그녀가 인간으로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는 것으로 보아, 오리지널이 맞는다고 했다. 누구 아시는 분 답변을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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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 설월화雪月花 살인 게임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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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卒業 雪月花殺人ゲ-ム

  부제 - 설월화雪月花 살인 게임

  작가 - 히가시노 게이고

 

 

  가가 형사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소설이다.

 

  음, 히가시노 게이고를 언제부터 알게 되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아마 아는 분이 ‘용의자 X의 헌신’을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칭찬을 하면서부터였을 것이다. 그러다가 애인님이 ‘탐정 갈릴레오’도 재미있다고 나에게 권유해줬다. 근데 그 시리즈는 ‘용의자 X의 헌신’ 말고는 별로였기에, 또다시 가가 형사 시리즈를 추천받았지만 시큰둥했다.

 

  이후 일본 드라마 ‘신참자’를 보게 되었다. 애인님과 난 둘이서 ‘우와-’하고 넋을 놓고 보았다. 특히 애인님은 소설 속의 형사와 배우의 싱크로율이 대박이라고 아주 좋아했다. 그래서 ‘그래? 그러면 한 번 읽어볼까?’라는 생각에 가가 형사 시리즈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이 가가라는 사람,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글을 읽으면서 그에 대해 알면 알수록, ‘겉으론 bad girl 속으론 good girl~'이라는 어떤 노래의 가사가 연상되었다. 겉으로는 무뚝뚝한 것 같으면서 속으로는 다 살피면서 파악하고 다니는 남자. 속을 알 수 없는 남자. 내 편이면 든든할 사람 같았다.

 

  이 책은 그가 대학 졸업을 앞둔 겨울에 일어난 사건을 다루고 있다. 그 때 그는 경찰이 될 생각은 없고, 교직에 뜻을 두고 있었다. 대학에서 같이 어울려 다니는 친구 중의 한 명인 쇼코가 죽은 채로 발견된다. 자살 같지만 타살의 가능성도 있는 상황. 게다가 기숙사는 외부인, 특히 남자는 절대 출입을 금하는 곳이다. 마음대로 들어가고 나올 수 없는 곳. 누가 왜 그녀를 죽게 했을까? 진짜로 루머와 관련이 있는 걸까? 사랑하는 남자친구 도도를 놔두고 자살할 리가 없다고 믿는 친구들은, 그녀의 살인자를 밝혀내기로 한다.

 

  게다가 그 모임의 다른 친구인 나미카까지 다도회에서 독살 당한다. 그녀는 왜 죽었을까? 쇼코의 죽음과 무슨 연관이 있는 걸까? 그녀는 왜 죽기 전에 우울해했고, 검도부의 후배에 대해 파고들었을까?

 

  부제에 나오는 설월화는 다도에서 하는 제비뽑기 게임이다. 그런데 그림까지 나와 있는데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하아……. 내가 수학을 못하는 이유가 다 있다. 그림이나 도표는 눈에는 들어오는데, 머리에서는 거부하는 모양이다.

 

  책을 읽으면서 처음 든 생각은, ‘곰은 재주가 부리고 돈은 사람이 갖는다.’는 말이었다. 사건 조사는 사토코가 열심히 하고 다녔지만, 결국 해결은 가가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척이나 슬펐다. 긴 한숨이 나왔고, 가슴이 먹먹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죽은 사람뿐만 아니라, 살아남은 사람들도 너무도 안쓰럽고 불쌍했다. 이제 그들은 두 번 다시 예전의 추억을 되살리지 못할 것이다. 그러기엔 너무도 깊은 골이 패이고, 믿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니까. 떠올리면 서로가 괴로울 테니까. 그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은, 책에서도 나왔지만 모든 것을 잊어버리는 것뿐이다.

 

  “잊어버려, 나도.”

  “안 돼, 못해,”

  “괜찮아, 할 수 있어.”

  조용히 그는 그녀를 끌어안았다.

  “익숙해지면 아무렇지도 않을 거야.” (p.399)

 

  과연 익숙해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같이 지낸 시간이 길고 추억이 많았기에, 더욱 더 상처는 깊을 것이다. 후회는 거듭되고, 그와 동시에 더욱 더 그리워질 수도 있다. 인간의 기억이란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 것만 하고, 좋은 쪽으로 미화시키는 경향이 있으니 말이다. 그들을 생각하면 할수록 한숨은 깊어지고 어쩐지 내가 막 슬퍼진다.

 

  익숙해진다는 것이 더 이상 그들을 잊고 사는 것에 익숙해진다는 것인지, 아니면 그들을 잊는 척하고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진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있지만, 100% 치료해주는 건 아니니까. 시간은 치료제라기보다는 증상 완화제에 불과하니까.

 

  내가 저들의 입장이라면 어땠을까 상상해보았다.

 

  와코였다면, 하나에였다면, 나미카였다면, 도도였다면, 쇼코였다면, 사토코였다면 그리고 가가였다면…….

 

  갑자기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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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던트 이블 3 - 일반 킵케이스 - 아웃케이스 없음
러셀 멀케이 감독, 밀라 요보비치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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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Resident Evil : Extinction

  감독 - 러셀 멀케이

  출연 - 밀라 요보비치, 오디드 페르, 알리 라터, 이아인 글렌

 

 

  미래는 암울했다. 이제 T 바이러스는 전 세계로 퍼져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좀비로 변하고 말았다. 몇몇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것들과 싸우면서, 또는 남을 등쳐먹으면서 그것도 아니면 지하에 자기들만의 세상을 만들어서 살아가고 있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앨리스가 나체인 상태로 눈을 뜨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역시 밀라 언니 몸매는 짱이다. 이번 편 역시 욕조에서 그녀가 눈을 뜨면서 시작한다. 그런데 으음? 1편의 배경이었던 지하 기지와 너무도 흡사한 곳이다. 하지만 더 위험하고 온갖 함정이 곳곳에 숨어있다. 그리고 어이없게도 그녀는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죽어버린다. 이건 뭐지?

 

  아, 사실 그녀는 복제 인간이었다. 엄브렐러 사의 특별 실험을 위해 수많은 앨리스들이 만들어지고 폐기되고 있었다. 진짜 이놈의 자식들은 개념이 박힌 건지……. 하긴, 머리에 제대로 생각이 박힌 것들이면 애초에 바이러스를 만들어 인간 실험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뭐, 이놈들은 같은 연구원끼리도 기꺼이 실험을 위해서라면 희생시킬 족속들이니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그런 놈들이 지배하는 세상을 상상하니, 끔찍했다.

 

  거기에 전편보다 더 막강해진 앨리스의 능력은 무섭기까지 했다. 문득 컴퓨터를 해킹하는 능력을 보니, 예전에 신일숙씨가 그렸던 만화 ‘199년생’이 떠올랐다. 거기서 컴퓨터를 의자에 앉아서 정신력으로만 해킹하는 능력자가 나오기도 했다.

 

  감염이 되지 않은 유일한 곳이라 알려진 알래스카. 사람들은 그곳을 향해 떠난다. 하지만 엄브렐라 사가 앨리스를 가만히 놔둘 리가 없다. 바이러스에 감염되고도 유일하게 변하지 않고 살아 움직이는, 게다가 엄청난 능력을 가진 그녀이기에 그들은 꼭 잡아야만 했다. 실험을 하기 위해서 말이다.

 

  앨리스가 수많은 자신의 시체를 보고 분노를 느끼는 장면은 ‘에일리언 4’를 떠올리게 했다. 거기서도 시고니 위버가 실험에 실패해 병에 담긴 자신의 분신을 보면서 격렬한 반응을 보였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앨리스는 전 세계의 숨어있는 엄브렐러 사에 전쟁 선포를 보낸다.

 

  마지막 장면은 진짜 멋있었다. 조금 섬뜩하기도 했지만, ‘오오~’하면서 감탄했다. 자기 주체성을 가지고, 뚜렷한 자의식으로 자기 앞길을 개척해가는 주인공이 나오는 작품이 좋다. 그래서 이 영화와 에일리언 시리즈를 버리지 못하는 모양이다. 주인공이 둘 다 내 취향이다.

 

  좀비와 모래 폭풍이 휩쓸고 간 미래는 참으로 암울했다. 어째서 자유의 여신상과 에펠탑이 같은 장소에 있는지 이해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혹시 그들이 간 곳이 설마 영화 세트장?

 

  중간에 히치콕의 영화 ‘새’를 연상시키는 장면은 ‘역시 까마귀는 흉조구나’라는 세상의 소문을 확고히 해주었다. 아니, 서양에서만 흉조던가? 하지만 그 장면을 보면, 충분히 ‘까마귀 = 재수 없는 새’라는 공식이 저절로 만들어질 정도였다.

 

  아, 그러고 보니 이번 편은 좀비들의 외모가 더욱 더 흉측해졌다. 특히 마지막에 나오는 최종 보스 격인 놈은 참으로 끔찍하고 한편으로는 놀라웠다. 미친놈이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였다. 진짜 그러고 싶었을까? 의문이 들 정도였다.

 

  보면서 이놈의 자식들은 뇌 구조가 어떻게 생겼기에 저런 짓을 하는 거냐고 욕하다가, 애인님에게 고운 말 쓰라고 잔소리를 들었다. 쳇, 이건 다 엄브렐라 사 때문이다. 나쁜 놈들! 죽을 때까지 용서하지 않겠다! 저주하겠어!

 

  모든 것을 인공위성을 통해서 관찰하고 조종하고는 그들을 보면서 섬뜩하기까지 했다. 제목이 뭐더라, 윌 스미스가 나왔던 영화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Enemy of the State’가 떠올랐다. 정부나 인공위성을 보유한 기업이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볼 수 있던 영화.

 

  문득 저게 다 허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공위성으로 인한 사생활 침해는 이미 구글 지도가 처음 나왔을 때 논란이 되었던 문제이다. 그러니 신약 개발에 따른 부작용도 무조건 영화라고 뻥이라고 여길 수 없다.

 

  이런 생각을 하니, 미래가 참으로 암울했다. 많은 SF 작가들이 왜 유토피아가 아니라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상상했는지 이해가 갔다.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우리의 몫일 것이다.

 

  으음, 격투기를 배워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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