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 오디세이 - 빅뱅에서 힉스 입자까지, 아름다운 물리학의 역사
앤 루니 지음, 김일선 옮김 / 돋을새김 / 2013년 11월
평점 :
품절


  부제 - 빅뱅에서 힉스 입자까지, 아름다운 물리학의 역사

  원제 - The Story Of Physics (2011년)

  저자 - 앤 루니

 

 

  아름다운 물리학의 역사라니, 고등학교 때 물리를 포기한 일인으로 동의할 수 없다고 중얼거리면서 책을 펼쳤다. 설마 어려운 용어가 나오는 건 아닐까하는 불안감도 아주 조금 들기도 했다. 그런데 이럴 수가! 화장실을 가야하는데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멋지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아름다움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물리학이라는 학문이나 그것을 연구하는 학자들 모두가 다 멋졌다. 하지만 다시 공부를 하라고 하면 음…….

 

  책은 총 8장으로, 1. 물질에 대한 탐구, 2. 빛의 탐구 - 광학, 3. 힘과 물체 - 역학, 4. 에너지, 5. 원자의 내부, 6. 별이란 무엇일까, 7. 공간과 시간은 한 덩어리, 그리고 8. 미래의 물리학으로 구성되었다. 물질에 대한 관심이 어떻게 밖으로 뻗어나가 천문학으로 발달되었으며, 안으로 파고들어 원자와 힉스입자에까지 미쳤는지 단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예전에 읽었던 ‘물리학 클래식’이나 ‘세상의 과학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가 떠올랐다. ‘물리학 클래식’은 논문 중심이니까 제외하고, ‘세상의 과학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와 이 책은 연도별, 분야별로 과학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그러니까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시작해서 현대까지 어떻게 이어지고 발전했는지 보여주고 있다.

 

  그렇지만 좀 더 재미있게 읽었다. 사진도 더 많았고, 중간에 과학자들에 대한 간략한 뒷이야기 내지는 일생, 챕터와 관련된 간단 상식 등등이 호기심을 더해줬다. '아, 이런 사람도 있었구나.', '나 이 사람 들어봤어!', '헐, 이 사람이 이런 짓을 하다니 몰랐어!' 등등 책을 읽으면서 놀라기도 하고 낄낄거리기도 했다.

 

  제일 놀란 건 뉴턴이었다. 자신의 경쟁자인 훅이 죽자 그의 초상화를 다 없앴다는 대목에서는 진짜 황당했다. 훅의 연구를 바탕으로 그의 이론이 더 발전했다고 하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깬다고 해야 할까? 어릴 적에 읽은 위인전에서는 이런 성격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이 책의 독특한 점을 들자면, 우선은 다른 작품에서는 다루지 않은 이슬람이나 인도의 과학자들까지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꼽겠다. 또한 여류 과학자들까지 내용에 포함시켰다.

 

  그 중에서 도박으로 돈을 따 실험 장비를 구입했다는 샤틀레 부인의 일화는 그저 웃음만 나왔다. 남들보다 뛰어난 수학 실력을 그런 곳으로 응용하다니, 기발했다. 거기다 초상화를 보니 무지 예뻤다. 이런, 머리도 좋은데 예쁘기까지 하다니! 그녀가 도박에 관심이 많았던 건 신이 공평하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였을지도 모른다. 하나라도 빠지는 게 있어야, 머리 안 좋고 안 예쁜 나 같은 사람도 살 희망이 보일 테니 말이다.

 

  낄낄대면서 읽던 책은 현대로 가까워오면서 '으악!'하는 내용이 점점 늘어났다. 그래, 이게 바로 고등학교 때 날 좌절시켰던 바로 그 물리학이지. 하지만 다행히도 교과서처럼 어려운 계산식이나 용어가 잔뜩 나오지 않아서, 잘 넘어갈 수 있었다.

 

  아, 그러니까 내 물리학 수준은 르네상스 시대가 딱인 모양이다. 만약에 그 시대로 가면 나도 뛰어난 물리학자가 될 수 있었을까? 이상한 상상과 함께 책을 덮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계약자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34
선자은 지음 / 자음과모음 / 201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 - 선자은

 

 

 

  중학생인 알음에게 비밀이 생겼다. 가장 친한 친구 소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 왜 그런 일이 자신에게 생기는지 알음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조차도 감당할 수 없는 분노는 그 대상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왜 엄마가 집을 나가야했는지, 왜 아빠는 슬슬 자신의 눈치를 보고 집에 잘 안 들어오는지, 왜 할머니는 자기가 아닌 처음 보는 아이를 귀여워하는지, 왜 평화로웠던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야하는지, 왜 아무도 자신의 기분을 알아주지 않는 건지 그 이유를, 그 원인을 찾아 화풀이를 해야 했다.

 

  게다가 자기는 지금 이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데, 친구인 소희는 관심이 가는 남자 얘기만 한다.

 

  이 모든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알음은 계약을 맺는다. 처음에는 귀신을 불러서 소원을 빌겠다는 소희를 따라간 것이었는데, 어쩌다보니 자신이 그 정체불명의 괴물과 계약을 맺게 되었다.

 

  그 아이를 없애줘.

 

  알음은 간절한 소원을 말한다. 갑자기 우리 집으로 온, 아빠의 아들이라 의심되는, 엄마가 집을 나가버린 원인이 되는, 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한 그 아이를 없애줘.

 

  하지만 상황은 그리 좋아지지 않는다. 왜 자기도 소희가 좋아하는 남자애에게 관심이 가는지, 남자 하나 때문에 그녀와 사이가 틀어졌는지 알 수가 없다. 왜 반에서 날라리라고 소문난 아이에게 시선이 가는지, 왜 꽁알이라는 학교의 일진 같은 아이에게 약점을 잡혔는지 알음은 자기 마음도 제대로 다잡을 수가 없었다. 어쩌다가 그 아이들이 도둑질을 하는데 가담하게 되었을까?

 

  마음은 점점 더 불안해지고 모든 일은 꼬여만 간다. 계약자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그가 바라는 건 도대체 뭘까? 계약자는 소원을 들어줄까? 그리고 그 정체를 알아내는 순간, 모든 문제가 말끔히 해결될까?

 

  알음은 점점 신경질적이 되고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보게 된다. 그녀의 우울함과 어두운 마음은 점점 그녀를 질식할 정도로 옭죄어온다. 출구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그녀는 꽁알에게 이리저리 휘둘리다가 점점 더 나락으로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인다.

 

  사춘기 소녀들에게는 고민이 많다. 특히 가정불화, 친구, 그리고 연애가 제일 큰 축을 차지하고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알음에게는 저 세 가지가 쓰나미처럼 한꺼번에 밀어닥쳤다. 가뜩이나 질풍노도의 시기, 마음이 방황하는 때인데 저런 문제가 생기니 알음은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모르고 안절부절못해하기만 한다. 그럴 때 옆에서 격려해주고 고민도 들어주고 때로는 해결사 역할을 해주는 친구도 주위엔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모든 문제의 원인을 찾았을 때, 그 근원이 어딘지 알았을 때, 그제야 알음은 마음을 다잡고 차분하게 자신과 주위를 바라볼 수 있었다. 비록 100% 완벽하게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는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었다.

 

  모두가 남들에게는 말 못하는 비밀이 있었고, 다들 나름대로 해결책을 찾아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때로는 그 때문에 남과 자신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고, 가끔은 남몰래 숨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만, 어떨 때는 무리하는 느낌도 들지만, 다들 살아남아 한 발 앞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배운 알음도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딜 수 있었다. 모든 문제가 완벽하게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출구를 찾을 희망은 볼 수 있었다. 참으로 치열한 사춘기였다. 많은 것을 잃었고, 어떤 것을 얻었으며, 뭔가를 배웠다.

 

  그것으로 되었다. 이제는 방황하지 않을 테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요한 나라를 찾아서
문지나 글.그림 / 북극곰 / 201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작가 - 문지나

 

 

 

  준이와 윤이는 아직 어린 남매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빠가 사라지셨습니다. 엄마에게 물어보니, 아빠는 아주 먼 고요한 나라로 가셨다고 합니다. 둘은 그리움을 담아 편지를 씁니다. 그런데 편지로 접은 종이비행기가 그림 속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준이와 윤이는 혹시 그곳이 아빠가 계신다는 고요한 나라가 아닐까 생각하며, 종이비행기를 따라 그림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둘은…….




 

  표지를 보는 순간, ‘와아!’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첫 장을 넘기자, 또 다시 ‘와아!’하는 감탄사가 다시 나왔다. 책장을 넘기면서, 글자보다 그림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어쩌면 이렇게 깔끔하고 차분한 느낌을 줄 수 있을까? 단아하다는 말이 어울릴지 모르지만, 그 단어가 떠올랐다. 차분하면서 어떻게 보면 따뜻한 느낌을 주는, 그러면서 꼼꼼한 그림이었다.

 

  책은 한 장 가득 그림이 있고, 길어봤자 서너 줄밖에 되지 않는 문장이 들어있었다. 하지만 그 속에 아빠를 그리워하는 남매의 마음이 절절하게 담겨있었다. 그림과 어우러진 글을 읽으면서, 마음이 먹먹해졌다. 그래서일까? 책에 그려진 어린 준이와 윤이의 얼굴을 나도 모르게 쓰다듬어주고 말았다. 나이를 많이 먹은 나도 가끔 아버지가 그리운데, 어린 얘들은 얼마나 아빠가 보고 싶을까? 그 생각을 하니 아주 조금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아빠를 찾으려는 준이와 윤이의 여행은, 온가족이 갔던 바다에서 끝이 난다. 가족의 추억이 잔뜩 묻은 그곳에서, 둘은 바람이 속삭이는 아빠의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달콤한 잠에 빠진다.

 

  작가는 굳이 아빠와의 추억을 되새기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아빠는 두 사람의 마음속에 살고 있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아빠가 보고 싶다면, 옛날에 같이 지냈던 추억을 생각하라고 방법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그냥 그림 속에 모든 것이 담겨있었다. 둘이 들어간 그림 속 길에서 만난 버스도, 소포에 들어있던 소라껍데기도, 아빠와 같이 갔던 바닷가도 다 꼼꼼하게 그려져 있었다. 작가는 그걸 보면서 스스로 깨닫기를 바란 모양이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어쩐지 마음이 뭉클해졌다. 그러면서 조금 슬프지만 한편으로는 따뜻해지기도 하고 또 촉촉하게 젖어들기도 했다. 한참동안 여운이 가시지 않는 동화였다.

 

 

 

 

 

 

****

 

 

  막내 조카에게 책을 보여주니, 다 읽더니 이런 말을 꺼냈다.

 

  “할머니는 천국에 갈 거잖아. 교회 다니니까. 그런데 거긴 안 조용할 걸? 할아버지가 있고 다른 사람도 많잖아. 할머니, 200살까지 살다가 나랑 같이 가자.”

 

  아니, 왜 결론이 그렇게 나는 거니, 조카야? 그게 책을 읽은 감상이니?

 

  “할머니가 오랜만에 할아버지를 만나시는데, 네가 거기 왜 끼냐? 할아버지랑 할머니랑 두 분이 오붓하게 데이트 하시라고 해야지. 그리고 사람은 200살까지 못 살아.”

 

  그러자 조카는 고모는 나이가 몇인데 그런 것도 모르냐는 느낌이 물씬 느껴지는 특유의 잘난 척하는 표정과 어투로 대꾸했다.

 

  “난 할아버지 얼굴을 모르잖아! 그리고 성경에 보면 더 오래 산 사람도 있거든? 고모는 성경도 안 읽어봤어? 그리고 저번에 과학 발달로 150살까지 산다고 텔레비전에서 나왔거든?”

 

  내가 읽은 감동을 그런 식으로 바꾸지 말아줘, 조카야! 내 훈훈한 감동을 돌려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원제 - The Dyatlov Pass Incident, 2013

  감독 - 레니 할린

  출연 - 젬마 앳킨슨, 리차드 리드, 맷 스토코우

 

 

  1959년 2월, 러시아 등반대 아홉 명이 우랄 산맥을 등반하던 중 모두 시체로 발견되는 디아틀로프 사건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 추운 겨울 산맥에서 왜 몇 명은 옷을 벗고 있었는지, 왜 또 다른 이들에게서는 방사능이 검출되었고 상처투성이인지 아무도 이유를 알 수가 없어 결국 미스터리로 남게 되었단다.

 

  영화는 그 사건에 호기심을 가진 대학생 다섯 명의 인터뷰 화면으로 시작한다. 50년 전의 사건 설명과 왜 그곳을 가려하는지 이유나 각오 등등을 밝힌다. 그리고 화면이 바뀌면서 뉴스 속보를 보여준다. 등반에 나선 다섯 명의 대학생이 실종되어, 수색 작업이 한창이라는 내용이었다.

 

  영화는 그들이 찍는 카메라의 화면만을 통해 모든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화면밖에 있는 것들, 특히 소리에 집중해야한다. 그래야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추측할 수 있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말이 뭔지 알 수 있는 영화였다. 초반에 무수히 뿌려진 떡밥을 까먹지 말고 있어야, 후반에 나오는 장면들을 이해할 수 있다.

 

  영화의 전반은 ‘블레어 위치 The Blair Witch Project, 1999’ 같은 분위기였다. 역사적 사건이 있던 곳으로 가는 두려움과 설렘, 앞으로 있을 일들에 대한 불안함과 기대 그리고 낯선 곳에서의 두근거림이 교차하면서 다섯 명의 학생들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유지한다. 그러면서 영화는 간간이 자잘한 사고를 보여주면서, 앞으로의 일이 평탄하지는 않을 거라는 암시를 준다. 또한 여러 일을 겪으면서 일어나는 등반대원간의 갈등과 분열도 보여준다.

 

  하긴 날은 춥고, 주위에 사람은 자기들밖에 없는데 이상한 일은 자꾸 생기고 그러면 무서움이 점점 커질 것이다. 사건을 파헤쳐보겠다는 의욕보다 자기들도 무슨 일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밖에는 들지 않을 것이다.

 

  후반은 분위기를 확 바꿔서 ‘엑스 파일 The X-Files, 1993’같은 느낌이었다. 스포일러가 될 게 뻔해서 자세히는 적지 않겠지만, 평소 엑스 파일이 어떤 내용을 다뤘는지 아는 사람은 금방 알아차릴 것이다. 그래서 황당하다는 반응이 나올 수도 있다. 얘기가 왜 이런 식으로 흐르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할 수도 있고. 물론 나처럼 그런 취향인 사람은 ‘오오!’하면서 좋아할 것이다. ‘이렇게 연결시키다니 색다르구나!’ 막 이러면서 말이다.

 

  그런데 얘들은 도대체 말도 안 통하는 곳으로 가면서, 왜 현지 가이드 하나 데리고 다니지 않은 걸까? 아니면 간단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외국어를 좀 공부하든지 그것도 아니면 그 나라 회화 책이라도 들고 다니면서 무슨 말인지 알아봐야하는 거 아닌가? 아니면 스마트 폰에 번역해주는 어플이라도 하나 깔던가. 그랬으면 하다못해 아무데나 문 열고 들어가서 위험에 빠지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아, 그렇게 하면 영화가 재미가 없어지려나?

 

  이 영화의 감독은 레니 할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꽤나 이름을 날렸던 감독이었다. ‘클리프 행어 Cliffhanger, 1993’나 ‘다이 하드 2 Die Hard 2,1990’ 등등. 몇 년이 아니라 몇 십 년인가……. 하지만 최근에는 별로 이름을 들을 수 없었는데, 이번 작품을 개봉하면서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예전에 재미나게 보았던 작품들과 이번 영화는 좀 분위기가 달랐다. 그냥 카메라가 가는 데로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가면서 즐기던 액션장면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대신 이것저것 주의 깊게 보면서 추측해야했다.

 

  실종 대학생들이 러시아의 마을에서 만난 할머니의 ‘남의 말을 믿는가 아니면 자신이 본 것을 믿느냐’는 질문이 의미심장한 영화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섬, 섬옥수
이나미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 - 이나미

 

 

 

  제목이 참 특이하다. 가냘프고 고운 여자 손을 나타내는 섬섬옥수 纖纖玉手가 아니었다. 섬, 纖獄囚. 내 부족한 한자 실력으로 해석해보면, 섬에 갇힌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원래 섬은 육지와 동떨어진, 바다로 둘러싸여 달리 갈 곳이 없는 땅이다. 그곳을 벗어나려면 위험을 무릅쓰고 바다로 뛰어들거나 배를 타는 수밖에 없다. 더구나 아주 큰 섬이 아닌 이상, 사람들이 자주 마주치기 마련이다. 그러니 갈등이 생긴다면, 참 곤란할 것이다. 영영 안 보고 살 수가 없는 곳이니 말이다. 또한 육지의 행정력이 즉각적으로 발휘되거나 영향력을 직접적으로 미치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 그곳을 지배하는 것은, 얼굴도 모르는 육지 행정부의 장이 아니라 바로 이웃에 사는 마을의 장이다.

 

 

  물론 덕분에 육지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개발이라는 이름의 파괴를 조금이나마 지연시킬 수는 있다. 그래서 섬 특유의 자연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도 한다.

 

 

  그 때문에 섬은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의 종착지이기도 하고,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싶은 사람들이 거쳐 가는 중간지이기도 하다.

 

 

  이 책은 그런 섬을 찾아오는 사람들과, 그곳에서 정착하고 싶지만 그게 제대로 되지 않은 사람들, 그리고 그곳에서 어쩔 수 없이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제주도와 가까운 섬이 배경이라, 사투리가 많이 나온다. 처음에는 무슨 말일까 의아했지만, 읽다보니까 대충은 의미가 전달되긴 한다.

 

 

  변해가는 섬의 모습을 읽으면서, 마음이 아팠다. 어쩌면 그것이 인간의 본래 모습이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디선가 읽었는데, 동물들은 단지 생존을 위해 사냥을 하지만 인간은 유희를 위해서도 사냥을 한다고 한다. 그만큼 이기적이라는 뜻이리라. 아, 이기적이라는 말이 무조건 다 나쁘다는 건 아니다. 자신을 위하는 것은 좋은데, 불필요한 일까지 한다는 면에서 그리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그래서 섬사람들을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다른 이들과의 평화로운 삶도 중요하지만, 그들 나름 살아야했기에 경쟁하고 싸우게 된 것이다. 사회가 발달하면서 예전의 생활 습관으로는 살아갈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들도 변해야했을 것이다. 그걸 뭐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우리는 과학 기술의 특혜를 누리고 온갖 문명의 이기를 사용하면서, 그들에게는 예전 그대로 남아있으라고 할 수는 없다. 그건 그들을 향한 우리의 이기심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글을 읽으면서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은, 아마도 그들의 변해가는 모습에서 우리의 현재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섬이라는 작은 공간으로 축약된, 인간들의 치열하고 냉혹한 삶의 일면을 담고 있어서라고 생각한다.

 

 

  섬이라는 곳은 물리적인 공간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공간의 역할도 한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의 절박함이 그들의 마음을 섬으로 만들어버렸다. 그 누구와도 교류가 불가한, 외떨어지고 고립된 곳.

 

 

  그래서 더 처절하고 절박하고 상처가 많은 것이다. 섬으로 상처를 치유하러왔던 사람들은, 다시 육지로 돌아가 회복을 하려고 한다. 참으로 모순적인 일이다. 육지에서 상처를 받아 섬에서 새 출발을 하려던 사람들이, 그 섬에서 치명타를 입고 그 치유를 위해 육지로 돌아가다니 말이다.

 

 

  마지막 이야기에서, 작가는 그래도 일말의 희망적인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모든 것을 피해 섬에 왔던 자애가 다시 섬을 찾는다. 그런데 그녀가 갖고 있던 문제, 특히 남편과의 불화가 조금은 치유가 된 것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섬에서 안식을 취했던 것이 그녀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는지도 모른다. 남편과의 새로운 내일을 약속하는 그녀의 다짐에서, 우리는 어쩌면 섬과 육지를 연결하면서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과연 그럴지는 두고봐야하지만 말이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뒤표지에 큼지막하게 적혀있는 “우리, 정말 어쩌다 이리 됐을까?”라는 대사가 날카로운 창처럼 마음을 쿡하고 찔렀다. 정말로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어쩌다 같이 살아가기보다는, 너를 죽이고 내가 살아야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