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전기톱 연쇄살인사건 : 제로 - 아웃케이스 없음
조나단 리브스만 감독, 조다나 브류스터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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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작 - The Texas Chainsaw Massacre: The Beginning, 2006

  감독 - 조나단 리브스만

  출연 - 조다나 브루스터, 테일러 핸들리, 다이오라 베어드, R. 리 이메이



  텍사스 전기톱 살인마 1편의 앞선 이야기, 그러니까 가죽 면상이는 왜 그런 성격이 되었을까, 그 패밀리는 왜 그 모양일까라는 의문을 풀기위해 영화를 만든 모양이다. 하지만 미친놈은 미친놈일 뿐이고, 미친놈의 정신 상태를 일반인이 알기에는 너무도 어렵고 심오하다.


  한 여자가 갑자기 일하다가 출산을 한다. 산모조차도 몰랐던 임신 사실. 흉측한 외모를 가진 갓 태어난 아이는 쓰레기통에 버려지고, 우연히 그곳을 뒤지던 한 여자에 의해 구조된다. 그녀가 아기를 데리고 간 곳은 바로 이 시리즈의 배경이 되는 그 집.


  아이는 커다란 덩치에 세상에 대한 불만을 다 짊어진 것 같은 외모로 무럭무럭 커서 도살장에서 일을 한다. 그러나 그가 몸 바쳐 열심히 일했던 도살장이 문을 닫게 되고, 홧김에 그는 직장 상사를 죽여 버린다. 설상가상으로 그를 키워준 삼촌이라 불리는 사람은 가죽 면상이를 체포하겠다는 보안관을 죽여 버리고, 자신이 보안관 행세를 한다. 패밀리들은 황당하게도 가족 중에 보안관이 나왔다고 좋아라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공무원이 제일 안정적인 직업이라는 인식이 있나보다.


  그리고 마침 그 때, 4명의 남녀가 여행을 떠난다. 그러다가 폭주족과 다툼이 일어나고, 운 나쁘게도 보안관의 눈에 띄어 어디론가 끌려가는데…….


  모든 시리즈가 그러하듯이 가죽 면상이가 포스터의 앞을 차지하지만, 정작 카메라가 초점을 맞추는 것은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젊은 남녀, 그 중에서 특히 몸매 착하고 비명 잘 지르는 젊고 예쁜 처자였다. 언제나 말하지만, 텍사스 전기톱 영화의 주인공이자 마스코트는 가죽 면상인데 말이다! 이건 혹시 스포츠 경기장에서 선수들이 부각돼야지 마스코트가 날뛰면 안 되는 것이라서 그런 걸까?


  영화는 감독의 욕심 때문인지 이것저것 다 집어넣으려고 애썼다. 가죽 면상이는 왜 전기톱을 좋아하는지, 보안관과 매점 아줌마는 왜 그러는지, 다리 하나 없던 아저씨는 어쩌다가 다리를 잃었는지. 그리고 제일 중요한, 그 사막 한가운데에서 패밀리는 어떻게 식량을 조달하는지. 그런 설명을 다 해주려다보니까 공포 영화치고 말이 좀 많았다.


  대신 고어씬으로 그것을 보충하려고 노력했다. 축복받아야 할 아이의 탄생 장면이 불결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걸 이 영화에서 처음 알았다. 그리고 얼굴 가죽을 벗겨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을 뒤집어쓰는 장면도 으…….


  이번 편은 나름 1편의 분위기를 따라가려고 애쓴 흔적이 보였다. 그렇지만 그냥 전작들의 분위기만 따라갔으면 좋았는데, 스토리나 구성, 전개 방향, 캐릭터 등등 다 따라가서 문제였다. 고정 출연인 가죽 면상이나 그 패밀리는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죽어가는 젊은이들까지 비슷비슷하니, 이건 내가 제로를 본 것인지 리메이크편을 본 것인지 아니면 1974년 원작을 본 것인지 마구 헷갈렸다. 다른 점이라면 형제애를 부각시켰다는 것 정도? 하지만 그것도 고어 장면에 금방 묻혀버렸다. 


  그냥 제목만 바꾸고 주변 얘기가 많은, 시리즈의 다음편을 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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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 전기톱 연쇄 살인 사건 - [할인행사]
마커스 니스펠 감독, 제시카 비엘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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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작 - The Texas Chainsaw Massacre, 2003

  감독 - 마커스 니스펠

  출연 - 제시카 비엘, 조나단 터커, 에리카 리어슨, 마이크 보겔

 

 

  1974년 동명의 원작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개봉 당시, 실화라느니 어쩌느니 해서 광고를 엄청 빵빵하게 했었다. 게다가 마이클 베이가 그 당시 얼마나 유명했던가! 비록 감독은 다른 사람이었지만, 그가 제작에 참여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광고 효과를 거두었다.

 

  영화는 흑백 뉴스 필름으로 시작한다. 다섯 젊은이들에게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을 기록한 경찰 영상이라며, 증거를 찾고자 집안으로 들어간 경찰을 클로즈업한다. 그리고 죽은 다섯 명의 젊은이들의 얘기로 넘어간다.

 

  시각적으로나 구성적으로나 원작 영화보다 긴장되었으며, 더 화끈했다. 내용도 좀 더 충실해졌고, 훨씬 잔인하고 세련된 장면의 연속이었다.

 

  원작은 초반 30분까지는 좀 지루했던 반면에, 이 영화는 초반부터 총으로 자기 머리를 날리는 여자부터 시작해서 슬쩍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꼬맹이까지, 은근슬쩍 분위기를 잡아주고 있다.

 

  그리고 가죽 면상, 그러니까 Leather Face의 가족 얘기가 조금 더 첨부된 설정도 좋았다. 원작보다 가족 구성원이 더 많아졌고, 대략 그들이 어떻게 가족을 이루고 살아가는지, 왜 그러고 살아가는지 등등의 이야기가 곁들여졌다. 그러면서 그들의 독특한 개성이 다 살아났고, 각각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볼거리도 늘어났다. 물론 어차피 거기서 거기인 미친놈들의 얘기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 영화의 주연급인 레더 페이스의 덩치가 커지면서, 더 우악스럽고 더 무식해보였다. 그가 ‘위잉’하는 커다란 전기톱을 휘두르는 장면은 섬뜩했다. 물론 덩치의 제약 때문에 여주인공이 요리조리 빠져나갈 틈을 주기도 한다. 역시 여자는 날씬해야 살아남을 수 있단 말인가.

 

  영화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주인공 일행 중의 남자가 산 채로 갈고리에 걸려 정육점 고기들처럼 매달리는 장면이었다. 아, 보는 내가 다 아플 정도였다. 비명도 못 지르고 땀만 삐질 흘리는 배우의 고통이 저절로 느껴지면서,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중간에 가죽 면상 원래 얼굴이 살짝 지나가는데 음……. 가면을 써야하는 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남의 얼굴 가죽은 별로 좋지 않다고 말해주고 싶다.

 

  낯선 곳에서는 타인에게 친절하게 굴자. 그래야 앙심을 품고 해코지를 안 할 테니까. 그리고 낯선 곳에 갈 때는 꼭 내비게이션을 키고, 외딴 집에 들어가지 말자. 만약 그런 상황이 닥치면 다 같이 움직이자. 마지막으로 낯선 이의 친절을 조심하자.

 

  제일 좋은 건 그냥 집에 있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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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 살인마 - [초특가판]
토비 후퍼 감독, 마릴린 번스 외 출연 / 리스비젼 엔터테인먼트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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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The Texas Chainsaw Massacre. 1974

  감독 - 토브 후퍼

  출연 - 마릴린 번즈, 알렌 댄지거, 폴 A. 파테인, 윌리엄 베일



  ‘살인마 가족’이나 ‘힐즈 아이즈’, ‘데드 캠프’ 같은 영화들의 시조격인 영화일 것이다. 1974년 이 영화가 등장한 이후, 위에 언급한 아류작들이 탈곡기에서 낟알 쏟아지듯이 우수수 쏟아졌으니까.


  그러니까 어떤 부류냐면, 철부지 젊은 아이들이 차를 타고 낯선 곳을 ‘룰루랄라~’돌아다니다가 기름 떨어지고, 해는 저물고 길은 잃었고. 그래서 그냥 저 멀리 보이는 외딴 집에 들어간다. 가끔 변형을 줘서 외딴 집이 아니라 지하 땅굴인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곳의 주인은 미친놈이라, 그들을 잡아 죽이려고 한다. 그래서 죽기 살기로 도망치고 비명 지르고 고문당하고 죽을 놈은 죽고 살 놈은 사는 그런 내용이다. 참, 꼭 커플이 등장해서 므흣한 장면을 한두 컷 정도 연출한다. 그래서 여배우들의 몸매는 참으로 착하다.


  포스터를 보면 알겠지만, 전기톱을 들고 정육점 아저씨들이 입는 가죽 앞치마를 하고, 얼굴에 가면을 쓴 인물이 살인마다. 이른바 레더 페이스-Leather Face 한국어로 바꾸면 가죽 면상-라 불린다. 어째서인지 본 얼굴은 숨기고 지가 죽인 아이들의 얼굴 가죽을 벗겨서 뒤집어쓰고 나온다. 어쩌면 자기 원래 얼굴에 혐오를 느낀다거나 하는 그런 정신병을 가지고 있을 지도 모른다. 아, 어쩌면 성형에 실패했을지도……. 하지만 그렇게 넉넉한 집은 아닌 것 같다.


  하여간 이 영화 초반 30분은 덜떨어져보이는 미친놈이 하나 나왔다 사라지면서 살짝 분위기를 돋우고, 아무 것도 모르는 주인공 일행이 그냥 희희낙락하면서 길가는 내용이다. 그러다 기름이 떨어져서 들른 주유소에 기름이 없다는 황당한 상황에 직면한다. 기름을 구하려고 인근 집으로 들어간 일행.


  그 때부터 악몽의 시작이었다. 레더 페이스는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와서 애들을 잡아간다. 설상가상으로 기껏 도망쳐서 구조를 요청했더니만 나쁜 놈과 한 패. 그들에게 억지로 끌려간 집에서는 기괴한 일이 벌어지는데…….


  피가 마구 튀긴다거나, 고막이 터져나가라 비명을 지르진 않았다. 물론 레더 페이스가 전기톱을 휘두를 때 피가 좀 튀기긴 한다. 하지만 여주인공의 눈을 클로즈업해서 핏줄이 선 것이라던가, 식은땀을 보여주면서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다양한 뼈로 만들어진 집안의 많은 인테리어 소품들을 통해,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추측하게 한다.


  후반에 전기톱을 휘두르며 레더 페이스가 다가오는 장면에서는 왠지 모를 집념과 한이 느껴졌다. 그런데 왜 일까? 은근과 끈기, 집착과 광기……. 문득 배경으로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이라는 가사와 멜로디가 음성 지원이 되면서 들린 것은 내 착각일 것이다.


  ‘아니, 그러니까 왜 남의 집에 혼자 가냐고! 그리고 주인 없으면 그냥 나와야지 왜 돌아다녀, 돌아다니기는!! 게다가 딱 봐서 이상하다 싶으면 냅다 도망쳐야지! 뛰다 넘어지면 후다닥 일어나고! 빨리 일어나서 뛰어 이 ㅄ아!!’라는 고함이 절로 나오는 부분이 한 두 개가 아니었다. 아주 그냥 보는 이의 속을 답답하게 만드는 주인공 일행이었다.


  영화는 시작 부분에 마치 이 영화는 실화일 수도 있다는 뉘앙스의 내레이션을 들려준다. 실화는 맞다. 다만 이 사건과 100% 똑같은 일이 일어났던 게 아니라, 사람을 죽여 소품으로 활용했던 에드 게인의 사건과 지나가는 여행객을 공격해 먹고 살았던 소니 빈 일가를 합친 것이다.


  그러니까 현실은 영화나 소설 못지않게 무시무시하다. 아니, 더 무섭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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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별 - 타임패트롤 시리즈 2 행복한책읽기 SF 총서 15
폴 앤더슨 지음, 이정인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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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Star of the Sea

  작가 - 폴 앤더슨

 

 

  타임 패트롤 시리즈 두 번째 이야기

 

  지난 첫 번째 이야기인 ‘타임 패트롤’이 단편집이었다면, 이번 책은 ‘오딘의 비애’와 ‘바다의 별’, 두 개의 중편이 실려 있다.

 

  읽으면서 ‘우와아앙’이라는 감탄과 경탄과 슬픔과 부러움이 뒤섞인 이상한 탄성이 튀어나왔다. 고대 북유럽 신화를 어떻게 이렇게 멋지게 SF와 연결시켰는지, 작가의 상상력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헐, 대박.’이라는 말을 중얼거릴 뿐이었다. 이건 그냥 평범한 SF 소설이 아니라, 새로운 신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 중편인 ‘오딘의 비애’는 북유럽 신화 중에서 ‘반지 이야기’, 그러니까 나중에 ‘니벨룽의 노래’라는 작품으로 알려진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패트롤인 칼이 고대 게르만 족의 생활습관을 기록하기 위해 그들에게 다가갔다가, 어떻게 신격화되고, 기록된 역사를 바꿀 수 없기에 자손들의 몰락을 지켜보는 씁쓸한 과정을 보여준다.

 

  칼을 신으로 받아들였기에, 고대인들은 그의 자손을 신의 아들로 받들고 대표로 내세운다. 그리고 자신들은 신이 돌봐주는 종족이라는 믿음으로 왕인 에르마나리크와 결전을 벌인다. 그래서 칼은 그들을 막아야 했다. 모든 일은 역사서에 기록된 대로 일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가 그곳의 소녀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지 않았다면, 역사는 어떻게 흘러갔을까? 고대 게르만족들이 묘사한 오딘의 외모가 그와 비슷하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가 고대인들의 생활에 끼어들지 않았다면 과연 역사는 기록된 대로 흘러갔을까? 아니면 그가 끼어들었기에 역사가 제대로 흘러간 것일까? 책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이러한 생각할 거리는 ‘바다의 별’에서도 나온다.

 

  어느 시대에서부턴가, 로마 제국이 역사와 다르게 빨리 쇠퇴하는 일이 발생한다. 패트롤인 에버라드와 플로리스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내기 위해 고대로 향한다. 거기서 그들은 벨 에드라는 신비한 무녀가 로마 제국에 항거하는 사람들을 이끌고 있음을 알아낸다.

 

  도대체 그녀는 어디서 튀어나온 걸까? 두 패트롤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그녀의 과거를 파헤친다. 그리고 그녀가 무녀가 되는 것에 그들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아차리고, 역사를 바로잡을 궁리를 한다.

 

  여기서도 그들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았으면, 그래서 그들이 위험에 빠진 어린 벨 에드와 헤이딘을 구해주지 않았으면, 로마 제국이 갑자기 사라지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그들이 과거로 돌아가는 임무를 맡지 않았을 것이고…….

 

  머리가 아프다. 햄스터가 쳇바퀴를 돌면서 이런 느낌을 받았을까?

 

  책에서 에버라드가 이런 말을 한다. ‘신화는 진화한다.’ 고.

 

  책에서 어떤 사건은 역사서에 기록되고 또 어떤 것은 신화로 바뀌는 것을 보며, 그 말도 타당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책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계속 그래왔던 일이다. 세대를 전해 내려오면서 이야기는 가감되고 과장되고 변형되기 마련이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런 의미에서 만약에 SF 영화나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인류가 대재앙을 겪고 모든 기록이 소실된다면, 그런데 우연히 남은 책이 이거라면, 미래 우리의 후손이나 외계인은 이 책을 신화로 받아들일까 역사로 기록할까? 궁금해졌다.

 

  만약에 만화책 ‘드래곤 볼’만 남으면, 그들은 이렇게 말하겠지. ‘고대 지구인들은 또는 고대 우리 조상은 에너지 파를 써서 달을 파괴하기도 하고, 변신에도 능한 전투를 좋아하는 호전적이면서 평화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뭔가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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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욕망하는 냉장고
KBS <과학카페> 냉장 / 애플북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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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가전제품회사가 알려주지 않는 냉장고의 진실

  저자 - KBS 과학카페 냉장고 제작팀

 

 

  표지를 보면, 양문 냉장고가 있고 그 앞에 쇼핑 카트와 검은 비닐봉지가 놓여있다. 냉장고에서는 금색 팔찌를 낀 손이 나와 있다. 그림이 의미하는 바는 금방 알아볼 수 있다. 텅 빈 쇼핑 카트는 냉장고에 꽉 들어찬 식품을 뜻하고, 비닐 봉투들은 쓰레기를 말하는 것이리라.

 

  냉장고의 진실이라고 해서, 처음에는 냉장고 업계의 극비 문서 같은 걸 다룰 것이라 추측했다. 대기업의 소비자 우롱 정책 같은 것을 썼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책장을 펼쳤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니, 냉장고의 진실이라기보다는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다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냉장고로 대표되는 고도로 발달한 과학 문명 시대에서 과거의 자연주의 생활로 돌아가려는 사람들의 움직임에 대해 다루고 있다고 해야 할까? 자기들이 만들어낸 기계에 의해 덫에 빠진 인간의 자정 노력을 말하고 있었다.

 

  이 책은 냉장고와 냉동고로 인해 장기간 보관이 가능해지면서, 현대인들이 얼마나 쓸데없는 것들을 채워 넣고 또 얼마나 무분별하게 소비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또한 보존 장치의 발달로 외국 음식의 수입이 용이해지지만, 반대로 신선도는 떨어짐을 말한다. 게다가 한 나라의 오염된 식품이 전 세계로 쉽게 유통될 수 있음도 예를 들어준다.

 

  책을 읽다가, 문득 컴퓨터 외장 하드에 대한 아는 분의 말이 떠올랐다. 처음에는 몇몇 자료를 보관하기위해 구입했지만, 나중에는 그것을 채우기 위해 저장하고 지우기를 반복한다고 했다. 하긴 예전에는 500GB 정도도 적당하다고 했지만, 요즘은 1테라도 부족하다고 한다. 이건 마치 계절마다 옷을 사지만, 정작 입으려고 보면 마땅히 입을게 없다고 한탄하는 것과 비슷하다.

 

  냉장고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문 하나짜리 냉장고에도 만족했지만, 요즘엔 문 양쪽은 기본에 김치 냉장고는 따로 하나 있어야 한다. 내가 아는 어떤 집은 냉장고가 3개 이다. 일반 냉장고 2개에 김치 냉장고 하나. 하지만 그 집 애들은 냉장고를 열어보면 이렇게 말한다. ‘먹을 게 없어!’

 

  냉장실과 냉동실에 가득 뭔가가 들어있지만, 먹을 게 없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쇼핑을 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뭘 샀었는지 기억도 못하고 비슷한 것을 또 사고, 예전에 산 것은 ‘아, 이런 게 있었구나.’하면서 쓰레기통에 버려진다. 남 얘기가 아니다. 나도 조금 전에 그런 짓을 하고 왔다.

 

  그리고 냉장고가 빈 것 같으면 또 뭔가 잔뜩 사오고, 또 까먹고 안 먹다가 버리고 또 사오고. 그런데 또 자꾸 넣다보니까, 냉장고가 작게 느껴져서 더 큰 것을 원하고. 그래서 큰 냉장고를 사면, 또 그걸 채워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자꾸 또 사고.

 

  아, 어쩌면 인간들의 DNA에는 비슷한 포유류인 다람쥐의 특성이 저장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다람쥐가 도토리를 모아놓듯이, 냉장고에 뭔가를 계속해서 집어넣는 것이다!

 

  책에서는 또한 냉장고에 덜 의존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준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거래하는 사례라든지, 뉴욕에서 불고 있는 로컬 푸드 운동이나 채집 여행에 대해 얘기한다. 모두 다 장거리 운송으로 지친 식재료를 먹는 것보다는, 근처에서 나는 신선한 채소를 먹자고 말하고 있다. 비록 외국산 식품을 먹지 못하게 되겠지만, 그게 더 몸에 좋다고 사람들은 주장한다.

 

  그리고 남들이 버린 쓰레기를 재활용하는 프리건들에 대해서도 다룬다. 이들은 없어서 남들이 먹다 버린 것을 주워 먹는 게 아니라, 멀쩡한 것을 버리는 현대인들을 비판하고 있다. 그들의 주장에 동감은 하지만, 동참은 못할 것 같다.

 

  과학의 발달이 인간의 생활을 풍요롭게 해주고 있기는 하다. 그건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그만큼 인간을 게으르고 생각을 하지 않는 수동적인 존재로 만들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에필로그에서 해녀 김곤순 씨의 얘기는 의미심장하다. 저자가 말하는 ‘헛된 욕망으로 가득 채우지 않고 그저 곤한 삶을 도와주는 고마운 냉장고’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 것 같다. 우리는 냉장고를 남에게 과시하기 위해서 갖고 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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