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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욕망하는 냉장고
KBS <과학카페> 냉장 / 애플북스 / 2012년 11월
평점 :
판매중지
부제 - 가전제품회사가 알려주지 않는 냉장고의 진실
저자 - KBS 과학카페 냉장고 제작팀
표지를 보면, 양문 냉장고가 있고 그 앞에 쇼핑 카트와 검은 비닐봉지가 놓여있다. 냉장고에서는 금색 팔찌를 낀 손이 나와 있다. 그림이 의미하는 바는 금방 알아볼 수 있다. 텅 빈 쇼핑 카트는 냉장고에 꽉 들어찬 식품을 뜻하고, 비닐 봉투들은 쓰레기를 말하는 것이리라.
냉장고의 진실이라고 해서, 처음에는 냉장고 업계의 극비 문서 같은 걸 다룰 것이라 추측했다. 대기업의 소비자 우롱 정책 같은 것을 썼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책장을 펼쳤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니, 냉장고의 진실이라기보다는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다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냉장고로 대표되는 고도로 발달한 과학 문명 시대에서 과거의 자연주의 생활로 돌아가려는 사람들의 움직임에 대해 다루고 있다고 해야 할까? 자기들이 만들어낸 기계에 의해 덫에 빠진 인간의 자정 노력을 말하고 있었다.
이 책은 냉장고와 냉동고로 인해 장기간 보관이 가능해지면서, 현대인들이 얼마나 쓸데없는 것들을 채워 넣고 또 얼마나 무분별하게 소비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또한 보존 장치의 발달로 외국 음식의 수입이 용이해지지만, 반대로 신선도는 떨어짐을 말한다. 게다가 한 나라의 오염된 식품이 전 세계로 쉽게 유통될 수 있음도 예를 들어준다.
책을 읽다가, 문득 컴퓨터 외장 하드에 대한 아는 분의 말이 떠올랐다. 처음에는 몇몇 자료를 보관하기위해 구입했지만, 나중에는 그것을 채우기 위해 저장하고 지우기를 반복한다고 했다. 하긴 예전에는 500GB 정도도 적당하다고 했지만, 요즘은 1테라도 부족하다고 한다. 이건 마치 계절마다 옷을 사지만, 정작 입으려고 보면 마땅히 입을게 없다고 한탄하는 것과 비슷하다.
냉장고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문 하나짜리 냉장고에도 만족했지만, 요즘엔 문 양쪽은 기본에 김치 냉장고는 따로 하나 있어야 한다. 내가 아는 어떤 집은 냉장고가 3개 이다. 일반 냉장고 2개에 김치 냉장고 하나. 하지만 그 집 애들은 냉장고를 열어보면 이렇게 말한다. ‘먹을 게 없어!’
냉장실과 냉동실에 가득 뭔가가 들어있지만, 먹을 게 없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쇼핑을 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뭘 샀었는지 기억도 못하고 비슷한 것을 또 사고, 예전에 산 것은 ‘아, 이런 게 있었구나.’하면서 쓰레기통에 버려진다. 남 얘기가 아니다. 나도 조금 전에 그런 짓을 하고 왔다.
그리고 냉장고가 빈 것 같으면 또 뭔가 잔뜩 사오고, 또 까먹고 안 먹다가 버리고 또 사오고. 그런데 또 자꾸 넣다보니까, 냉장고가 작게 느껴져서 더 큰 것을 원하고. 그래서 큰 냉장고를 사면, 또 그걸 채워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자꾸 또 사고.
아, 어쩌면 인간들의 DNA에는 비슷한 포유류인 다람쥐의 특성이 저장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다람쥐가 도토리를 모아놓듯이, 냉장고에 뭔가를 계속해서 집어넣는 것이다!
책에서는 또한 냉장고에 덜 의존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준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거래하는 사례라든지, 뉴욕에서 불고 있는 로컬 푸드 운동이나 채집 여행에 대해 얘기한다. 모두 다 장거리 운송으로 지친 식재료를 먹는 것보다는, 근처에서 나는 신선한 채소를 먹자고 말하고 있다. 비록 외국산 식품을 먹지 못하게 되겠지만, 그게 더 몸에 좋다고 사람들은 주장한다.
그리고 남들이 버린 쓰레기를 재활용하는 프리건들에 대해서도 다룬다. 이들은 없어서 남들이 먹다 버린 것을 주워 먹는 게 아니라, 멀쩡한 것을 버리는 현대인들을 비판하고 있다. 그들의 주장에 동감은 하지만, 동참은 못할 것 같다.
과학의 발달이 인간의 생활을 풍요롭게 해주고 있기는 하다. 그건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그만큼 인간을 게으르고 생각을 하지 않는 수동적인 존재로 만들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에필로그에서 해녀 김곤순 씨의 얘기는 의미심장하다. 저자가 말하는 ‘헛된 욕망으로 가득 채우지 않고 그저 곤한 삶을 도와주는 고마운 냉장고’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 것 같다. 우리는 냉장고를 남에게 과시하기 위해서 갖고 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