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천재 아이북클럽 14
베시 더피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자넷 윌슨 그림 / 크레용하우스 / 200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원제 - The Math Wiz

  작가 - 베시 더피

  그림 - 자넷 윌슨

 

 

  자칭 수학만은 잘한다고 으스대는 조카를 위해 고른 책이다.

 

  어릴 때부터 수학을 무척 좋아하고 잘하는 마티. 그런 그에게 문제가 생겼다. 바로 이번에 전학 온 학교의 체육 수업이 무척이나 까다롭다는 것이다. 두 명의 대장을 뽑아 각자 팀을 나눠 수업하는 방식은 그에게는 너무도 힘든 일이다. 왜냐하면 그는 운동을 너무도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번 꼴찌로 이름이 불리는 것도 지긋지긋하다. 꼴찌로 불린다는 건, 어느 팀에서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학을 잘한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는 그에게, 그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체육 수업을 빼먹을 계획을 짜는 마티.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수학 공식처럼 척척 풀리는 건 아니다.

 

  마티에게 공감이 가는 책이었다. 나도 학교 다닐 때 체육을 아주 못했기 때문이다. 마티처럼 배가 아팠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생리 현상을 핑계 삼아 체육 수업을 빼먹기도 했었다. 물론 마티처럼 수학을 기가 막히게 잘한 건 아니다.

 

  마티의 사고방식은 조금 독특하다. 모든 것을 공식화하고 표를 만들어 답을 구하려고 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남자 아이 + 수학을 잘한다 = 성적표의 ‘수’도장

  남자 아이 + 운동을 잘한다 = 친구들

  수학 천재 + 체육 시간 = 비참함

  수학 천재 + 체육 시간 + 친구 =????

 

  어쩌면 그래서 그에게 친구가 없을지도 모른다. 사람 사이의 일이 계획처럼 딱딱 맞아떨어지는 법이 없으니까 말이다. 이 책에서 마티는 그것을 절실하게 느낀다. 압박 붕대를 이용해 다리를 다친 척하려 했지만, 처음 생각대로 잘 되지 않는다. 급기야는 교장 선생님에게 불려갈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예감에 전전긍긍해한다.

 

  하지만 그가 모든 것을 수학 공식처럼 바라보지 않을 때, 지금까지와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볼 때, 해결책이 보였다. 남을 바꿀 수 없다면 나를 바꿀 수도 있고, 이 길이 막혀있으면 다른 길로 돌아갈 수도 있는 법이다. 책에서는 그것을 ‘문제를 바꾼다.’고 표현했다.

 

  운동을 잘하는 아이들만이 친구가 많고 인기 있는 것이 아니다. 운동을 못해도 체육 시간을 즐길 수 있고, 친구를 만들 수 있다. 다른 친구들을 편견 없이 바라보고 자기 안의 독선을 지우면, 남을 자기 기준에 맞추려 하지 말고 모든 아이들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면, 좀 더 즐겁게 생활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이건 어린아이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소설 ‘어린 왕자’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친구를 사귀었다고 하면 어떤 집에서 사는지가 더 궁금하다는 대목이다. 아이들은 그런 것에 별로 관심도 없는데 말이다.

 

  이 책에서도 그런 비슷한 말을 하고 있다. 글의 후반부에 가서 마티는 나와 다른 남을 차별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랬기에 ‘수학 천재 + 체육 시간 + 친구 =????’ 의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처음으로 마티의 눈에 아이들이 한 무리가 아니라 저마다의 다른 사람으로 보였다.

 

- 어떤 아이들은 체육을 잘하고, 어떤 아이들은 음악과 미술을 잘했다. 또 어떤 아이들은 수학을 잘하고, 어떤 아이들은 글짓기를 잘했다.

  모두가 다 달랐다. 모두 마티처럼 어떤 건 썩 잘하지만 어떤 건 아주 못하는 아이들이었다. 오늘에야 마티는 자기가 수학을 잘한다는 것이 기뻤다. 수학을 하면 마티는 행복했다.

  그러니 체육을 못한들 무슨 상관인가? 누구나 모든 것을 잘할 수는 없다.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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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턴 (2disc) - 일반판
이규만 감독, 김명민 외 출연 / 엔터원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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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독 - 이규만

  출연 - 김명민, 유준상, 김태우, 정유석



  한 시간이 넘어가니 몸이 비비 꼬였고, 2시간 가까이 되니 짜증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난 아직도 영화 ‘타이타닉’과 ‘반지의 제왕’ 그리고 ‘킹콩’의 3시간 남짓한 고문 시간, 아니 상영 시간을 잊을 수 없다. 얼마나 지루하고 짜증이 나던지, 킹콩이 여주인공과 공원에서 나름 종족을 초월한 로맨틱한 연애질을 하는 것을 보고 '빨리 죽어!'라고 중얼거렸고, 타이타닉은 '왜 빨리 안 가라앉지?' 라며 시계만 볼 정도였다.


  그런 나에게 이 영화의 상영 시간 역시 고문이었다. 보면서 '빨리 죽일 놈은 죽이고 끝내라.' 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 이건 빨리 넘어가도 되는 부분이고, 여긴 설명이 부족하고 어쩌고저쩌고 중얼거리면서 보았다. 그래도 집에서 보았기에, 중간에 멈춰두고 딴 짓을 할 수 있었다는 게 다행이었다. 


  그래, 이건 뭐 내 지랄 맞은 성격의 문제일 것이다. 모든 사건이 45분 안에 다 해결을 봐야하는 초스피디한 미드만 보았더니, 그런 것에 익숙해진 탓일 것이다.


  영화는 나쁘지도 그렇다고 좋지도 않았다. 그냥 유준상은 미친 놈 같았고, 김명민은 잘 울었고, 김태우는 매번 그런 분위기의 역만 맡는 것 같았고, 정유석은 존재감이 없었으며, 김유미는 예뻤다 정도?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범인이 누구라는 게 너무 일찍 밝혀졌다는 것이다. 아, 진짜 이건 너무했다. 세상에나 반도 지나기 전에 범인이 누구라는 것이 뻔히 보이다니. 어쩌면 그래서 지루하고 짜증이 났을지도 모른다.


  처음에 누군가를 의도적으로 범인으로 몰아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런 분위기로 몰아가면, 아마 저 사람이 범인이구만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진짜 그랬었다. 이런, 제길! 미스터리 스릴러의 기본은 끝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그런 아슬아슬한 분위기이건만! 이 영화, 후반에 가면서는 눈에 띄게 그 힘을 잃었다.


  범인이 주절거리는 시간이 너무 길었고, 눈앞에 둔 복수의 기회를 놓쳐버렸다. 아니 죽이려면 그냥 죽이지 왜 주절거리다가 반격을 당해? 바보 아냐?


  게다가 극 후반에 등장한 '봐, 불쌍하지? 그렇지? 그러니까 범인에게 동정심을 좀 줘봐!' 라는 감독의 의도가 분명히 보이는 편집은……. 동정심보다는 '그래서 어쩔? 그래봤자 미친놈은 미친놈이잖아?' 이라는 반문만 나올 뿐이었다. 차라리 중간에 범인이 과거의 기억 때문에 고통 받는 모습을 조금이나마 보여줬더라면 조금은 불쌍하게 보이지 않았을까? 사실 중간에 쫌 보여주긴 하는데, 고통 받는 모습이라기보다는 미친 짓하는 걸로만 보였었다. 


  극 중에서 최면 의사와 마취 의사는 처음부터 미묘한 관계로 나온다. 술김에 벌인 최면 놀이 때문이었다. 마취 의사가 벌칙으로 최면에 걸리고, 그 이후 둘 사이에는 뭔가 알 수 없는 미묘한 기류가 흐른다. 그렇다고 BL은 절대 아니다. 그리고 나중에 최면 의사가 말하길, 마취 의사가 문제의 소년일 수 있다고 넌지시 언급한다. 주인공은 그의 말을 믿고, 마취 의사가 범인이라 단정 짓고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내가 범인이라면 말이다. 나에게 최면을 걸었던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 날 이후, 그가 뭔가 달라졌다. 내가 뭔가 이상한 것을 말했을까? 내 비밀을 털어놓았나? 이런 의심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둘 사이가 껄끄러웠다고 영화에서는 분명히 밝혔다. 


  그러면 내가 살인을 하려고 하는데, 제일 먼저 죽여야 할 존재가 누굴까? 내가 복수할 상대? 아니다. 내 비밀을 알고 있는, 그러면서 믿을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러니까 마취 의사가 범인이라면, 최면 의사를 제일 먼저 죽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의 반전은, 후우……. 이 부분만 어떻게 잘 했어도 훨씬 더 재미있을 수 있었을 텐데, 아쉽기만 하다. 이 부분이 제일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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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녀 - 고전의 재창조
김기영 감독, 김진규 외 출연 / 덕슨미디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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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독 - 김기영

  출연 - 김진규, 주증녀, 이은심, 엄앵란, 안성기


  포스터를 보자마자 뭔가 스릴러 같다는 기운이 느껴졌다. 거기다 제목은 ‘하녀’! 오오, 설마 이것은 하녀와 주인님 그리고 주인마님의 삼각관계! 잠깐만 그러면 안성기씨는? 엄앵란씨는? 그러면 5각 관계? 설마 1960년대, 그것도 한국에서 그런 구도가? 순간 당황했다. 이런 앞서나가는 영화라니! 그렇지만 실망스럽게도 안성기씨는 통통한 볼을 가진 주인집의 귀여운 어린 아들로 나온다.


  공장에서 여직원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고 피아노 레슨이 직업인 선생님. 병약한 부인, 다리가 불편한 딸 그리고 개구쟁이 아들. 이 네 식구가 사는 집에 하녀가 하나 들어온다. 공장에서 추천을 받은 여자로, 몸이 아픈 부인을 대신해서 집안일을 하기 위해 고용한 것이다. 선생님은 무척이나 인기가 많은 남자이다. 공장의 여직원들에게서는 인기 만점으로, 엄앵란도 그를 흠모하는 사람 중의 한 명이다. 그녀가 하녀로 추천한 사람이 바로 이은심.


  이미 자신에게 러브레터를 보낸 여직원을 퇴사하게 한 전적이 있는 남주인공. 어느 날 그 여직원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괴로워하다가, 하녀인 이은심과 그만 관계를 갖는다. 그것도 하필 비 오는 날에. 그리고 그 날 이후, 그녀는 그를 ‘여보’ 라고 부르며 부인 행세를 한다. 설상가상으로 남주인공의 아기를 가졌다는 충격적인 고백까지. 그 때부터 적대감과 살기를 품은 사람들의 묘한 동거가 시작되는데…….


  영화 내내 나오는 곳은 주인공의 집이다. 1층은 부인의 공간이고 2층은 하녀의 공간, 그리고 그 둘을 연결하는 것은 계단과 피아노 소리였다. 특히 계단은 의미심장한 곳이었다. 이 집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는 곳이 바로 계단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양립할 수 없는 두 세계를 보여주는 1층과 2층의 유일한 통로이다. 양립할 수 없었기에 사고가 생기는 것일까?


  보는 내내 부인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식을 위해서라지만, 그녀의 행동은 비굴할 정도였다. ‘머리끄덩이라도 잡고 싸워야지, 이 아줌마야! 한복 곱게 차려입고 재봉질이나 하고 있을 때야? 교양 예의범절 따위는 내팽개치라고! 이런 상황에서 고고해봤자 무슨 소용이야!’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렇지만 뭐, 1960년대니까 지금의 기준으로 생각하면……. 여자도 경제적인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사람들의 말에 공감했다. 이혼하고 나면 애들과 먹고 살 길이 막막하니, 남편이 첩질을 하건 하녀가 주인마님 행세를 하건 꾹 참아야 하니 말이다. 


  남주인공도 뭐. 이런 스토리의 영화에서는 당연히 욕을 먹기 마련이다. 부인이 아파서 그동안 쌓인 것이 많았나? 그래서 젊은 여자가 옷 훌렁 벗고 달려드니까 아주 그냥……. 감당하지도 못할 일을 해놓고는, 일처리도 못하고 쩔쩔매는 모습이 참으로 한심했다. 그러니까 사고치기 전에 생각을 다시 해봤어야지. 할 때는 좋았겠지. 욕만 나왔다.


  하녀는 그냥 무서웠다. 눈만 뜨고 있어도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녀가 진정으로 그를 사랑했는지, 아니면 후처자리라도 꿰차서 팔자 고치려고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그냥 하룻밤 꿈으로 끝내고 싶었는데, 남자 하는 꼬락서니가 괘씸해서 더 그랬을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에서는 애들만 불쌍했다. 특히 어린 아들.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예전 영화를 보면 느끼는 것이지만 목소리 톤이 참으로 낯설다. 그래서 진지하게 몰입해서 봐야하는 그런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픽'하고 나올 때가 있어서 참으로 난감하다. 이 영화도 그랬다. 아직 내공이 모자란 듯하다.영화가 좀 길었다. 앞부분과 중간에 조금씩 압축해도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살포시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이 좀……. 이건 뭐지?하는 기분이 들었다.



  ps. 메이드라는 존재에 대해 이상한 환상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보여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들이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으로 보는 그런 베이글녀에 앞치마한 메이드가 아니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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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 박물관보다 재미있는 세계 100대 명화 재미있는 100대 시리즈
박현철 지음 / 삼성출판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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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 박현철



  우연히도 조카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미술에 관한 책을 선물했다. 큰조카도 그랬고 둘째 조카도 그랬고 이번에 막내 조카도 마찬가지였다. 이 책은 막내 조카를 위해 산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명화 자체에 저작권이 걸려 있을 것 같아서 패스했다. 책을 펼치면 왼쪽에는 명화가, 오른쪽에는 그림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저자가 붙인 한 줄 감상이 제목처럼 적혀 있다. 설명도 화가나 작품에 대한 역사적인 의의나 미술 사조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림에 얽힌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예를 들어서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부분에서는 ‘착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라는 제목 아래에, 최후의 심판이 무엇인지 그림에 누가 그려져 있는지 얘기해주고 있다. 밀레이의 ‘오필리아’에서는 ‘햄릿의 연인’이라는 제목과 함께 왜 그녀가 물에 빠져 죽어야 했는지 간략하게 말해준다. 어떤 제목은 참으로 기발하면서 딱 맞아떨어지기도 하고, 어떤 건 별로인 것도 있다.


  책장을 넘기면서 막내 조카는 ‘이 그림은 학교 책에서 봤어.’라든지 ‘예쁘다’, ‘무섭다’ 같은 감상을 말해주었다. 그런데 글은 별로 읽지 않고, 그림만 보고 넘기는 수준이었다.


  하긴 한 페이지 가득하니 빽빽하게 적힌 글이 아이들에게는 약간 부담스러울 수 있어 보였다. 어른이고 책을 좋아하는 내가 봐도 ‘어린 아이나 책을 즐기지 않는 아이들에게는 많지 않을까’하고 걱정스러울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조카는 여전히 그림만 휘리릭 보고 있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다른 책이나 어디 갔을 때 ‘이 그림 고모가 준 책에서 본 거 같아.’라고 기억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금만 더 신경 써서 화가 이름이라든지 제목, 좀 더 바란다면 관련 이야기까지 기억해줬으면 한다. 그러다가 신화나 역사를 좋아하게 되면 바랄 것이 없고. 이건 고모의 너무 큰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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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에 대하여
린 램지 감독, 틸다 스윈튼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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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We Need to Talk About Kevin

  감독 - 린 램지

  출연 - 틸다 스윈튼, 에즈라 밀러, 존 C. 라일리, 시옵한 폴론




  보는 내내 어딘지 모르게 불편했다. 자리가 불편한 것도, 뭘 잘못 먹은 것도, 몸이 안 좋은 것도 아니었다. 그냥 마음 한구석이 쿡쿡 찔리는 것 같고, 얹힌 기분이었다.


  케빈의 거친 생각과 엄마의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나. 그건 아마도 전쟁 같은 사랑……때문이 아니다. 케빈과 엄마의 생활이 마치 살얼음판을 조심스레 걷고 있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안고 살아가는 그런 삶이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는 너무도 불안한 눈빛으로 주위를 의식하는 엄마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면서, 왜 그녀가 그런 표정으로 세상을 바라봐야하는지, 왜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는지 하나씩 설명해준다. 처음에 볼 때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느라 좀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곧 익숙해진다.


  꽤나 잘 나가는 여행가였다가 한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덜컥 임신을 한 그녀. 그렇지만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은 그녀가 원했던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는 모든 것에 서툴렀다. 아이를 돌보는 것도, 기르는 것도, 아이와 대화를 하는 것도, 아이를 이해하고 보듬어 주는 것도 다 그녀는 하지 못했다. 아니, 할 생각이 없었다. 그녀 나름대로 뭔가 하지만, 지켜보는 내 눈에는 미흡하기만 했다.


  어떻게 아기 우는 소리가 듣기 싫다고, 공사 현장에 유모차를 끌고 갈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공사 소리에 아들의 울음소리가 안 들리자 만족해하는 그녀를 보면서, 어이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아빠는 무조건적으로 아들을 사랑한다. 집을 자주 비우는 직업이라, 그 미안한 마음에 아들에게 물질적으로 보상하는 것이 제일이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나쁜 종자’의 꼬마 아가씨도 영악했지만, 이 영화의 케빈은 잔인할 정도로 영악했다. 엄마 앞에서는 온갖 성질을 다 부리지만, 아빠 앞에서는 너무도 착한 아들 행세를 한다. 이건 사랑과 신뢰를 주고받는 엄마와 아들이 아니라,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 그런 관계였다.


  영화는 자세히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상상할 정도의 힌트는 준다. 어린 여동생이 어떻게 다쳤는지, 그 현장을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케빈이 평소에 활을 잘 갖고 놀고, 제대로 관리를 안 했다고 혼나는 걸 봐서는 혹시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또한 케빈이 학교에서 무슨 일을 저지르는지 자세히 알려주지도 않는다. 추측을 할 뿐이다. 그런데 그게 더 끔찍하다. 사람은 자기가 아는 범위 내에서 상상을 하기 때문이다.


  케빈이 그런 짓을 저지르게 된 것이 엄마의 책임이라고 몰아붙이고 싶지는 않다. 만약에 그녀가 아들이 아기일 때부터 조금만 더 따뜻하게 대했다면, 모자 관계가 그 지경이 되었을 까라고 추측하고 싶지도 않다.


  왜냐하면 그녀는 현재 아들이 저지른 죄에 대해 속죄하면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며, 웃는 것도 허용이 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케빈이 주인공이 아니다. 그의 엄마가 주인공이다. 그래서 왜 그가 그런 짓을 저지르기로 했는지 알 수가 없다. 진짜 태어나면서부터 사이코패스라서 그럴 수도 있고, 세상에 불만이 많아서 그럴 수도 있고, 학교에서 왕따를 당했다거나 애인을 빼앗겼다거나 등등 이유는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걸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엄마가 아들을 그렇게 키웠다고 비난하게 되는 걸지도 모른다. 영화를 처음 보고 나서는, 나도 그랬으니까. 저따위로 키우니까 애가 그렇게 크지. 어린 딸에게 사랑과 따뜻함이 담긴 눈빛을 주지만, 아들의 시선은 피하는 엄마. 애가 비뚤어지는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자란 애들이 다 범죄자가 되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이 세상 어딘가에 케빈과 비슷한 애들이 자라고 있을 지도 모른다.


  모자가 진지하고 애정이 넘치는 포옹을 한 건 영화 마지막에서였다. 그제야 두 사람은 서로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제대로 바라보았다. 모든 일이 다 끝난 뒤에야 둘은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그때가 되어서야 엄마는 아들의 방에 들어가 다른 엄마들처럼 청소를 해주었고, 아들은 엄마의 질문에 냉소적이지 않은 진심이 담긴 대답을 했다.


  너무나도 오래 걸린 화해, 아니 이해의 시간이었다. 두 사람의 격한 포옹이 훈훈하지만, 그 와중에 희생자가 된 많은 사람들이 안쓰러울 뿐이다.


 엄마역을 맡은 배우와 케빈 역을 맡은 배우 두 사람 다 진짜로 배역에 잘 어울렸다. 케빈 역을 맡은 배우는 패주고 싶을 정도로 얄미웠고, 엄마 역을 맡은 배우는 보는 내가 안쓰러울 정도로 불안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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