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데는 해적이 되고 싶어 - 제2회 말라가 어린이 문학상 수상작 스콜라 어린이문고 5
파블로 아란다 글, 에스더 고메스 마드리드 그림, 성초림 옮김 / 스콜라(위즈덤하우스)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원제 - Fede Quiere Ser Pirata (2012년)

  작가 - 파블로 아란다

  그림 - 에스더 고메스 마드리드



  책을 다 읽은 느낌은 ‘귀여워!’였다. 사차원적인 주인공 페데는 앙증맞았고, 그의 친구인 마르가와 세르히오는 귀여웠고, 그의 누나인 이사벨 역시 깜찍했으며 심지어 둘의 아빠까지도 행동과 대사에서 웃음을 자아냈다. 어떻게 나오는 사람들이 그렇게 다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귀여울 수가 있는지!


  그림은 다소 낯설었지만, 어느 사이 글의 내용과 잘 어우러지고 있었다.


  페데는 제목 그대로 해적이 꿈인 여섯 살에서 일곱 살로 넘어가는 나이의 소년이다. 그에게 이 세상 모든 것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해적과 관련이 있는가 아니면 없는가. 오죽했으면 해적은 팔이나 다리 하나가 없어야 한다고, 교통사고를 당해 의족을 찬 세르히오를 부러워하겠는가? 세르히오가 처음 전학을 온 날, 그를 너무 부러워한 페데는 톱으로 자기 다리를 자르려고까지 했다. 그런 그에게 해적을 좋아하는 마르가와 세르히오는 너무나도 좋은 친구들이다. 언제나 그가 꿈꾸는 해적선에는 세 친구가 나란히 등장한다.


  이 책은 딱히 기승전결의 구성이 없다. 그냥 일상의 에피소드를 통해 페데와 가족 그리고 친구들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


  가족들은 해적을 꿈꾸는 그를 이상하다고 여기며 정상적인 꿈을 가지라고 다그치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봐주고 있다.


  누나인 이사벨은 왜 배는 쇠인데 물에 뜨냐는 동생의 질문에 뉴튼의 법칙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한다. 하지만 여느 누나처럼 어린 동생을 ‘올챙이’나 ‘염소’라는 별명으로 부르면서 놀리기는 한다. 그리고 페데가 무슨 질문만 하면 아프다는 핑계로 엄마에게 떠넘기는 아빠지만, 무조건 윽박지르지 않는다. 물론 페데가 톱으로 다리를 자르려고 할 때는 소리를 지르지만. 훌리오 이글레시아스를 좋아하는 엄마 역시 아이들을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다. 무조건 엄마 말 들으라고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다.


  이런 가정환경이니 기발하고 창의력 대장인 페데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의 상상력을 비현실적이라고 무시하는 게 아니라, 그럴 수도 있다고 받아들여준다. 자유롭지만 기본 원칙은 꼭 지키도록 하고, 아이의 무한한 상상력을 지켜주는 태도를 보인다. 그 부분이 참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페데의 일상은 웃음의 연속이다. 처음에 ‘식인종 물컵’이라는 말을 읽고는, 이게 뭘까 한참 고민했다. 컵에 식인종 그림이 그려져 있는 걸까? 그런데 알고 보니 할아버지의 틀니가 담겨있는 컵을 지칭하는 거였다. 아, 어떻게 그런 상상을!


  거기에 온갖 말장난이 나오는데, 번역가가 고심을 했을 것 같다. 아이스크림에는 비타민 아이가 들어있고 갈비뼈에는 비타민 갈이 없다고 하거나, ‘수영장’이나 ‘테니스장’에는 ‘장난’할 때의 ‘장’이 들어있다고 하는 부분이 나온다. 원작에는 어떻게 되어있는지 궁금해졌다.


  작가도 유머 감각이 풍부하고, 번역가도 만만치 않은 내공을 가진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이 더 활기차고 재미있는 게 아닐까? 오랜만에 웃을 수 있는 어린이 책을 읽었다.


  조카도 마음에 든 모양이다. 깔깔거리면서 ‘고모, 얘 너무 웃겨.’를 연발했다. 상상력이 많이 사라진 조카를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유치원 다닐 때는 참으로 기발하고 황당한 아이였는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경직되어 가는 것 같아서 안타깝기만 하다. 나라도 어린 조카의 상상력을 지켜주는 고모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해본다.


  버스에서 읽다가 나도 모르게 큰소리로 웃어버려 본의 아니게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킨 대목을 옮기면서 감상을 마친다.


  페데는 팔을 내밀어 세르히오의 종아리와 무릎 또 왼쪽 다리의 근육을 만져 보았습니다.

  “꼭 진짜 다리 만지는 거 같아.”

  “의족은 다른 쪽 다리니까 그렇지.”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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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 캠프[dts] - [할인행사]
롭 슈미트 감독, 엘리자 더쉬쿠.데스몬드 해링턴 외 출연 / 아이비젼엔터테인먼트(쌈지)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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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원제 - Wrong Turn, 2006

  감독 - 롭 슈미트

  출연 - 데스몬드 해링턴, 엘리자 두쉬쿠, 엠마누엘 슈리키, 제레미 시스토



  내용은 간단하다. 숲 속에서 길을 잃은 여섯 명의 남녀. 아, 그래서 영어 제목이 그거구나. 한글 제목만 보고는 캠프장에서 죽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역시 어디를 갈 때는 서두르지 말고 지도를 잘 확인해야한다. 그리고 모르는 길에서는 함부로 지레짐작해서 길을 들어서면 큰일이다. 하여간 그들은 길을 잃은 주제에 커플 염장질을 벌이다가, 그곳에 사는 살인마들의 공격을 받아 하나씩 죽어나간다.


  연애 염장질 하지 마라. 그런 짓하는 놈들이 제일 먼저 죽는다. 이건 중요한 공포 영화의 법칙 중의 하나이다. 역시나 여기서도 그런 법칙이 통용된다. 기존 커플이 두 쌍이나 있는데다가 우연히 동행하게 된 남녀마저 눈이 맞으니, 이건 뭐 죽음 예약이다.


  특히 그 산에 살고 있는 가족은 음, 유전적인지 아니면 사고를 당해서인지 모르지만 기형적으로 생겼다. 그래서 여자는 구경도 못하고 모태 솔로로 죽을 지도 모르는데, 그 앞에서 대놓고 연애질이니……. 물론 그렇다고 커플을 죽이는 게 정당화되는 건 아니다. 열등감폭발에 상찌질이들이나 그런 짓을 하는 거다.


  배우들은 미국 드라마에서 낯이 익은 사람들이 많았다. ‘덱스터’에서 나온 남자도 있고, ‘돌 하우스’에 나왔던 여자도 있다. 미국 드라마에서 나왔던 사람들은 가만히 보면 호러 영화에 많이 나오는 것 같다. 예전에 ‘슈퍼 내추럴’에서 동생으로 나오는 배우도 그랬었는데.


  영화의 가장 압권은 포스터에도 나와 있지만, 입에 도끼가 찍힌 여자가 나오는 부분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도끼 위아래로 몸이 이등분되어 떨어지는 다음 장면이다. 헐, 이런 표현력이라니!


  사람이 죽는 장면도 그냥 다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간접적으로도 보여주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특히 숨어있는 사람의 눈동자에 비친 영상을 통해, 잡힌 인물이 토막 나는 장면은 ‘오오!’하고 감탄사를 내뱉을 정도였다.


  문제는 극 초반에 모든 힌트를 다 준다는 것이다. 오프닝이 시작되면서 신문 기사를 보여주는데, 거기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었다. 범인과 그들이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전부 다. 만약에 오프닝 때 딴 짓을 한 사람이라면 ‘얘들 왜 이래?’할 것이고, 그걸 꼼꼼히 다 본 사람이라면 ‘아, 반전이 없어.’라고 한숨을 쉴 것이다. 그래서 많이 아쉬웠다.


  게다가 내용은 비슷한 류의 다른 영화들, 그러니까 ‘텍사스 전기톱 살인마’라든지 ‘살인마 가족’ 내지는 ‘힐즈 아이즈’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살인마들이 가족이고 기형이라는 것까지 비슷했다.


  전반적으로 영화는 포스터를 처음 봤을 때의 충격과 공포는 주지 못했다. 2편은 좀 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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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크로이드 살인사건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8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유명우 옮김 / 해문출판사 / 199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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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The Murder of Roger Ackroyd (1926년)

  작가 - 애거서 크리스티



  이번에는 헤이스팅즈는 나오지 않는다. 대신 제임스 셰퍼드라는 마을 의사가 포와로와 함께 다니면서 사건을 기록한다. 그래서 ‘나’라는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물론 ‘나’는 의사이다.


  한 여인이 사망한다. 남편을 살해했다고 의심을 받던 여인이었다. 그런데 그녀와 친하게 지내던 애크로이드마저 며칠 후 살해당한다. 죽기 바로 전, 그는 여인이 남긴 고백과도 같은 편지를 받았다. 남편을 살해한 것을 알았다고 협박하는 자에게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의사의 옆집에 신분을 숨기고 호박 재배를 하던 포와로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사실 그가 이 마을에 오게 된 배경에는 애크로이드의 배려가 숨어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사람들은 그의 정체를 몰라서, 이발사라고 생각했다. 그런 직업이 아니면 그의 독특한 수염을 기를 수가 없다고! 포와로의 자랑거리 중의 하나인 수염이 그렇게 인식되다니. 그가 모르길 다행이다.


  관련인들의 행적이 모두 다 의심스러운 가운데, 포와로는 뜬금없어 보이는 질문과 행동으로 사람들의 허점을 찌르며 조사를 시작한다. 그의 의붓아들은 행방이 묘연하고, 그의 조카딸은 뭔가 숨기고 있고, 하녀도 수상하고, 친구라는 소령도 이상하고, 집사도 미심쩍고……. 포와로 빼고 다 의심이 간다. 


  의사의 누나인 캐롤라인을 보면서, 크리스티의 또 다른 명탐정 미스 마플이 떠올랐다. 동네에 떠도는 모든 소문들을 다 알고 있으며 참견하기 좋아하는, 상상력도 풍부하고 사람에 대한 관찰력도 좋은 노처녀. 하지만 그녀는 너무 호기심이 많았고 수다스러웠다. 그런 그녀를 바탕으로 미스 마플이 탄생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좀 더 진중하고 사려 깊은 성격을 더해서 말이다.


  범인의 정체는 그야말로 충격과 경악이다. ‘이건 사기야!’라고 할 수도 있다. 중간에 작가가 힌트를 줬다던데, 난 바보인지 찾을 수가 없었다. 난 정녕 바보란 말인가. 포와로의 활약에 넋이 나가서 그냥 ‘헤-’하고 읽고만 있으니……. 열성팬은 이래서 문제인 것 같다. 눈에 콩깍지가 씌어 그냥 ‘포와로 좋아~~’하고만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책을 읽다가 거슬리는 부분이 있었다. 왜 사람이 말하는 대사 부분에 괄호가 있는 걸까?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는 걸까? 그러면 설명 부분 중간에 들어가는 괄호는 뭘까?


  “나는 박사님이 포와로 씨에게 이미 얘기했을 거라고(설명 말이에요) 생각했어요.……중략……그렇지만 박사님도 모르실 거예요(아무도 몰라요)” -p.164

  두 목소리는(하나는 거칠고 상스러우며, 다른 하나는 애처로운 목소리지만) 음질이 묘하게도 똑같았다. -p.232


  읽으면서 계속 거슬렸다. 내용은 참 좋았는데, 괄호가 글에 집중을 방해했다. 내가 너무 예민하고 까칠한가?


  그나저나 마지막 문장을 읽으면서, 참 마음이 아팠다. 왜 하필 그 때 그 곳에 포와로가 정체를 숨기고 호박을 길러보겠다고 이사를 왔을까? 그가 있다는 걸 알았다면 범인은 살인을 꿈꾸지 않았을 텐데, 아, 어쩌면 포와로를 먼저 죽이겠다고 했으려나? 역시 그는 살인을 몰고 다니는 저승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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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즈 저택의 죽음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7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가형 옮김 / 해문출판사 / 199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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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The Mysterious Affair at Styles (1920년)

  작가 - 애거서 크리스티



  드디어 크리스티의 첫 번째 작품을 읽을 기회를 가졌다. 그녀의 첫 작품이자 포와로와 헤이스팅즈가 처음으로 이 세상에 나온 책!


  이 소설은 헤이스팅즈의 시점에서 사건이 서술되고 있다. 그 전에 읽은 다른 소설들은 학교에서 배운 이론을 대입해보면 ‘전지적 시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책은 ‘1인칭 관찰자 시점’ 같았다. 헤이스팅즈가 ‘나’라고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에 대해 얘기하고 있지만, 그가 주인공은 아니었으니까. 뭐, 이게 중요한 건 아니다. 그냥 갑자기 학교 다닐 적에 배운 게 생각나서 척해봤을 뿐이다.


  전쟁에서 부상을 당해 잠시 휴가를 나온 헤이스팅즈. 알고 지내던 지인의 집에 초대를 받아갔는데, 이 집안 분위기가 이상하다. 모든 실권을 쥐고 있는 노부인이 갑작스레 아들과 비슷한 또래의 남자와 재혼을 한 것이다. 두 아들과 노부인 사이에, 또한 큰 아들과 그의 부인 사이에 팽팽하게 긴장감이 돌던 어느 날. 발작을 일으키던 노부인이 갑작스레 사망한다. 그런데 그녀의 죽음은 자연사가 아니었다. 독약을 이용한 타살이었다.


  때마침 헤이스팅즈는 전쟁을 피해 영국으로 망명을 해온 포와로를 만나게 된다. 죽은 노부인의 호의로 영국에서 지내던 포와로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고 사건 해결을 위해 나서는데…….


  ‘무죄로 판명 받은 사람은 그 사건에 대해 두 번 조사를 받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다. 이 소설에서 범인은 그것을 이용했고, 거의 성공할 뻔 했다. 포와로가 없었다면 말이다.


  그리고 얽히고설킨 사람들의 감정은 서로의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충돌을 빚었다. 때로는 수사에 도움을 줄 때도 있지만, 방해가 되기도 했다. 그것을 잘 파악하는 것이 탐정의 역할이다. 어떤 것이 거짓 감정이고 어떤 것이 진짜인지 알아내서 사건을 수사하고 범인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이건 평범한 관찰력을 가졌거나, 인간에 관심이 없거나 또는 통찰력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바로 포와로니까 가능한 일일 것이다. 연애를 해봤거나 가족을 꾸렸다는 얘기도 없는데, 어쩌면 그렇게 여자와 남자의 밀당에 대해서 잘 아는지…….


  옆에서 보니 더 잘 보인다는 누군가의 말이 떠오르기도 한다. 당사자만 모르고 다 아는 사실도 있으니까. 그래도 어떻게 전해들은 정황이나 짧은 대화만으로 사람의 심리를 추측해 상황을 파악하고 사건을 재구성하는지 놀랍기만 하다. 이건 너무 먼치킨적인 설정이잖아! 명탐정들은 혹시 인간이 아니다거나 외계인의 실험 대상자였다거나 뭐 그런 게 아닐까?


  그러고 보니 이번 이야기에서도 두 커플이나 해피 엔드를 맞는다! 이럴 수가! 포와로는 진정 죽음을 부르는 저승사자이자 중매쟁이란 말인가!


  돈과 사랑이 범죄의 주요 두 동기라는데, 그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돈 때문에 사람을 속이고 살인을 저지르고, 사랑 때문에 감싸주고 오해한다. 물룬 살인도 저지르고.


  이 책에서 포와로는 젊지 않다. 유능한 형사로 이미 벨기에에서 이름을 날렸고, 전쟁을 피해 영국으로 건너왔으니 중년은 지나지 않았을까? 책에서 그의 과거는 별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냥 형사로 사건 해결에 뛰어난 능력을 가졌다고 사람들이 칭찬을 할 뿐이다. 좋아하면 상대에 대해 알고 싶다고 하던가? 앞으로 남은 다른 책들을 읽어보면서, 그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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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와일러의 편집광
윌리엄 와일러 감독, 모나 워시본 외 출연 / 와이드미디어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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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The Collector, 1965

  감독 - 윌리엄 와일러

  출연 - 테렌스 스탬프, 사만다 에가, 모나 워시부른, 모리스 달리모어



  짝사랑하는 여자를 납치 감금 조교하는 내용의 시초라 볼 수 있는 영화. (아마도 그럴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본 영화중에서는 그렇다.) ‘벤허’를 만든 감독이 이런 소재를 다뤘다는 사실에 조금은 놀랐다. 하지만 같은 재료로 누가 요리 하냐에 따라 맛이 결정되듯이 이 영화, 비슷한 소재를 다룬 다른 영화와 무척 달랐다. 특히 일본에서 만들어진 비슷한 소재의 영화와 비교하면, 접근법이나 심리 묘사 등등 수준이 달랐다. 그건 보다가 눈만 버렸다.


  나비를 수집하던 프레디는 어느 날 미란다라는 여자를 보고 한눈에 반해버린다. 그리고 결심한다. 저 여자를 내 수집품으로 내 것으로 하겠어! 마침내 그는 그녀를 납치해서 인적이 드문 집 지하실에 가둔다. 그리고 수집한 나비를 정성스럽게 대하듯이 그녀를 소중하게 다룬다. 미술학도인 그녀를 위해 그림 도구를 준비해오고 맛난 음식을 예쁜 접시에 담아서 주고 옷도 잘 입히고. 마치 일 년 내내 기도한 끝에 산타 할아버지에게서 최신 바비 인형을 받은 아이처럼 말이다. 과연 미란다는 그의 마음을 받아줄 것인가 아니면 거절할 것인가?


  시간이 흐를수록 소심하고 내성적이던 프레디는 점점 변해간다. 집착과 환상이 심해지더니 급기야는 모든 것을 자기 합리화시켜버리는 것이다. 그의 비뚤어진 독점욕과 망상은 다소 충격적인 결말을 보여준다. ‘난 이제 나비는 안 모아. 여자를 모을 거야.’라는 그의 속마음이 드러난 마지막 장면! 아, 미친 놈은 매가 약이라더니, 옆에 있으면 패주고 싶을 정도였다.


  으음, 사실 그가 준비한 음식이 맛있어 보이고, 식기 세트도 괜찮아 보였고 옷도 상당히 신경 써서 골라준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공짜로 먹여주고 재워주다니! 놀고먹고 싶은 사람은 참 좋아할 설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딱 나라는 건 아니다. 물론 뭐, 내 꿈이 놀고먹으면서 책 읽는 삶이긴 하지만…….


  하지만 놀고먹는 대신 자유가 억압당한다면, 마음에도 없는 사람을 좋아해야한다면 거절하겠다. 그건 사육당하는 가축과 다를 바가 없으니까. 난 인간이다, 가축이 아니고. 날 좋아해주는 건 고맙지만, 날 억압하고 가둬두려고 한다면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받아들이지도 않을 것이고.


  영화를 다 본 인상은 깔끔하다는 것이었다. 두 남녀의 심리 변화가 중점이었고, 어떻게 평범소심한 사람의 집착이 광기로 변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소심하던 남자가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키려고 온갖 실수를 행하다가, 결국은 미쳐버리는 과정은 역시 인간은 무섭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그리고 자신의 신념과 자유를 위해 끝까지 버티는 여주인공의 집념 역시 참으로 눈물겨웠다. 음, 그래서 두 주연 배우가 이 영화로 칸느 영화제에서 주연상을 탔나보다.


  반면에 일본 것은 그냥 남자의 여자 성추행 장면과 여자가 굴복하어 섹스를 나누는 장면 자체에만 초점을 맞춘 것 같다. 그러니까 몇몇 남자들의 성적 판타지라고 할까? 그냥 여자 하나 잡아다가 잘해주면 마음을 열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개 풀 뜯어먹는 소리를 하고 있다. 미친 거다.


  그 놈의 스톡홀롬 신드롬이 애들 여럿 망친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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