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무덤에 침을 뱉어라
스티븐 R. 먼로 감독, 채드 린드버그 외 출연 / 미디어허브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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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I Spit on Your Grave, 2010

  감독 - 스티븐 R. 몬로

  출연 - 사라 버틀러, 채드 린드버그, 제프 브랜슨, 다니엘 프란체스



  얼마 전에 쓴 ‘네 무덤에 침을 뱉어라, 1978’의 리메이크 작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상영 시간이 길어지고, 남자들이 여자를 강간하고 괴롭히는 수위와 여자가 복수하는 강도가 더 잔인해지고 강해졌다.


  내용은 전편과 비슷하다. 달라진 점은 여인의 머리색이 흑발로 바뀌었고, 강간범의 수가 늘었다는 것이다. 전편에서는 동네 백수나 양아치 같은 놈들뿐이었는데, 이번에는 마을의 보안관까지 가담했다. 세상에나! 주민들뿐 아니라 외지에서 그곳을 찾아온 사람들을 보호해야할 보안관이!


  심지어 그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이 있다. 아니, 자기도 딸이 있는 주제에 남의 집 귀한 딸에게 그런 짓을? 나중에 여주인공이 자기 딸에게 접근을 하자, 정신을 잃을 정도로 흥분한다. 미친 놈. 자기 딸이 귀하면 남의 딸도 귀한 법이다. 그런데 그딴 짓이나 벌이다니. 게다가 이번에는 뭔가 눈치 챈 마을 사람까지 죽여 버린다. 보안관이니 뒤처리를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나보다. 아, 미친 놈, 미친 놈!


  이번에도 놈들은 여자를 처참하게 유린하고 고문했으며 조롱하고 동영상으로 찍기도 하고 급기야는 죽이기로 공모한다. 다행히도 막판에 그녀는 죽기 아니면 살기라는 각오로 다리에서 뛰어내린다. 그리고 살아남아 놈들에게 복수한다. 어쩐지 검은 머리의 그녀가 여전사처럼 보인다. 아, 그래서 금발이 아닌 흑발의 여주인공을 내세운 걸까?


  주인공이 당하는 장면은 역시나 빨리 감기로 돌려보아야 했다. 너무 잔인해서 그냥 볼 수가 없었다. 영화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속이 편치 않았다. 그냥 썰고 자르고 죽이는 게 낫지…….


하지만 어떤 심리에서인지 여자가 처참하게 당하면 당할수록, 복수하는 장면은 그냥 통쾌하기만 하다. 더 잔인하고 더 끔찍하고 상상을 초월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죽일 때마다, 내 입에서는 ‘나이스! 잘했어!’ 이런 말만 튀어나온다.


  그래서일까? 이번 편의 복수 장면에 비하면, 전편은 애들 장난에 불과할 정도였다. 예를 들면, 강제로 항문성교를 시도한 보안관은 그의 엉덩이에 총이 강제로 삽입된다. 그녀는 자기가 당한대로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넣었다 빼기를 반복한다. 또 다른 공범은 사지가 묶여서 산 채로 성기가 거세되는 고통을 겼었다. 또 어떤 놈은 욕조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있었는데, 균형을 잃으면 염산으로 가득한 욕조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 그녀가 복수하는 장면에서 조금 의문이 들었다. 어떻게 가녀린 그녀가 저렇게 건장한 남자들을 끌어다가 천장에 매달고, 욕조에 버텨놓고, 책상에 올려놓을 수 있을까? 축 늘어진 사람의 무게는 정신을 차렸을 때보다 훨씬 무겁다고 알고 있다. 그런 남자를 여자 혼자서? 누군가 공범이 있었던 걸까? 하지만 그녀를 도운 사람의 여부는 나오지 않는다. 그 부분이 좀 걸리긴 한다.


  전편이 깔끔하다는 느낌을 주는 환한 색조로 이루어진 화면이었다면, 이번 편은 암울하고 축축 늘어지는 칙칙한 색으로 되어 있다. 태양은 하늘에서 빛나고 있지만, 환하지 않았다. 어쩌면 보안관마저 미쳐버린 마을의 암울한 분위기와 여인의 뒤틀린 비극적인 운명을 보여주는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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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무덤에 침을 뱉어라
메어 자르치 감독, 리차드 페이스 외 출연 / 키노필름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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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I Spit on Your Grave, 1978 (aka Day of the Woman)

  감독 - 메이어 자르히

  출연 - 카밀 키튼, 에론 타버, 리차드 페이스, 안소니 니콜스



  영화 초반에는 진짜 화가 나고 마음이 답답했다. 그러다가 중반에 가면서는 도저히 영상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빨리 감기를 눌렀다. 어째서 주인공이 그런 일을 겪어야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단지 혼자 사는 여자라서? 그 시골 마을에서는 보기 드문 도도하고 예쁜 도시녀라서? 마을 남자들이 추파를 던지는데 눈길도 안 줘서? 그게 자기들을 무시한 거 같아서? 여자는 남자들이 눈길을 주면 '아이고, 고맙습니다.'라고 황송해하면서 다리를 벌려야 한다는 법이라도 있나?


  영화의 내용은 유명하다면 유명하다. 한적한 시골 마을로 차기작 구상도 할 겸 쉬러 온 작가 제니. 하지만 그녀를 보고 찝쩍대던 마을 청년 네 명에게 무참하게 윤간을 당한다. 겨우 목숨을 건진 그녀는 그들에게 복수하기로 결심하는데…….


  영화 초반을 지나면서 꽤 오랜 시간동안 그녀가 남자들에게 강간당하고 모욕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이놈들이 여자 혼자 산다는 걸 알고서는 호숫가에서 윤간을 하더니, 나중에는 집에까지 따라와서 또 그녀를……. 그 부분은 도저히 그냥 볼 수가 없어서, 위에서 말했듯이 빨리 감기로 돌려버렸다. '왼편의 마지막 집 Last House On The Left, 1972'에서도 주인공 소녀가 강간당하는 장면이 오래 나오긴 했지만, 이 영화가 더 길었다. 그래서 옛날에는 이 영화를 야한 장르로 분류했다고 하는데, 참 황당한 얘기다.


  그녀가 당하는 과정이 너무 끔찍해서일까? 나중에 그녀가 복수하는 부분은 다른 영화들보다 더 통쾌하게만 느껴졌다. 네 명을 하나씩 찾아가 유혹을 하기도 하고 달래면서, 그녀는 복수를 한다. 좀 더 잔인하게 죽여! 겨우 그걸로 네가 당한 게 갚아지냐! 그 새끼들은 더 당해도 싸! 이런 소리가 절로 나왔다. 게다가 그녀가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을 죽일 때, 어쩐지 오싹함도 느꼈다. 그 전에는 표정이 풍부한 여인이었는데, 그런 표정은 다시는 보여주지 않았다. 그만큼 그녀가 변했다는 말이 될 것이다.


  물론 이 영화가 나왔을 당시에는 잔인하다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1978년도에 여자가 남자의 거시기를 싹둑 자르거나 수영하고 있는 남자를 육지로 올라오지 못하게 보트로 방해를 하다가 치어버리고 또 다른 남자는 목을 매다는 장면이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요즘은 '게임을 시작하지.'라는 명대사가 나오는 영화 덕분에 그 정도는 '에게-'하는 수위가 되었지만 말이다.


  성범죄 기사들이 뉴스 보기가 무서울 정도로 매일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런 짓을 한 사람들을 보면, 남자는 숟가락 들 힘만 있으면 여자에게 관심을 보인다는 말이 그냥 단순한 우스갯소리가 아니었다. 게다가 남자는 아빠 빼고 다 늑대라는 말도 이젠 바뀌어야 한다. 남자는 아빠 오빠 삼촌 포함해서 다 늑대이다. 제기랄!


  그런 기사를 본 사람들은 말한다. 죄에 비해 형량이 너무 약하다고, 그래서 사람들이 성범죄에 대한 죄의식이나 경각심을 느끼지 못한다고. 하긴 그도 그렇다.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피해자의 보호자라는 이유로 형이 경감된다. 피해자만 평생 상처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 반면에 가해자는 한 사람의 인생을 파괴해놓은 주제에 1~2년 감옥에 갔던 걸로 죗값을 치렀다고 뻔뻔스럽게 말하는 경우도 보았다.


  그래서 어떨 때는 이 영화처럼 복수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가해자는 고개 뻣뻣이 들면서 거리를 활보하고, 피해자는 문밖에도 나오지 못하는 이 세상이 제대로 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언젠가 소설 '비스트'의 감상에서도 썼지만, 국가가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하면 국민은 도대체 누구를 의지해야할까? 아, 그래서 제니가 남자들을 죽일 때 통쾌했는지도 모른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극적이다. 여주인공이 강간당하는 과정도, 남자들이 죽어나가는 장면도 다. 하지만 속이 시원하긴 하다. 그녀가 남은 평생을 어떤 심정으로 살아가야하나 생각하면 조금은 먹먹하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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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지 않는 즐거움 - 행복은 삶의 최소주의에 있다
함성호 지음 / 보랏빛소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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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행복은 삶의 최소주의에 있다

  저자 - 함성호



  삶의 최소주의가 뭘까 책을 기다리면서 이것저것 상상해보았다. 욕심내지 않고 자신이 갖고 있는 것에 만족하는 삶일까? 그런 작가의 행복한 삶을 담은 책일까 아니면 이렇게 하면 나처럼 할 수 있다고 알려주는 책일까? 카툰 에세이라고 했으니까, 그림과 짧은 글이 생각할 여지를 주는 걸까?


  하지만 책을 펼쳐 들고 나서 내 생각이 빗나갔음을 알게 되었다. 책 제목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즐거움'이지만, 저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건축가이면서 시인, 건축 평론가, 미술 비평, 만화, 만화 비평, 영화 비평, 전시 공연 기획자 등등의 직업을 다 가지고 있다.  설마 이런 여러 가지 일을 하느라 힘들어서,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쉬고 싶다는 것일까?


  하지만 책에는 그런 얘기는 나와 있지 않았다. 저자가 지금까지 자신이 걸어온 길을 말해주는데, 그걸 보면 많은 일을 한 즐거움에 대해 얘기라는 느낌이다.


  이 책은 그림이 곁들어진 수필집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저자의 어린 시절에 관련된 여러 가지 추억이야기들, 직장 생활을 하면서 겪은 에피소드들과 지인들과의 대화, 외국에서의 경험 등등 여러 가지 단상들이 펼쳐져있다.


  각각의 이야기들은 참으로 재미있었다. '예전에는 이런 게 있었구나.'라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아, 이거 나도 아는데'라고 같이 추억에 잠기기도 했다. 또는 '맞아,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지.'라고 킬킬대곤 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삶의 최소주의라는 것이, 혹시 현대 문물에서 벗어나서 아날로그 적으로 살아가는 걸 말하는 걸까? 전반적으로 그런 분위기가 느껴졌다. 저자는 과거를 회상하면서 그 때를 그리워하는 뉘앙스를 풍긴다. 나만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현대 문명에 찌들지 않은 어린 시절과 어린 친구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면서, 순수함을 강조한다.


  그런 낌새는 첫 번째 이야기에서부터 있었다. '삶의 최소주의'라는 소제목으로, 집에 대해서 얘기한다. '있으면 좋은 것들'에 너무 치중을 해서 큰 집을 선호하는 현대인들과 삼칸지제(三間之制)를 지켜 최소한으로 '필요한 것들'만 갖추고 살았던 옛사람들을 비교한다.


  흔히 어른들은 말하신다. 아는 게 많으니 먹고 싶은 것도 많겠구나. 그리고 이런 말도 있다. 말 타면 종 부리고 싶다. 그냥 인간의 마음이란 그런 것이다. 처음부터 몰랐으면 그냥 그렇게 살겠지만, 알게 된 이상 욕심이 생긴다고. 견물생심이라고 하던가? 그걸 안 좋은 눈으로 볼 생각은 없다. 이건 어쩌면 내가 속물적인 인간이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과거가 좋았다며 그 때를 그리워하는 건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것 역시 내 과거가 그리 좋지 않은 기억들로 이루어져있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내가 어떤 현재에 있는지 파악을 하지 않고, 미래에 어떤 일이 있을 줄 알고 과거 그 시절이 좋았지 라고 추억에 잠겨있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어딘지 모르게 불편했다. 제목에 낚인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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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 나이트
톰 드시몬 감독, 린다 블레어 외 출연 / 무비스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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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Hell Night, 1981

  감독 - 톰 데시몬

  출연 - 린다 블레어, 빈센트 반 패튼, 피터 바톤, 케빈 브로피




  어렸을 때, 외사촌 언니가 극장에 가서 무서운 영화를 봤다고, 여름에 동생들을 모아놓고 얘기해준 적이 있었다. 언니는 영화를 종종 보러 다녔던 것 같다. 극장이라니! 그런 어른스러운 곳을 가다니! 역시 고등학생은 대단해! 어린 동생들은 모두 초롱초롱 존경하는 눈빛으로 귀를 쫑긋 세우며 이야기를 들었다. 그 언니의 실감나는 재연 때문에 여름에 외가에 가는 게 무척이나 기다려졌었다.


  그 당시에는 나도 고등학생이 되면 꼭 극장에 영화 보러 다니겠다고 다짐했지만, 정작 그렇게 한 것은 대학생이 되고 나서였다. 하여간 그 때 들은 이야기 중의 하나가 바로 이번 작품 '헬 나이트 Hell Night'이다.


  영화는 어느 대학교의 파티에서 시작한다. 폐가에서 하룻밤을 묵어야 클럽에 가입이 가능하다는 회칙 때문에, 신입 회원들은 회장의 안내로 저택에 모인다. 어찌된 일인지 정상적이지 못한 아이들이 계속해서 태어나자, 결국 아버지가 가족을 다 죽이고 자살을 했다는 소문이 도는 곳이었다. 하지만 아이들 중의 하나는 실종되었다고 한다.


  밤이 되자 아이들은 끼리끼리 짝을 이루어 19금 행위를 하거나, 저택을 구경하기로 한다. 그리고 그런 신입생들을 기존 회원들이 숨어 있다가 놀라게 하기로 계획이 짜여있었다. 하지만 정체불명의 존재가 나타나, 아이들을 하나둘씩 죽이기 시작한다. 겨우 겨우 경찰에 신고하지만, 매년 벌어지는 일이라 관심도 갖지 않는다. 결국 아이들은 그 존재와 맞서 싸우기로 하는데…….


  오래 전에 나온 영화라, 특수 효과라든지 분장이 그렇게 세련되지 않았다. 내용도 지금 보면 흔하디흔한 전개였다. 그 당시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말이다. 어떻게 보면 애들이 좀 바보 같다는 생각도 들고, 무리수를 두는 설정도 있었다. 담을 넘어갈 수 있다고 처음에 나오는데, 왜 한 명만 보내는지. 그리고 밖에 있다가 왜 안에 다시 들어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제발 같이 다녀라! 혼자 설치다가 죽지 말고!


  무엇보다 매년 남의 집에 들어가는데 관리인이나 정부에서 가만히 내버려둔다는 것도 이상하다. 주인이 없는 곳이라면 재산 관리인이나 정부에서 뭔가 조치를 취했어야 하지 않을까? 매년 아이들이 난장판으로 만들게 두는 게 더 싸게 먹히나? 미국이랑 한국의 차이라서 그런 걸까?


  그리고 왜 굳이 올해 그 존재가 활동을 했는지, 그 존재가 어떻게 그곳에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그냥 갑자기 튀어나와서 애들을 죽인다.


  주인공으로 영화 '엑소시스트 The Exorcist, 1973'에 나왔던 린다 블레어가 나왔는데, 그냥 예뻐 보이려고만 노력하는 것 같았다. 얼짱 각도로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웃는데, 흐음. 비명 하나는 진짜 잘 질렀다. 어쩌면 그녀의 이름으로 영화에 승부를 보려고 했던 것 같다.


   어릴 적에 외사촌 언니의 얘기를 들을 때는 무서웠는데, 막상 보니까 별로였다. 추억은 추억으로 남겨두는 게 좋다는 어느 책에서 읽은 구절이 떠올랐다. 하지만 예전에 얘기를 들은 '버닝 The Burning, 1981'이라는 영화도 보고 싶은데,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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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열차의 죽음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17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가형 옮김 / 해문출판사 / 199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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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The Mystery of the Blue Train, 1928

  작가 - 애거서 크리스티



  이 책은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테리 17권이고, 바로 앞인 16권이 '엔드하우스의 비극 Peril at End House, 1932'이다. 전에 언급했겠지만, 거기서 '지난 겨울에 겪었던 푸른 열차의 살인사건'이라는 대사가 나온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구절이 생각나서 조금 웃었다. 이 시리즈의 감상문을 쓸 때마다 하는 말이지만, 아무래도 출판연도에 맞춰서 책이 나왔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푸른 열차는 니스로 가는 기차를 말한다. 아무래도 색이 푸르스름한 모양이다. 칼레에서 통관절차를 거치지 않고, 몇 개의 정거장을 거치면서 곧장 가는 기차라고 나온다. 여기서 통관 절차를 중간에 거치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 때문에 살인자가 외부에서 들어왔는지 아니면 내부에 있다가 도망갔는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열차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을 다룬 책 중에서 제일은 뭐니 뭐니 해도 '오리엔트 특급 살인 Murder on the Orient Express, 1934'이다. 다른 점은 이 책은 열차에서 살인이 발생하지만, 해결은 바깥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열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안에서 행해지지만 말이다. 게다가 이 책이 더 일찍 나왔다. 아마도 열차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의 묘한 매력을 이 책에서 맛보고, 그 책을 저술한 것은 아닐까라는 망상을 잠시 해본다.


  '불의 심장'이라는 보석이 있다. 매우 크고 아름다우며, 당연히 비극과 폭력으로 얼룩진, 하지만 그것을 가진다는 자체가 부의 상징이 되는 보석이다.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는 딸 루스에게 그것을 선물한 부호 반 올딘. 하지만 그 보석을 가지고 푸른 열차로 여행하던 딸은 차가운 시체로 발견되고, 그는 포와로에게 사건을 의뢰한다.


  용의자는 바람을 피우는 그녀의 남편 케터링 경, 사기꾼인 그녀의 정부 로슈 백작, 그리고 남편의 탐욕스런 애인인 발레리나 미렐. 여기에 우연히 루스와 열차에서 얘기를 나눈 매력적인 캐서린과 그녀의 먼 친척 탬플린 자작가가 얽히면서 얘기는 복잡해진다.


  역시나 이번 이야기에서도 로맨스가 나온다. 매력적인 캐서린을 사이에 두고 겨루는 루스의 남편과 반 올딘의 비서 나이튼 소령. 거기에 캐서린의 먼 친척인 레녹스까지. 사각관계라고 해야 할까? 아니, 레녹스는 그냥 어린 시절 동경의 대상을 향한 소녀 같은 마음이니까 제외하자. 그래도 삼각관계이다. 캐서린 이런 능력자 같으니라고!


  이번에도 범인의 정체는 내 뒤통수를 후려쳤으며, 포와로는 노는 것처럼 보이면서 할 거 다 하고 다녔다. 사람들을 협박하는 것도 잘했고, 구슬려서 정보를 캐내는 일에도 놀라운 기술을 보였다.


  아쉬운 것은 헤이스팅즈가 안 나왔다는 점이다. 그래서 두 사람의 만담 개그가 보이지 않아서 서운했다. 대신 그는 새로운 칭호를 얻었다. '악마'였다. 범죄자들에게는 그렇게 보일 것이다. 모르는 척, 안 그런 척하면서 다 듣고 추측하고 행동하고 잡아들이니 말이다.


  이 책에서 포와로와 캐서린이 추리 소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대목이 흥미로웠다.

  

  "마드무아젤, 추리소설이 왜 잘 팔릴까요?"

  캐서린은 점점 기분이 즐거워졌다.

  "사람들에게 일상적인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환상을 주기 때문이겠죠." 그녀가 대답했다.

 -중략-

  "언젠가 당신도 그런 일에 휘말릴 때가 올지도 모릅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사람의 일이란 알 수 없는 거니까요." -p.97


  포와로의 예언대로 사건에 휘말린 캐서린은 나중에 괴로워한다. 남을 의심하고 자신에게 접근해오는 사람들을 색안경을 끼고 봐야하는 현실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가능한 빨리 그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


  어쩌면 나도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한다. 호러 영화나 추리 스릴러 소설을 좋아하지만, 내가 직접 그런 일을 당하는 건 상상하기도 싫다. 난 그냥 사건사고 없이 평온하게, 가늘고 길게 살고 싶은 소시민에 불과하다. 어쩌면 그래서 더 그런 장르를 좋아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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