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 The Mystery of the
Blue Train, 1928
작가 - 애거서 크리스티
이
책은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테리 17권이고, 바로 앞인 16권이 '엔드하우스의 비극 Peril at End House, 1932'이다. 전에
언급했겠지만, 거기서 '지난 겨울에 겪었던 푸른 열차의 살인사건'이라는 대사가 나온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구절이 생각나서 조금 웃었다. 이
시리즈의 감상문을 쓸 때마다 하는 말이지만, 아무래도 출판연도에 맞춰서 책이 나왔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푸른 열차는 니스로 가는 기차를 말한다. 아무래도 색이 푸르스름한 모양이다. 칼레에서 통관절차를
거치지 않고, 몇 개의 정거장을 거치면서 곧장 가는 기차라고 나온다. 여기서 통관 절차를 중간에 거치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 때문에
살인자가 외부에서 들어왔는지 아니면 내부에 있다가 도망갔는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열차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을 다룬 책 중에서 제일은 뭐니 뭐니 해도 '오리엔트 특급 살인 Murder
on the Orient Express, 1934'이다. 다른 점은 이 책은 열차에서 살인이 발생하지만, 해결은 바깥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열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안에서 행해지지만 말이다. 게다가 이 책이 더 일찍 나왔다. 아마도 열차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의 묘한 매력을 이 책에서 맛보고, 그 책을 저술한 것은 아닐까라는 망상을 잠시 해본다.
'불의 심장'이라는 보석이 있다. 매우 크고 아름다우며, 당연히 비극과 폭력으로 얼룩진, 하지만
그것을 가진다는 자체가 부의 상징이 되는 보석이다.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는 딸 루스에게 그것을 선물한 부호 반 올딘. 하지만 그 보석을 가지고
푸른 열차로 여행하던 딸은 차가운 시체로 발견되고, 그는 포와로에게 사건을 의뢰한다.
용의자는 바람을 피우는 그녀의 남편 케터링 경, 사기꾼인 그녀의 정부 로슈 백작, 그리고 남편의
탐욕스런 애인인 발레리나 미렐. 여기에 우연히 루스와 열차에서 얘기를 나눈 매력적인 캐서린과 그녀의 먼 친척 탬플린 자작가가 얽히면서 얘기는
복잡해진다.
역시나 이번 이야기에서도 로맨스가 나온다. 매력적인 캐서린을 사이에 두고 겨루는 루스의 남편과 반
올딘의 비서 나이튼 소령. 거기에 캐서린의 먼 친척인 레녹스까지. 사각관계라고 해야 할까? 아니, 레녹스는 그냥 어린 시절 동경의 대상을 향한
소녀 같은 마음이니까 제외하자. 그래도 삼각관계이다. 캐서린 이런 능력자 같으니라고!
이번에도 범인의 정체는 내 뒤통수를 후려쳤으며, 포와로는 노는 것처럼 보이면서 할 거 다 하고
다녔다. 사람들을 협박하는 것도 잘했고, 구슬려서 정보를 캐내는 일에도 놀라운 기술을 보였다.
아쉬운 것은 헤이스팅즈가 안 나왔다는 점이다. 그래서 두 사람의 만담 개그가 보이지 않아서 서운했다.
대신 그는 새로운 칭호를 얻었다. '악마'였다. 범죄자들에게는 그렇게 보일 것이다. 모르는 척, 안 그런 척하면서 다 듣고 추측하고 행동하고
잡아들이니 말이다.
이
책에서 포와로와 캐서린이 추리 소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대목이 흥미로웠다.
"마드무아젤, 추리소설이 왜 잘 팔릴까요?"
캐서린은 점점 기분이 즐거워졌다.
"사람들에게 일상적인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환상을 주기 때문이겠죠." 그녀가
대답했다.
-중략-
"언젠가 당신도 그런 일에 휘말릴 때가 올지도 모릅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사람의 일이란 알 수
없는 거니까요." -p.97
포와로의 예언대로 사건에 휘말린 캐서린은 나중에 괴로워한다. 남을 의심하고 자신에게 접근해오는
사람들을 색안경을 끼고 봐야하는 현실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가능한 빨리 그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
어쩌면 나도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한다. 호러 영화나 추리 스릴러 소설을 좋아하지만, 내가 직접 그런
일을 당하는 건 상상하기도 싫다. 난 그냥 사건사고 없이 평온하게, 가늘고 길게 살고 싶은 소시민에 불과하다. 어쩌면 그래서 더 그런 장르를
좋아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