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 Ghost In The Shell, 2017

  감독 - 루퍼트 샌더스

  출연 - 스칼렛 요한슨, 마이클 피트, 줄리엣 비노쉬, 마이클 윈콧

 

 



 

 

  인간과 로봇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미래, ‘한카 로보틱스’ 사에서는 기계의 몸과 인간의 뇌를 결합하는 실험이 행해진다. 사이버 범죄와 테러 사건을 담당한 ‘섹션9’의 ‘메이저’는 그 실험으로 탄생한 최고의 요원이다. 한카의 임원들이 계속해서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섹션9이 이를 담당하게 된다. 메이저는 파괴된 로봇으로 해킹을 시도하던 중, 테러 행위의 배후에 있는 ‘쿠제’라는 인물을 보게 된다. 그를 추적하던 메이저는 이상한 환각을 보게 되고, 처음에는 시스템 오류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마침내 그녀는 자신을 만든 ‘오우레’ 박사와 한카의 대표인 ‘커터’가 숨기고 있던 비밀을 알게 되는데…….

 

 

  영화가 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은 애인님이 꼭 같이 보자고 해서, 개봉하는 날 저녁때 후다닥 같이 본 작품이다. 원작은 일본 작품인 ‘공각 기동대 Ghost In The Shell, 攻殻機動隊, 1995’라고 하는데, 꽤 인기가 좋았나보다. 지인들 중에 명작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니 말이다. 하지만 언젠가도 얘기했지만, 사람들이 좋다고 하면 이상한 반발심 때문에 안 보는 심리를 가진 인간이기에 말만 들었지 보지는 않았다. 그러다 이 영화는 애인님 때문에 보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원작을 너무너무 좋아하는 애인님은 화를 냈고, 원작을 모르는 난 그럭저럭 보았다. 우선 주연을 맡은 스칼렛 요한슨이 무척 예뻤고, 영화의 CG가 꽤 멋졌다. 재미있는 건, 영화 초반에 합작한 회사 로고가 뜨는데 중국계 회사가 두 개나 있었다. 그런데 내용은 온통 일본 문화로 가득했을 뿐, 중국의 것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배경은 일본이고, 중국계 회사가 참여했는데 주인공은 미국인이다. 와, 뭔가 엄청나고 기괴한 혼합물이다.

 

 

  위에서 말했지만, 영화의 CG는 무척이나 환상적이었다. 과학 기술의 발달이 부정적인 면도 많지만, 이런 점에서는 무척 마음에 든다. 보면서 ‘와-!’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영화에서는 기계와 인간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었는데, 현실은 실제와 환상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었다. 뭔가 벽이 무너지고 있다는 게 비슷하다고 하면 비슷할까?

 

 

  영화를 볼 때는 영상에 푹 빠져서 몰랐는데, 보고 나서 생각하니 스토리텔링 적으로 빠진 부분이 많았다. 왜 그는 로봇 탱크가 공격해오는데 반격하지 않았을까? 지금까지 그의 능력으로 보면 충분히 제압하거나 반격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게다가 팀원들이 꽤 많던데, 왜 공격은 한두 명만이 하는 걸까? 그 사람은 팀의 사무실에 도청까지 할 정도였는데, 왜 팀원들에게 미행은 붙이지 않았을까? 또한 메이저의 자기 정체성을 찾으려는 고민이 무척이나 길어서, 영화는 조금 늘어지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세상에나, 상영시간이 1시간 47분정도인데 그런 기분이 들게 하다니……. 얼마 전에 본 ‘존 윅 리로드 John Wick: Chapter 2, 2017’은 이 작품보다 더 단순한 줄거리를 갖고도 두 시간 내내 지루하다는 생각이 별로 안 들게 속도감 있게 쭉쭉 뻗어갔었다.

 

 

  어쩌면 내가 이 작품에 대한 선입견을 갖고 있었던 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봤다. ‘기동대’라는 제목 때문에, 로봇과 인간이 합쳐진다는 설정 때문에, 그냥 단순히 치고받고 싸우는 영화라고 예상했던 건 아닐까? 사실 이 영화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기계와 인간의 구별이 되지 않는 세상에서 어디까지 인간으로 봐야하는가에 대한 문제가 아니었을까? 또한 영화의 배경이 된 시대는 기억마저 조작할 수 있는 사회였다. 그렇다면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를 만든다는 말을 할 수가 있을까? 그런 말이 성립되지 않는다면, 현재의 나를 만든 것은 무엇일까? 나를 끌어주고 밀어줬던 과거의 경험이나 시련이 사실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면, 지금의 난 가짜일까 아니면 진짜일까?

 

 

  그런 고찰을 하는 주인공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영화는 액션 장면이 예상보다 적고, 약간 늘어지는 느낌을 주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런 고찰을 하는 장면조차 그리 확실히 보여주지 않아서, 꼭 그럴 것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냥 다 어정쩡한 가운데, CG만 확실히 멋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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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17-03-31 04: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애인님께서 왜 화를 내셨을까요? 원작을 훼손했다는 건가요? 확실히 일본이 상상력에서 훨씬 앞서나가는 것 같아요. 중국은 자본과 물량에서 넘사벽이고 일본은 상상력에서 넘사벽이고 미국은 모든 점에서 넘사벽이고 한국은 그 존재의 유지조차 힘겨운 상황이죠. 《그렇다면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를 만든다는 말을 할 수가 있을까? 그런 말이 성립되지 않는다면, 현재의 나를 만든 것은 무엇일까? 나를 끌어주고 밀어줬던 과거의 경험이나 시련이 사실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면, 지금의 난 가짜일까 아니면 진짜일까?》 이런 존재론적 고민과 사유가 한국에선 여간해선 나올 수 없다고 봅니다. 우리는 음주가무와 주색잡기, 권력놀음을 삶의 최고의 낙과 성취로 생각하는 족속이라고 봅니다. 그동안 제작돼 왔던 한국 영화를 시대별로 죽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그건 100% 이상 충분히 증명된다고 봐요. 우리 한국 영화에 《공각기동대》(원작)에 견줄 만한 영화가 있었던가요? 한국 영화에 SF 장르의 계보가 과연 존재하는가요? 한국 영화의 소재와 주제는 거의 모두 음주가무와 주색잡기, 권력놀음으로 수렴된다는 것이죠.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이긴 하지만요.
 




  원제 - Shin Godzilla, シン・ゴジラ, 2016

  감독 - 안노 히데아키, 히구치 신지

  출연 - 하세가와 히로키, 다케노우치 유타카, 이시하라 사토미, 코라 켄고

 

 



 

 

 

  ‘고질라’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다. 아! 예전에 미국 영화로 본 적이 있다. 미국을 침공한 거대 공룡 비스무레한 괴수로 기억한다. 치고받고 도망 다니고 부수고 무너지고 비명 지르는 내용으로, 그냥 액션 영화였던 것 같다. 그런데 고질라는 일본에서 처음 만든 캐릭터로, 이번 작품은 일본에서 제작했다. 이른바 원조의 자존심을 지킨다! 이런 느낌?

 

  어느 날, 괴생명체가 일본 해안 지역에 나타난다. 처음에는 기어 다니던 괴수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 급기야는 걸어 다니면서 입에서 광선까지 내뿜는 지경에 이르렀다. 놈을 막아내기 위해 일본 정부는 대책을 세우고, 예전에 그 괴생명체를 ‘고질라’라 부르며 탄생을 예견한 과학자를 찾으려 노력한다. 그리고 마침내 고질라를 막아낼 방법을 찾아내는데…….

 

 

  영화는 예상보다 차분했다. 미국 괴수 영화라면 위에서 말한 것처럼 괴물이 나타나서 도시를 파괴하고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는 것이 기본이다. 그리고 거기에 가족애를 부각시키면서 가슴 훈훈한 마무리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 작품은 달랐다. 괴수가 나타나서 도시를 부수는 것까지는 비슷했다. 하지만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차분히 줄을 서서 대피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어쩐지 비현실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고질라가 있다는 것 자체가 허구지만, 그 괴물이 바로 옆 골목에서 움직이고 있는데도 줄을 선 사람들의 모습은 더 허구 같았다. 어떻게 저 상황에서 차분하게 이동할 수 있지? 음, 대피의 정석은 이런 것이라고 보여주고 싶은 건가?

 

 

  대신 영화는 회의하는 정부 각료들의 모습만 계속해서 보여줬다. 처음에는 각료 회의를 하다가, 자리를 옮겨서 총리실에서 브리핑을 하고, 그 다음에 또 회의실로 이동하고, 뒤이어 다른 곳으로 또 몰려가고……. 멤버가 바뀌는 것도 아닌데 굳이 자리를 옮겨가면서 계속 회의를 해야 하는 지 의문이었다. 그냥 처음부터 대 회의실에서 하면 되는 거 아닌가? 게다가 대책 회의라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실속 없는 내용만 얘기한다는 느낌도 들었다. 각 부처별로 의견 조율이 되지 않거나 팀명을 뭐로 정하면 좋을지 얘기하는 부분 등을 보면 그냥 헛웃음만 나왔다. 설마 이건 괴수의 공격을 받아 우왕좌왕하는 정부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영화인가? 탁상행정을 비꼬는?

 

 

  그러니까 미국처럼 가족애와 생존에의 갈망, 삶의 소중함 그리고 미국 군사력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말만 앞세우고 체면을 중시하는 정부의 무능함을 부각시키는 걸지도 몰랐다. 아, 그래서 시민들은 스마트폰을 통해 정보를 얻는데, 정부에서는 종이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는 장면이 있었던 모양이다. 또한 교통을 통제하고 대피를 돕겠다고 고위층에는 말했지만 정작 교통신호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장면 역시 그런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와중에 미국의 압력 운운하는 대사는 그냥 웃기기만 했다.

 

 

  괴수가 나타나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었지만, 비명 지르는 사람 하나 없는 덕분에 영화는 심심했다. 대신 계속해서 회의하는 장면만 보여줘서, 지루하기까지 했다. 고질라의 첫 등장이 귀엽지 않았다면, 화가 났을 것이다. 처음에는 동그란 눈에 멍한 표정이 참으로 귀여웠는데, 진화하면서 덜 귀여워져서 아쉬웠다. 역시 어떤 동물이든지 새끼 때가 귀여운 법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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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John Wick: Chapter 2, 2017

  감독 - 채드 스타헬스키

  출연 - 키아누 리브스, 브리짓 모나한, 이안 맥쉐인, 존 레귀자모






  처음에는 이 영화를 극장에서 못 볼 줄 알았다. 지난달에 이 작품과 ‘23 아이덴티티 Split, 2016’ 둘을 놓고 고민하다가, 23 아이덴티티를 봤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이 영화가 동네 극장에서 사라져버린 것이다. ‘헐, 무슨 영화를 일주일도 안 해주냐’라고 대기업의 독점 시스템에 욕을 하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뒤져보니 오오! 다행히도 오늘 왕십리에 있는 극장에서 오전과 오후 두 번 상영해준다는 사실을 알았다. 후다닥 예매를 하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평소에 안 사던 팝콘마저 사들고 극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두 시간이 넘는 상영 시간 내내 지루한 줄 모르고, 깔깔대기도 하고 ‘헐! 대박!’하고 감탄하기도 했다.


  킬러들의 세계에는 두 가지 규칙이 있다. 하나는 ‘컨티넨털 호텔’에서는 싸움을 하지 말아야 하고, 다른 하나는 빚은 꼭 갚아야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빚을 지면, ‘표식’을 주고 그것은 호텔 매니저의 장부에 기재된다. 만약 표식을 내밀고 부탁하는 요청을 거절하거나 표식을 가진 사람을 해하면, 최고 회의에서 징계를 받게 된다. 킬러 세계에서 파문을 당하거나 심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1편에서 그 규칙을 어긴 킬러가 살해당하는 장면이 있었다.


  1편에서 자신의 차와 강아지를 죽인 러시아 조직을 몰살시킨 ‘존 윅’. 이제는 편안히 집에서 은퇴 생활을 즐기려는데, 이탈리아 마피아의 아들인 ‘산티노’가 찾아온다. 그는 표식을 내밀며, 자신의 누나인 ‘지아나’를 죽여달라고 부탁한다. 아버지가 자신이 아닌 누나에게 조직을 맡긴 것이 불만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은퇴했다며 거절하지만, 표식을 내민 요청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결국 존 윅은 이탈리아로 건너가 마피아 두목인 지아나를 암살한다. 하지만 산티노의 배신으로 존 윅에게는 엄청난 현상금이 걸리고, 이제 암살자들이 그를 노리는데…….


  영화는 처음부터 빠른 속도로 사람을 죽여 나가는 존 윅의 액션을 보여준다. 언제나 총은 한 사람당 두 번, 위아래를 정확히 맞추며 확인사살까지 하고, 몸싸움에서도 역시 뒤지지 않는다. 비록 그도 사람인지라 맞으면 아프고 찔리면 피가 나지만, 결국 맨 마지막에 살아남는 건 존 윅이었다. 와, 진짜 어쩜 그렇게 멋지게 총질을 해대는지 감탄만 절로 나왔다. 게다가 1편에서부터 전설로만 전해졌던 연필 한 자루로 세 사람을 죽이는 장면을 이번 2편에서는 직접 볼 수 있었다. 진짜 연필 한 자루로……. 음, 연필심이 쉽게 안 부러지던데 그게 가능한가? 하여간 존 윅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국적 인종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공평하게 다 죽여 나갔다. 이런 평등주의자 같으니라고!


  중간에 현상금 걸린 존 윅을 돕는 서양판 개방 방주인 남자가 나오는데, 그를 보자마자 빵 터졌다. 바로 ‘로렌스 피쉬번’, 영화 ‘매트릭스 The Matrix, 1999’에서 주인공을 돕는 ‘모피어스’로 출연한 배우였다. 존 윅을 연기한 키아누 리브스가 바로 그 매트릭스의 주인공이었다. 그가 ‘우리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라는 대사를 하는데, 너무 웃겼다. 너무 웃어서 옆 사람에게 미안했다. 누군지 모르는 옆자리 커플분, 미안했어요.


  내용은 무척이나 간단한 플롯이었지만, 싸우는 장면들이 무척 멋있었다. 너무 많이 죽여서 후반부에서는 ‘어, 또 죽이네’라고 별 감흥이 없어지는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지하 묘지에서의 대규모 총격 장면이나 뉴욕 도심에서 벌어지는 암살자들과의 대결, 그리고 거울 전시회에서 벌어지는 싸움 장면은 무척이나 멋졌다.


  3편도 나오면 좋겠다. 아, 지아나 진짜 멋졌다. 얼마 나오지 않았지만, 보스의 품위와 우아함이 물씬 풍겼다. 동생과 비교해보면 너무도 우월했다. 그러니 아버지가 그녀에게 조직을 물려준 거겠지. 1편에서도 러시아 조직의 두목이 참 멋지게 나왔다. 경박한 아들네미 때문에 다 망해서 그렇지. 음, 1편과 2편 둘 다 경박하고 자질이 없는 가족 때문에 조직이 흔들렸다. 역시 혈연지연학연에 얽매이는 건 옳지 않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적어보는데, ‘개방’이란 무협 소설에 나오는 거지들의 조직이고, ‘방주’는 거기 대장을 말한다. 이 작품에서 로렌스 피쉬번은 노숙인들을 이끄는 ‘킹’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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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Split, 2016

  감독 - M. 나이트 샤말란

  출연 - 제임스 맥어보이, 안야 테일러-조이, 헤일리 루 리차드슨, 베티 버클리

 

 




 

  소재도 재미있을 것 같고, 감독도 좋게 보는 사람이라 망설이지 않고 골랐다. 비록 다른 사람들은 ‘나이트 샤말란’은 이제 한물갔다고 하지만, 난 망했다고 사람들이 말하는 그의 영화도 재미있게 보았으니까.


  딸의 생일파티를 끝내고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다주려던 아버지가 습격당한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고 차에서 기다리던 세 명의 소녀는 눈 깜짝할 사이에 납치당하고 만다. 정신을 차린 그들을 맞이하는 건, 한 명의 남자. 그런데 이 사람, 어딘지 모르게 이상하다. 어느 날은 결벽증이 있는 냉정한 남자로 말하다가, 다른 때는 요염한 여자처럼 얘기하고 또 어느 순간에는 철없는 어린아이처럼 칭얼댄다. 이 남자의 이름은 ‘케빈’으로 무려 23개나 되는 인격이 몸속에서 공존하는, 흔히 말하는 ‘다중인격’ 즉 ‘해리성 정체 장애’를 갖고 있는 정신질환자였다. 탈출을 시도하던 ‘클레어’와 ‘마르샤’는 독방에 갇히고, 혼자 남은 ‘케이시’는 어떻게든 케빈의 다른 인격을 달래 도주할 계획을 세운다. 한편 케빈을 오랫동안 상담 치료하던 ‘플레쳐’ 박사는 어딘지 모르게 그가 달라졌다는 것을 눈치 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오지 않았던 새로운 인격이 나타나는데…….


  다중인격이라는 설정 자체도 흥미로웠는데, 거기에 감독인 자극적이면서 관심이 가는 여러 가지 소재를 적절하게 집어넣었다. 예를 들면 케빈이 어떻게 다른 인격들을 갖게 되었는지, 케이시가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그리 침착하게 반응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과거의 영상들을 조금씩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리고 감독은 다중인격인 경우 각각의 인격에 따라 몸의 형질이 바뀐다는 가설을 확장시키면서 얘기를 이끌어갔다. 그 때문에 어떤 인격은 미술적인 감수성이 풍부했고, 또 다른 인격은 당뇨병이 있었다. 거기에 감독의 상상력을 발휘해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24번째 인격을 만들어냈다. 그게 진짜로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우와…….


  케빈과 케이시, 케 남매(?)의 상처를 보면서, 샤말란 감독의 영화가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뭔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식스 센스 The Sixth Sense, 1999’에서 주인공 꼬마는 두려움 속에서 살고 있었고, ‘빌리지 The Village, 2004’의 사람들은 폭력적인 세상을 떠나길 원했다. ‘해프닝 The Happening, 2008’에서도 인간에 의해 고통 받던 자연이 복수를 하는 내용이었고, ‘더 비지트 The Visit, 2015’의 남매 역시 상처가 많은 아이들이었다. 이번 작품의 주인공들 역시 마찬가지로 아픈 과거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상처를 극복하고 아픈 과거를 정면으로 마주보며, 앞으로 더 나아가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런 과정이 꼭 평화적으로 일어나는 건 아니었다. 해프닝과 이번 작품은 상당히 폭력적이었다. 그리고 가해자였다가 피해자가 된 사람들은 그걸 깨닫지 못했다. 해프닝은 폭력적인 방법으로 되갚아줬지만, 이번 작품은 좀 달랐다. 케빈은 확실히 폭력으로 보복을 했지만, 그를 위해 자신의 선량한 인격을 말살시켜야했다. 어쩌면 그는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보다 더 독해졌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또 다른 주인공인 케이시는 좀 달랐다. 마지막 부분에서 그녀가 어떤 말을 했을지 상상할 수 있었다. 열린 결말처럼 끝맺었지만, 그녀의 과거와 현재를 보면서 단 한 가지 생각밖에 할 수 없었다. 과격한 방법은 쓰지 않겠지만, 전략적으로 영리하게 되갚아줄 것 같았다.


  이번 작품은 케빈 역을 맡은 ‘제임스 맥어보이’의 연기력이 참으로 훌륭했다. 각각의 인격을 확실히 구별해서 보여주었다. 어린 인격을 연기할 때는 앞니가 빠진 아이들의 혀 짧고 발음이 새는 억양으로 대화했고, 여자를 연기할 때는 손가락 마무리까지 다소곳하니 우아한 여성의 모습을 보여줬다. 게다가 안경을 낀 냉정한 납치범일 때와 자유분방한 예술가일 때는 같은 옷이지만 옷매무새와 눈매마저 차이를 뒀다. 물론 억양이나 말투가 다른 건 기본이다. 이 영화에 별점을 높이 준 이유에는 그의 연기가 한몫했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를 보면 두 명의 반가운 사람이 등장한다. 한 사람은 감독인 샤말란이고, 다른 한 명은 비밀로 해두겠다. 그리고 그가 한 대사 역시 비밀이다. 후훗후훗후훗


  참, 이 작품을 보면서 예전에 읽은 ‘빌리 밀리건’이라는 실존했던 다중인격 범죄자에 대한 책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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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Friend Request, 2016

  감독 - 시몬 베호벤

  출연 - 앨리시아 데브넘 캐리, 리슬 알러스, 윌리암 모즐리, 코너 파올로

 

 







  이 영화, 지난주에 개봉하자마자 보러갔는데 어영부영 리뷰를 쓰기 귀찮아서 미루고 있었다. 하지만 미루면 영화를 볼 때 느꼈던 감상이 사라질까봐, 이제야 쓰게 되었다.



  ‘로라’는 봉사활동도 열심히 하고 남들에게 친절하며 예쁘기까지 한, 캠퍼스의 SNS 스타이다. 언제나 그녀를 사랑하는 유쾌한 친구들과 함께 행복한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수업을 듣는 외톨이 학생인 ‘마리나’가 친구 신청을 해온다. 평소와 다름없이 로라는 신청을 수락했는데, 그 때부터 마리나의 집착이 시작된다. 밤이건 낮이건 가리지 않고 답을 할 때까지 계속해서 문자를 보내거나 전화를 한다. 결국 로라는 마리나와 대판 싸우고 난 뒤, 그녀를 친구 목록에서 삭제한다. 상심한 마리나는 끔찍한 방법으로 자살한다. 그런데 그 날 이후, 로라에게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그녀의 SNS에 마리나의 자살 동영상이 업로드 되고, 메시지가 날아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의 SNS인데 탈퇴도 삭제도 되지 않았다. 제일 친한 친구들이 하나둘씩 기이하게 죽어가고, 로라의 SNS에는 그 죽음의 영상이 업로드 되는데…….



  영화는 중반으로 접어가면서 초반과는 다른 분위기를 주었다. 처음에는 외톨이인 학생이 학교 인기인에게 집착하고 스토커짓을 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외톨이였던 마리나가 죽은 후 로라의 SNS가 해킹을 당한 것 같은 상황이 되자, 혹시 뛰어난 실력의 해커가 배후에 있을 거라는 추측을 했다. 사체가 발견되지 않았다니 마리나가 죽지 않았거나, 아무도 몰랐지만 그녀에게 친구가 하나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상황은 보던 나를 혼란에 빠트렸다. 마리나가 죽은 방법이 마녀들이 했던 주술의 하나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인터넷이나 전선을 통해 저주가 전달된다는 설정은 이 영화가 처음이 아니다. ‘링 リング: The Ring, 1998’부터 시작해서 ‘피어 닷컴 FearDotCom, 2002’으로 이어진 설정이다. 이 작품은 그것을 한층 더 발전시켜 마녀의 저주까지 접목시켰다. 과학의 발달로 시대가 변하니, 주술을 거는 방법도 맞춰서 발전해야하는 법인가보다. 이후 영화는 저주로 죽어가는 친구들의 끔찍한 모습과 이를 풀기위해 고군분투하는 로라를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로라를 멀리하거나 원망하는 친구들의 모습, 경찰이 로라를 의심하는 상황 그리고 마리나의 숨겨진 비밀 등이 하나둘씩 드러났다.



  영화를 다 보고나서 ‘이 작품은 뭘 말하고 싶은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외톨이로 지내는 아이에게 친절히 대해주지 말자? 아무에게나 친절을 베풀지 말자? 친구는 가려가면서 사귀자? SNS는 인생의 낭비다? 조카들에게 친구는 골고루 다양하게 사귀는 게 좋다고 말해왔는데, 이 영화를 보고나니 과연 그 말이 맞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친구는 다양하게 사귀지만, 애가 이상한 거 같으면 사귀지 말라고 해야 할까?



  아무 생각 없이 SNS 친구 추가했다가 낭패를 본 한 소녀에 대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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