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매체는 발전하지만, 매체에 대한 성찰은 외려 과거를 참조해야 할 때가 많다. 매체에 대한 성찰은 다종다양한 테크놀로지의 존재, 능수능란한 수용과 지식에 있는 게 아니라, 매체가 희소했던 시대에 사람들이 보여준 감정, 유령 같은 행위에 내재된 당시엔 해석할 수 없는 어떤 깨우침과 더 가깝기 때문이다.
B. 버스터 키튼의 <카메라맨>(1928)은 이를 입증하는 영화다. 1919년부터 미국에선 뉴스릴카메라가 활용되기 시작했고, 1920년대 뉴욕은 사건과 사람을 담아내기 위해 카메라를 든 사진가들이 거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주인공인 버스터 키튼은 거리에서 사람들의 초상을 찍어주는 사진사인데, 우연히 언론인 샐리와 사랑에 빠지면서 샐리가 다니는 언론사에 입사하려 한다. 그는 오디션을 거치면서 '정지된 사람의 모습'이 아닌, '움직이는 사람의 모습'을 찍는데 <카메라맨>은 이 오디션 과정에서 일어난 실수연발의 해프닝을 담은 작품이다.
C. 이 영화의 공동감독이기도 한 키튼은 사건을 찍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아니 더 나아가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사건을 타인에게 보여준다는 건 무엇인가에 대해 예리한 시선을 드러낸다. 영화는 사진의 시대에서 영화의 시대로 신체와 그 감각을 안정적으로 옮겨가는 미국 사회의 풍경 속에서, 결국 좋은 사건(으로 인정받는 것)이란, 누군가의 모습이 있는 사건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바로 그 사건이 되는 것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D. 사건이 중요해지고 그만큼 이를 담아낼 매체의 발전과 엘리트, 대중의 호기심도 커지는 시기. 그러나 이 영화는 오늘날 대중이 사건에 느끼는 피로감을 예언이라도 한 듯, 사건 하나하나에 대한 강조점을 두지 않는다. 사건과 특종, 카메라맨들의 활력이 두드러질 시기에 <카메라맨>은 사건에 대해 어떤 허무함을 강조한다.
E. 그리고 그 허무함은 "스톤 페이스"란 별명답게 무표정이 자아내는 버튼의 유머로 인해 도드라진다. 이는 며칠 전 별세한 움베르토 에코가 좋아했던 개념인 "우모리스모", 즉 희극에서 어떤 비극을 아울러 느낄 수 있는 인간 본연의 모습과 이어진다.
F. 좋은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있어왔지만, 나는 자기 예언적인 실현을 담은 영화에서 어떤 매력을 느낀다. <카메라맨>은 카메라, 사람, 눈, 시각성, 보는 대중에 대한 미래를 스스로 내장했던 작품이라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적어도 키튼은 희극이란 도래하는 비극을 감지하는 예술임을 가장 잘 아는 사람임에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