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밍량의 <안녕, 용문객잔>(2003)은 '정교한 헤어짐'에 관한 이야기다. 


A 정교한 헤어짐은 "정확한 사랑"만큼이나 서운한 표현이지만, 차이밍량은 정교한 쇼트를 통해 헤어짐을 인상 깊이 보여준다


B 그간 이 작품의 롱테이크는 많이 언급되었지만, 나는 그보다도 영화에 나타나는 비가시적인 분할선들에 끌린다. 사실상 폐관을 앞둔 복화극장. 영화는 벽이라는 분할선 아래, 한 화면 안에 상영관 복도와 화장실을 동시에 보여준다. 매표소의 유리창이라는 분할선 아래, 적막하고 적적한 매표소 안과 밖이 그려진다. 영화의 후반부 <용문객잔> 상영이 끝나고 셔터가 내려갈 때, 셔터 또한 작별을 담담히 보여주는 분할선의 기능을 맡는다. 


C 마지막 회차를 보러온 관객 사이에도 묘한 분할의 기류가 흐르는데, 그 기류는 흔히 영화관을 다루는 영화에서 나타나는 '영화 보기'의 의례와 그 추억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안녕, 용문객잔>은 <용문객잔>의 상영과 <용문객잔>을 보러온 관객을 분할한다. 고로 우리는 굳이 이 영화에서 호금전 감독의 작품에 대한 충성심이나 애착을 확인하고 다질 필요는 없다 


D 영화는 무관하게 전개되고, 무심하게 흘러간다. 차이밍량의 영화가 그렇듯 이러한 무심함은 소외라는 지속된 문제의식을 떠올리게 하지만, 마지막이라는 시간 앞에 소외된 관객-개인은 소외된 자신과 소외된 타인 사이에 놓인 분할선이 실선이 아니라 점선일 수도 있겠다는 여지의 무심함으로 영화 안에서 머문다 


E 나는 <안녕, 용문객잔>에서 보이는 이 비가시적인 점선 모양의 분할선을 '카스테라 커팅 쇼트'라 부르고 싶다. 카스테라를 자를 때 쓰는 흰 칼로 빵을 자를 때 , 칼의 이가 만들어낸 빵 윗부분 칼자국처럼(점선과도 같은), 영화에는 이런 분할의 기념적 순간들이 존재한다. 다리를 저는 매표소 여직원이 영사기사인 이강생에게 호빵을 잘라 갖다주려 할 때, 영화가 호빵의 먹음직스러움보다 호빵이 반쪽으로 '나뉜' 상태를 지긋이 보여주는 것은 그저 우연이었을까. '정교함'은 결국 깔끔한 관계의 선언이 아니라, 미련의 동의어는 아닐까. 


F 우린 아직 완전히 헤어지지도 온전히 이어지지도 못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