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명훈의 『첫숨』서평 시리즈 중 '사회학 파트'를 맡아 썼다. 


'각도의 정치학'이란 관점 아래. 


사람은 90도의 동물이다. 아니, 요즘엔 스마트폰을 쳐다보고 걸어야 하니 75도 정도의 동물이라고 하자. 땅이 있고 그 땅을 딛는 발이 만들어내는 각도를 통해 사람은 ‘수직적’이라는 이미지를 품어왔다. 물론 사람이 0도의 동물이 되는 시간도 있다. 술에 취해 길바닥에 쓰러져 있거나, 새벽녘 깊은 잠을 청할 때 사람은 ‘수평적’인 이미지를 갖는다.

배명훈의『첫숨』을 읽으면서 ‘각도의 정치학’이라는 말이 맴돌았다. 그간 이 소설을 두고, 미래 도시 첫숨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지키는 ‘걸음걸이’의 특색은 자주 언급되었다. 허나 걸음걸이의 구분을 통해 형성된 계층 문제에만 주목한다면, 사회는 어떠한 방식으로 만들어지는가란 논의로 이 작품의 매력을 가둘 수 있다. 『첫숨』엔 사회에 대한 물음을 넘어 어떤 정치성이 보인다. 사람의 발과 지면의 구도가 자아내는 ‘각도’에서 비롯된.




작품의 한 축을 담당하는 무용수 한묵희. 또 다른 축인 보안책임자 최신학은 그녀를 따라다니며 “분류되지 않는 동작”에 주목한다. 지구에서 온 망명자인 최신학과 달에서 온 이주민 한묵희는 ‘중력비평가’가 되어 각자의 행성에서 느낀 이색적인 중력을 해석한다. 이 비평의 목표는 중력의 정치를 실감하는 것이다. 특히 한묵희는 공연을 통해 중력의 정치를 몸소 보여준다. 6분의 1 네이티브인 한묵희는 첫숨의 상류층으로 구성된 3분의 1 네이티브인 화성계 사람들, 이 중력이 부과하는 걸음걸이 등을 따라하며 상류층을 꿈꾸는 첫숨 주민 앞에서 중력을 ‘교란’한다.


교란이란 표현을 썼다고 해서 한묵희의 행동을 ‘전복’과 ‘전위’의 의미로 쉬이 해석하고 싶진 않다. 『첫숨』은 생각보다 조심스러운 소설이기 때문이다. 과감하게 지르기보단 과감함 이전에 나오는 세심한 모색에 에너지를 더 쓰고 있다. 가령 배명훈은 짧은 대목이지만 무용수의 상(像)에서 흔히 보이는 상처투성이의 발가락 대신, 발목에 주목한다. 한묵희의 발목은 지구 중력의 6분의 1(달)과 3분의 1(첫숨) 사이, 지면과 허공 사이, 도약과 착지 사이를 잇는 정치적 장치다. 한 곳만 챙기기에도 하중이 실리는 사람의 발목. 한묵희는 양쪽을 매개하며 발목에 스며든 무게를 견딘다.


이 무게는 어느 무용수의 고생담 같은 인간미를 우려낸 서사가 아니다. 중력을 교란하는 일은 곧 한 사회가 부과하는 걸음걸이의 분류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며, ‘수직적’ 인간이란 일정한 각도의 이미지를 분열시키는 정치적 행위다. 방방 뛰어올라도 안 되며, 그렇다고 너무 위축되어서도 안 되는 이도 저도 아닌 첫숨 사회의 보법(步法)을 떠올려보자. 무대에서 펼쳐지는 한묵희의 춤은 지면과 탈·부착하며 곧추세워 살아온 ‘90도의 인간들’이 받아온 부담을 폭로하고 위로한다. 90도의 인간들은 사회를 이루기 위해 어딘가를 정복하고, 높은 새 건물과 웅장한 기념비를 지으며 그렇게 자신들을 위무해왔다. 자신들의 발이 그 무엇보다 정직하고 성실하리라 믿는 가운데, 90도라는 각도는 문명과 진보의 척도가 되었다.


작품의 중후반부, 한묵희가 공연에서 선보이는 춤은 ‘상상력’이란 말에 갇힌 채 사람이 차마 하지 못하는 비현실적인 동작이 아니다. 문명이 도래한 이래, 사람이 사회와 관계 맺어온 90도라는 각도의 형식은 무대의 천장 유리가 깨지듯, 한묵희의 비행을 통해 신랄한 의문에 부쳐진다. 한묵희의 춤은 비판적 물음이 탈색된 아름다운 기예가 아니라 예술비평가들이 중요하게 언급해온 ‘비판적 무용학’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소위 ‘걸음의 사회학’은 퇴보해가고 있다. ‘만보객’ ‘산책자’의 정치성은 시끄러운 사회를 버티는 고요한 사색의 힘 따위로 변질되었다. 방방곡곡을 누비는 것이 자연스런 여행 시대. 걸음이란 라이프스타일을 꼬집는 비평은 고작해야 주말 등산객에 대한 불편함을 하소연하는 것에 멈춰버렸다. 그것은 ‘걸음의 사회학’이 사람의 발과 지면이 만들어내는 각도에 안일하게 대처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첫숨』은 문명과 사회를 지탱해온 인간의 문제는 발도 땅도 아닌, 그것을 잇는 중력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중력은 그저 사람이라면 알아야 할 과학 교양이 아니다. 중력은 이 사회를 좌우하는 이데올로기이자, 투쟁해야 할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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