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테오도로스 앙겔로풀로스 감독의 <황새의 정지된 비상>(1991)을 봤다. 난민과 국경, 이주를 담은 이 영화 속 인물과 사물의 인상적인 움직임은 역설적으로 '서 있는' 것이다. 인간의 성격으로 치자면 내성적인 카메라는 영화 내내 조심스레 움직인다. 의자들, 나무들, 테이블 위에 놓인 꽃병, 건물들, 심지어 주요 인물의 몇몇 동작엔 그것이 딛고 있는 접촉면을 유심히 쳐다보게 만든다. 걸을 땐 평소와 같은 움직임이지만 인물들은 서 있을 때 꼿꼿하고 진중해진다 '대기실'이라고 불리우는 이주를 기다리는 난민들의 영화 속 공간을 떠올려보면 이런 서 있음에서 바닥과 사람의 발, 바닥과 사물/건물의 밑이 유지하는 '접착'은 불안하게 느껴지기에 그 서 있음은 인상적이었다 


B 영화 속 인물들의 행위는 중요한 씬들에서 사뭇 연극적이다 시선 처리나 인물이 대사를 할 때의 위치는 연극에서 배우들의 그것을 연상시킨다 



C 그리고 유명한 결혼식 장면. 글로만 읽었던 이 장면을 직접 보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 침묵과 소리를 강조하는 영화에서 결혼은 더 이상 밝고 환한 소리들의 의례가 아니다. 카메라가 소리를 잠시 흡입해 화면 밖으로 내모는 듯한 결혼식 씬에서 신부와 신랑, 신부의 아버지, 주례를 서는 종교자, 함께한 난민들은 감시중인 당국에 잡히지 않기 위해 고요한 결혼식을 치른다. 신부와 신랑은 의식 막바지 국경 사이로 흐르는 강을 두고 서로 마주보며 사랑을 맹세한다. 그리곤 말없이 오른팔을 든다. "우린 이길거야"라는 난민들의 의사 표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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