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알랭 타네의 영화 <2000년에 스물다섯이 되는 요나>(1976)는 구약성경 《요나》에 등장하는 그 요나다. 영화엔 깊이 있게 안 다뤄졌지만 왜 하필 이 68혁명의 상흔을 안은 주인공들의 자식으로 태어날 이의 이름이 요나일까 더욱 궁금했다. 


B 영화에선 고래 안에 갇힌 요나라는 상식적인 선에서의 성경의 요지를 인용한 대사와 노래가 등장한다. 성경을 깊이 읽은 진 오래되었지만, 《요나》는 가장 깨름칙하게 마무리되는 성서 이야기 중 한 편이다. 타네의 이 영화를 두고 그래도 어떤 희망을 조금 암시하는 듯하다는, 몽글몽글한 기존 평들을 떠올려볼 때, 정작 요나는 자신을 믿어주는 하나님에 대해 엄청 뾰루퉁해 있는 인물임이 생각났다. 이야기가 끝나는 장까지. 하나님이 애써 봉합한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로 요나는 뭔가 아닌 것 같으면 티를 내고 계속 갸우뚱하는 인물이다. 


C《요나》는 흔히 풍랑에 빠져 하나님의 은총으로 큰 물고기 안에서 그 은혜를 체험한다는 이야기로 통용되지만, 실은 《요나》의 재미는 요나가 신의 섭리에 대해 단번에 수그리지 않으려는 어떤 일관됨이다. 이 영화의 각본을 쓴 타네와 존 버거가 그런 의미를 감안했다면, 요나를 축복하는 저 장면은 단지 새 생명에 대한 응원이 아니라, 빌어먹을 세상에 대한 간접적인 항명이 된다. 엄마의 배라는 큰 물고기 안에 갇힌 요나는 신의 섭리를 지키고자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게 아니라, 세상을 지배하는 신의 섭리에 갸우뚱하고자 웅크리고 있을 것이다. 하긴, 더 희망적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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