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윤기 감독의 <멋진 하루>를 보면 갈등하는 속마음을 쳐다보게 된다. 갈등의 구도는 이러하다. 이 영화를 여행으로 인식하고 싶은 마음 대 여행임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  '촬영'이라는 행위가 여행의 의미를 변질시키고 있다는 비판은 이제 익숙하다. 그런 맥락에서 <멋진 하루>에서 카메라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 영화를 여행이란 관점에서 해석하는 데서 벗어나고픈 이에게 안도감을 줄지 모른다. 


2. 허나 카메라의 등장 유무가 중요하다고 보진 않는다. 외려 관심을 갖게 되는 건 어떤 사고의 형태다. 내가 바라보는 이 순간이 '여행이길 바라는 마음' (이를 '여행적인 것'이라 부르려 한다). 여행은 일과 여가라는 낯익은 구분선 안에서 구획된 행동이다. 이 구분선은 우리에게 일=채워넣음, 여행=비움이라는 사고 구조를 심는다. 사람들의 점심 대화, 계절을 알리는 주말 뉴스 소식을 통해 우리는 이 구조에 익숙한 장면을 접한다. 흔히 '인파'라고 하는 표현은 이 장면을 고착화시킨다. 


3. '여행적인 것'이라는 사고 구조는 이 구분선을 크게 따지지 않는다. 물론 일에 찌들어 있고, 쉼이 무색해지는 삶의 형태를 의식해서 나온 것일 수 있지만. 어찌되었든 도시는 지금 내가 쳐다보는 하나하나의 사물, 건물, 사람이 여행의 흔적이길 도모한다. 도시는 도시인을 '지도적 인간'으로 만든다. 그리하여 도시를 사는 나는 '가볼만한 곳' / '그러지 않은 곳'이라는 구분선으로 공간을 인식하는 데 길들여진다. <멋진 하루>는 이 지점에서 문제를 던지는 영화다. 그래서 흥미가 생긴다. 


4. <멋진 하루>의 주인공 희수(전도연)와 병운(하정우)는 빚으로 다시 만난 옛 연인 사이다. 병운은 희수에게 350만원이란 빚을 갚아야 한다. 표면적으로 영화의 시작점은 350만원이며, 영화의 끝점은 0원이어야 한다. 수치는 '목적성'을 불러일으킨다. 고로 보는 이는  <멋진 하루>의 완결성을 빚을 다 갚는 데 몰두하는 것으로 정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묘미는 그 목적성에서 오는 긴장감이 아니라, 그 긴장감을 이완시키는 두 주연의 행동이다. 그 이완의 찰나가 두 인물이 자신들의 이 경험적 순간을 여행으로 인식하게끔 만든다. 빚을 갚기 위해 병운과 함께 가는 곳은 '가볼만한 장소'가 아니다. '찍어볼만한 장소'도 아니다. 허나 희수는 시내버스에서 젊은 연인의 대화를, 타워팰리스 로비의 거울에 비친 할머니의 쓸쓸한 모습을, 성도여중 미술실에서 껌을 떼내고 있는 소연을, '쳐다보면서' 여행적인 감정을 느낀다. 카메라는 없지만, 희수는 자신의 눈이 절로 카메라가 되고 있는 지점을 체험한다. 희수의 쳐다봄은 단순 관찰을 넘어 '여행적인 느낌'을 도모하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5. 병운은 여행의 요건을 부정함으로써 이 작품에 '여행적인 것'을 불어넣는 역할을 맡는다. 가령 그는 영화 초반, 희수가 네비게이터를 꺼내자 언짢아 한다. 대신 그에겐 기억이란 요소가 자리잡고 있다. 희수와 잘 갔었던 식당 '제주집'이 문을 닫아버린 것을 확인한 순간은 이 영화의 '여행성'을 보여준다. <멋진 하루>에서 병운의 화법은 '과거 지향적'이다. 이 과거 지향적인 화법은 '지도적 인간'의 핵심 요소다.  당연한 말이지만 지도적 인간에게 '갔던 곳' '그때 우리 그랬었지?라고 떠올리게 하는 곳'은 '가볼만한 곳'만큼의 위상을 지닌다. 희수는 처음엔 동요하지 않지만, 병운이 계속 추억을 언급하자, 병운의 사연을 들어보려는 형태로 태도를 바꾸어나간다. 그러면서 희수도 기억을 섞어 지금 현재의 행동(빚을 갚아야 한다는)이 중요함을 잊지 말라는 태도를 보인다. 그리고 그 현재 행동의 목적은 점점 물렁물렁해진다. 
















6. 결국 <멋진 하루>가 제기하는 '여행적인 것'은 '영화적인 것'이란 문제를 돌아보게 만든다. 그렇다면 '영화적인 것'을 사유하기 위해 보는 이는 도시에서 스크린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걸까. 아니면 (보드리야르가 『아메리카』에서 제시하듯) 외려 영화적인 것을 고민하려면 스크린 안에서 도시 바깥으로 가야 하는 걸까. 그렇다고 여기서 영화적인 것이 '내가 보는 이 모든 풍경이 영화적이다'라고 하는 인상에 머무는 감탄으로 머문다면, 이는 정작 이 질문에 여행을 기념하고픈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과 같다. 


7. 아직 답을 찾진 못했다. 여러 개의 단서들. 그중 흔히 '모빌리티'라고 하는 개념에 안주하고 마는 자동차에 대해 나는 '영화적인 것'을 사유하고픈 유혹과 매혹을 느낀다. <멋진 하루>에서 희수와 병운이 타고 다니는 자동차와 그 창들. 이 영화에서 여행적인 것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기능을 하는 이 자동차는 '영화적인 것'을 엮어 생각하게 만드는 기능을 한다. 병운은 희수가 네비게이터를 꺼내 설치하자 대뜸 텔레비전 기능이 되는지 묻는다. 희수는 호응해주지 않는다(이 장면과 더불어 병운이 음악을 듣자고 하자 희수가 호응해주지 않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한때 영화와 대결했던 매체의 부정과 부재. 자동차 안에서 남은 것이란 다시, '쳐다봄'의 행위. 이 순간이 사진적이길 넘어, 여행적이길 넘어, 이제 영화적일 수 있는 장면들은 무엇일까. 고로 나는 이 영화를 '다시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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