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의 공백이다. 하지만 이 기획을 완수하기 위해 쉬진 않았다. 다만 어떤 망설임과 초조함 그리고 비판받음의 여지 가운데 예민한 각을 세울 수 있을 것인가 고민했다. 

먼저 감정사회학을 '고요의 사회학'으로 비판하는 이들을 향한 내 나름의 반론을 다져나가면서 비판가들은 감정사회학을 '팔자 좋은 사회학'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학의 연성화를 우려하는 그들의 의도는 짐작이 가지만, 그들만이 비판이론의 정수인 것처럼 (마르크스는 그들에게 좋은 보호막이 된다) 행세하는 건 불편하다. 
감정사회학은 비판이론의 기획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고 관련 학자들은 지금도 활동중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분과학문은 이제 시작이다. 비판가들의 재판은 이르며 부당하다.

지난 18회까지 정리하면서 나는 '사회적 상호작용'으로서의 이론과 그 맥락으로 내향성이란 성격문화를 고찰했다. 근래 국내 출판에서도 형성된 내향성에 관한 문헌을 참조하면서 '내향성의 장'이 있음을 이야기했다. 일리언 아론이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지만, 수전 케인의 《콰이어트》가 가져온 열풍은 '내향성 담론'을 촉발시켰다. 어빙 고프먼의 자기계발 담론적 전유인 본 책은 우리 시대의 성공 모델에 내향성이라는 성격문화를 잘 절합한 성과임이 분명하다. 
다만, '사회적 상호작용'을 인간 대 인간의 심리적 갈등으로 축소시키는 가운데 나타나는 기존 질서의 안정화라는 한계는 가장 손쉬운 비판이면서 이 기획이 갖는 비판의 출발점임은 부인할 수 없다.

*내향성의 사회학 2라운드로서 나는 내향성의 사회학이 의식해야 할 비판이론으로서의 보충물을 수집하고, 더 나아가 이 비판의 대상은 어디를 향해 있는지 윤곽을 계속 드러낼 것이다. 그러기 위해 이 기획은 부르디외와 에바 일루즈의 개념 작업을 참조해 '내향성의 리더십'과 이를 문화기획으로 전유하면서 생기는 전략들을 정리하고 있다. 그 가운데 음악웹진 웨이브를 통해 선보인 <라나 델 레이: 우울의 리더십과 명성문화>란 글은 한 예다. 
특히 '우울의 리더십'이란 틀은 내향성의 사회학이 견지하는 비판적 기획으로서 그 모델들을 하나둘 선보일 것이다.원고를 끝냈고, 곧 웨이브를 통해 두 번째 모델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우울의 리더십은 김홍중의 <멜랑콜리와 모더니티> 그리고 랜들 콜린스의 <내향성의 작은 역사> 그리고 부르디외의 장이론이 결합된 개념화 작업이다. 내향성과 문화권력이란 테마 속에서 이 개념화 작업은 진행된다. 
무엇보다 우울의 리더십은 예술가의 감정, 고독의 숭배자라는 18~19세기 사회의 감정문화적 산물이 오늘날 문화기획/문화기획자를 통해 어떻게 새로운 문화상품으로 만들어지고있는지 집중한다. 그러면서 생기는 우열의 관계는 단지 인물에 대한 애호가 아닌, 그 애호에 동원되는 사회적 행위에 주목케 한다. 우울이 '문화적 우울'로 재구성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각 사회 주체들의 절합은 불안한 봉합으로서 우리는 이 불안함을 비판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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