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전직 연극기획자이자 배우들의 매니저였던 한 남자가 영화사 책을 썼다. 그는 책이 나오기 4년 전부터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며 미국 공연업계에 대한 많은 기사를 써오던 터였다. 이 남자의 이름은 로버트 그라우. 그는 최초의 미국 영화사 책으로 평가받는 《과학의 극장》의 저자다.

 

비록 '위인'의 관점에서 영화계의 발전을 이끈 인물들을 조명했단 한계는 있지만, 참고할 만한 기존 문헌이 없었음을 감안할 때 저자의 역사쓰기는 의외로 빈곤치 않았다고 후대의 영화사가들은 평한다.

 

이 책은 제도권으로서의 영화학이 없던 시기(전공교재로라도 팔 수 있는 환경이 없던 시기), 영화서적의 출판 행태에 대해서도 유의미한 내용을 담고 있다. 당시 《과학의 극장》은 3000부가량 찍었는데 책은 '예약구매'로 진행되었다. 여기서 예약구매란 책을 미리 살 사람들을 정해 주문을 받아 일정 부수만 출판을 했다는 뜻이다. 방문판매원이 있었지만 그라우는 직접 판매에 나섰다고 한다.

그 당시 영화배급업자인 조지 클라인은 아직 출판되지도 않은 책을 주문하라고 하는 그라우의 행태에 아쉬움을 표했다.

 

고백하건대, 만약 당신이 보낸 모든 편지에 대해 구매예약서가 동봉되지만 않았다면 나는 당신 책에 개인적으로 대단한 관심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사람들이 책을 사기 시작하면 나도 살 마음이 생길 것이란 정도의 관심만을 당신 책에 대해서 갖고 있습니다. 책 구입요청서가 이런 식으로 모든 편지에 동봉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 조지 클라인의 편지

 

그라우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클라인을 꼬드겼다. 앞으로 발간될 서적엔 클라인이 운영하는 영화관을 다루는 내용이 많을 거라고. 그러나 정작 《과학의 극장》엔 조지 클라인을 다룬 비중은 적었다고 한다.

기술이 곧 미학임을 믿던 미국의 당시 분위기가 반영되어, 영화사의 발전을 이끈 기술의 발명과 인물 위주의 역사서이지만 영화의 기술적, 미학적, 산업적 측면은 한 덩이임을 표명한 중요한 책.

 

*영화사에 대한 영화사인 로버트 앨런&더글러스 고메리의 《영화의 역사: 이론과 실제》& 영화사가 루크 맥커넌의 초기영화사아카이브 <바이오스코프>를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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