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화와 영화
: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영민한 선택과 절단의 호흡법

1. 어젠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를 봤다. 영화에 관한 영화, 특히 스타와 명성을 다루는 영화에서 비화는 여담餘談이 아니다.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는 비화를 지혜롭게 활용한 영화다. 물론 이것이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의 의도인지, 영화가 진행되면서 생성된 우연인진 모르겠지만. 비화를 활용했다는 건 영화와 현실의 구분선을 활용했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디까지가 줄리엣 비노쉬고 어디까지가 주인공인 대배우 마리아 엔더스(줄리엣 비노쉬가 맡은)의 삶인건지 모호하다면 영화의 비화 활용력은 출중한 것이다. 
근데 이 영화의 흥미로운 비화 포인트는 으레 우리가 예상하듯, 나이든 대배우의 과거에 대한 향수와 그 향수가 해결해줄 수 없는 쇠락해진 현실을 괴로워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아니다. 비화를 다룬 이 영화의 또다른 중심은 매니저 발렌틴(영화)과 그 역을 맡은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현실)다.


2. 캐스팅 비화는 보통 비화의 기능에 맞게 본 줄거리와 무관한 순전히 흥미의 부분만 건드린다. 즉 캐스팅 비화는 줄거리를 해치지 않는 어떤 결과론적 후일담이다. 근데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에서 캐스팅 비화는 줄거리와 유관하다.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는 작품을 보러 가기 전, 캐스팅비화를 한번 살펴보고 가면 영화를 좀 더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다. 

줄거리는 이렇다. 한때 스타였던 나이 들어가는 대배우 마리아(줄리엣 비노쉬)- 그 배우의 강단 있는 매니저 발렌틴(크리스틴 스튜어트)-마리아와 함께 리메이크될 연극을 함께할 똘끼 가득한 신성 조앤(클로이 모레츠)의 합으로 이뤄진 이야기다. 원래 온갖 스캔들과 파파라치에 시달리면서도 똘끼 있고 우울한 이미지로 아이돌의 리더십을 행사하는 조앤 역은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더 어울려 보인다(그녀의 실제 삶을 돌아본다면). 그러나 《베니티페어》에서 크리스틴이 밝혔듯, 아사야스 감독이 조앤 역을 제안했을 때 크리스틴은 거절했고 대신 매니저 발렌틴 역을 하겠다고 했다.


3. 그럼 매니저 발렌틴 역을 통해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자신이 드러나지 않게 발렌틴을 선보이는가. 아니다. 이 영화에서 매니저 발렌틴은 매니저 발렌틴과 그 캐릭터를 다 연기하는 크리스틴 스튜어트 자체를 보여준다. 즉 크리스틴은 한 대배우의 일상을 관리하는 사람을 연기하지만, 크리스틴 스튜어트 자신의 모습도 연기한다. 영화의 주요 내용 중 하나는 마리아가 함께할 상대역 조앤의 행동거지를 못마땅해하는 건데, 매니저 발렌틴은 마리아와 조앤의 캐스팅이 확정되고 난 뒤 마리아와 갖는 대본 리딩 연습 속에서 조앤의 똘끼와 이미지 속에 담긴 배우의 속내를 변호하는 말을 자주 한다. 


앞에서 말했듯, 영화 속에서 조앤은 현실의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겪은 일들을 유사하게 겪는데, 이런 행동, 배우가 선택한 작품 및 캐릭터와 인기를 이해 못 하는 마리아에게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매니저 발렌틴을 빌어 조앤의 삶을 이해시키고 변호하려 한다(크리스틴 자신에 대한 변호다). 어떻게 보면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에서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매니저 발렌틴을 통해서, 헐리웃 신성 조앤을 통해서 만들어진 교집합을 통해 '1인 2역'으로 재현된다.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삶은 클로이 모레츠를 통해서, 그리고 크리스틴 스튜어트 자신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다.



4. 영화의 화면 전개는 절단이 주를 이룬다. 시퀀스 안에서 시간은 천천히 자연스럽게 숨을 내쉬다가 쭉 절단되고 페이드아웃은 조금 갑작스럽다. 아사야스의 카메라가 시도하는 이 시간의 호흡법은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이 영화에서 어떻게 제 임무를 다하는지와도 연관되어 있다. 물론 크리스틴은 그 호흡법을 충실히 따라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해낸다. 
이 절단의 호흡법으로 자신의 비중을 과하지 않게 적정선에서 끊는 크리스틴은 고로 영화 속 다른 배우들을 빛나게 하는 현실의 '매니저'가 된 셈이다.


*이 영화와 닮은 구석이 있는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맵투더스타>. 쇠락해져가는 대배우 하바나(줄리앤 무어)의 매니저 애거서를 미아 와시코브스카가 연기했다. 한데 원래 올리비에 아사야스는 매니저 발렌틴 역에 크리스틴 스튜어트 대신, 미아 와시코브스카를 염두에 두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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