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격 높은 전문가라면 마땅히 감사의 말도 능숙하게 작성할 줄 알아야 한다. 때로는 집필을 마치고 나서 아무에게도 신세를 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설령 그게 사실일지라도 누구에게든 빚을 졌다고 꾸며대야 할 일이다.”
- 움베르토 에코,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서문을 쓰는 방법」 중에서
*아래의 트윗은 사실이라 믿어도 좋고, 허구라 믿어도 좋다. 근데 어찌 되었든 진실이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김신식 @jjcrowekr 9월 3일
논문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중앙도서관 4층에 위치한 논문보관소에 갔다. 정작 본문은 반도 쓰지 않았는데 감사의 말을 어떻게 쓸지 고민이다. 다른 사람들은 감사의 말을 어떻게 썼을까. 학과를 불문하고 천편일률적이다. 정말 그렇게 고마운 사람이 많나.(139/140)
김신식 @jjcrowekr 9월 3일
드디어 음흉한(?) 감사의 말을 찾았다. 유 씨의 감사에는 분명 뼈가 있다. 지도 교수를 향해 ‘고…맙…습…니…다.’ 입을 앙다문 어떤 분노가 느껴졌다. 유 씨에겐 미안하지만 150쪽이 넘는 본문보다 감사의 말 1쪽이 훨씬 재미있었다.(*134/140)
김신식 @jjcrowekr 9월 4일
원래 학위논문 주제는 「한국의 비디오문화 형성 과정에 대한 연구: VCR 수용자의 가정 내 영화 소비를 중심으로」였다. 마음이 흔들렸다. 「감사의 말을 통해서 본 학술계의 감정」으로 바꾸고 싶었다. 지난 학기 날 잡아먹을 듯한 심사자 때문만은….(137/140)
김신식 @jjcrowekr 9월 6일
사회학자 패멀라 리처즈는 하워드 베커에게 보낸 답장편지에서 심사자인 동료와 선배들에 대한 불안을 털어놓았다. 그녀는 두 개의 꿈을 고백한다. 하나는 대학원 시절 절친이 자신의 초고에 신랄한 비판을 하는 꿈, 다른 하나는 초고가 잘 써지는 꿈.(135/140)
김신식 @jjcrowekr 9월 6일
허나 패멀라는 현명했다. 자신의 생각을 달달한 온기로 지지해줄 동료부터 의심해보는 것이 필요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설익은 초고가 완성된 논문 직전의 글이라고 쉬이 판단해버리는 학술계에서 그녀는 좀 더 유연하고 냉정해져야 한다고 결심했다.(136/140)
김신식 @jjcrowekr 9월 6일
패멀라의 이 진솔한 답장편지 전문은 그녀의 어느 책에 감사의 말로 들어갔으면 좋겠다. 적어도 ‘익명의 세 심사위원에게 감사함을 표한다’는 형식적인 말보다는 나은 듯하다. 답장을 받은 베커 또한 말한다. 그녀의 느낌이 대다수의 학자를 괴롭힐 거라고.(138/140)
김신식 @jjcrowekr 9월 9일
학술에서 감사와 겸양은 늘 따라다닌다. 허나 안다. 겸양은 가면이라는 것을. “난 학자가 아니니 잘 모르겠습니다만”이라고 운을 뗀 다케우치 요시미. 그를 연구한 쑨거는 말한다. 그건 겸손이 아니라 사상의 독창성이 없는 현대 학술계에 대한 반감이라고.(139/140)
김신식 @jjcrowekr 9월 9일
비슷한 맥락에서 “익히 알다시피”란 표현도 있다. 허나 안다. 이 관용구는 내 논문을 읽을 당신들이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길 한다는 게 아님을. 실은 이제부터 당신들이 전혀 들어보지 못한 ‘힙한’ 이론을 소개하겠다는 선언임을. 겸양은 학술을 잠식한다.(139/140)
김신식 @jjcrowekr 9월 13일
출판의 사회사를 연구했던 존 맥스웰 해밀턴은 ‘감사의 말’만 모아 연구한 적이 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예전에는 감사의 말만 써주는 업이 흥했다. 잘 나가는 이는 300만~500만 원 정도를 벌었다. 새뮤얼 존슨도 그중 한 명이었다.(132/140)
김신식 @jjcrowekr 9월 13일
‘acknowledgement는 주로 외서에서 볼 수 있다. 국내에선 주로 서문에 감사의 표현을 쓰기 때문이다.’ 또는 ‘외국 책에선 acknowlegement를 자주 볼 수 있다. 국내에선 주로 서문에 감사의 표현이 들어 있다.’ 학자는 감사의 말에서 섬세함과 유머를 실험한다. 평생 연구실에 틀어박힌 이에게 유머란 위험한 시도라 따뜻한 호명이 일반적이다.(138/140)
김신식 @jjcrowekr 9월 18일
감사의 말은 특히 학자들의 가족애가 발산되는 공간이다. 아내와 아들딸, 심지어 장모까지 등장한다. 9·11 이후 뉴욕의 도시재개발 논쟁을 연구한 도시사회학자 그레고리 스미스사이먼은 감사의 말에서 초교 교정을 봐준 장모에게 특별한 고마움을 표한다.(137/140)
김신식 @jjcrowekr 9월 18일
감정사회학자 앨리 러셀 혹실드가 쓴 감사의 말은 남편 애덤을 향한 러브레터다. 혹실드의 고백에 따르면, 애덤은 혹실드가 힘들어할 때마다 그녀의 책상과 초고에 재치 있는 그림을 그려놓았다. 그녀는 말한다. 남편의 사랑이 책 곳곳에 녹아들어 있다고.(137/140)
김신식 @jjcrowekr 9월 18일
스티븐 제이 굴드는 『인간에 대한 오해』 감사의 말에서 동료애를 천명한다. “이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도움을 아끼지 않았던 동료들이 있는 한 이기심을 일으키는 유전자 따위는 없다”란 표현은 나름 센스가 있다. 좀 오글거리긴 하지만, 위트를 시도했다.(140/140)
김신식 @jjcrowekr․9월 19일
연구실 복도에서 교수님과 마주쳤다. 교수님은 엷게 웃었다. “얘 준비는 잘 되가나.” 하고 싶지만, 부담 줄까 싶어 인사만 받아주신 듯했다. 재심사가 다가온다는 고요한 경고장 같았다. “교수님, 저 요즘 관심사가 바뀌었어요.”라 말하고 싶었지만….(138/140)
김신식 @jjcrowekr 9월 19일
뭔가 찔려서 논문보관소로 향했다. 물론 감사의 말을 읽으려고. 본문은 조금 썼는데, 감사의 말부터 쓰잔 생각이 들었다. 골랐다, 적합한 말을. “○○에게” 이 학자들의 진중하고 내밀한. 그래, 나도 바르트가 되어보자. 실명을 쓸까, 애칭을 쓸까.(137/140)
김신식 @jjcrowekr 9월 25일
실명을 혹은 애칭을? 고민하다 6일을 보냈다. 잠시 머리를 식히고자 감사의 말들을 읽었다. 행동경제학자 댄 애리얼리의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 감사의 말은 책 기운대로 뭔가 꼬인 게 있을까. 허나 시시했다. 그야말로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이었다.(137/140)
김신식 @jjcrowekr 9월 25일
입을 앙다문 분노를 위트로 전환한 감사의 말을 찾았다. 시인 E.E. 커밍스는 헌사에 자신의 시집 출간을 거절한 출판사 14곳을 적었다. 그는 어머니에게 300달러를 빌려 인쇄업자 친구의 도움으로 자가출판을 했다. 시집 제목은 『감사할 것 없다』였다.(140/140)
김신식 @jjcrowekr 9월 26일
내 논문에 의구심을 표하는 이들을 써보기로 했다. 키보드로 치면 맛이 살지 않아 만년필을 꺼냈다. 새 노트의 비닐을 뜯었다. 쓰면서 마음에 물파스를 바른 기분이 들었다. 물론 공부 안 한 과목의 시험지에 ‘선생님 사랑해요.’를 쓰는 기분도 함께.(137/140)
김신식 @jjcrowekr 10월 5일
지도교수 연구실 앞. 심사를 미루고 싶다 말해야 하나, 사실 새 주제에 관심이 생겼다 말해야 하나 고민 중. 마음은 후자에 가 있다. ‘선생님, 학계가 자신의 격정을 온화함 속에 묻어놓는 게 마뜩잖아요. 그 고분고분한 온기에 제동을 걸고 싶어요!’(138/140)
김신식 @jjcrowekr 10월 10일
며칠간 몸살이 나 아팠다. 그날 일이 떠올랐다. 교수님은 말했다. “신식아, 논문 잘 써가지고 이런 논문 내줘서 고맙다는 감사의 말 들어보자 생각한 적은 없니?” 잽 정도 맞을 줄 알았는데, 예상외의 묵직한 훅이 들어왔다. 뭔가 말린 기분이었다.(137/140)
김신식 @jjcrowekr 10월 10일
나는 머리에 전구가 켜졌다는 모양새를 담아 정신 차리겠다는 요지의 약속을 소심히 뱉었다. 학술계가 잘하는 ‘깨달음의 연극’이었다. 미련이 남았는지 오늘도 감사의 말을 연구했다. “따라서 내용에 대한 책임은 나의 몫이다.”류의 감사와 겸양에 대해.(137/140)
김신식 @jjcrowekr 12월 13일
@kiman 아, 네 오랜만이에요, 빵 님. 저 논문 쓴다고 트윗을 통 못했네요.^^; 그때 긴히 여쭌 주제는 접었습니다. 그놈의 ‘논의의 배경’에서 막혀서요. 그냥 지금 주제 빨리 써서 졸업하려구요. 돈 벌어야죠?! 흐흐흐….(120/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