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는 <한 희망 없는 내향성 인간의 고백>이라는 블로그를 운영중이다. 그녀는 기독교 대학에 재학 중이며, 영문학과 비교문화 연구를 전공하고 있다. 한나는 자신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하는 걸 싫어한다. 허나 자신이 인디락에 심취해 있다는 문화적 표시에는 마음이 열려 있다. 자신에 대한 장광설을 늘어놓긴 싫지만, 그래도 이 부분만큼은 밤을 새서라도 이야기할 수 있겠다는 영역, 그것은 그녀가 남이 잘 듣지 않는 음악을 선호하고 있단 사실이다. 

 

그녀가 2013년 8월 26일에 남긴 일기의 제목은 <나는 지금 영문학 수업의 힙스터야, 야호?>다. 일기를 정리해보면 이렇다. 한나는 개강 첫 주, 수강신청한 두 수업은 아무런 정서적 에너지 소비 없이 무난하게 넘어갔다. 그런데 세 번째 수업이 문제였다. 수업이 시작되고 나서 초중반부는 한나가 보기엔 무리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교수가 실라부스를 주며 수업이 이렇게 진행될 거라고 말하며, 교재를 사세요 라는 말을 했다. 분위기가 어색할까봐 나오는 잡담까지도 예측 가능한 것이었다. 헌데 '이제, 5분 남았나? 집에 가자..'는 기대감을 깨뜨렸던 교수의 제안이 있었으니 '자기 소개 시간 갖기'였다.

 

한나는 블로그에서도 밝혔지만 남 앞에서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내 취미가 뭔지, 내 가족은 어떤지를 떠벌리는 게 무척 싫다. 학생들이 이런 시간을 싫어한다는 것을 안다는 둥 교수가 먼저 모범을 보였다. 다른 소개야 한나의 예상대로 였던 듯한데,  교수가 인디락을 좋아한다고 말했을 때 '어 이 사람 보게?'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한나가 생각하기엔 교수들이란 느끼한 클래식 음악을 들을 것 같은 부류라 생각하는 게 여전히 좀 남아 있었기에. 암튼 이어 학생들이 하나둘 나와 자기 소개를 했다. 물론 소개 시간은 갈수록 짧아졌다. 드디어, 한나의 차례. 이 시간에 그리 많은 정서적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그녀가 이 일기를 쓰게 된 원인이 나왔다. 자신의 문화적 선호를 밝히고 만 것. "저는 인디락을 좋아하구요.." 마침 교수가 이 질문을 놓치지 않고 잡아챘다. 한나는 이 말이 나오자마자 실수란 걸 알았다. 그러면서 자신을 한번 비웃어준다. '그래 나는 이 수업에서 교수의 좋은 편에 서고 싶어하는 여자지. 어느 친구들이나 마찬가지인 것처럼' 

교수는 한나에게 좋아하는 인디락 밴드 이름을 수업을 같이 듣는 학생들과 자신에게 알려달라고 부탁한다. 한나는 지금처럼 뜨기 전, 인디 씬에 있던 이매진 드래곤스의 음악을 좋아하구요로 이야기의 물꼬를 텄다. 그리고 그녀가 좋아하는 밴드들의 이름을 말했다. 누군가의 반응에 민감한 한나는 자신이 그 말을 하고 나자 몇 명이 킥킥 웃어대는 것에 신경이 쓰였다. 교수도 뭥미? 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대하는 것 같다. 기분이 언짢아졌다. 그러면서 그녀는 자신을 둘러싼 반응을 비웃는다. 자신이 이 수업에서 힙스터가 된 것 같다고.

 

힙스터는 '반反의 정서'로 버텨온 '실체 없는 문화적 부류'라고 할 수 있다. 힙스터는 자신이 힙스터라고 지목당하면 정작 당사자는 난 힙스터 아닌데, 라고 말하는 '부인 전략'으로 존재를 유지한다. 힙스터들은 세상과 타인에 전혀 관심이 없고, 오직 나는 이 시대 사람들이 다 우루루 몰려 가서 하는 걸 경멸하지? 하는 입장에 있는 문화 부족인 듯하지만, 그들은 '세상에 관심 있는 비세상인을 선망하는 사람들'인 역설적 상태의 '문화 석학'이다(이 표현을 쓰는 일부 논자들은 조소라는 의미를 넣어놓는다).

 

자, 이제 내향성과 힙스터의 끈을 고민해볼 때다. '내향성의 장'이란 연구 분야에서는 내향성과 문화 그리고 미디어의 연관성을 미약하게나마 분석해왔다. 소피아 뎀블링 같은 심리학자는 내향적인 사람들이 문자 문화와 친숙하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전화의 구술성이 내향적인 사람에겐 큰 정서적 에너지 소비로 느껴지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내향적인 사람들은 말보다는 글로 자신의 영역을 표현하고 지켜나가길 원한다는 것이다. 그녀의 견해에 따르면 메일과 페이스북, 트위터는 내향적인 사람에겐 안성맞춤인 매체다. 누군가와의 접촉을 통해 드는 정서적 에너지의 소비를 줄이고, 그 보존된 양으로 매체 활용에 신경 쓰는 게 내향적인 사람들에겐 중요한 요소라고 그녀는 말하고 있다.

힙스터들은 구술을 통해 자신의 '까칠까칠한' 스타일을 드러내 보이기도 하나, 인터넷은 그들의 까칠까칠함을 극대화시키는 수단으로 등장했다. 힙스터는 이제 '쟤는 뭔데, 별루 한 것 도 없는 놈이 저렇게 인기가 많지?' '쟤 봐, 스키니 진에, 저 의미도 모르고 쓰는 모자 봐, 선글라스 하며?' 같은 어디에도 갖다 쓸 수 있는 펑퍼짐한 용어가 되었으나, 사람들은 외려 이 펑퍼짐한 상태로 인해 힙스터를 언어 게임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랬을 때 내향성과 힙스터를 치면, 힙스터는 '까칠까칠한'이란 성격 유형으로 일반화되는 것 같다. 우리 인터넷식 표현으로 말하자면 '쿨내 나는 인간들'로 수렴되는 것이다. 

내향성의 연구 역사에서 내향적인 것이란 초기에 '차갑고, 무뚝뚝하고, 줏대 없고, 따분하고, 까다롭고'라는 성격 유형으로 정의되었다. 1960년대 성격 이론가들의 이러한 결과물은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내향성의 긍정적인 면을 보는 쪽으로 보완되었다. 내향적인 사람들이란 '깊이 있는, 창의적인, 융통성 있는, 책임감 있는' 성격을 가진 이라는 것이다. 

 

사회학자 랜들 콜린스는 내향성의 유형을 분석하면서, '스스로 소외되는 사람들'에 주목한다. 이런 소외는 자신에겐 자부심인데, 콜린스는 이런 '반항적 개인주의자'와 '고독 숭배자'들이 현대적 개인주의의 주요한 특징이라고 정의한다(사실 이러한 진술에 대해선 우린 얼마나 많은 하위문화에 대한 문화연구적 시선을 익혀왔던가). 콜린스는 이런 정의의 과정 속에서 '테크놀로지에 집착하는 이들' 특유의 개인성에 주목한다. 이들은 모임에서 대개 활기도 없고, 자신과 맞지 않는 농담이나 뜬소문을 나누는 걸 싫어한다. 그래서 수줍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심어주는데, 그러다가도 자신과 비슷한 '기술적 지식'을 갖고 이를 보여주려는 사람에게는 마음의 문을 연다.

힙스터는 자신이 지닌 문화자본에 애착을 보이기 때문에, 세상에 나온 사물에 관심이 많긴 하다. 단 그 관심 많음의 영역을 희소성으로 규정하고, 친한 사람 외에는 남이 따라올 수 없는 장벽을 쳐 '무관심'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전략을 쓴다. 힙스터는 자기 주변의 '싱거움과 진부함'을 활용해 존재를 유지하기 때문에 타인의 취향 관찰에도 민감하며, 그래서 그들은  '만남과 모임'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패턴을 오글거림으로 규정하고 이러면 차라리 집에 가서 웨스 앤더슨의 영화나 볼 걸 하는 말풍선을 만드는 데 익숙하다. 그런 점에서 힙스터는 자신과의 문화적-정서적 공동체를 만들어줄 가능성 있는 이와 에너지를 쓰고 싶어하는 만남의 효율성을 따지는 내향적 인간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인터넷은 집 안에서 힙스터다움을 유지할 수 있는 정서적 에너지 줄이기의 매체로 주인을 기다리고 있고.

 

 

문화적 구별짓기가 내향적인 사람일 수록 더 민감하게 다가오는 것일까? 내향적인 사람들은 자신이 '유니크한' 문화를 소유하고 있다는 그 '차이 확증의 심리'를 더 강하게 품고 싶어할까? 아니면 절망적인 대답 '케바케'를 택해야 할까?

 

'내향성의 장' 연구자들은 내향성-외향성이라는 성격 유형을 설명하는 단계에서 그들이 왜 이런 문화를 선택했는지에 대한 '외부 요인' 분석과 그 감각이 결여되어 있다. 적어도 그런 점에서 랜들 콜린스가 고려하는 내향성 연구는 '종교적 속성의 기원을 가졌던 내향성' '시장에 토대를 둔 지식인과 주류 사회를 적으로 삼는 반항적 유랑아, 급진적 사회운동의 결탁 관계 그리고 내향성' '창조적 인성과 예술 장 그리고 내향성' 등을 내향성의 미시사를 통해 조금이나마 챙겨보려 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 검색해보면 내향성과 힙스터의 관계를 궁금해하며 나름 자신의 생각을 공유하고 싶어하는 '아마추어 작가'들의 흔적이 온라인엔 많다. 물론 그들이 펼쳐나가는 심도 있는 고민만큼 상대의 반응이 안 올때가 많지만. 힙스터들? ESFJ도 있고 ISFJ도 있고 그러지 뭐, 라는 시큰둥한 반응들 그 자체를 보고 혹자는 힙스터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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