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월적 사유의 섬세함을 더 이상 되찾을 수는 없지만, 모든 질병을 세심하게 예방하도록 스스로를 통제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노령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미셸 푸코의 국가 박사학위부논문 서설인 「칸트의 『인간학』에 대한 서설」(문지에서 '칸트의 인간학'에 관하여로 출간되었다)을 읽다가 일흔대 칸트의 당시 상태를 짐작해보는 푸코의 이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노년의 역사'류의 책에서 어느 역사학자나 한번쯤은 언급할 진부한 문장 같기도 했지만, 뭔가 마음이 끌린 이유는 몇 페이지 뒤 나오는 '소원들의 등록부'라는 표현 때문이었다. 







2. "철학은 자신의 총체성 안에 건강과 질병의 관계를 포함시키면서, 자신의 절대적인 지평을 형성한다. 확실히 [철학의] 이러한 우위성은 인간이 가진 소원의긴급한 성격에 의해 은폐된다. 우리가 오래 살거나 건강하기를 희망할 때, [이 두 가지 소원 중에] 오직 첫번째 소원만이 절대적인 것이며, 죽음을 통한 해방을 원하던 병자는 [정작] 임종의 순간이 왔을 때는 언제나 [죽음의] 유예를 소원한다. 그러나 소원들의 등록부에서 절대적인 것이 삶의 차원에 있어서는 부차적인 것이 된다."






푸코는 이 표현이 나오기까지 칸트의 『인간학』출판과 관련된 사정들을 다 뒤지고 개연성을 만들어나간다. 이는 단지 자신만의 칸트 전기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아니다. 칸트가 묻고 싶었던 인간과 자연의 관계, 푸코 자신이 관심 있었던 철학과 의학의 관계를 전자와 엮는 것을 넘어 생명 자체에 대한 탐문을 시도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3. 푸코의 추적 과정에서 잠시 떨어져 나와 '학자들'에게 노령 혹은 나이듦이란 무엇인가 생각을 해봤다. 출판인들은 가급적 학자들의 총명함에 치우쳐 그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혹은 그 총명함의 기준에 들지 못하면 비판하고 과한 훈계도 보탠다. 그런데 뒤집어보면 후추보다 소금이 많은(이는 나이듦에 대한 오에 겐자부로의 비유다) 나이를 맞이하는 학자들이 갖는 어떤 좌절감은 단순히 정서적으로 (흔히 안타까움이란 표현으로) 미화되어왔다. 혹은 출판인들은 '노병은 죽지 않는다'류의 시선으로 뒤늦게 '학문적 비아그라'를 복용한 이들의 성과와 흔적을 찾아 노령과 거기에 얽힌 지성을 예찬한다.

4. 그런데 사회학자 랜들 콜린스가 『사회적 삶의 에너지』에서 학자들의 일반적인 궤적을 이야기한 것을 고스란히 따르자면, 이런 예찬을 받는 사람은 극히 소수다. 대부분은 자신의 왕성했던 문헌 소화 및 탐독 능력을 떠올리며 한때의 별이었음을 추억한다. 이를 감내하고 무리하지 않은 채 여느 직장인처럼 살아갈 뿐이다. 책이라는 것은 본디 지식의 최적화된 상태를 담아내는 게 상식이지만, 총명함을 향수로만 품고 살수 밖에 없었던 학자들의 삶을 제대로 다루진 않았다. 총기를 잃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건 사람 몇 없는 조용한 학회에서 늙은 고단함에 하품을 몰아 쉬거나, 심지어 코를 골거나, 자신의 질문 차례에서 동문서답을 하는 경우일 수도 있다. 

5. 오랜만에 쓴 논문은 으르렁거릴 에너지로 충만한 젊은 학자들이 보기엔 헛다리 짚기 일쑤고, 진부한 개념어 일색이다. 아이러니는 그 논문의 결과는 결국 지금 그 늙어가는 학자가 쓸 수 있는 최상급이라는 것이며, 이런 간극을 자기만 모를 때 생기는 잡음은 그 늙어가는 학자들이 떠안고 가는 짠한 운명일 수도 있다.

6. 요즘 독서라는 것을 되돌아보면서 그리고 거기서 앎의 최상급이라는 형태로 구현된 각각의 책이라는 사물을 보면서 나는 여기에 투여된 총명함이라는 것 말고 이제는 더 이상 그것을 발휘할 수 없는 학자들의 사회학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건 단순히 그들이 오랫동안 학자로 살아왔다는 것에 대한 관행적인 트리뷰트는 물론 아니다. '어쩌다'로 시작하든 '반드시'로 시작하든 학자라는 굴레 안에서 자신의 지적 감퇴를 인생의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사회학은 푸코가 말한 다음의 당연하지만 거스를 수 없는 삶의 지혜를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 때문이다.

"노령은 질병이 아니라, 질병이 더 이상 제어되지 않는 때이다. 그리고 이제 시간이 지배한다." 

7. 자신의 지적 황혼을 준비하는 이들이 남몰래 감추어 작성했던 소원들의 등록부를 찾아 들추어볼 때다. 여기엔 예상 외의 흥미와 깨달음이 들어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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