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현과 연준이 횟집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헤어진 연인 사이다. 2년 7개월 만의 만남, 어색했던 분위기는 소주 한두 잔이 들어가면서 풀어진다. 시현은 추운 겨울인데도 괜히 손으로 부채질을 한다. 그러더니 깻잎에 회 하나를 얹어 연준에게 먹여준다. 연준은 웃으면서 엄지를 올린다. 기분이 좋을 때 엄지를 올리는 건 연준의 습관이었다.

근데 사실 연준의 마음이 그리 편한 건 아니었다. 제법 텀을 가지고 보게 된 사이라지만 연준은 '내가 알던 시현이가 아닌데?' 하는 의심을 갖게 되었다.

연준과 시현은 같은 대학을 나와 어떤 교양수업에서 서로에게 반한 사이다. 연준은 시현의 거침없는 성격이 좋았다. 똑똑했고 자기 주장이 분명했으며 가다듬지 않는 야생의 표현들이 그녀의 입에서 나올 때 마치 섹스를 할 때 좋은 기분이 이런 걸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던 그녀가 지금 연준 앞에서는 너무 다소곳하다. 신중해졌고 조심스러워져 있었다. 연준은 '근데 시현아 뭐 물어봐도 되니?' 하고 싶었지만 속에 그 질문을 넣어두기로 했다.


몇 주 뒤, 시현과 연준의 관계를 알고 있던 예희를 연준은 만났다. 연준은 몇 주 전 시현을 만났다며 근데 시현이가 자기가 알던 그 시현이가 아니라면서 '절친'인 예희 너는 무엇 아는 게 없냐고 물었다.

예희는 머뭇머뭇거리다 그간 자신과 시현 사이에 있던 일을 하나하나 말해나갔다.

"연준씨, 시현이 걔 지금이 시현이 걔 본모습이 맞어"

"응?"

"시현이는 원래 과묵한 아이였어요. 내가 문제였지. 연준씨 나 알잖아요? 누구 눈치 안 보는 거. 욕도 존나 잘하고 나 시험 전날에도 술 땡기면 낮술 마시고 개 되는 거 좋아하잖아.

시현인 그런 내 모습이 부러웠나봐요. 친하게 지내면서 시현이가 나랑 비슷해지더라구. 처음에 내가 알던 걔는 그 정도까진 아니었거든. 그러다가 싸웠지. 시현이가 먼저 괴로워하더라구. 자기도 자기를 잘 모르겠대."


연준은 그런 거침없던 시현의 매력이 막상 상실되어 있으니 약간의 실망감을 가졌다. 그런 시현을 '챙겨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관계를 유지했었고 무엇보다 자신이 스트레스를 받아 하던 소심함과 지나친 사려 깊음이 싫어서 더 끌렸던 시현이 결국 자신과 같은 성격의 사람이었다는 것에 묘한 실망과 짠함을 느낀 것이다.


연준은 예희와 헤어진 뒤 오랜만에 그녀의 싸이에 접속해보았다. 그를 끌었던 어두컴컴하던 글과 생각의 흔적 대신 남은 건 단란한 모습의 그녀와 평범한 계획표뿐이었다. 자신에게 "오빠 존나 멋지지 않아 저거?"라며 "뭐야 이 새끼 너 왜 이렇게 반응이 없어 나 소리 막 지른다" 하던 그녀는 어디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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