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의 《 현대사회의 성, 사랑, 에로티시즘》은 '합류적 사랑' 말고도 챙겨볼 것이 많은 책이다. 그중 '공의존codependence'이란 개념에 대한 기든스의 심층 고찰은 개인과 개인이 감정상 불평등한 관계에 놓여 있을 때, 개인이 어떤 아픔을 쌓아놓고 사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쉽게 말해서 공의존이란 개념은 타인의 정체성에 대한 선망이 없으면 자신의 삶을 견디지 못하는 심리 상태를 말한다. 공의존에 대한 강박이 있는 사람은 자신이 애정하는 대상을 향한 헌신에 신경쓰며, 이는 '헌신의 중독'으로 나아가기까지 한다.

아울러 자신에게 없는 성격 혹은 매력을 주변에 있는 누군가에게 발견했을 때 그 사람과 같은 사람이 되고자 부단한 노력을 한다. (이러한 닮기 과정이 일종의 정신병적 징후로 나타났을 때 사례는 바벳 슈로더 감독의 영화 <위험한 독신녀>가 잘 보여주고 있다)


공의존 상태의 기본 사례라고 할 수 있는 건 부모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자식의 심리와 그 상처. 부모로부터 감정적인 독립을 하지 못한 자식들이 부모를 위해 내 헌신이 쌓여왔건만, 부모가 정작 그 헌신의 시간을 외면했을 때 이는 엄청난 공격성으로 돌아온다. 물론 이러한 공격성은 자신에게 상처를 준 부모에게 직접 분출되기보다 치료 과정에서 두드러진다.


기든스의 책에 소개된 여성 니키의 사례. 니키는 어린 시절 어떤 장면이 떠올리기 싫다. 피아노에 소질이 있던 그녀는 이런 자신의 연주가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것임에 유난히 집착한다. 아버지도 니키의 그런 마음씨가 싫을 리 없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피아노 연주회. 니키는 아버지를 비롯 많은 이가 모였다는 것에서 오는 긴장감에 그만 곡의 일부를 통째로 연주하지 못했다.


문제는 연주 이후였다. 니키는 자신을 위로해주리라 믿었던 아버지로부터 모욕적인 말을 듣는다. 아버지는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당했다면서 니키를 크게 나무랐다. 니키에게 그 연주회는 아버지와 자신을 둘러싼 기억을 하나의 감정으로 엮어보게 하는 사건이었다. 연주회 때문에 그간 쌓여왔던 니키의 공격성은 자신이 저지른 실수 혹은 불편했던 일들을 다 기억하는 것과 맞물렸다.


+

내향적인 이들에게 잔 실수를 비롯해 자신이 겪은 상처를 감정과 디테일한 기억으로 재구성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공의존은 타인지향형 인간, 연극성과 더불어 내향적 인간이 감내하고 있는 감정의 특성을 설명하는 데 중요하게 참조하고픈 개념이다.


공의존의 기본 단계를 넘어 더 디테일하게 주목하고 싶은 건 누군가를 닮아간다는 것의 성공과 실패를 겪은 내향적 여성 선미의 상처에 대한 기록이다. 이는 외향성을 일시적인 시간 안에 연극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아닌 외향성으로 자신의 삶을 다 바꾸려했던 한 여성의 좌절과 우울이다(다음 이야기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