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적인 사람들에 대한 관찰 메모를 정리하면서 큰 관심 사항 중 하나는 내향적인 사람들의 공격성이었다. 직접 만나고 관찰한 내향적인 사람들은 특히 ‘어떻게 해야 화를 잘 낼 수 있는 겁니까’라는 문제에 마음을 썼다. 일반화할 수 없지만 자극을 담고 사는 주변의 몇몇 내향적인 사람들은 술자리에서 자신의 공격성을 서슴없이 드러냈다. 때론 그 공격성은 눈물에 따라오는 자책감과 엮이면서 ‘지난날에 대한 섬세한 기억 복기’로 이어졌다.

이러한 기억 복기가 온전한 해결책은 아니었다. 갑작스레 밀려오는 작은 실수에 대한 과해석으로 자신을 자책함으로써 그것이 위안이 되는 감정의 분출 유형이었다. 특히 이러한 작은 실수의 내용을 들어보면, 자리에 함께한 사람이 ‘아 이 친구가 이 실수 때문에 힘들어 하는구나’라는 예상과 다른 엉뚱한 것들이 제법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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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기, 「밖에선 달콤, 안에선 매콤」에서 부연하고 싶은 심리 상태는 ‘빈 둥지 증후군empty nest syndrome’(헬레네 브렘베크의 연구)의 심층 해석이다 빈 둥지 증후군을 통해 보고 싶은 것은 중년 여성과 그의 자식들이 만들어가는 감정 환경의 일부다. 


빈 둥지 증후군의 쉬운 예.


남편·자식과 함께 ‘집안일’로 자신의 일상을 채워가는 중년 여성의 삶 속에서 자식이 분가를 하게 되면 여성은 평소 하던 일의 양이 줄어들게 된다. 이 순간은 엄마로 살아가던 그 여성에게 “야호! 해방이다!”라는 순간으로 인식될까. 빈 둥지 증후군은 그 점을 파고든다. 자신이 늘 행해오던 습관의 일부가 사라질 때 습관의 당사자는 좋아하기보단 '빈 둥지 상태'가 되어버린 자신의 환경에 대해 당황스러워한다는 것이 빈 둥지 증후군의 요지다. 고로 빈 둥지 증후군에 걸린 중년 여성은 분가한 자식의 집안일을 챙겨주려 할 때 적극적이 된다. 물론 ‘모성성’이라는 형태의 개입도 해석 가능한 요인이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순간에 일어나는 흥미로운 일들』의 저자 빌리 엔·오르바르 뢰프그렌이 빈 둥지 증후군을 해석하는 것처럼, ‘일상 속 습관의 상실’이란 측면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적극성은 자식들이 부모에게 갖는 미안함과 섞이면서 다툼으로 확장된다. 가령 지난주 드라마 <세 번 결혼하는 여자>에서 주인공 은수와 그녀의 엄마 순심이 벌인 감정 싸움에 주목해보자. 순심은 이 드라마에서 주변 상황에 순응하면서 묵묵히 감내하고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캐릭터다. 은수는 탤런트이자 옛 연인 다미와 섹스를 하게 된, 더 나아가 자신에게 불성실한 준구를 용서할 수 없었고 이혼을 결심한다. 결국 전 남편의 딸 슬기와 함께 따로 집을 얻어 살기로 한다. 순심은 은수의 집을 청소한다. 근데 이 청소 장면은 모성성과 섞여 있는 정서적 허기를 느끼게 한다.


자신의 딸에 대한 사랑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늘 해오던 ‘집안일’이란 영역에서 은수의 새집을 청소한다는 건 상실되었던 일상의 습관을 제대로 회복할 수 있는 기회다. 그런데 은수는 그 기회를 막으려 한다. 물론 이러한 은수의 제지는 엄마를 아낀다는 선의에 기반한 것이다. 허나 그 선의와 달리 표출되는 은수의 공격적인 감정 상태로 인해 내향적인 중년 여성인 순심은 남편 병식의 표현에 따르면 ‘골이 났다’

순심은 딸에게 받은 상처가 자신에게 어떤 자극을 주었는지 제대로 분출하지 못한 채, 이내 다시 딸의 심리적 상황을 변호하기 위한 순응적 제스처를 취한다.

고로 당신이 내향적인 사람이라면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당신은 당신이 편하고 조용하며 안전하게 누려오던 일상의 습관이 조금이라도 틀어졌을 때, 그 예민함을 어떻게 표출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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